바다로 무너지는 청사포를 찾아
- 그린웨이 따라 전설 따라(2회)
청사포로 내려가는 길
가수 최백호는 ‘청사포’라는 노래에서 발아래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는 없고, 발아래 포구에는 파도만 부딪혀 퍼렇게 퍼렇게 멍이 든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러나 과연 청사포에 푸른 모래는 없을까? 아니다, 푸른 모래는 분명히 있다. 바로 그 청사포의 푸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푸른 모래는 은린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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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과 해운대 사이에는 세 개의 포구가 해안가 갯바위를 따라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부산 동부해안의 삼포이다. 세 포구는 동해안 최남단에 있는 소박한 포구이며, 한때는 정동진과 강릉까지 연결되었던 동해남부선의 녹슨 철로가 이들을 매일 어루만지고 있다. 이 철로를 따라 걷다가 차례로 만나게 되는 삼포의 풍경.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하나씩 만나게 되는 그림 같은 삼포는 때론 수줍은 처녀이기도 하고, 때론 홍매화 가지를 손에 들고 천진하게 웃는 소녀이기도 하다.
아 름다운 청사포항구
어선이 어울리는 청사포항
최백호는 왜 청사포에 서린 푸른 뱀의 전설을 노래에 넣지 않았을까? 골맥이 김씨 여인의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은은하게 담겨 있는 그 신비로운 이야기를 왜 빠트렸을까? 유요(柳腰)의 자태로 긴 해안선을 그리며 오고가는 길손들을 유혹하는 소박한 길. 이 소박한 길에서 만나는 일출은 그 얼마나 장엄하며, 이 소박한 길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의 이야기는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길에서 아무런 심미안이나 감수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감각이 없는 무생물과 다름이 없으리라. 푸른 모래의 포구, 청사포. 곱디고운 해안선과 짙푸른 해변, 그리고 낭만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동해안의 숨은 보석, 청사포. 최백호는 푸른 모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 사자가 뱀 사자라면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들지도 않으리.
푸른 뱀의 포구라니. 섬칫하면서도 괴이한 기분이 들테지만 뱀이 사탄의 분신이라는 서양적 사고를 벗어나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푸른 뱀의 포구에선 정다운 기운이 절로 느껴질 것이다.
결말이 다른 두 개의 전설이 전해 오는 청사포.
그 전설의 하나는 죽은 아내를 만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 신화를 닮았고, 또 다른 전설은 일본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된 박제상 설화를 닮았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바다를 생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찮게 발견되는 이 신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생명일 것이다.
청사포 해안선
동해남부선은 외롭다
젊고 힘센 남편은 결국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계절풍이 불어오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하러 떠났다. 불안에 떠는 아내를 남편은 고이 달래었다. 그러나 착하고 어여쁜 아내는 남편이 떠난 포구를 바라보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었지. 그러나 행복은 잠시, 남편은 폭풍우에 휩쓸려 그만 익사하고 말았고, 머나먼 용궁나라로 가고 말았지. 김씨 성을 가진 아내는 해안가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오리라 생각하며 매일 매일 기다렸지. 아내의 몸은 메말라갔고, 짙은 한숨 소리만이 푸른 바다 위로 떠돌았지. 결국 아내의 정성은 동해의 심연을 넘고 넘어 용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용왕은 한 마리 푸른 뱀을 차사로 보내 아내를 용궁으로 데려갔지. 아내는 용궁으로 들어가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 되었지. 부부는 용궁에서 천오백년을 이어온 인연을 다시 맺었지.
또 하나의 전설은 서글픈 결론이다. 마을에서 미포방향으로 걸어가면 300년 된 소나무를 한 그루 만날 수 있는데, 그 소나무 앞에는 골매기 김씨 할머니 당산이 있다. 아내는 매일 바다가 잘 보이는 망부석에 올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리운 남편은 결코 오지 않고 김씨 부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결국 아내는 망부석 위에서 애타게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정절을 가상히 여기고 아내를 수호신으로 삼아 제당 안에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철길과 해안선의 앙상블
그림같은 해안길
푸른 뱀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청사포’라는 마을 지명과 깊은 관계를 푸른 뱀. 그것은 아마도 김씨 여인과 남편을 상봉시키는 희망의 매개체이며 사랑의 전령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여자의 출입을 금하는 다른 해안마을과는 달리 행실 좋은 부부가 함께 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후일 촌로들이 뱀 사자가 안 좋다 하여 모래 사로 바꾸어서 마을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푸른 뱀의 전설이 푸른 모래의 전설로 아름답게 승화된 것이다.
그림처럼 하염없이 뻗어나간 해안길을 따라 만나는 우리들의 청사포. 길 위에서 전설을 만나고,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는 우리들의 청사포. 오늘도 청사포는 그리움을 안고 바다를 바라볼 뿐, 끼룩하며 무심히 날아가는 한 마리 기러기가 애달파 보일 뿐이다.
청사포 망부송
시민기자 프로필 부산대학교 졸업.
현재 인테리어업체 운영 중.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의 저자.
현재 각종 인터넷 언론 및 잡지, 사보 등에 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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