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해인] 편집장 시절,
새 천 년이다 밀레니엄이다 떠들석하던
그때 1999년 12월호,
즉 20세기 마지막 달 특집으로
'세기말에 쓰는 유서'을 기획했다가 주위의 만류로 보류한 적이 있었다.
하기야 함참 들떠서 온갖 청사진으로
세상을 도배하는 때에 유서를 쓰라니 심하기도 했다.
그러니 기획 의도는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는 즈음에
우리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이켜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죽음을 당한다면
혹은 훗날에 쓸 유서를 미리 작성해본다면
나느 과연 그 백지 위에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가노라고 할 게 있을까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갈 줄만 알았지
옆도 뒤도 돌아볼 틈 없이 무한 경쟁의 궤도에 끌려 끝없이 질주만 하는 인생에서
내 영혼이 뭘 원하는지
내가 가슴으로 원하는 삶이 과연 무엇인지를
한 번쯤 중간 점검해보자는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었다.
그렇게들 바삐 살다가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끝내지 못한 일, 해보고 싶었던 일, 가보고 싶었던 곳
가슴 한편에 묻어둔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그리운 사람,
미안하단 말을 꼭 전해야 할 사람, 그 사람 손을 꼭 잡으며
" 그때 참 고마웠어요" 라고 얘기해야 할 사람----.
늘 마음으로만 해야지 하면서 삶에 지쳐 잊고 살고,
그러기를 한해 두해 하다보면 어느새 머리엔 서리가 내린다.
가끔은 하늘도 한 번씩 올려다보고,
내 옆에 어떤 사람이 달리고 있나도 보고
뒤를 돌아보며 너무 지쳐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평생을 이 한 몸 뒤치다꺼리하기에만 바빠 있는 삶에서
하루에 한 번쯤은 내 숭고한 영혼을 위해서 배려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만히 귀 기울려 그 소리을 들으려 애쓰고
영혼이 목말라하는 것들을 찾아 시원한 물을 뿌려 푸르게 가꿀 일이다.
'의미 있는 삶' 은 결국 내가 원하는 만큼 애를 써야만 살다가 갈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애를 써야 하나.
쉽게 생각하면 된다. 의미 있는 삶이란 ' 의미를 부여하는 삶' 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의 가슴과 그 어떤 것에는 내가 살아 숨쉬게 된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나무 그루터기도 지친 나그네에게 얼마나 소중한 쉼터를 제공하는가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소중한 의미가 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살 만하고 아름다워지겠는가
6.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