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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제작 / 2004 개봉 / 102분>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로베르토 로셀리니
출연 : 안나 마냐니 & 알도 파브리지
이탈리아 영화사에서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를 이룬 걸작이자 네오리얼리즘의 형식과 방법을 세계에 알린 영화, <무방비 도시>. 조절된 조명이 아닌, 매끈함보다는 거친 현실을, 전문 배우가 아닌 비직업 배우를, 촬영소보다는 야외촬영을 선택하여 즉흥성을 보여준 작품.
직접 몸으로 체험한 전쟁의 끔찍한 현실을 필름으로 옮긴 이탈리아 리얼리즘의 탄생을 알림. 이탈리아 민중의 저항조직이 해방되기 직전, 독일군 진주 하의 로마. 영화인도 총을 들고 생명을 건 저항운동에 참가했다. 그 중 한사람인 로셀리니는 직접 체험한 끔찍한 진실을 필름에 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저항운동에 맞선 독일군과 비밀경찰(게슈타포)의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잔혹함과 비정함을, 냉철하고 날카롭게 리얼리즘으로 그려내었다.
2차 대전 말 독일 점령 하에 있던 로마의 민중들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 살고 있었으며, 나찌에 대항하는 지하 운동 또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족 해방 위원회의 지도자인 만프레디는 게수타포에 쫓겨 친구인 프란체스코의 아파트로 숨는다. 경계가 심해서 자금을 피에트로 신부에게 전달해 주기를 부탁한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나찌는 아파트를 급습하여 프란체스코를 비롯한 모든 남자들을 체포해간다. 다행히 위기를 모면한 만프레디는 프란체스코를 비롯한 레지스탕스를 구출하고 프란체스코와 함께 그의 애인인 마리의 집에 숨어든다.
그러나 마리의 배신으로 만프레디는 나찌의 잔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피에트로 신부 또한 반역죄로 총살형을 당하는데 이를 지켜보던 어린이들은 묵묵히 로마 시내로 발길을 돌린다.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Roberto Rossellini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1906-1977)는 영화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그래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로셀리니라고 하면 네오 리얼리즘의 선구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한편으로 누벨 바그의 아버지 이기도 했고 현대 영화의 창안자 이기도 했다. 로셀리니는 그 범주가 어떤 것이든 항상 영화에 대한 관습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하면서 픽션과 다큐멘터리, 관찰과 교육, 개인과 사회 등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으려 한 영화감독이었다.
로셀리니가 첫 장편영화를 만든 것은 1940년대 초의 일이었지만 그에게 영화감독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은 1945년작 <무방비 도시>였다. 나치 독일에 대항한 이탈리아 민중들의 투쟁을 리얼리즘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네오 리얼리즘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후로 로셀리니는 <무방비 도시>보다도 훨씬 혁신적인 리얼리즘 영화인 <전화의 저편>(1946)과 전후 독일의 몰락상을 한 어린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독일 영년>(1947) 같은 리얼리즘 영화의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1906-1977)는 영화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그래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로셀리니라고 하면 네오 리얼리즘의 선구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한편으로 누벨 바그의 아버지 이기도 했고 현대 영화의 창안자 이기도 했다. 로셀리니는 그 범주가 어떤 것이든 항상 영화에 대한 관습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하면서 픽션과 다큐멘터리, 관찰과 교육, 개인과 사회 등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으려 한 영화감독이었다.
로셀리니가 첫 장편영화를 만든 것은 1940년대 초의 일이었지만 그에게 영화감독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은 1945년작 <무방비 도시>였다. 나치 독일에 대항한 이탈리아 민중들의 투쟁을 리얼리즘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네오 리얼리즘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후로 로셀리니는 <무방비 도시>보다도 훨씬 혁신적인 리얼리즘 영화인 <전화의 저편>(1946)과 전후 독일의 몰락상을 한 어린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독일 영년>(1947) 같은 리얼리즘 영화의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문화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이라는 주제의식은 이미 <전화의 저편>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이었지만, 이 문제를 보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보다 미묘하게 다루기 시작한 것은 잉그리드 버그만을 주연으로 기용해 만든 <스트롬볼리>(1949), <유럽 `51>(1952), <이탈리아 여행>(1954) 등이었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 여행>은 특히 후에 누벨 바그의 멤버들이 될 이들로부터 현대 영화의 출발점 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그들에게 심원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로셀리니는 오염된 영화를 버리고 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텔레비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새로운 영역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세계와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를 안겨줄 교육적 도구로서의 역사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루이 14세의 권력쟁취>(1966)나 <사도행전>(1969) 등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작들이다.
[필모그래피]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기적/순결()|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무방비 도시(1945)|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전화의 저편(1946)|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독일 영년(1948)|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프란체스코...(1950)|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스트롬볼리(1950)|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살인기계(1952)|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유럽 51(1952)|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이탈리아 여행(1953)|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불안(1954)|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인디아(1959)|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비바 이탈리아(1961)|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검은 영혼(1962)|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루이 14세..(1966)|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사도행전 2부(1969)|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사도행전 1부(1969)|감독
=== 작품 해설 ===
세계영화작품사전 : 전쟁의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무방비 도시 Rome, citta aperta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태동을 알린 작품. 무솔리니 정권이 실각하고 나치가 점령해 있는 도시 로마를 배경으로 하여 레지스탕스들의 활동과 그들에 대한 탄압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려냈다.
시놉시스
나치 점령기의 이탈리아 로마. 한 무리의 독일군이 어떤 집으로 쳐들어온다.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조르지오 만프레디를 체포하기 위해서다. 조르지오는 황급히 도망친 뒤 동지인 프란체스코의 집으로 피신한다. 프란체스코에게는 소라 피나라는 강건한 아내가 있다. 그녀가 프란체스코와 조르지오의 활동을 돕고 있다. 조르지오는 소라에게 부탁하여 레지스탕스에 협조적인 돈 피에트로 펠레그리니 신부를 불러들이고 다시 그를 통해 활동 자금을 운반해오려 한다.
하지만 나치의 수사망은 점점 좁혀져오고 프란체스코와 소라의 결혼식 날 프란체스코는 잡혀가고 소라는 잡혀가는 프란체스코를 쫓아가다 나치의 총에 사살된다. 레지스탕스들의 도움으로 프란체스코는 탈출하지만, 조르지오와 신부는 나치에 붙잡혀 최후를 맞게 된다.
작품 해설
1. <무방비 도시>와 네오리얼리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내내 이탈리아영화는 오히려 외형적으로 고취되었다. 실제로 치네치타라는 거대 스튜디오와 영화학교 등이 이 당시에 설립됐다. 하지만 영화는 파시스트 국가 정책에 부흥하는 선전 도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혹은 정치적, 사회적 발언은 봉쇄된 채로, 상투적인 애정영화나 멜로드라마에 한정되어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이탈리아영화들을 비난하기 위해 나온 말이 ‘백색전화(white telephone)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화려한 주택에 살면서 고급스러운 백색전화기를 한가롭게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서 붙여진 말이다.
전쟁이 종식되고 백색전화영화의 시기가 지나자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라 불리는, 현대 영화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조 또는 운동 또는 경향이 도래했다. 그 시작으로 여겨지는 영화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다(평자에 따라서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1943)이 네오리얼리즘영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무방비 도시〉는 개봉 당시에는 비평적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흥행 면에서는 성공했다. 이후에 로셀리니는 〈무방비 도시〉에 이어 ‘전쟁 삼부작’이라 불리는 〈전화의 저편〉(1946), 〈독일영년〉(1947)을 연이어 내놓는다.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실상 영화계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었고 1930년대 이탈리아의 문학계에서 종종 사용되던 말이었다고 한다. 이 용어가 사실주의 경향을 앞세우고 등장한 새로운 이탈리아영화들을 가리키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로셀리니의 작품들 외에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 〈움베르토 D〉(1952),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1951) 등이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지금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2. 제작 과정
〈무방비 도시〉의 내용은 대체로 1943년에서 44년 사이의 실화들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시나리오 작업 초기 단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소재는 ‘레지스탕스를 돕다가 총살당하는 신부’라는 것이었다. 로셀리니는 이 인물을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이자 왕년의 보드빌 스타인 알도 파브리지에게 맡기기를 원했고 그렇게 했다.
한편 파브리지를 캐스팅하기 위해 애쓰던 중에 알게 된 사람이 다름 아니라 훗날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명감독이 되는 페데리코 펠리니였고, 펠리니는 〈무방비 도시〉의 조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로 참여하게 된다.
영화에는 다른 일화들이 하나둘씩 더해졌다.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어린 소년들, 1944년에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나치에 살해당한 마리아 테레사 줄라체라는 이름의 임신부의 실화 등이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특히 임신부의 실화는 영화에서 소라 피나라는 이름을 지닌 여인의 이야기로 옮겨졌다.
〈무방비 도시〉를 전환점으로 이탈리아의 명배우로 성장하게 되는 안나 마냐니가 바로 그 소라 피나 역을 맡았다. 남편 프란체스코가 나치에 잡혀 차에 실려가고 그 뒤를 절박하게 뒤쫓다가 끝내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소라의 장면은 〈무방비 도시〉를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애초에 로셀리니는 준비된 몇 가지 소재들을 일화별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싶어 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지금과 같은 일반적 서사 구조를 택하게 됐다. 제작비는 촬영 내내 부족했다고 한다. 부유한 백작 부인에게 얼마간의 종잣돈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로셀리니는 수중에 있던 많은 것을 내다 팔고서야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3. 주제
일반적으로 네오리얼리즘영화들은 이탈리아 사회 안에 파시즘이 남긴 상흔 또는 피폐한 개인과 무력한 사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에 주력했다. 하지만 로셀리니의 경우는 ‘전쟁 삼부작’을 넘어 ‘잉그리드 버그먼 삼부작’(로셀리니의 영화들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은 그와의 작업을 희망했고 〈스트롬볼리〉 〈유로파51〉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잉그리드 버그먼 삼부작을 남겼으며 로셀리니와 결혼까지 했다)을 만들고 후기에는 역사극에 매진하면서 여타의 네오리얼리즘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고수했다.
때문에 변절자라는 비판도 얼마간은 감수해야만 했다. 로셀리니 스스로는 네오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이 자신의 영화 〈무방비 도시〉에서 촉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과 늘 얼마간의 거리를 두기를 바랐다. 또는 여타의 네오리얼리즘영화들과 자신의 영화가 다른 지점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로셀리니는 영화가 사회적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변혁해야 한다는 식의 리얼리즘적 세계관을 갖고 있진 않았다.
그보다는 영화가 지녀야 할 창작의 도덕적 자세를 강조했으며 그 자세로 세계를 지켜보는 진실한 형식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리얼리즘 세계의 시작점은 〈무방비 도시〉였다. “〈무방비 도시〉를 만든 이래로 나는 사실과 역사에 대해 겸손과 존중의 자세를 갖춘 채로 내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려고 의식적이면서도 완강한 시도를 해왔다”라고 훗날 로셀리니는 밝힌 바 있다.
주요 등장인물
조르지오 만프레디(마르첼로 파글리에로) : 로마에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 나치들에 의해 추격당하자 동료인 프란체스코의 집으로 피신한다. 끝내는 붙잡히지만 모진 고문 끝에도 동료들을 배반하지 않고 의연히 죽음을 택한다.
돈 피에트로 펠레그리니 신부(알도 파브리지) : 레지스탕스에 협조적인 신부. 총살당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과 인간적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다.
소라 피나(안나 마냐니) : 강건하고 서민적인 여인. 영화의 중반부에 갑작스럽게 숨지며 당혹과 슬픔을 자아내는 인물.
프란체스코(프란체스코 그랑자케) : 조르지오와 함께 적극 활동하는 레지스탕스.
명장면 명대사
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오. 바르게 사는 게 어려운 일이지. - 펠레그리니 신부
레지스탕스를 도왔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체포된 돈 피에트로 펠레그리니 신부는 총살형을 당하기 직전이다. 이때 그의 죽음에 앞서 간이 미사를 올리려는 다른 신부가 그의 죽음을 걱정하자, 그가 하는 말.
관련 정보
수상
1946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연관 영화
〈전화의 저편〉(1946, 로베르토 로셀리니) : 로셀리니가 〈무방비 도시〉에 이어 만든 영화. 이탈리아 남부에서 북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군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되, 6개의 독립적인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무방비 도시〉가 얼마간의 멜로드라마적 구조에 기대고 있었다면 〈전화의 저편〉은 드라마적 구조에서 훨씬 더 벗어나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평자들에 따라서는, 〈무방비 도시〉가 아니라 〈전화의 저편〉이야말로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방비 도시 [Roma, città aperta] (세계영화작품사전 : 전쟁의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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