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이렇게 깨끗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최대교 검사
봉투를 만들어 파는 아내.
점심은 누룽지만 싸왔다는 최 검사.
별명이 누룽지 검사였답니다.
초대 상공장관 임영신이 횡령한 사실이 들어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승만 대통령의 양딸 같은
임영신을 기소해버렸습니다. 이승만이 난리를 치니
옷을 벗고 나와 버렸습니다.
늘 가시밭길을 걸었던 최 검사
그러나 대한민국 검사의 사표(師表)가 되어
최 대교 검사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그분을 기립니다.
그분은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경기고교 전신)를 거쳐
일본 호세이대학 법과를 졸업하셨습니다.
그런데 피의자에게 의사 성교를 강요하는 검사.
애인의 성형이 잘못 되었다고 의사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검사.
혼외 자식이니 아니니 하면서 시중의 웃음거리가 된 전 검찰총장
검사는 같은 검사인데 세월이 흐르며 이렇게도 달라졌습니다.
좋은 쪽으로 결실이 된 것이 아니라 벌레 먹은 장미처럼 되었습니다.
김 홍섭 판사
김홍섭 대법원 판사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골덴 바지 차림이나 물감들인 군복을 입고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셨는데 반찬은 언제나 단무지 였답니다. 법원 마크가 달린 관용차는 타지를 않고 출퇴근 하였답니다.
사형수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져 ‘사형수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변호사를 봉으로 잡고 고급 룸 싸롱에서 갖은 엽기적인 짓을 했다는 판사...
17년 한 곳에 말뚝을 박고 환형벌금을 하루에 5억을 때려 황제 노역을
시킨 향판(鄕判) 나으리...
1990년대의 의정부 지원의 판사들의 대량 정직 경고 조치.
선배 김홍섭 판사의 몸가짐 마음가짐은 조금도 닮지 아니하고 돈과 여자와
출세에 혈안이 되어 사법부의 물을 흐리고 있습니다. 김 판사가 하늘에서 이 꼴을 보면
얼마나 슬퍼할까요?
프란체스카 여사
명색이 대통령 영 부인인데
여염집 주부처럼 구멍 뚫린 대통령의
양말을 전기다마(전구)를 집어넣고
꿰매었다고 하였습니다.
“두부찌개는 풋고추와 파를 듬뿍 넣고 함께 끓였을 때 남편의 칭찬을 받았다.”
이 일기장을 읽고 푸른 눈의 first lady가 속은 한국 산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녀의 검소함과 소탈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오스트리아 부유한 집안 출신의 first lady가 저렇게 우리네
어머니처럼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살았는데 요즈음 우리네
젊은 부인들은 어떠한가요?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몰고 다니며 아이들의 인성(人性)을
짓밟아 놓고 경제력을 움켜쥐고 남편을 깔아뭉개고 호령호령하다가
친구가 나오라면 승용차 몰고 내달아 친구들 만나서 수다 수다 떨다가
브랜드 구매충동 중독 걸리고 얼굴한번 성형수리하면 이것도 중독되어
하고 또 합니다. 사는 것은 근사해도 인간성은 점점 아카시아 가시가 되어갑니다.
프란체스카 여사여,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당신의 손녀딸들을 보살펴 주소서.
김 구 선생
해방 후 아들 김신이 신부 임 윤연과 결혼한 후
결혼 축의금과 축의용 금반지와 금비녀가 엄청나게
들어 왔는데 김구선생은 아들 며느리 보고 모두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시고 말씀하셨답니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월남한 사람들이
아주 어렵게 산다하니 이것을 모두 그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것이 어떻냐?“ ”아버님 말씀대로 하십시오.“ 아들은
그렇게 대답하였답니다. 또 선생은 전라도 경상도 유세를
다니면서 정치자금이 모이면 모두 월남한 사람들을
위하여 썼다고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이 정도이면 우리는 얼마든지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품질은 점점 열악해져서
이제는 전 국민이 정치꾼들이라고 하면 치를 떱니다.
200개가 넘는 다는 국회의원들의 특권들이야 말로 바다에 수장해 버려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김종필 김영삼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정치 자금” 빼어먹는 귀재들. 이 제 모두 저승에 가면 편치가 않을 것입니다.
변영태 선생
1951년 외무부장관이 된 이후 국무총리를 역임한 선생은 해외 출장 갈 때마다
남는 달러는 정부에 반환했다고 합니다.
달러가 황금보다 귀한 때에 경비로 쓰고 남은 돈을 반환했다는 선생의 청렴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선생은 매일 아령(dumbbell)으로 운동을 하셨는데 외국 출장 가서도
하셨습니다. 귀국할 때는 아령을 버리고 오셨다는데 아령이 무거워 초과 되는 짐의 무게에 부과되는 달러를 내는 것이 아까워서 그리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공무원들 돌아가며 가는 외유성 해외견학.
시골의 작은 읍 면단위까지 퍼져나간 전염병.
일과 끝나고 회식하고 다시 사무실 들어와 특근
도장 찍고 특근 수당 타는 세금 도둑들.
이 땅에서 변영태 선생은 화석(化石)이 되었는가?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은 원주에서 태어나 경성제일 고등 보통학교(경기 고등학교 전신)와 도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서울 대학교 교수로 취임(영어 영문학과)합니다. 1948년 농림부 양정과장으로 임명 되었다가 변영태 외무장관에 의하여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임명됩니다. 1973년 서교동 집에서 연탄을 2006년 서거할 때 까지 썼는데 그동안 2년 동안은 기름을 때었다고 하는데 이는 연탄이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신던 고무신이 닳으면 타이어 쪼가리를 대서 신었고 셋째 딸 낳았을 때 구입한 선풍기는 서거할 때 까지 썼답니다. 화동 경기고 시절에 썼던 뿔테 안경을 1960년 외무부 차관 시절 까지 썼다고 합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에 비하면 쪽방 대통령입니다.
에스컬레이터인지 엘리베이터인지 요란하게 설치해 놓고 거실에는 근사한 썬큰 가든(sunken garden)이 있는 집, 저기 남쪽 나라에 화려하게 지어놓은 아방궁.
이 좌편향 전직들은 어디서 돈이 생겨 저렇게 호화판 궁전들을 지었나요?
쪽방이면 어떻습니까? 정직한 최 대통령을 나는 존경합니다.
오늘 날 우리가 정직한 점에서 선진국에 떨어지는 것은 각계각층 고위층들이 위에서 흘려보내는 오물에 우리도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선큰가든(Sunken Garden)
지상 층 보다 낮은 실내 정원을 말하며 채광이 잘되도록 유리 천장을 만들고 통풍도 자 되게 꾸밉니다.
첫댓글 도시락을 옆에 끼고 아현동 자택에서 서소문 검찰청까지
걸어가시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최검사의 장남 최변호사와 친분이 있어 지난 년말 때 만나
같이 한잔 기울었지요.
손을 꼽자면 더 많은 훌륭한분도 많은데 왜 오늘날 이렇게
어두운 세상이 됐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등으로 모두 사라져 버리고
배금주의에 젖은 소인배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어요. 5000년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우리의 올바른 정신 문화를 계승 발전하는 노력이 없다면
뿌리 없는 국가가 되는 것이지요.
극단적 절제로 세상에 도덕적 삶을 수범한 사람들이 위대하다면
일탈적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세상에 예술의 精粹를 남긴 사람들도 위대하지 않을까.
경성제일 고등 보통학교(경기 고등학교 전신)는 주로 어떤 인물들을 배출했던가.
도덕적 모범생? 일탈의 창조인? 아니면 세속적 영달만 추구한 이기적 생활인?
고미인현님...아 그랬었군요. 최검사가 임장관을 기소해 버린 그런 서슬퍼런 검사의 아들과 대포를 나누었다니 부럽습니다.
자연인님....정신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은 참으로 절대 절명한 일인데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돈과 명예가 유전인자가 된 우리에게 어떠한 치료가 제대로 된 것인가요?
됫메님....양쪽이 다 위대하지요. 그런데 일탈적 쾌락을 추구하며 위대해진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아 사회 발전에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경성고등이고 경기고교고 모르긴 해도 세속적 영달을 추구한 사람이 제일 많은 것 같은데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이튼 스쿨에서는 학교 명예를 더럽힌 졸업생은 명단에서 지운다
고 하더군요. 자신의 영달만 추구하다가 개 망신하는 졸업생은 이튼 처럼 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