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졸업여행]
드디어 졸업을 앞둔 우리 6학년 마지막 여행은 경주다. 지난해 6월 고구려와 발해의 땅을 거쳐 백두산을 다녀온 아이들이 천년의 나라 신라에 온 셈이다. 맑은샘학교는 세 번의 졸업여행을 간다. 한 번은 모둠끼리, 한 번은 부모님들과 모둠선생이랑 지리산 종주를, 한 번은 모든 선생들이 아이들과 같이 간다. 지리산은 부모님 도움으로 다녀오고, 백두산은 장터를 열고 후원을 받아 부모님 도움 없이 여행비를 벌어 다녀왔고, 마지막 경주여행도 벌어서 비용을 마련하려 애썼다.
마지막 졸업여행을 가고 싶은 곳을 여러 차례 이야기 나눴는데 저마다 달랐다. 성범이는 눈썰매를 타고 싶다 해서 형들이 다녀온 적이 있는 태백산을 추천했더니 산이라서 싫고, 축구 좋아하는 원서는 영국에 가자고 해서 어렵고, 민주는 산 빼고 아무 데나 좋다 해서 끝내 선생이 경주를 추천했다. 모둠끼리 떠난 첫 졸업여행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땅을 밟았으니 역사 여행 꼭지를 이어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경주로 가자고 했다. 백두산을 다녀와 졸업여행 발표회를 하고,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두 차례 역사 나들이를 다녀온 흐름을 이어 가는 셈인 게다. 경주는 몇 해 전 6기 졸업생들이 자전거 여행으로 역사탐방을 온 적이 있는 곳이라 또 인연이 있다.
더욱이 경주에는 과천 무지개학교 선생으로 살던 미나리가 시집가서 사는 곳이고, 시아버지가 경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인 함원신 선생님이 계신 곳이라 졸업여행 인연이 됐다. 미나리가 집을 내준 덕분에 잠집 걱정을 덜었고, 함원신 선생님이 들려주는 지진과 핵발전소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뜻이 있게 다가왔다. 산돌학교로 중등학교 진학이 결정된 탓인지 성범이가 아주 신이 나서 경주 가는 차에서 줄곧 노래를 부른다.
첫 날, 예상보다 일찍 경주에 닿아 대능원과 첨성대를 둘러봤다. 아침 9시 조금 넘어 떠나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도 1시 30분에 경주에 닿았으니 경주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내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때 온 경주와 10년 전 온 경주 모습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느끼는 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아마 역사의 도시 경주라 개발제한이 되어있어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물론 보문관광단지나 외곽은 아파트와 큰 건물이 눈에 띄었다. 대능원에서 천마총을 거쳐 황남대총과 미추왕릉을 천천히 걸어서 둘러본다. 하늘이 맑고 날이 그리 춥지 않아 좋다. 문득 날마다 큰 무덤을 보고 사는 경주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이 하나로 보인다고 말하던 영화가 생각나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다지 반응은 없다. 마지막 졸업여행이라 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 허아람 선생이 재미있는 사진을 만들자 해서 큰 무덤 앞에서 여러 가지 자세로 맑은샘 9기란 글자 일부를 썼다. 큰 무덤을 만들 때 들인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기에는 졸업여행의 즐거움이 크다. 대능원 옆 첨성대 쪽으로 걸어가는데 비단벌레 전기자동차가 있다. 비단벌레는 천연기념물인데 천마총에서 장식품으로 발견된 딱종벌레과라고 해설이 되어있다. 기념할 만 한 차답게 귀여워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아이들도 사진을 찍었다. 선덕여왕 때 지어진 첨성대는 정말 지진 여파로 그런지 기울어져 있다. 피사의 탑처럼 점점 기울어져 간다는데 지진이 줄곧 되면 무너지겠다 싶다. 성범이가 국보 31호라는 걸 바로 말하던 첨성대 앞에서도 우리는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천문을 관측하는 국보 앞에서 기념할만한 사진을 남기겠다고 무지 애를 썼다.
배가 고파 시장에 들려 떡볶이와 순대, 튀김으로 배를 잠재우고 경주시내에서 40분 걸린다는 산내 잠집으로 갔다. 예전 초등학교 부지가 폐교되어 도리농촌유학센터이자 에너지체험장으로 쓰이고 있는 곳에 닿으니 미나리가 반갑게 맞아준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동지다. 학교 옆에 집이 있어 짐을 풀고 바로 학교 식당에서 저녁채비를 했다. 미나리 부부와 함원신 선생님를 저녁식사에 초대한지라 모두 바쁘게 움직이게 된다. 미나리 집에서 음식 채비를 해와서 학교 식당 불에 올렸다. 솜씨 좋고 손놀림 좋은 선생들 덕분에 금세 저녁 채비가 됐다. 장을 본 고기로 불고기와 청국장, 경주에서 유명하다는 한우 소고기까지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물론 저녁 설거지는 전통대로 졸업을 앞둔 어린이들이 다 하고 선생들이 돕는 정도다.
저녁을 먹은 뒤 함원신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들 들려주었다. 피곤하니 조는 아이도 있지만 멀리서 온 손님들을 위해 한참 동안 서서 지진과 핵발전소 이야기, 교육의 뜻을 풀어주셔서 선생들이 공부가 더 된다.
“지진의 상황은 여진이 줄곧 되고 있다. 그런데 처음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또 무감각해지며 적응해 간다는 게 무서운 현실이다. 판도라를 본 사람들이 그것을 재난영화로만 여기고 우리 삶에 닥친 일이라는 걸 무시하는 게 큰 일이다. 역사책 삼국사기 기록에 나온 경주 지진은 리히터기준 7정도에 해당하는 강력한 것이었다. 한국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양성단층이다. 그동안 교육이 잘못됐다. 지진의 나라 일본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예측연구를 해왔는데도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진 10초전 안내방송이 사람 목숨을 구한다. 일본은 거기까지는 해낸 거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 심각한 것은 핵 밀집도가 세계 1위인 한국에서 지진 대비가 전혀 안됐다는 것이다.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지은 게 핵발전소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해 고안한 핵원자로가 민간용 전기발전으로 둔갑해 끊임없이 핵발전소가 돌고 있다. 핵 발전은 이미 태양광보다 투자 대비 설비효용이 떨어지고 경제성도 없다. 핵발전소 원가에는 핵폐기비용이 들어있지 않고 폐기물 저장시설 비용도 안 들어가 있다. 더욱이 핵페기물 고준위방사선폐기물은 인간 과학기술로 처리할 수 없다는 거다. 세계 어떤 곳도 핵폐기물을 처리할 기술은 없다.
교육은 사람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자유로 끌어내는 데 있다. 아이들 안에 있는 자유의 힘을 끌어내는 일이 교사들이 할 일이다. 둘레 환경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교육은 창의성, 상상력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농촌이 죽어가고 있다. 농촌이 죽으면 나라의 앞날은 없다. 그러니 뜻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농촌을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대안학교 사람들이 그 몫을 외면하지 않으면 좋겠다. 시골에 학교를 세우고 마을공동체를 꾸려 농촌을 되살리는 것이 바로 이 시대 필요한 교육 운동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일하며 마을에서 자라야 한다.“
긴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해 기억나는 게 그렇다.
경주 졸업여행 첫 날, 역사 속 삶과 죽음의 경계가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는 경주에서 반가운 인연을 만나 뜻 깊은 이야기를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모두 피곤해서 일찍 잔다.
졸업여행 이틀째,
새벽에 화목난로가 꺼져서 추웠다. 아침을 잘 차려먹고 9시에 경주박물관에서 신라를 만났다. 성덕대왕신종 소리와 황금의 나라 신라의 뛰어난 세공술과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점심 때는 시장에 들려 저마다 먹고 싶은 대로 먹는데, 채식하는 분들은 따로 가고, 아이들과 나머지 일행은 시장 한식뷔페 집에서 밥을 먹었다. 시장 뷔페라 반찬이 정말 많아서 눈길을 끌었는데 막상 반찬이 차서 아이들은 차라리 밀면집으로 갈 걸 그랬다. 다행히 따듯한 국이 맛있어 배부르게 먹는다. 넉넉한 인심에 요구르트까지 잘 먹었다.
든든하게 먹고 산내쪽에 있는 오케이그린목장 눈썰매장에 가는데 정말 산꼭대기 분지에 있다. 날이 따듯해 눈이 없어 인공눈으로 만든 곳인데 손님들이 그다지 없다. 우리밖에 사람들이 없어 원없이 실컷 눈썰매를 탔다. 제법 길어서 타는 재미가 있다. 푹신한 튜브에 앉아 내려오며 맞는 바람과 햇빛 속에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뒤로 내려오다 올려다 본 무지개는 행운이다. 쉬지 않고 타니 썰매를 끌고 올라가는 숨소리가 헉헉 난다. 빠르게 내려가기, 천천히 내려가기, 돌며 내려가기, 떨어뜨린 모자 주워 내려오기, 뒤로 내려오기, 다양한 경주로 눈썰매를 타고 타고 또 탔다.
아이들 바람대로 실컷 놀았으니 배가 고프다. 가까운 전망대가 눈에 보이지만 굳이 오르려하지 않는다. 졸업여행 때면 늘 겨울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건만 산에 안가는 일정이니 굳이 올라갈 체력과 마음은 멀리 두고 온 게다. 그렇게 또 즐거운 졸업여행을 만들어간다.
잠집에 일찍 닿아 쉬다 저녁밥을 먹고 경주 밤경치를 보러 갈 계획으로 모두 쉬었는데 눈썰매를 진하게 타서 몸이 노곤해 잠에 취해 경주 밤경치를 보러갈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아주 단잠을 잤다. 동궁과 월지의 멋진 밤경치도 피곤한 몸이 따듯한 곳에서 풀어지는 걸 막을 수 는 없는 게다.
맛있는 저녁 만찬을 지어먹은 뒤 쉬는데 성범이가 쉬지 않고 춤을 춰서 모두를 웃긴다. 드디어 허아람 선생이 준비한 가족오락관 놀이로 떠들썩하게 놀았다. 세 편으로 나눠 문제를 맞히고 풀다보니 밤이 어둡다. 어제 화목보일러가 꺼져 추워서 오늘은 송순옥 선생이 든든하게 나무를 넣고 방에 난로에도 나무를 넣었다.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고 놀다 조한별 선생이 준비한 마지막 추억 마음 놀이를 했다. 서로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그림과 글로 그려 주는 시간이다. 저마다 바람과 기도를 담아 듬뿍 선물을 주었다.
피곤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금세 잠이 들고, 선생들끼리 잠깐 곡차를 기울이는 것도 잠깐 우리도 금세 잠을 잤다.
경주 졸업여행 마지막 날,
짐을 모두 꾸리고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미나리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2009년 12월 21일에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고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된 불국사에 닿아 천천히 걸어간다. 모두가 국보인 다보탑, 5층석탑, 연화교·칠보교, 청운교·백운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사리탑, 많은 문화재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다. 날이 좋다. 저녁에 깊은샘 식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해서 예정한 석굴암은 가지 않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경주에서 유명한 쌈밥 집에서 든든하게 밥을 먹고 경주를 떠난다.
경주 졸업여행이 끝나고 이제 졸업잔치만 남았다. 이 년 동안 참 많은 걸 같이 한 아이들이라 자꾸 얼굴을 보게 된다. 건강하게 즐겁게 곁에 있으니 참 좋구나. 중등학교 진학이 결정된 뒤라 아이들은 벌써 청소년의 세계로 들어갔고 몸과 마음이 부쩍 자랐건만 녀석들 몸짓에서 어린 시절 6년의 추억을 떠올리는구나. 그렇게 많은 추억을 쌓고 얼마 뒤 아이들은 졸업한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온 마지막 졸업여행이라 뭐든지 녀석들과 같이 하는 마지막 장면들이었다. 같이 살아 고마웠다.
그래 지금처럼 늘 즐겁고 눈부시게 빛나는 청소년의 삶을 즐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