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선 자존심, 화가 박문순과 가수 박정희
드라마 ‘해신’의 범선을 그렸던 국내 최고의 범선화가 어당 박문순.
영화배우 출신으로 트로트 가수가 된 박정희.
30년 전, 두 사람은 같은 해남 출신과 같은 성을 가졌다는 인연으로
서로를 챙기고 아끼며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됐다.
하지만 박문순은 당시 잘 나가던 동생 박정희의 무시에 마음이 닫혔고,
박정희는 외골수에 고집불통인 박문순의 과격한 말투에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10년 전 술자리에서 박정희가 내뱉은 말은 박문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고
이후 서로는 서로를 마음에서 지웠다.
“너는 돈 몇 푼 있다고 내 목에 칼을 들이댔어. 내 인생 최대의 모욕!”
평생 범선을 그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한 화가 어당 박문순.
하지만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존심을 돈으로 바꾸지 않았고,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살림살이가 어려워도 그림만 그리는 박문순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박정희.
당시 그는 사업과 영화배우로 제법 큰돈을 벌었는데,
술자리에서 박문순에게 ‘환쟁이들은 다 거지 새끼들이냐?’는 막말을 퍼부었다.
그림이 인생의 전부였던 박문순에게는 큰 충격.
그는 마음에서 박정희를 버렸고 다시는 보지 않았다.
“늘 나를 무시하던 형님, 난 참고 참다가 한 말... 내 상처가 더 크다.”
일찍이 큰돈을 만지기도 했지만 IMF 시절 부도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박정희.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따르던 형님 박문순에게는 최선을 다 했다.
박문순 역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박정희에게 도움을 주겠노라 호언장담 했다.
기댈 언덕이 없던 박정희에게는 박문순이 유일한 희망.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도움은커녕 경제적인 손실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자 폭발했다.
그만 술자리에서 하면 안 되는 말을 해버린 것.
이후 박정희는 서울을 떠나 연고 하나 없는 안동에서 땀과 눈물로 재기에 성공했다.
안동 간고등어 특판점을 운영하며 꿈이던 트로트가수가 된 것.
‘아무나 형 동생 삼으면 안 된다.’며 아직도 상처가 크다는 어당 박문순.
‘형님의 폭언에 말 한 번 제대로 못했다.’며 상처가 깊다는 박정희.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시 받고, 상처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늘 마음이 무거웠다는 두 사람.
신이 만든 계단이라 불리는 필리핀 북부 루손 섬 라이스테라스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다시 우애 좋은 형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