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우리 아기가 혹시 엄청난 미남이 (혹은 미녀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어떤 옷을 입혀놔도 혹은 알몸이어도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귀엽습니다. 어쩌다 웃어주면 힘든 것도 다 녹아내립니다.
뭘 해도 아기가 예쁜 부모가 저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심지어는 수달도 새끼 수달이 태어나면 무리들에게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자기 새끼를 예뻐하는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예쁜 아기를 키우고 있다 보니, 누르기 어려운 욕망도 함께 피어오릅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아이를 천하제일 힙돌이(힙한 스타일로 옷을 잘 입는 사람)’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밤잠을 줄여가며 SNS와 온라인 상점을 뒤지며 아이에게 잘 어울릴지 계속해서 상상해 보는 시간은 아주 흥미진진하고 즐겁습니다.
돌이켜보면 아기 옷을 소비하는 과정은 단순한 소비 이상의 경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게에 놓인 작은 옷들을 보며 마주하는 감정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이 작은 옷들은 아이의 성장을 상상하게 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감정의 이면에는 어딘가 복잡하고 미묘한 불안도 숨어 있습니다.
옷을 사는 순간의 첫 감정은 기쁨입니다. 그 작은 옷들을 손에 들면, 마치 소중한 존재를 보호할 무언가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아기의 부드러운 피부에 닿을 천이 얼마나 편안하고 예쁠지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한 벌 한 벌 고를 때마다, 아기가 그 옷을 입고 웃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런 순간들은 부모로서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구매했던 옷을 아이에게 입혀보는 순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알몸으로도 완벽하게 멋지지만, 옷에 따라서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잘 어울리는 옷을 구매했을 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쁩니다. 반면, 사이즈나 색상이 잘 어울리지 않을 때는 단순히 옷 한 벌을 잘못 산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에 실패한 것 같이 느껴집니다. 옷 한 벌을 고르는 순간에도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듯합니다.
그리고 계절이 지나 옷장을 정리할 때, 이제 다시는 입지 못할 옷들을 바라보며 뒤늦게 큰 상실감을 느낍니다. 잘 입던 옷들은 여전히 너무나 깨끗한데, 이 옷을 입던 아기는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아쉬움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집니다.
특히, 특별한 날을 위해 사놓은 옷들이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옷장에서 남아 있을 때는 그 아쉬움이 배가 됩니다. ‘다음 기회에 입혀야지’ 하고 미루었던 옷들이 결국 그 기회를 놓치고, 어느새 사이즈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아기의 성장 속도에 따라 제 선택들이 금세 무력해지는 경험은, 부모로서의 한계와 시간의 흐름을 다시금 실감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 씁쓸한 기분이 싫어서 아기옷 중고 거래 시장을 최대한 외면하려고 노력합니다. 몇 번 못 입혔거나, 아예 가격표도 떼지 않은 옷을 그대로 중고 거래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다른 엄마의 기분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니어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이 거리낌은 극복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인 모양입니다.
옷 정리를 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아쉬움도 잠시, 곧 알게 됩니다. 그 옷을 입고 몇 발자국 더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옷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금세 맞지 않게 된 아기 옷들은 아쉽지만, 그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합니다. 부모로서의 저의 여정은 이처럼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험의 연속입니다.
결국, 아기 옷을 많이 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또 다른 옷을 입고 더 성장한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날이 점점 쌀쌀해지니 겨울에 입을 옷을 주문했습니다. 이번에는 옷을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로 조금만 사기로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마음을 가득 눌러 담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