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 교수님 /bbs]
왜 관자재보살이 반야심경을 설할까?
반야심경과 관세음보살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불모(佛母)라는 것이다.
천수경에 보면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 불모는 '부처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칠구지'는 칠백억을 뜻하는 숫자이고, 준제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칠백억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관세음보살이 어떻게 해서 부처님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관세음보살의 전생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도 남쪽 해변가에 장나장자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다가 기도를 해서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래서 이름을 '조리'라고 했는데 운좋게 또 아들을 낳아서 '속리'라 하였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부인이 사망하였다.
그래서 새부인을 얻었는데 친모처럼 아이들을 잘 키우다가..
자기 아이를 임신하고 생각해보니까 불안하였다.
'조리와 속리 형제가 있어서는 내 아이 장래가 좋지 않겠구나~'
두 아이가 눈엣가시처럼 보이던 차에.. 장자가 다른 나라로 장사하러 집을 비운 사이에..
"우리 오늘 뱃놀이 가자" 아이들을 꼬셔가지고, 뱃사공을 매수해서 무인도에 버리고 왔다.
두 아이는 신나게 놀다보니까 어머니도 안 보이고, 뱃사공도 없고..
외로운 데 남아가지고 온갖 고초를 겪는다.. 두려움, 외로움, 의지할 데 없음..
그런데 맹수들도 들끓고 해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 하고 굴 속에서 굶어 죽어가는데..
형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부잣집에 태어나 어려움 없이 살아서 세상에 고통이 있는 줄 몰랐더니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보니.. 세상에는 우리처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결심했다. 내가 다시 세상에 태어나면 많은 공덕을 쌓아서 그 고통받는 사람들을..
나처럼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형이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 "그럼 우리 맹서를 하자"
형제는 32가지 원을 세우고, 그 원을 적어 남기고 목숨을 마치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까 금쪽같은 형제가 없어져 버렸어..
물어보니까 부인은 "아이들이 놀러 나가서 안 들어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웃에 어떤 노인이 "뱃사공을 추궁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뱃사공을 심문해서 급히 그 섬으로 가보니 그 지경이 돼 있었다.
두 아들의 주검을 보고 통탄을 하던 장자는 그들이 적어 놓은 원을 보았다.
그 거룩한 원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한 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훌륭한 원을 세웠는데 내가 이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장자는 500대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이다.
큰아들 조리는 관세음보살, 작은아들 속리는 대세지보살이 되어 극락세계의 좌우 협시보살이 되었고
아들들의 원을 보고 무한한 자비심을 일으킨 아버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불모(佛母)의 개념이다.
여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자비는 공감이다. 조리는 자기의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았다.
우리는.. 사실은 자신이 괴로우면 남이 안 보인다. 고통을 붙들고 고통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처럼 생각해보라. 고통이 느껴질 때.. '아, 이런 처지가 되면 이런 고통이 오는구나~'
'다른 사람도 이렇게 느끼겠구나~' 이렇게 공감을 하면.. 사실 고통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조리가 계모를 원망하고 한을 품고 죽었다면..
'내가 세세생생 태어나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
이랬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원한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면 이 자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남을 나처럼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나와 동등하게 보는 것이다.
내가 매를 맞아서 아프면, 다른 사람도 매를 맞으면 아프겠구나.. 아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가?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다.
남의 아픔은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비.. 이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고, 그러려면 공감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그냥 정서적으로만 공감인 것은 아니다. 반야가 필요하다.
우리는.. 너와 나는 사실 둘이 아니기 때문에, 공감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너와 나를 분별함으로 해서 이 공감을 못 하고 있을 뿐이다.
반야를 통해서.. 나 아닌 것이 없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로구나..
이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려면 '나'라는 생각으로 일어나는 모든 망상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나와 남을 분별하는가? 첫째는 오온이다.
나와 남은 얼굴도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이 색(色)이다.
느낌과 생각, 행, 의식도 다르다.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다.
이렇게 아상(我相)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구조가 오온이다.
그래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깊은 지혜로써 통찰해 보아서.. 깊은 선정 속에서 깨달은 게 아니고..
오온을 반야로써 통찰해 보니까 그것들의 자성 즉 '독자적 자기 존재성'이 없더라..
오온 어디에도 없더라.. 이것이 관찰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
그것을 깨닫고 보니 일체고액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원래 반야심경에는 '도일체고액' 문구가 없었는데 구마라습 번역부터 등장한다.
구마라습의 의역: 금강경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 '발취보살승자發趣菩薩乘者'(보살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사람)
반야바라밀을 통해 부처의 모든 지혜와 공덕이 나오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부처님도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불모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관세음보살 같은 자비와 반야바라밀의 지혜가..
지혜와 자비가 어우려져서 붓다의 길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이야말로 지혜와 자비로 부처 되는 길이다.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태주 '기도'>
※참고: 동체대비(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불이(不二,팔불중도), 동사섭, 세계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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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몰랐던이야기를. 알게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