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앵두
* 나는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봄이 되면 우리 마을은 춘궁 기로 곤란을 겪었다.
보리밥은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 얘기였고 보통은 조 밥을 먹었는데, 그 좁쌀도 떨어져 갈 때 쯤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계절은 호 시절이라 산과 들판에 꽃이 피고 앵두 나무의 앵두는
빠알갛게 익어갔다.
우리 집엔 초가 뒷마당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쯤이었을 게다. 그 해에는 가지가 끊어질 만큼 많은 앵두가 열렸는데,
어느 날 아침 등교하는 나에게 엄마가 도시락을 주면서 오늘 도시락은 특별하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었다.
특별해 봤자 꽁 보리 밥이겠거니 하고 점심 때 도시락을 열었는데, 도시락이 온통 빨간 앵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새 좁쌀도 떨어져 새벽같이 일어난 엄마가 땅에 떨어진 앵두를 주워 도시락을 쌌던 것이다. 창피
했던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어 둔 채로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로 교실이 떠들썩해지자 선생님이 다가 오셨다. 상황을 판단한 선생님은
"와 맛있겠다. 이 도시락 내 거랑 바꿔 먹자!”라며, 나에게 동그란 2단 찬합 도시락을 건네셨다.
1단에는 계란 말이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과 쌀밥...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게걸스럽게 도시락을 비웠다.
먹으면서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께서도 앵두를 하나 남김없이 드셨다.
그날 집에 와서 도시락을 내던지며 엄마에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창피를 줘?”
엉엉 울면서 투정을 해 댔지만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하셨다.
“그래도 그 앵두 다 먹었네!”
나는 엄마가 밉고 서러워 저녁 내내 울다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 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내 도시락을 씻던 엄마는 옷 고름으로 입을 틀어 막고 어깨를 들썩이셨다. 울고
계셨던 것이다. 찢어지는 가난에 삶이 미치도록 괴로워도 그 내색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시려고. 울음
마저 맘껏 울지 못하셨으니 그 한이 오죽 하셨을까?
자식에게 앵두 도시락을 싸줄 형편에 당신은 그 앵두라도 배불리 드셨겠는가? 엄마는 가끔씩 나에게 장난
처럼 물으셨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크면 엄마 쌀밥에 소고기 사 줄 거지?”
이제 내 나이 일흔! 그때 나 만한 손자를 보는 나이가 되었다.
쌀밥에 소고기가 지천인 세상이고 그 정도 음식은 서민들도 다 먹는 세상이 되었건 만 소고기와 쌀밥보다
더 귀한 것도 사 드릴 수가 있는데도 엄마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서럽고 눈물이 난다.
아! 울 엄마 너무 너무 보고 싶다...
샬롬?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