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의 무덤이자 집단의 상징 기념물, 고인돌
고인돌은 덮개돌을 받침돌로 고이고 있는 모습에서 ‘고여있는 돌’ 또는 ‘고여놓은 돌’이란 의미이다. 고인돌, 고엔돌, 괸돌, 굄돌, 괸바위라고 불렀던 것 중 하나의 명칭이다. 고인돌은 한자로 지석(支石), 탱석(撑石)이며, 무덤으로 쓰여 지석묘(支石墓)라 한다. 선조들은 고인돌의 무리 모습이나 생김새, 신앙, 전설 등에 따라 독배기, 바위배기, 칠성바위, 거북바위, 배바위, 마당바위, 복바위, 장군바위 등 여러 명칭으로도 불러 왔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지상에 드러난 덮개돌 밑에 판돌이나 자연석으로 고이고 있거나 주검을 안치한 매장시설(무덤방)이 있는 구조이다. 받침돌 형태와 구조적 차이에서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위석식 등으로 나누어진다. 탁자식과 바둑판식은 북쪽과 남쪽에서 성행한 대표적인 고인돌 형태이고, 위석식은 제주에서 유행한 형태이다. 개석식은 무덤용이지만 거대한 탁자식과 바둑판식 고인돌들은 집단의 상징 기념물로 축조되었다.
고인돌은 대부분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고인돌에서 사람 뼈가 발견되고 널 형태의 돌무덤방, 껴묻거리(부장품)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껴묻거리는 간돌검과 비파형동검·돌화살촉 등 무기류와 적색마연토기·가지문토기 등 부장토기류, 곱은옥과 대롱옥 등 장신구류가 대표적이며, 가장 고유한 껴묻거리는 간돌검이다.
공동체의 응집력을 키운 고인돌 작업, 고대 국가 형성의 밑바탕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고인돌 분포 지역이다. 고인돌은 선돌과 함께 거석(바위)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거석문화는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기념물이나 무덤을 건조한 문화이다. 거석문화에 속한 유적으로는 고인돌(Dolmen), 선돌(Menhir), 열석(Alignments), 환상열석(Stone Circie), 돌무지무덤(Carin), 석상(Stone Statue)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 분포한 거석문화는 유라시아대륙을 에워싸고 있는 지역에 집중 분포된 양상이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유럽 대서양 동안 지역과 함께 세계적인 고인돌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기원전 1200년 무렵에서 기원전 200년을 전후한 약 1천 년간 무덤 또는 기념물로 축조되었다. 청동기시대에 와서 동일한 무덤 형태를 갖춘 고인돌이 등장한다. 고인돌에서는 대체로 일정하게 줄지어 배치된 무덤방들이 발견된다. 이런 양상은 혈연을 바탕으로 한 공동 무덤이며, 조상숭배 사상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고인돌은 한 혈연집단뿐 아니라 이웃 혈연집단까지 동원되어야 축조가 가능한 공동체 집단의 의례 행위였다. 일정한 영역을 기반으로 공동체 의식을 돈독히 하기 위해 상징 기념물을 세웠다. 이 행위는 공동체 사회 힘의 결집과 협동 단결을 이루면서 사회적인 통합과 집단의 응집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에 유력한 집단과 유력자의 등장은 고대 초기 국가 형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고인돌의 수평 유지를 위해 사용된 다양한 과학기술
오랜 전통과 경험을 바탕으로 축조된 고인돌은 덮개돌의 채석과 운반, 축조가 가장 어렵고 중요한 작업이다. 덮개돌은 대부분 암벽에서 알맞은 크기와 형태로 떼어내서 사용하였다. 암벽의 절리를 이용하거나 구멍을 판 후 쐐기나 지렛대를 사용해 분리한다. 덮개돌 측면과 윗면에 채석공 흔적이 남아 있는 사례로 보면 채석공에 마른 나무를 박고 그 위에 물을 부으면 나무의 팽창력에 의해 바위가 분리되는 원리를 이용하였다.
고인돌의 운반은 전북 진안 여의곡의 고인돌 운반로 발견으로 Y자형 나무끌개[수라(修羅)]가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이집트 피라미드 석상 운반, 일본 고대 거석 운반, 수원 화성 거석 운반 도구[구판(駒板)], 인도네시아 숨바섬 고인돌 운반 도구 등에 모두 Y자형 나무끌개가 사용되었다.
통나무를 바닥에 깔아 굴림대로 쓰면서, 나무끌개 위에 덮개돌을 올려 튼튼하게 결박한 후 뒤에서 지렛대로 들거나 밀고 앞에서 많은 사람이 끌고 가는 방법으로 옮겼다.
고인돌 축조에서 탁자식 고인돌은 지상의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리는데, 바둑판식 고인돌은 거대한 덮개돌을 끌어와서 받침돌 위로 옮기는 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탁자식 고인돌은 덮개돌의 무게에 의해 기울어지지 않도록 바닥이 넓고 위를 좁게 안기울임하여 벽석을 세웠다. 60cm 내외로 홈을 깊게 파서 벽석을 세우고, 뒷채움하여 덮개돌의 무게를 버틸 수 있게 하였다. 덮개돌 밑면의 형태에 따라 벽석 상단을 그랭이공법으로 치석하거나 받침돌 위에 끼움석(쐐기돌)으로 보강하여 덮개돌이 수평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바둑판식 고인돌의 경우 덮개돌 밑면이 수평이면 받침돌을 가장자리 쪽에 배치하고, 받침돌의 상면을 다듬어 덮개돌 밑면과 잘 밀착되게 하였다. 또 수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덮개돌과 받침돌 사이를 끼움석으로 보강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덮개돌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받침돌의 위치를 조정하여 수평과 균형을 유지하고 후대에 쉽게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오늘날 거대한 고인돌이 3000년 동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고도의 과학적 축조 기술이다.
글, 사진. 이영문(목포대학교 명예교수,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 이사장)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7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