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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서정시인 문태준 “풀밭과 같은 시, 곶자왈과 같은 시를 받았으면 합니다”
인터뷰 및 정리: 안종국 편집국장 승인 2024.06.26 23:31 댓글 0페이스북
무산문화대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는 문태준 시인
무산문화대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는 문태준 시인
-큰상인 제1회 무산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불교와의 인연은 어떤 계기였나요?
▶저는 산골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황학산 뒤쪽 편이 고향으로 그 산골에서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용화사라는 절을 어렸을 때부터 데리고 다니시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살았습니다. 많은 시에서도 썼지만 시골 절의 풍경이 오래도록 남아 있어요. 어머님은 절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 늘 부처님을 찾아 당신의 마음의 힘든 것을 의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교는 그래서 내 삶의 전반에 뗄 수 없는 자양분처럼 그 향기가 배어있다는 생각입니다.
-15세에 임사체험 같은 것도 겪었다고 하셨는데,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은 어떤가요?
▶10살 무렵인가, 어려운 산골생활에서 큰누님이 산비탈에 농사를 짓는데, 내가 새참을 갖다주고 내려올 때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지?’라는 강렬한 의심과 궁금증이 떠올랐어요. 백주의 그 빛이 너무 환한데, 시골의 들길을 따라 오면서 그 강렬한 체험이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멀리서 뻐꾸기 소리도 들리는데, 그러한 현실의 비현실같은 의심이 들었던 거지요. 그리고 15세에는 이유도 없이 큰 열병을 앓았는데, 그때 강렬한 죽음의 모습을 보았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다시 살아났을 때는 목숨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생명’이 내 시의 큰 줄기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을 다니던 21살에도 방학때 시골 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당시에 의식이 매우 예민해져서 감관이 크게 열렸다고 할까요, 아무튼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에 완전히 몰두해 집중과 몰입기였던 것이 시를 받게 된 통로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본래 문학에 대한 생각보다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신경림 시인의 시와 문학을 배우면서 시를 쓸 자산이 내 안에 있지 않나 문득 떠올랐어요. 내가 어려서 겪은 자연과 농촌의 현실이 이미 내 안의 시적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당시 대학은 사회참여 열기가 강했는데, 농촌현실이나 샤머니즘에 심취하였고, 불교방송에 입사한 뒤에는 시세계가 조금 바뀌는데, 스님들의 법문과 불경의 내용이 시적 상상력과 만나 관조의 깊이가 좀 커진 것 같아요.
-문태준의 시는 평범하고 시어가 쉽지만, 내용은 항상 관조의 노숙함과 경지가 느껴진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은데?
▶30대 중반에는 죽음에 대한 시를 많이 썼어요. 그것은 불교적 생멸과 성주괴공(成住壞空)에 대한 생각, 그리고 연기(緣起)와 모든 관계에 대한 성찰이 불교에서 얻은 시적 자양분인 된 것이지요. 특히 우리는 생멸이 함께 있다는 점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고향에서는 거의 매주 상여가 나갔어요. 본래 삶과 죽음은 항상 함께였던 거지요. 지금은 도시화 되어 어디서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 나가는지 공장처럼 분업화되어 보이지 않지만, 잘 살피면 생멸은 한몸이거든요. 우리의 모든 관계도 사실은 그렇게 다 연관되어 있는데, 필요와 불필요의 관점에서 관계가 표피화되다 보니 본질을 못보는거지요.
-시는 그러한 직관을 이끌어주는 기능적 요소가 있다고 보나요?
▶시가 사물이나 존재적 삶의 이치를 꿰뚫는 신비적인 것은 아니지요. 우리 주변에 서성거리는 흐름들이 있는데, 그것을 집중해 바라보는 겁니다. 도시에 나간 사람들이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도 많이 보고, 아버지가 염소와 소를 기르면서 새끼를 받을 때의 그 경외로움과 토끼를 기르면서 생명의 탄생 순간부터 나중에 흙에 묻히는 필연적 숙명과, 또 어떤 우연적 요소들도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고 봐요. 도시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러한 시골의 자연 체험들은 남다른 시의 소재가 되었어요.
-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문학의 그러한 부분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작가들의 작업이 비밀스럽고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은 있지요. 시가 오는 순간도 승(昇)적인 직관도 있습니다. 돌연한 승이 가진 것의 연결점이 있을 것이지만, 시란 하나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이기에, 어떤 안목의 열림과, 하나의 생각을 화두처럼 붙들고 지내는 것도 있어 집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도 결국 생명들의 관계, 생에서 그 연원을 갖는 것입니다. 그 생이라는 것이 세속적으로 볼때 사람들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밀스럽고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로부터 오는 것이지 독생과 같은 것이 아니지요. 결국 시도 관계의 주고받음의 산물입니다.
-순도높은 문장에서 주는 불교적 선의 요소가 많이 보입니다.
▶본래 불교적인 시를 좋아해서 만해스님이나 조지훈, 서정주, 신석정의 시를 읽으며, 이런 데서 불교시의 면목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러나 본격적으로는 불교방송에 입사한 이후인 1996년부터 아무래도 불교적 인연들이 점철되면서 불교적 요소의 시가 시작되었어요.
-현대사회에서는 시의 영토가 점차 축소되고 독자들도 줄고 있다고 보십니까?
▶영미 시문학권이나 일본은 시를 읽는 독자들이 현격하게 줄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국은 시를 읽는 독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 민족은 시를 매우 좋아한다고 할까요? 가무를 즐겼다는 전통적인 기록이 아니어도 우리처럼 흥과 한과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나라는 드뭅니다. 주목도나 시집 출판 시장 규모도 큰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시 유통산업에서 중요한 국가입니다.
-많은 분야와 장르 중에서 서정시를 추구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전통 서정시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젊은 시인들의 화법과는 많이 다릅니다. 공감하는 서정, 부드러운 것의 힘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것은 수긍할 수 있는 감정, 이해가 되는 생각들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인데, 잘 들춰 냈을 때 편재하는 한 개인들이 원래부터 내심에 가지고 있었던 감정과 그것이 깨끗한 것일 수 있는 공감의 순수일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성(自性)이라는 부분을 드러내 있다고 봅니다. 마치 꽃봉오리의 내부처럼 밝고 깨끗하고 순도가 높은 상태로 있는 마음으로 있는 것을 시에서 노래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죠.
-시의 표현이 장편의 글보다 유리할까요?
▶문장의 설명이라기 보다는 시란 생각의 공유라고 봅니다. 내밀한 내심을 정밀하게 보여주는 것은 친절하게 속마음을 내심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를 통해 드러낸 내심을 보다 보면 나의 내심을 알아차리게 되고, 내 내심을 내 가족이나 함께 사는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드러냈을 때 어떻게 드러내는게 좋을지 생각해보면 시란 장르가 감성과 마음의 공감에 순간의 임펙트를 던지거든요. 시를 통해서,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일종의 마음공부를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문학이 영감을 주고 심오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시도 그냥 사실의 설명이면 된다는 것일까요?
▶김훈 작가는 사실적인 표현과 감정의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를 하시는 작가입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그러한 직설적인 글 속에서 사실적 감동을 느끼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표현하는 글들이 주는 긍정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부드러운 감성의 서정의 언어가 주는 것, 눈물 흘리고 분노하고 마음을 고쳐 먹기도 하는 글쓰기, 눈물이 핑 돌거나 가슴을 울리는 정서의 글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정시란 눈물이 쏟아져도 좋은, 그러한 위로의 글인 것입니다.
-시인의 불교 신행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는 사람 속에 있는 불교, 생활과 대중 속에 있는 불교를 보는 편이고, 선수행하시는 분들이나 수행집단에서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분들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나의 불교적 경험과 방향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그 무한한 연기(緣起)에 보다 깊은 관심과 연민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나의 불교적 신행은, 염불을 열심히 할 때도 있고, 요즘은 간별이나 구별심, 경계 짓는 마음이 큰 장애라고 생각해서 이것을 내려놓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한동안은 화나는 마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이것을 다스리려는 방편으로 경전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마당에서 풀뽑기만 해도 잡념은 왜이리도 많은지요. 사람들에 대한 복잡한 마음의 장애는 여전한 번뇌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구상하는지요?
▶생명세계에 대한 생각을 잡고 있습니다. 큰 자연 속에서 작은 자연으로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합니다. 거창한 것보다는 풀밭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곶자왈 속에서 서 있는 나, 그렇게 생기고 자라고 썩고 서로 엉키다가 죽고 다시 태어나 무성해지는 것을 생각합니다. 동문시장에 들른 장전리 사람 문태준의 모습을 생각하고 세계 속에 있는 나를 보는 것, 그렇게 풀밭과 같은 시, 곶자왈과 같은 시를 받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큰 상을 받은 것을 제주 불교문학계의 경사로 축하드리며, 주옥같은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큰 위로의 울림을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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