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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들인 첩을 두고 본처가 속을 끓이는 내용을 담은 신천 강씨의 한글 편지는 글씨에서도 격한 감정이 느껴진다. (충북대박물관 소장)
조선 신천 강씨 딸에게 편지
“서럽고 막막하구나”하소연
첩보다 신분 높지만 경쟁관계
“내 이년이 밉지 않으니 첩으로 삼겠다. 잡말하지 말아라.”
미우나 고우나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 어느 날 젊은 여자를 데려와 저렇게 말하면 부인의 마음은 어떨까? 일부일처제였지만 조선 시대에 첩을 들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벼슬을 얻어 근무지를 옮길 때 부인과 함께 이사 다니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통 첩을 두었다. 또한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첩을 두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첩을 둘 수는 없어 나름 명목상의 이유를 갖다 붙였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핑계를 만들었지만, 첩을 둔다는 것은 어쨌거나 부인이 아닌 또 다른 여자를 탐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해도 첩은 첩일 뿐 대우가 좋지는 않았다. 귀천의 명분을 엄격히 따지던 조선 시대에는 출신 성분의 비천함을 면하지 못했고, 첩이 낳은 자식도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법률·제도상 심한 차별을 받았다. 집안에서의 역할이나 재산 상속에서도 엄격히 구분돼 첩과 처의 지위는 달랐다. 이런 제도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첩을 두고 본처가 속을 끓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데려온 젊은 여자와 함께 살아야 되는 본처의 마음은 어땠을까?
신천 강씨의 남편은 예순이 넘어 시골의 말단 외직인 찰방으로 부임하게 됐다. 그러자 신천 강씨는 남편이 벼슬을 빌미로 첩을 들일 것이라 짐작하고 따라나섰다. 부임지까지 자신을 따라온 부인이 탐탁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남편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첩을 들인 남편을 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신천 강씨의 한탄이 적나라하게 적힌 편지가 있다.
“‘내 이년이 밉지 않으니 첩으로 삼겠다. 잡말하지 말아라. 당신이 첩을 얻지 말라 할지라도 나는 이 계집아이를 얻었으니, 다시 잡말하지 말아라’
하고 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밤낮 첩을 데리고 문 닫고 방에 들어 있으면서 내게 편지도 세 줄에서 더 하지 않는다. 아들들까지 나를 시샘한다 하니 나는 열아흐렛날부터 아파 지금까지 앓고 있다. 누워서 앓는 병이 아니어서 견디지마는 마음이 매양 서럽고 천지가 막막하구나.”
어느 날 갑자기 여자를 데려와 밤낮없이 남편과 첩 단둘이 문을 닫고 함께 있는 꼴을 봐야 하는 부인의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시샘은 격에 맞지 않으니 아들은 물론 집안일을 돌보는 종들의 눈치까지 살핀다. 화가 나도 질투라고 할까 봐 내색도 하지 못하는 마음은 일백 권의 종이에도 다 쓰지 못할 거라며 시집간 딸에게 편지로 하소연하고 있다. 서러운 마음에
“내 손으로 죽으리”
라고까지 하는 신천 강씨의 심정이 그대로 읽힌다.
첩은 처와 완전히 다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 집안의 규방에서 한 남자의 사랑을 두고 다퉈야 하는 라이벌 관계다. 제도와 법규를 통해 들인 부인과 달리 언제라도 날아갈 듯 자유로운 첩은 남자들에게 오히려 애간장을 녹이는 대상이었다. 그런 이유일까? 첩이 재산을 빼돌리는 일도 흔해서 ‘첩의 살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었다.
또한 첩을 둔 남자에 대해
‘계집 둘 가진 놈의 창자는 호랑이도 안 먹는다’고 했다.
자신의 욕구를 풀고자 첩을 들이고 치마폭에서 단꿈을 꾸던 남편들은 문밖에서 썩어가는 부인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첩은 첩대로 온전하지 못한 지위에 불행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닫힌 문밖에서 가슴이 썩고, 남편은 남편대로 두 여자 사이에서 들볶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첩과의 알콩달콩은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김은양 전문위원ㆍ문화일보
감사합니다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