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고고학으로부터 권력의 계보학으로
권력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과 분석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부터이다. 푸코는 이때부터 자신의 방법론이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이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계보학이란 니체의 용어로 어떤 것의 계보를 권력의 역학관계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도덕, 즉 선과 악의 발생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권력적 역학 관계에서 밝히고자 하였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니체는 인류가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도덕이 사실상 약자가 강자를 억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권력 찬탈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푸코가 계승한 것은 니체의 도덕관이 아니라 니체가 도덕의 계보를 권력관계에서 해명하려는 계보학적 관점이다.
푸코는 자신의 방법론이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이전하였다고 말하지만 어떤 점에서 보자면 이는 이전이라기보다는 확장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인문과학이 어떠한 지층에서 태동하였으며, 그것이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내는가에 주목했는데, 이는 결국 인문과학의 태동 자체가 권력의 효과를 창출하였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푸코가 니체를 가장 잘 계승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니체는 진리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이 아닌 일종의 은유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삶의 의지에 대한 표현이자 권력의 산물일 뿐이라고 보았다. 진리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인 척 행세하는 것은 바로 그 속에 있는 권력이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진리나 학문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실행을 위한 것이다. 푸코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앎에의 의지(La volonté de savoir)’로 살짝 바꾸어 놓았지만, 이는 곧 앎(지식)의 의지가 권력의 실행이나 형성과 연관이 되는지를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말과 사물》의 결론을 다시 활용하자면 인문과학의 탄생 그 자체가 근대의 권력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인문과학의 탄생은 이미 근대적인 지층의 형성과 더불어 성립한 것이며 그러한 지층은 결국 권력관계로 설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푸코는 진리체계로서의 학문과 지식이 권력과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떠한 사회든지 사회적 육체를 구성하고 특성 짓는 다양한 권력관계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권력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담론의 생산과 축적 및 유통이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권력관계를 구축하는 진리의 담론이 생산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권력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권력을 통하여 진리가 생산되는 메커니즘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역으로 진실의 생산 없이는 어떠한 권력도 행사할 수 없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권력관계가 사회적으로 실행되어서 유포되고 순환되기 위해서는 담론의 체계가 필요한데, 그러한 담론의 체계는 일종의 진리체계 혹은 지식체계이다. 그러므로 권력과 지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자면 인문과학의 출현은 그 자체가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상과 변태의 구분에 바탕을 둔 성의 과학 또한 지식이 권력과 함께 형성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식의 고고학으로부터 권력의 계보학으로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