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을
시작하기만 하면 곧 구원이요 메시아를 만나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실례입니다.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에게 임하시는 말씀의 사례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이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말씀하시므로 자신을 생수로, 남편으로, 메시아로 자신을 계시하고
참 예배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양식을 맛보며 복음을 전하고 결국은
추수하는 일꾼까지 되게 하신 일이 막힘이 없이 현장에서 일어났으나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에게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구원의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과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것이 바로 요4장입니다.
요4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설득하시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십니다.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요4:4) 하고 작정하십니다.
우리도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 같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설득시켜 참 예배를 받으시길 원한다는 사실을 이 사건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배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영성이라 여기고 신령과 진정이라 말하거나
성도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토크쇼 같은 설교가 난무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은 니체와 같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을 듣거나 교회의 무용론으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교회를 대체할 기능이 세상에 지천에 깔렸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말씀을 하시므로 구원하시듯 지금도
주님은 계시의 말씀을 가진 자들을 구원 받기로 작정 된 자들에게 보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마음을 강퍅하게 하면 안 됩니다(히3,4장)
강퍅하지 말란 뜻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과연 그렇게 될까 꼭 그래야 하나
하고 애 늙은이처럼 자기 이성으로 말씀을 간보듯 재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환경과 사정을 통해 말씀을 거시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고, 주의 종들의 설교를 통해 계속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방법이든 말씀을 거시면 그건 복의 계기가 됩니다.
말씀이 다가오면 하나님의 섭리와 열심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망을 가진 채로 타고난 운명적 저주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가와서 입에 있고 마음에 닿으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롬10:8,10)
그 믿음을 따라 성령이 내주 역사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주님이 이 수가성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말씀을 거시므로 그 여인의
마음의 귀와 입이 열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아 본 것과 같이
진리의 복음을 들으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자신이 사망의
그늘 아래 있었음을 깨닫고 주님을 따라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리로 믿고 따라 갑니다.
그걸 베드로는 회개와 세례(침례)로 인해 죄 사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행2:38)
죄가 처리된 심령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진리를 알게 하시므로 받은 은혜를
근거로 하여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장면도 나오고 내가
언제 여호와의 얼굴을 뵈올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노래도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이 임하여 우리에게 임하신 은혜를
입은 내가 믿음으로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주의 보좌로
나아간다면 예배의 절차와 과정과 방법을 익히고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시시때때로 하늘가는 그 생명의 길을 통해 생명을 얻고 또 얻게 됩니다.
그 생명으로 그 영광에 나아가 즐거워하며 사랑을 하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