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등반 때 서로의 몸을 자일로 묶듯이 네팔에 희망의 자일을 던지세요
‘나마스테(안녕하세요)’안부를 건넬 수조차 없었다. 화면에 비쳐진 네팔은 지진으로 갈라지고 무너져 내렸다. 에베레스트산의 얼음더미는 베이스캠프를 덮쳤고 카트만두의 고색창연했던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은 이제 사진 속에 남았다.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던 네팔인 가족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나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산악인이다. 한국인들은 꿈을 쫓아 네팔로 가고 네팔인들은 꿈을 찾아 한국에 온다고 했다. 신라스님 현태법사(玄太法師)가 7세기 서천취경(西天取經)과 구법(求法)을 위해 니파라(泥波羅) 땅을 밟은 이래 네팔로 간 한국인은 대부분 산악인이었다.
8000미터급 14좌 중에 8개 봉우리를 품고 있는 네팔은 세계의 지붕으로 칭해진다. 이 정상에 도전하여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룬 14좌 등정자는 6명,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
-
- 에베레스트 원정중인 김창호 대장. 조선일보DB
산악인들은 높은 곳에서 죽음과 삶의 징검다리를 디디며 무엇이 소중한가를 깨닫는다. 등정은 고난의 절벽을 함께 오른 동료와 셰르파들을 비롯한 현지스태프의 희생 위에 성취된다는 것을, 받은 영광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발로이다.엄홍길휴먼재단은 네팔 산골에 16개의 학교를 짓고, 고(故)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은 원정대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셰르파의 가족을 지원하며, 한왕용 대장은 히말라야의 청소부로 나서기도 했다.밀레니엄 이후 한․네팔 간에 직항로가 개설되면서 많은 한국인이 네팔 관광과 트레킹에 나서고 있다. 트레킹 도중 하룻밤 묵어갈라치면 롯지(민박집) 주인이 놀랍게도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우리말로 인사를 건넨다.이어 ‘저는 의정부의 염색 공장에서 5년간 일을 했어요’라며 웃는다. 잘사는 한국은 가난한 네팔인에게 꿈의 나라가 됐다. 롯지 주인은 고향에 돌아와 건물을 신축해 운영한 수입으로 아이들을 카트만두의 학교에 보낸다. 정치적 안정을 찾으면 동양의 스위스가 될 수 있다고 믿던 롯지 주인의 민박집도 폭삭 주저앉았다.2013년 나는 8000미터급 14좌의 마지막 봉우리 에베레스트산을 남겨 두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원래 인도 아대륙이 약 5500만 년에서 4500만년 전 유라시아 대륙에 부딪혀 치밀어 올리기 전에는 바다였다. 지금도 충돌은 계속되고 있으며 히말라야는 불안정한 지각활동으로 지진대에 속한다.나는 새로운 계획을 구상했다. 해발고도 0미터인 인도양의 바다에서 출발해 세계 최고봉 8848미터의 정상에 오르는 구상이었다. 카약, 자전거, 도보, 등반 등 4단계를 거치는 100일간의 대장정. 몇 년간 원정대에 동행하며 요리를 담당했던 치링 보테는 히말라야 산골에서 염소와 야크 몇 마리를 치고, 다랭이밭 몇 뙈기를 일구는 궁핍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
- 2013년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무산소 원정대가 눈 덮힌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조선일보DB
그는 고향을 버리고 카트만두로 나왔다. 원정대의 짐을 지는 포터 일로 시작해 나와 만나 요리사로 머리를 얹었다. 원정대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카트만두 근교에 집을 한 채 샀으며 여행사의 사장이 돼 자수성가했다. 우리 원정대는 무산소로 정상에 등정했고 다음 날 새벽, 캠프에서 휴식을 취하던 동생 서성호가 죽었다. 등반 경험이 없던 치링은 목숨을 걸고 8000미터의 위치한 캠프까지 뛰어 올라왔다.치링을 비롯한 네팔인들은 얘기한다. ‘네팔에는 3가지 종교가 있어요, 90%는 힌두이즘(힌두교), 그리고 붓디즘(불교)를 믿지요, 최근에 나타나 가장 강력한 종교는 바로 투어리즘(관광산업)입니다’ 국가수입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광, 등산, 트레킹 관련 산업은 지진으로 당분간 믿을 수 없는 종교가 됐다.나는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구호활동 현장에 있었다. 시신 썩는 악취에 마스크는 무용지물이었고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네팔은 지금 한여름이다. 20여일 후 몬순(Monsoon)이 오면 4개월간 여름 장마는 지속하여 전염병이 돌 우려, 여진으로 히말라야 빙하호수의 붕괴도 걱정된다.히말라야 등반가들은 빙하의 크레바스를 건널 때 자일로 서로를 묶는다. 위험과 고통을 함께 극복하자는 뜻이다. 이제 등반자일은 지진으로 인해 갈라진 크레바스에 내려지는 희망의 자일이 되어야 한다. 한국산악계는 긴급회의를 거쳐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한국대학산악연맹은 구호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산에서 덮고 깔고 자던 침낭과 매트리스, 그리고 텐트를 모으고 성금을 기부받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네팔 지진 돕기 성금 및 물품 접수 안내 (02)414-2750.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