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은 우리의 존재의
값을 빌립처럼 꼼꼼히 계산한들 무슨 묘수가 나오겠습니까?
한 사람의 한 끼 음식도 제대로 안 되는 오병이어와 같아서 한 사람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요? 계산해 봐야 그 값이 그 값뿐입니다.
그러므로 안드레처럼 일단 주님께 드려보자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항상 이성의 계산을 무시하고 주님의 손길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진리)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복입니다. 진리의 지식을 알고 나서도 환난과 인내를
거친 연단으로 드디어 그 영광에 도달하는 소망이 환하게 펼쳐집니다(롬5:3-4)
회원들과 저를 따르는 분들에게 말씀으로 괴로움을 드리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대단히 부담스럽지만 또 한 번 안 할 수가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97년 로마서를 통해 죄와 육체를 처리하는 원리를 알았지만 성령과 성경을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진리로 그 끝(테로스)에 다다르는
기도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참으로 오랫동안 제게 적용을 했다고 말씀드립니다.
무엇이든 눈으로 확인하기를 좋아하는 현실주의자인 도마가 ‘우리가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요14:5)하고
물었을 때 주님은 ‘내가 곧 그 방법이다’고 대답하셨습니다(요14:6)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 곧 진리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속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표적이나 물질적인 기복신앙은 썩는 양식입니다(요6:26-27)
왜 썩는 양식이냐 하면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풀과 같이 마르고 육체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금방 시듭니다(벧전1:24-25)
육신을 위한 이론이나 정보나 유익한 것들은 다 썩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살아 계십니다. 아니 점점 더 새롭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들이 나를 따라온 목적이 내가 하늘로부터
온 떡이라는 표적을 본 까닭이냐 아니면 보이는 떡을 얻어먹고 배가
불러 나를 경제 대통령으로 삼기 위함이냐’ 물으신 것입니다(요6:26)
사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주님께서 이렇게 물어 보신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주님께서 말씀한 이 면접에 합격할까요?
주기도문에 물질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고 오직 영적인 것뿐이라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그렇다고 수긍을 할까요?
단호히 말하지만 주기도문에 사물에 대한 내용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6장에서 주님께서 내가 하늘로부터 온 산 떡이라고 하시고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시니 그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혼란을 스캔들(원어참조)이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스칸달리죠입니다.
그렇지만 요6:45절에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오신 인간들의 수호신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이라고 할 때에 당혹해 할 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믿기 어렵지? 별 재미없지? 그러나 염려하지 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밀어내도 내게 오게 되어 있어'라고 대답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배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겐 그런 배짱이 처음엔 없었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람들의 귀를 의식하여 물을 타고 또 타고 반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다릅니다. 믿음이 정금보다 나은 보물이라고 할 때 분명히
참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살후3:2)
따라서 구원은 아무나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지금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두고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에 그들만을 위한 성전을 짓는 일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지켜보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줄지언정
그들의 믿음이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분명하게 천명하며 그럴 리는
없는 일이지만 만약 지금 주님이 오시면 그들은 몽땅 불 못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생이 없습니다.
저는 어느 단체의 대표가 예수교 무슨 장막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 사람 지금 죽으면 불 못이라고요.
아들이 그 안에 있으면 영원한 생명을 가졌지만 없으면 생명이 없이 진노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모르면 진리를 모르고 진리를 모르면 하나님과 교통이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영의 눈이 밝아 하나님을 알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신 그 분의 바람과
성도가 받은 기업의 풍성함과 이미 베푸신 능력이 엄청남을 알기를 바란다(엡1:17-19)고
한 말씀은 신자들의 기도 제목으로서 매우 긴요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어떤 목사는 이 부분의 성경을 펴놓고 100번을 무릎 꿇고 기도했다고
하는 것을 책을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로마서를 100번을 묵상하면서
죄와 육신을 처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헤아려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대용품을 통해서 하나님과 거래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그 관습의 수건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양식으로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 못하도록
이런 신자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렸다고 말합니다(사6장)
이것이 사실 무섭습니다. 썩는 양식을 좇아가면 지혜와 총명이 흐려져
하나님을 알아 가는 복이 둔해집니다. 결국 세상에 마음과 몸을 다 빼앗기고 맙니다.
그리고는 욕심의 종이 되어 만신창이가 된 후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는 신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나서도 십자가의 도와 진리를 알지 못하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듯 또 다시 세상으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우리가 자기 몸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결과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하십니다.
영생은 바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자체이십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롬6:23)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영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예수님께서 내 살과 피를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떡, 한 몸, 한 영이 되면 태아가 탯줄을 통해 엄마의
살과 피를 먹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신자들이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다른 족속이 됩니다.
족보가 다르다는 말은 곧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요13장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려고 하시니
'선생님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라고 베드로가 이 행동을 황당하게 여겼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만약 내가 네 발을 씻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상관없다는 말은 내게 너의 분깃, 곧 네 몫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은 분깃 이야기를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민족인데 분깃이 없다고
하니 성질 급한 베드로가 그러면 주여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요13:9) 덤빕니다.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영접 곧 하나가 되는 의미인데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제자들의 운명은 한 묶음으로 묶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다 예수님께 체포되었을 때
“누구십니까?” 라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26:1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분의 몸인 교회 곧 성도를 핍박하는 일이
머리이신 그 분을 핍박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요6:53-5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 기독교의 큰 문제는 이 말씀과 같은 새 언약이 가려져 있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계시록을 새 언약이라고 사기를 치는 간 큰 얼간이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 된다고 하면 고개는 끄덕거리지만
실제로 그걸 믿고 먹고 마시는 영생의 복이 있느냐고 물으면 난감해 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5)
라는 말씀이 이렇게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많은 신자들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여 배부르길 원하고 있음을 봅니다.
꼭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는 따라가지 않고 이웃집 아저씨를 따라가는 것과 같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한 몸이 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을 우리가 먹고 마실 때에
그 분이 우리 안에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새 언약입니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안으로 받아들이면 안과 밖이 섞이듯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분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 안에서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그 영생 안에 구원전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