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콧물, 고향친구들의 아이콘ㅡ
옛날 어른들은 '등 따시고 배부르면 더 바랄 것이 없다'라 자주 말했다. 이 말은 잠잘 자리와 먹을 양식만 있으면 생활이 되니 더 욕심 내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했고 지금도 일하는 것도 다 음식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함이다. 그래서 먹을 양식이 충분하고 편히 잠잘 수 있는 집이 있으면 걱정없이 산다.
지금은 풍요의 시대 지만 1930~1970년대에 청소년기를 지낸 사람들과 부모들은 결핍의 시대에 살았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생경한 이야기지만 춘궁기에는 고구마밥을 상식했고 땔감 부족으로 온기없는 방에서 이불만 깔고 겨울밤 지내기가 일쑤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영양과잉으로 과대 비만과 청소년 당뇨병자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초등 5~6학년생들의 체격은 당시 중 3학년생 수준이지만 체력은 휠씬 못미친다. 옛날 청소년들은 좋은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적어 비록 체격은 작었지만 나무하러 산을 또 힘든 농사 일도 거들었다. 그런 시절, 애들 얼굴과 머리에는 버짐이 피었고 콧물을 그렇게도 많이 흘렸는지? 그것은 영양실조에서 비롯된 증상들이었지만, 그때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으례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지냈다.
회상해보니, 나도 좀 싯누런 콧물을 줄곧 인중에 달고 살았지만 유달리 심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유명한 내과 의사 중 한 명으로, 늘 누른 콧물을 많이 흘려 겨울이면 검은 옷 양쪽 소매에 노랗게 말라 붙은 콧물딱지가 뻔쩍거릴 정도였다.
당시 꼬마들은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 두 줄기의 콧물이 입술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훌쩍 숨을 들여마시곤 했다. 그러면 콧물은 쨉싸게 콧구멍 속으로 들어 가 모습을 감추었지만 인중에는 수 없이 들락거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이런 방법을 쓰다가 지친 아이들은 옷소매로 인중을 쑤~욱 문질렀고, 그러면 윗도리 양쪽 소매끝은 말라 붙은 콧물로 반질반질 윤기가 났다.이런 모습은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 애들에게는 공통적이었다.
애들은 이렇게 컸지만 어른을 알고 친구를 도울 줄 알면서 자랐다. 부족했던 생활은 아이들의 모습을 잠시 그렇게 보이게 했지만 인생과 삶을 규정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런 결핍이 모두에게 인내심과 튼튼한 내공을 쌓게 했고 자신들의 발전을 위한 힘찬 동력으로 작동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인중을 따라 흘러내렀던 콧물들과 소매에 말라 붙었던 콧물 흔적들은 나에게 영원히 잊지못할 고향친구들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