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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천국”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 두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보통 천국에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여기에 온다. 주기도문에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천국”과 단순하게 동일시할 수 없다. _“들어가는 말”
● 오늘날 “하나님 나라”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수시로 접하는 매우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따라서 누구나 다 그 말의 뜻을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그 말의 뜻을 모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분명히 이해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는 용어,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_제1장 “복음이란 무엇인가?”
● 바울은 복음을 가리켜 “그 아들의 복음”(롬 1:9)이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복음이다. 사실 우리가 복음에 대해 알고 나면 이것이 가장 정확한 복음의 정의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자체가 곧 복음이다! 그러나 아직은 설명이 더 필요하다. _제2장 “로마서의 복음”
● 믿음이 순종과 동의어라는 말은 믿음이 행위를 포함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순종의 삶은 당연히 선한 행위를 포함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믿음 뒤에 행위가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 그 자체 내에 행위가 포함된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구원이다. _제2장 “로마서의 복음”
● 로마서에 죄의 지배에 관한 논의가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로마서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임을 반증한다. 죄의 지배와 대조되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려는 노력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십계명이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조항으로 대신하듯, 로마서는 죄의 지배를 경고하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낸다. _제3장 “이 세대와 하나님 나라”
●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문제가 로마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과제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교회를 수립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신칭의라는 주제마저 이런 맥락을 살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신칭의의 가르침은 우리가 죽은 후에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이방인이 유대인과 동일한 자격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옹호하는 논거로 나온 것이다. _제4장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
● 로마서의 주제문(롬 1:16-17)에서 눈에 띄는 핵심 단어는 “복음”이다. 앞서 로마서의 서두(롬 1:2-4)에서 복음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며 하나님 나라를 언급한 바울은 이어서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소개하고(롬 1:8-15), 주제문을 통해 복음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다. _제4장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
● 바울은 로마서 3:24-25에서 십자가는 속죄일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속량, 곧 죄의 지배로부터 하나님 나라로의 주권 이양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십자가의 속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지니는 여러 의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는 로마서의 논의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_제5장 “이신칭의”
● 율법에는 이처럼 죄의 정체를 드러내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 그런데 율법은 그와 함께 심각한 문제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율법이 죄의 실체를 폭로하지만 정작 그 죄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현대 의료 기술이 말기 암을 진단할 수는 있지만 그 암을 완전히 치료할 능력은 없듯이, 그래서 결국 암 환자에게 마음의 병까지 안겨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기도 하듯이 율법은 그렇게 스스로 폭로한 죄 앞에서 무능함을 드러낸다. _제5장 “이신칭의”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언약을 제안하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에게 그 나라의 백성이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신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삼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_제5장 “이신칭의”
●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와 죄의 지배 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죄의 지배는 패망이 결정되었으나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로마서 5-8장은 그런 상황에 놓인 우리를 향해 죄의 지배로 돌아가지 말라고 반복해 촉구한다. _제6장 “영광의 소망”
● 신앙생활이란 내 뜻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 뜻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신앙생활이란 오히려 “내 뜻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죄의 몸, 죽을 몸이 소멸되고 생명의 몸으로 살아나야 한다. 왜곡된 자아를 극복하고 참된 나를 되찾아야 한다. 자아가 없이는 자유도 없다. 이렇게 우리의 참 자아가 바로 세워지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때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_제6장 “영광의 소망”
●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 확실성은 견고한 교리적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언약 관계를 맺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의 확실성 역시 어떤 사실이나 시스템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 그분께 달린 것이다. _제6장 “영광의 소망”
●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가는 그분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세대 곧 파라오의 질서가 아직 살아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 되심을 살아내는 믿음을 성숙시키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다.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주 되심에 모든 것을 내어드릴 뿐이다. 오직 은혜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푯대를 향한 달음질을 계속할 뿐이다. 주님을 향한 신실함으로 그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_제6장 “영광의 소망”
출판사 서평
지난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 시기를 맞아 많은 사람이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할 필요를 절감했다.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 시기에 우리가 로마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로마서에서 발견한 복음이 종교개혁의 성경적 근거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로마서가 대표하는 바울의 복음을 십자가 속죄의 복음 곧 예수 믿고 죄 용서 받은 후 죽어서 천국에 가는 복음으로 이해하고 그런 천국 복음의 렌즈로 신약성경 전체를 읽어왔다. 그 결과 공관복음서가 분명하게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마저 십자가 속죄의 복음으로 잘못 이해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로마서를 다시 읽음으로써 그 안에 담긴 온전한 복음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이 책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복음”(제1부)이 무엇인지 분명한 그림을 제시하고, 로마서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제1장 “복음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로마서로 들어가기 전에 복음서와 구약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이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십자가 속죄의 복음과 비교하고, 복음에 관한 이해가 바뀔 때 구원이나 믿음, 회개 등의 주요 개념들이 어떻게 다르게 정의되는지도 확인한다.
제2장 “로마서의 복음”에서는 범위를 좁혀 바울이 로마서의 서두에서 자신의 복음을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제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또한 그 복음의 정의에 따라 행위와 구원의 관계를 다시 설정한다. 더 나아가 제1장에서 다룬 믿음의 개념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하나님 나라 복음의 패러다임 안에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어떻게 포함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본다.
제3장 “이 세대와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세대 곧 죄의 지배와 대조하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본질을 좀 더 명확히 한다. 로마서가 죄의 지배를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는지 여러 본문을 통해 확인하고, 로마서의 논의가 묵시종말론의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와 이 세대를 대조하며 전개된다는 사실도 살펴본다.
제2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개”에서는 로마서의 주요 주제들이 하나님 나라와 관련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제4장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이라는 맥락에서 관련된 주제들을 설명한다. 특히 바울 신학계에 새 관점이 등장하면서 로마서 해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로마서의 중심 문제 및 주제와 관련지어 살펴보고, 새 관점의 한계를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탐구한다.
제5장 “이신칭의”는 전통적으로 로마서의 중심 주제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그 지위를 잃어버린 “이신칭의”가 어떻게 새롭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때 새 관점을 참조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관점을 도입한다.
제6장 “영광의 소망”은 옛 관점과 새 관점이 모두 그 중요성을 적절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로마서 제2부(롬 5-8장)에 초점을 맞춘다. 이때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다양한 관점으로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 사이의 관계를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연결한다. 또한 로마서가 말하는 구원이란 온 창조세계가 샬롬을 회복해가는 과정임을 말함으로써 전통적 기독교 신앙이 가진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 모든 논의의 과정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로마서에 담긴 바울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사실이다. 공관복음서에 담긴 예수님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고 바울 서신의 복음은 십자가 속죄의 복음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성경에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의 복음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담겨 있을 뿐이다.
로마서를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읽는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의미다. 그것은 우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것에 비길 수 있다. 지금까지 신학자들은 로마서에 담겨 있는 모든 개념을 십자가의 속죄를 중심으로 배열하여 이해해왔다.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듯, 신약성경의 모든 개념이 십자가의 속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믿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서의 중심이 하나님 나라이며 십자가의 속죄는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많은 행성 가운데 하나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정말로 중요한 책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개인 구원론적인 로마서 읽기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중심으로 로마서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로부터 새로운 교회 개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복음이 얼마나 광활하고 우주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얼마나 공적인 파급력이 큰 하나님 나라 구원인가를 이 책에서 확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