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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옥조 |
녹조 |
홍조근정훈장 |
황조근정훈장 |
청조근정훈장 |
근정훈장 |
33년~35년 |
36년~37년 |
38년~39년 |
40년이상 |
대학총장 특별추천 |
*15-25년미만:교육과학기술부장관표창. 25-33년미만: 국무총리표창,
28-30년미만:대통령표창, 30-33년 미만:근정포장
[요지]
학력향상과 인성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연구와 교육활동에 매진하였으며 블로그[http://blog.paran.com/kydong]
에 교과 내용을 실어 강의시간에 부족한 설명을 보완하였고 교무처장 시절에는 정부의 평가기준에
맞춰 교수들의 논문집필에 역점을 두었다.
[설명]
나는 동양사상의 기초인 유학사상에 바탕을 둔 인성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자기 개발과 이웃에 대한
배려에 역점을 둔 유학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초급한문 교과를 통하여 논어, 대학, 중용, 맹자 등에 대한 교육은 물론, 교재도 개발하였다.
[사서의 이해,청우출판사,2005]
'동양문학의 이해'라는 강좌를 개발하고 같은 제목의 교재도 편찬하였다.
[동양문학의 이해,중문출판사,2004.]
[참고]삼강령 팔조목 ← 사성제 팔정도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譯]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데 있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譯]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나라를 다스렸고,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집안을 바로잡았고,
자기의 집안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몸을 닦았고,
자기의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로 하였고,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뜻을 성실히 하였고,
자기의 뜻을 성실히 하려는 사람은 먼저 앎을 이르게 하였고,
앎에 이르게 되는 것은 사물을 구명(究明)함에 있다.
그리고 블로그 운영을 통하여 시경시 305편에 대하여 원문 및 주자 주석까지 대역한 것을 탑재함으로써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폭넓게 유학사상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http://blog.paran.com/kydong,메뉴- 시경 ]
한 차원 나아가 균형 있는 동양사상의 섭취를 위하여 도교 사상서인 장자 전편의 대역도 블로그에 수록하
는 노력을 기울였다.
[http://blog.paran.com/kydong,메뉴- 장자대역 ]
또한 불교사상에 심취하여 불교학과 윤호진 교수(승려,현재 명퇴)가 주관하는 교수들의 불전강독회에
참여하여 원시불경인 <아함경>의 정신에 탐닉하기도 하고, 삼국유사 소재 불교설화 강좌를 개발하여
강의와 연구활동으로 한국불교설화의 원형을 탐색하기도 하였다.
189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나오기까지 이땅의 지식인들은 자기의 사상을 한문으로 피력했으므로
한문학이 중국문학이 아니라 한국문학이라는 전제 아래, 연암 박지원 소설의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연암 연구를 통하여 한국문학에서의 풍자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주저 <연암박지원의 소설연구> (태학사,1988)는 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교무처장 시절에는 동료 교수들의 빗발치는 반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대학평가기준에 맞춰
국제 수준의 논문집에 탑재를 독려하였고 연구업적의 평가기준을 끌어올리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본대학의 현행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중국사 요약]
先秦時代:詩經, 楚辭, 諸子百家.
黃帝(B.C.2698~B.C.2358)
陶唐, 堯(B.C.2357~B.C.2258)
虞, 舜(B.C.2257~B.C.2208)
夏, 禹(B.C.2207~B.C.1767): 三代
殷[商], 湯(B.C.1766~B.C.1121):전설시대→역사시대
B.C. 1500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은 후기 문화의 갑골문 유적 발굴.
1899년 홍수 이후 갑골이 출토된 안양현 샤오툰(小屯) 지방을 발굴[청동기문화]
허신(55-125년경) <說文解字>의 허구도 밝혀짐.
周, 武王:B.C.1134~B.C.250, 37代867년.
西周B.C.1100~B.C.770,東周B.C.770~B.C.221
春秋時代: B.C.770~B.C.403:
老子(B.C.571~?), 孔子(B.C.551~B.C.479), 釋迦牟尼(B.C.561~ B.C.480)
역사서 <春秋>:공자가 BC 722년부터 죽기 직전인 BC 479년까지 그의 모국인 노(魯)나라의 12제후가 다스렸던 시
기의 주요사건들을 기록한 것. 주석서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 (左丘明 추정)
戰國時代:B.C.403~B.C.221:
莊周(?~B.C.275?), 孟軻(B.C.372~B.C.289), 屈原(B.C.343~B.C. 299)
秦:B.C.249~B.C.207, 3대 40년.
漢魏六朝:漢賦, 六朝時代의 鬼神志怪類, 變文.
前漢[西漢]:BC.206~AD.24, 13대211년.
後漢[東漢]:25~219, 13대196년.
魏:220~265, 5대46년.
晉:265~316, 4대52년, 東晉:317~418, 11대 103년.
五胡16國:302~421.
南北朝時代:南朝421~589, 北朝386~577.
南朝:宋421~479, 齊479~502, 梁502~557, 陳557~589.
北朝:北魏386~534, 西魏535~556, 東魏534~550, 北周556~ 581, 北齊550~577.
唐代[隋 唐 五代]:詩, 傳奇小說, 四六文.
隋:581~618, 3대 38년.
唐:618~907, 20대 290년.
五代:後梁-後周907~959, 13대 55년, 十國:吳-北漢902~979.
宋代:詞, 唐代에 이어 古文運動. 講唱(산문+운문), 話本소설(강창의 대본)
北宋:960~1126, 18대 166년.
南宋:1127~1279, 9대 152년.
*遼907~1125, 9대 210년. *金1115~1234, 9대 120년.
元代:曲
몽골:1206~1259, 4대 54년
元:1260~1368, 11대 109년
明代:四大奇書(演義, 神魔), 馮夢龍 三言(喩世明言, 驚世通言, 醒世恒言)120種의 平話. 凌蒙初 <拍案惊奇> 二刻.
明:1368~1662, 20대 294년.
淸:1616~1911, 12대 297년.
청조 멸망 후 일제에 맞서 국공 합작과 분열대립, 국공내전 등을 거쳐
1949년 10.1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중앙인민정부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언.
1966년 8.8 중공 8기 11중앙위원회전체회의(8.1~12일)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에 대한 결정> (16조)
채택. 그후 홍위병운동은 상해, 남경, 서안 등으로 확산되어 자본주의[走資派]로 지목한 인물, 종교, 문화
(전통문화까지) 등을 〮공격하고 파괴함.
1977년 5.24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 문혁당시 지식인을 멸시하는 것을 개혁, “지식을 존중하고, 인재를
존중하는 기풍을 반드시 당내에 진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정치면에서 요구는 적절히 자제해야
한다.”고 언명함. 黑猫白猫.-경제성장 토대.
흑묘백묘는 '不管黑猫白猫 捉到老鼠 就是好猫'의 줄임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
다는 뜻이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말로, 흔히 흑묘백묘론이라고 한다.
⇐덩은 1962년 농업 청부제 토론회와 공청단과의 접견 등 두 차례 행사에서 ‘누렇든 검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黃猫黑猫 只要捉住老鼠 就是好猫)’라며 농업 발전을 위해 유리한 생산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자본주의, 정치-공산주의.
http://blog.paran.com/kydong/27417062
2.1. 정음 창제의 이론적 기반
《훈민정음》(원본)에 따르면, 훈민정음 창제는 역학 (음양오행, 삼재)과 중국의 운학
그리고 음악 이론 (원리)을 기반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소리내는 모양 (발음기관)을 본 뜬 '상형의 원리'와 소리의 세기 (생김새)를 나타낸
'가획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음의 기본적인 짜임새 '3성법'의 창안에 따른 것이므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는
'상형·가획의 원리'와 '3성법 창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 상형·가획의 원리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떠서 기본 5자를 만들고, 여기에 소리의 성질에 따라서 획을 더하는 원리로
창제되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초성의 창제 원리
ㄱ. 상형원리 (기본 5자)-발음기관 본뜨기
① 아음 : ㄱ ② 설음 : ㄴ ③ 순음 : ㅁ ④ 치음 : ㅅ ⑤ 후음 : ㅇ
ㄴ. 가획원리 (성출초려-인성가획)-세기따라 획더하기
① ㄱ ㅋ ② ㄴ ㄷ ㅌ ③ ㅁ ㅂ ㅍ ④ ㅅ ㅈ ㅊ ⑤ ㅇ ㆆ ㅎ
(단 ㆁ, ㄹ, ㅿ은 가획과 상관없음 : 소리 성질 반영)
(1)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소리를 내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기본 5자와 소리가 세어지는 데에 따라서 획을
더한 방법으로 창제되었으므로, 형태가 합리적으로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한편, 훈민정음 중성 (가운뎃소리)도 상형 원리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창제되었다.
(2) 중성의 창제 원리
ㄱ. 상형의 원리(기본 3자) : ① ㆍ : 하늘 ② ㅡ : 땅 ③ ㅣ : 사람
ㄴ. 합성의 원리 (가획의 방법)
초출자 합성 : ㅡ와 ㅣ에 ㆍ를 합하는 방법
① ㅗ : ㆍㅡ의 합 ② ㅏ : ㅣㆍ의 합 ③ ㅜ : ㅡㆍ의 합 ④ ㅓ : ㅡㆍ의 합
재출자 합성- 'ㅗ, ㅏ, ㅜ, ㅓ'에 ㅣ소리를 합하는 방법
① ㅛ : ㅣ와 ㅗ ② ㅑ : ㅣ와 ㅏ ③ ㅠ : ㅣ와ㅜ ④ ㅕ : ㅣ와 ㅓ
('ㅛ, ㅑ, ㅠ, ㅕ'는 'ㅗ, ㅏ, ㅜ, ㅓ'와 같으나 ㅣ에서 일어남)
(2)에 따르면, 중성도 상형의 원리에 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초성과 같은 가획의 방법이 아니라
3가지 기본 글자를 합성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획을 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는 가획의
원리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 음의 짜임새 3·2성틀
《훈민정음》(원본)에서 보면, 소리 단위인 음(글자)의 짜임새에 관련된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3)ㄱ."무릇 글자는 반드시 어울려야 소리가 되니……" (한글학회 1998 : 4)
ㄴ. "첫소리와 가운뎃소리와 끝소리의 세 소리 (글자)가 어울려야 글자를
이룬다." (한글학회 1998 : 20)
ㄷ. "ㅇ은 소리가 맑고 비어서 반드시 끝소리에 쓰지 않더라도 가운뎃소리
(ㅇ을 붙이지 않고서)가 소리를 이룰 수 있다." (한글학회 1998 : 18)
ㄹ. "가운뎃소리가 깊고 얕고 오므라지고 펴짐으로써 앞에서 소리나고,
첫소리가 오음의 맑고 흐림으로써 뒤에서 화답하여, 첫소리가 되고
다시 끝소리가 되니……" (한글학회 1998 : 11)
(3ㄱ, ㄴ)에 따르면, 글자는 '초·중·종' 3성이 묶여서 이루어지므로, 한 글자는 3성의 묶음 구조입니다.
그런데 (3ㄱ)에서 '합이성음 (合而成音)'이라 하였고, (3ㄴ)에서는 '합이성자 (合而成字)'라고 하였으므로,
'음 (音)'과 '자 (字)'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훈민정음은 말의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합이성음'과 '합이성자'라는 문맥을 볼 때, '합하여 이루어지는 관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훈민정음》에서 글자 (자)는 곧 '소리 (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ㄴ)에서는 세 소리 즉, 초성·중성·종성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이 합해져야 음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소리를 묶는 틀은 '3성틀' (3성 구조)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훈민정음의 음 구조는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 3성틀입니다. 최기호 (1994 : 161-162)에서는, 중국어가
한 음절을 2분법 (聲, 韻)으로 설명한 데 대하여 우리나라에서는 3분법 (初聲, 中聲, 終聲)으로 나누면서도
종성자는 따로 만들지 않았으며, 또한 성조에 이르기까지 완벽을 기하였던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하였습니다.
(4) 君
ㄱ(성모) + ㅜㄴ(운모)
ㄱ(초성) + ㅜ(중성) + ㄴ(종성)
2분법 3분법
(4)에 따르면, 중국의 2분법에 비하여
훈민정음 3분법은 독창적인 창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3분법이란 소리묶음의 틀로 말하면 3성틀 (3성 구조)입니다.
이것이 훈민정음의 음 구조의 창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훈민정음을 사용할 때 종성 (끝소리, 받침)이 없는 음 (글자)도 있습니다.
받침이 없는 글자는 3성을 다 갖추지 않았으므로, 초성과 중성으로 된 2성 구조입니다.
《훈민정음》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3ㄷ)처럼 종성이 없어도 글자 (음)가 이루어진다는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종성이 없는 상태에서 중성만으로 소리묶음 단위가 이루어진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종성이 없는 글자 구조는 초성과 중성으로 된 2성 구조인 '2성틀 (2성 구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3성과 2성이라는 두 가지 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구조를 훈민정음 음 (글자)의 '3·2성 묶음틀' (이하 '3·2성틀')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정리하면《훈민정음》의 소리묶음틀은 3·2성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성이나 종성의 합용병서 'ㅺ, ㅼ, ㅳ,ㅄ, ㅴ, ㄺ' 등에 대하여, 그 음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성에서는 이른바 '8종성법'이라 하여 종성을 한 글자로만 표기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종성은 한
소리로 발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성의 경우에 각자 발음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모두
묶어서 초성임에는 틀림없다. 즉 그것이 각자대로 발음되었거나, 하나로 경음화 되어 발음되었거나,
상관없이 초성으로 볼 수 있으므로, 3성과 2성틀의 구조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음 형식 창안 - 훈민정음의 창의성
자음과 모음의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
‘ㄱ’을 ‘기역’이라고 읽는 것은 언제 누가 정했을까? 사실 이건 정확히 알 수 없다. 훈민정음에는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기록해 놓지는 않았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1527년(중종 22) 최세진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책의 앞에 ‘언문자모(諺文字母)’라고 하여 훈민정음의 자모에 관한
설명이 있어 당시의 자모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자모수가 27자라고 되어 있다(‘ㆆ’가 빠져 있다).
<훈몽자회>에 보면, 자음과 모음 아래에 그 이름을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적어 놓았다. 다만 특이한 점은
자음을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자는 이름을 두 글자로 적었고, 초성에만 쓰이는 자는 한 글자로 적었다는
점이다. 즉,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경우는 앞의 글자는 초성 발음을, 뒤의 글자는 종성 발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이름을 정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여덟 자는, ‘ㄱ-其役(기역)’, ‘ㄴ-尼隱(니은)’, ‘ㄷ-池末(디귿)’,
‘ㄹ-梨乙(리을)’ ‘ㅁ-眉音(미음)’, ‘ㅂ-非邑(비읍)’, ‘ㅅ-時衣(시옷)’, ‘ㆁ-異凝(이응)’
초성에만 쓰이는 여덟 자는, ‘ㅋ-箕(키)’, ‘ㅌ-治(티)’ ,‘ㅍ-皮(피)’, ‘ㅈ-之(지)’, ‘ㅊ-齒(치)’, ‘ㅿ-而(이)’,
‘ㅇ-伊(이)’, ‘ㅎ-屎(히)’와 같이 적고 있다. (일부 글자는 당시의 발음과 지금의 발음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중성(모음)의 경우는, ‘ㅏ-阿(아)’, ‘ㅑ-也(야)’, ‘ㅓ-於(어)’, ‘ㅗ-吾(오)’ …… 처럼 적고 있다.
<훈몽자회>가 자음의 이름을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표기하다보니까 음이 비슷한 한자나 혹은 한자의
뜻을 이용하느라고 그렇게 된 것이다. 가령 ‘ㄱ’의 경우는 한자음에 ‘윽’이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비슷한
소리를 갖는 ‘역(役)’을 제시한 것이며, ‘ㄷ’과 ‘ㅅ’의 경우는 이 자음이 한자음에서 받침으로 사용된 예가 없기
때문에 한자 ‘끝 말(末)’자와 ‘옷 의(衣)’자를 제시하되, 각각 그 뜻에 해당하는 고유어 ‘귿’과 ‘옷’으로 읽게 했
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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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의 국문학은 쉬운 것 같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국문학이라 생각합니다. 강연의 요지만 보아도 머리가 복잡하고 너무나 어려운 것이 국문학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문학을 전공하시고 수십 년간 한길을 걸어오신 김영동 교수께 축하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