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일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로 어머니는 아버지 옆으로 잘 모셨습니다.
저희는 형제가 다섯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제가 가장 많이 받았고, 효도순서는 거꾸로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언젠가는 떠나실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제곁에 있으실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무한한 사랑만 주시고 가셨습니다.
되돌려받을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런 무한사랑만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40여년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큰 불효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큰 효도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기 보름전부터 저희 집에서 어머니는 계셨습니다.
건강이 조금 나쁘셔서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기가 어려워 아들집으로 나오시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막내네집을 선택하셨습니다.
보름동안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잠을 자면서 지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집은 형제들이 3년터울입니다. 가난해서 방도 한두개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머니와 단둘이 잠을 잔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을까요?
더구나 중학교를 다니면서 시작된 자취는 직장생활까지 이어지게 되었으니 그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폐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폐가 하나여서 그 기능이 떨어지면 더이상 회복이 안되고 악화만 되기에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죠.
하여튼 보름동안 어머니랑 한방에서 잠을 잤으니 가장 오랜기간 잠을 잔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머니는 식사도 잘 하셨고 모든 생활을 혼자힘으로 잘 하셨습니다.
설은 울산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울산으로 내려갈 준비만 하고 있었습니다.
파마를 하시겠다고 하셔서 월요일은 날씨가 나쁜관계로 화요일 출근길에 미장원에 모셔드리고 점심나절에 다시 집으로 모셔드렸습니다. 어머니는 10미터를 연속해서 걷는 것도 힘들어하십니다.
수요일에는 퇴근하니까 어머니가 평소보다 기운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루종일 잠만 주무셨다는 집사람의 얘기에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시는 어머니 얼굴이 더 수척하게 보였습니다.
그래도 저녁식사는 잘 하셨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덕담도 건냈고, 평소에 하지 않으시던 얘기도 하셨습니다.
칭찬도 하시고, 집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식사후에는 집사람이 염색을 해 드렸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목욕물을 탕에 받아놨습니다.
염색한지 40여분 후 집사람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하시고 10시쯤에 안방으로 가셔서 집사람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약간의 이상증세를 느꼈습니다.
호흡곤란증세로 힘들어 하셨습니다.
땀을 비오듯 흘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곧 괜찮아지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일을 수십차례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잠깐 보는데, 나도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119에 연락하고 가까이 있는 셋째형을 불렀습니다.
5분여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조금 증세가 호전되는 느낌이 들기가 무섭게 어머니 몸이 경직되어 갔습니다.
손을 쓸 수도 없이 지켜만 봐야하는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발을 동동굴리는데 곧이어 119가 도착했고, 셋째형 내외가 도착했습니다.
밥 잘드시고 염색하시고, 목욕까지 잘 하신 분이 10여분사이에 갑작스런 일을 맞이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벌써 10일이 다 되어 갑니다.
그 전과 후의 생활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비빌언덕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허전할 수가 있을까요?
혹시라도,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기를 바랍니다.
함께 추억꺼리를 만들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첫댓글 강사님... 힘내세요...
김기식 강사님 마음 백번 천번 이해합니다
누구나 부모님은 하늘같은 존재이고 항상 제곁에 있습니다
특히나 막내로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 남다른거 같습니다
강사님에대한 사랑 어머님도 충분히 알고 계실겁니다
누구나 한번은 격어야 하는 일이고 또한 한번은 당하는일입니다
어머님께서 좋은곳에 계신다고 생각하시고
너무 상심하시지 말고 힘네시길 부탁 드립니다
강사님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