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아닌 4분의 3
네개 중에 세개만 성공했다. 첫 시도에 네 산을 완주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라고 여기고 싶다. 더욱이 지도에 근거해 처음 찾은 산을 한밤중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 번에는 완주할 가능성을,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한 소중한 기회였다. 23일 오후 7시30분 불암산을 시작으로 이튿날 오후 1시 구기동 매표소를 빠져나올 때까지 수락산을 포기한 채 택시로 회룡역까지 이동한 것과 도봉 연봉 위 산불감시 초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 것 말고는 줄곧 걷고 또 걸었다.
집결부터 낌새가 좋지 않았다. 우선 나, 알자지라가 인터넷 등에서 뽑아 놓은 지도를 깜빡 잊고 빠뜨리면서 불행은 노정됐다. 전철에서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음은 재로. 헤드랜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에 들른 재로는 이 곳에서 버스를 30분이나 기다리게 된다. 청계천 어디쯤에서 아예 버스가 서 버리자 전철과 택시를 이용, 다시 태릉입구에서 같은 노선 버스를 올라타는, 무려 3시간에 이르는 장정을 한 후 불암산 입구에 도착했다. 정말 살 떨리는 얘기는 재로가 태릉입구에서 오른 버스가 2시간 전 내렸던 그 버스였다는 사실이다. 전철에서 종일 서서 왔던 그로선 속된 말로 뚜껑이 열 번은 열렸을 일이었다.
사니사라 님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오후 5시 46분 갑자기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더니 4호선 미아 쯤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왜 미아에? 불수도북이라고 하니까 상계동 어디쯤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6호선으로 갈아 타 화랑대역에서 버스를 타라고 일러줬다.
재로가 지친 얼굴로 집결지에 도착한 것이 오후 6시 30분쯤. 사니사라 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제 막 화랑대역에서 버스에 오른다고 했다. 이제 됐다. 근데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올 참인데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걸었더니 반대방향 버스를 타서 다시 갈아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대문까지 안 간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컴불 형님은 이날 여러 차례 세명에게 번갈아 전화를 걸어 격려했고 그냥 형님도 우리가 식사하는 도중 남해안에서 전화를 걸어와 무사히 다녀오라고 당부했다.
집결지는 배 농장 안에 갈빗집이 있어 2000명인가를 수용한다는 엄청난 규모의 맥갈비라는 식당에서 지척이었다. 당연히 이화에 월백하는 배꽃들의 향연이 펼쳐졌고 등 뒤쪽에서 휘영청 떠오른 달이 우리를 감쌌다.
예정보다 30분 늦은 오후 7시 30분 불암천을 따라 이제 막 사위가 어두워지는 불암으로 들어갔다. 초파일에 맞춰 밝혀 놓은 연등의 환영을 받으며 불암사를 왼편으로 끼고 올랐다. 길은 좋았다. 계단이 적지않게 깔려 있었고 달빛은 교교하게 우리의 발길을 비춰주었다.
불암은 암릉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여자 산이다. 달빛과 여자가 만났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오후 7시30분쯤 식당을 나서 장정을 시작했다. 훤했다. 랜턴을 켰던 재로가 사니사라 님의 점잖은 경종에 슬그머니 랜턴을 끌 정도였다.
40분쯤 올랐을까. 이 길이 맞나 긴가민가 싶은 상황이 이어진다. 기도하는 이들이 산을 오르내리는 걸로 봐선 이 산도 영험한 기도처로 이름 높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길이 흐릿해졌다. 나중에 보니 산장 앞 마당이었는데 직진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오른쪽으로도 가파른 길, 아무래도 정상 쪽인 것 같아 늦은 출발을 만회할 요량으로 그대로 바위로 치고 올라갔다. 10여분쯤 올랐을까. 수십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숨도 돌릴 겸 쉬는데 그야말로 압권이다. 달빛의 교교함을 즐기기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의 가든-이쪽을 다녀오신 분은 알겠지만 정말 가든이 넘쳐난다- 불빛 수천개가 반짝거렸지만 달빛 하나를 이겨낼 수 없었다. 소쩍쿵 소리도 들려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사니사라 님은 다리를 죽 뻗고 누웠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꽤 걱정이 됐다. 오늘 산행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학생들과 술 먹느라 아침에 집에 들어가 충분한 잠을 못 취했다는데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10분 있다 일어섰다. 암릉으로 바로 치고 올라가자고 했다. 떡하니 커다란 암릉을 마주 대하고 보니 위쪽에서 사람 소리가 시끄럽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오른쪽으로 돌았더니 그제야 20미터쯤 위에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올라갔냐 위험하냐는 등의 질문을 던졌는데 저쪽의 대답이 영 시원찮다.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만 내려가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사니사라 님이 그 위는 괜찮냐고 물으니 또 하나가 있다고 했다. 우리로선 포기할 명분을 얻은 셈이었다. 양쪽 아래를 다 돌았는데 길은 없었다. 천상 다시 너럭바위쪽으로 내려와 왼쪽으로 긴가민가 싶은 길을 밟았더니 이내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랜턴 불빛이 일렁거린다. 안심이다.
바위를 손으로 짚으며 올랐더니 9명 정도가 겨우 앉을 수 있는 정상이었다. 밤 9시, 정확히 1시간 30분이었다. 길을 제대로 알았다면 20분은 줄일 수 있었는데 싶었다. 태극기가 5미터 높이의 장대위에서 펄럭인다. 재로가 그 옆에 서니 마치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식 이름,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입니다. 우리부터 생활화했으면 합니다.)에 선 등정자 같다.
오르면서 조금씩 엿보이던 서울 노원구쪽 야경이 오른쪽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서쪽으로 도봉과 북한산 연봉이 눈에 들어온다. 불의 밝기는 양주군에 견줘 노원구 쪽이 엄청 화려하고 밝았지만 달의 교교한 미소에는 한참 모자랐다.
북쪽으로는 수락의 줄기가 보였다. 수락으로 이어붙이기 위해선 중간에 봉우리 하나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씩 걱정하는 기색이 스쳤다, 고 생각하는 순간 일어섰다. 갈 길이 멀었기에 힘을 내야 한다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정상에서 조금 평탄한 곳으로 내려서자 바위 길이 이어졌다. 15분쯤 걸었을까. 길이 다시 흐릿해진다. 수락으로 이어지려면 저쪽으로 가야 한다, 이쪽이다 입씨름이 다시 벌어졌다. 지도를 안 챙긴 내 죄가 컸다. 신문에선 불수도북이 엄청 인기라는데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해발 300미터 지점에 이르자 왼쪽으로 상계동 방면이 눈에 들어와 일행은 덕능고개로 가자는 주장과 상계동 쪽 마을로 내려가 조금 걸어 덕능고개로 올라가자는 두 입장으로 갈렸다. 3명이다 보니 다수결도 그렇고 만장일치도 그런 어정쩡한 상태가 되기 십상이었다. 결국 조금 더 안전해보이는 길, 상계 방면을 선택하게 됐다.
조금 내려섰더니 뾰족한 바위들이 연이어 있는 너덜지대가 나왔다. 조심해야지 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마구 짜증이 났다.
이러다 넘어지겠네, 하는 순간 중심을 잃었다. 초조함과 짜증이 교차돼 평정심을 잃은 탓이었다. 결코 피플러버 님 등이 걱정할 만큼 위험한 지대는 아니었다. 넘어지면서 이러다 얼굴 부딪히겠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고개를 약간 돌렸다. 턱 아래 상처 자국이 생겼다. 나중에 사니사라 님은 결산 회식에서 "너 넘어질 때 보니 차근차근 포개지면서 넘어지더라"고 우스갯 소리 비슷하게 했다.
다른 사람에 견줘 허벅지 등 아랫도리가 허약한 것이 원인이라는 게 산친구들의 분석이다.
넘어지자마자 사니사라 님이 달려와 등산 수건을 꺼내 오른쪽 다리의 상처 부위를 친친 감아주었다. 그 외 턱 밑,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한 군데 상처가 생겼다.
넘어지면서 속으로 퍼뜩 잘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걸 핑계로 접어버려 하는 생각이었다. 사니사라 님이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나는 아예 산행을 중단해야 하는 큰 부상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15도 정도 각도에서 뾰족한 바위들에 넘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왠걸 내 생각보다는 부상 정도가 경미했다. 급한 대로 상처를 소독하고 두 동료에게 분에 넘치는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형은 왼쪽, 재로는 오른쪽으로 전진해 길을 찾으라는 명령(?)이었다.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던 형은 길이 맞다고 했다. 정말 1분도 안 걸었는데 길이 나왔다.조금씩 속도를 내니,나중에 지도를 확인해본즉 당고개역 위쪽이었던 것 같다. 덕능고개에서는 한참 아래 쪽이었고. 밤 10시 25분, 예정보다 5분 일찍 이었다.
일행은 자동차들이 휙휙 지나가는 대로를 건너 한참 터널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을 거쳐 유원지 쪽으로 다가섰다.
10여분쯤 발걸음을 옮겼을까.
사니사라 님이 "이대로 수락산을 타면 마지막 북한산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여기서 수락을 포기하고 도봉으로 옮기는 게 어떤가" 라고 말했다. 구수회의가 열렸다. 5분쯤 의견을 교환하고 합리적인, 우리의 현 수준에서 가장 합리적인 산행을 염두에 둔다면 수락을 건너뛰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돌아나와 택시를 타고 지난 1월 도봉산 오름의 출발지, 회룡역까지 이동했다. 택시비 1만원을 내고 시계를 보니 시침이 11을 조금 지나쳐 가리키고 있었다.
첫댓글 예상했던대로 고생이 말이 아니군 ...한편의 소설쓰듯 흐르지만 늘 그러하듯이 현실은 얼마나 난감하고 속상했을까?....보름달이 뜨는어느날 동참하리라 ...선구자적 자세 고맙소....
'월하의 세 남자'^^ 성공적인 등정기(1) 축하드립니다. 알 형은 형수도 예 없는데 큰일 날뻔 하셨슴다. 경미한 부상이었다니 천만다행...
드디어 기다렸던 산행기가 올라왔군.기다렸던 만큼 산행기도 내가 달빛을 타고있다는 착각을 일으킬만큼 좋다.정말 많이 다치지않았다니 다행이다.좋은날 좋은시간에 현장의 인물들을 직접 보고 막걸리와 함께 그날의 추억을 같이 하고싶다.
시작을 했고 이제 과정이 다는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장하다. 남쪽에서 바라보던 보름달이 그대로 이겠지 하면서 무사한 산행을 기원했었는데... 다음은 사전 준비를 조금만 더해 다시한번 같이 도전해 봅시다. 고생많았고 경미하다지만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사진상 사니사라 죽을 맛인 모양이다
무지재밌게읽으면서 담엔 나두 삼단랜턴 써봐야지했는데....가장조명을 많이받은 후배표정 장난아니다. 재로는 웃고있는거같아서 안심이고... 이탄을기다리며 밝은사진 부탁드려요. (차곡차곡포개지면서 넘어지는거 배워둘 필요가 있다) 뭔가 진짜 재미있는부분이 남아있을겄같은데...복합마데카솔이 상처엔 최고!
천성적으로 약을 싫어해요. 지금까지 먹어본 약이라곤 박카스 정도. 그날도 일회용 밴드 바르라고 하는데 싫다고 했지요. 혼자 사니 설거지하고 씻어야 하는데 물 들어가면 아린 게 아프더라구요. 그래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중. 1장이 달 얘기니 아무래도 사진이 어둡고 2장 가면 햇살 얘기니 당근 사진 밝지요.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는 동참하겠습니다. 야간산행이 주가 된다면 사전에 등반을 해본 후에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알자지라도...산행시 포기라는 것이 있다는 걸 첨 알았다. 이스탄불의 산악지대를 뛰어다니는 것이 어제이건만 몸이 옛날같지 않은가 보다...정말 수고 많았다
형이 약을 싫어 했던가. 그래도 약은 좀 바르는 게 좋지 않을까. 다음 번엔 꼭 성공하세요.
이스탄불에는 산악이 없습니다.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