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이정표 귀신
이학주
한국의 과학기술은 손재주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귀신(鬼神)이 이끌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찾으려는 탐구정신이 뛰어나다. 그리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움직인다. 무엇을 간절히 바랄 때 우리는 조상과 가신(家神)과 동신(洞神) 그리고 천지신명(天地神明) 등에게 빌었다. 능력 밖의 도움이 있을 때 우리는 행운이라는 말을 쓴다. 이때 행운(幸運)은 좋은 운수 또는 행복한 운수(運數)를 뜻한다. 운수는 줄여서 운(運)이라고 한다. 우리는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쓴다. 이때 운을 지배하는 실체는 귀신이었다. 귀신 때문에 불가사의한 일들이 이뤄진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처럼 한국인이 뛰어난 과학기술을 이루는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인 귀신을 끌어들여서 그것을 가시적인 존재로 만드는 능력 때문이다.
한국인은 귀신을 귀(鬼)와 신(神)으로 나누어 보았다. 귀는 울결된 것이고, 신은 편 것이다. 원한이 있으면 귀가 되어 구천을 떠돌고, 온전히 살다 가면 신의 반열에 올라 저승으로 간다. 귀는 원한을 갚아달라고 사람에게 붙어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래서 귀를 천도하면 신이 되어 또 다시 인간을 도와준다. 간략하게 본 우리의 귀신관이다.
옛날 매월당 김시습은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써서 석실(石室)에 넣으면서 천 년 후 반드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했다. 『금오신화』는 인간과 귀신의 교감(交感)과 감응(感應)과 영험(靈驗)과 활용(活用)을 써놓은 이야기이다. 김시습은 귀신이 가지고 있는 무한능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 귀신을 통해서 우리가 현재 누리는 4차 산업혁명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시습이 <용궁부연록>을 통해 용궁세계를 다녀오고, <남염부주지>를 통해 염부주(지옥)를 다녀오고,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을 통해 인간과 귀신의 교감과 공간이동을 보여주었다. <취유부벽정기>를 통해서는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귀신이 가지고 있는 무한능력을 활용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이었다. 비마(飛馬)을 타고 하늘에 떠 있는 용궁과 천상세계로 가고, 꿈을 통해 저승의 다른 공간을 이동했던 것은 오늘날 우주선이나 컴퓨터와 휴대폰통신 등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이 이제는 차가운 기계중심이 아니라, 따뜻한 정서를 가진 사람과 귀신의 교감이 주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은 아주 빠른 시일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2021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발표는 정말 큰 자랑이었다. 그때 참 많은 사람들이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37년간의 일제강점과 1950년에서 1953년까지 6.25한국전쟁을 겪었다. 그 결과 온 국토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도시에 집이 없고, 당장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참 많은 아이들이 전쟁고아로 자랐다. 해외로 아이들을 입양 시키는 부끄러운 나라였다.
그렇게 힘든 시기였는데, 우리에게는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잘 살게 만들어 준다는 조상신(祖上神)이었다. 조상신은 우리 삶의 이정표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듯이 죽어 저승에 간 조상들이 우리를 잘 살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집집이 신주(神主)를 모시는 집이 있고, 기제사와 명절 마다 꼭 조상을 먼저 섬겼다. 제사를 지내고 차례상을 차려 조상께 고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삼신, 성주신, 조앙신, 측신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들이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우리가 모셨던 가신(家神)들이다.
이 가신 때문에 겸손할 줄 알았고,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서로 존중하면서 큰 소리를 치지 않았다. 가신들이 노하면 복이 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봄가을로 안택고사를 지내 가신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집안의 안녕과 풍요를 빌었다. 가족이 화목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고 대들보였다. 터줏가리를 만들어 지신(地神)을 위하고, 대들보에 성주단지를 매달아 성주신을 모셨던 이유이다.
이들 가신은 뭐든 하면 도움을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성주단지에 쌀을 넣은 것은 곡식에 대한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먼 길 떠난 가족이 있으면 조앙신 앞에 매 끼마다 밥을 떠놓았다. 객지에 나가도 밥 굶지 말라는 기도였다. 가족이라는 사랑의 근거도 이처럼 가신으로부터 비롯했다. 화장실에 빠지면 떡을 해서 측신(廁神)을 모시고, 아이에게 떡을 먹게 했다. 변소에서조차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이렇게 귀신을 말하는 것은 집에서 예전처럼 다시 신을 모시라는 말이 아니다. 『명심보감』에 인간사어(人間私語)라도 천청(天聽)은 약뢰(若雷)하고 암실기심(暗室欺心)이라도 신목(神目)은 여전(如電)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사사로이 하는 속삭이는 말도 하늘이 들으면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에서 속이는 마음이라도 신의 눈은 번개와 같이 안다는 말이다. 우리는 옛날 집집이 또는 마을마다 신을 모셨던 것처럼 항상 조심하고 바르게 살아갈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뒤에서 능력을 밀어주고 용기를 주며 항상 보아주는 신이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복락은 지금 이 순간 옳은 일을 하며,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이를 도와주며,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할 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절대로 인간 혼자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복락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도움이 있어야 복락은 주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이정표는 다름 아닌 귀신이었다. 계묘년(癸卯年) 새해에는 모든 이에게 귀신의 도움이 있기를 기원한다.(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