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월남전을 다룬 영화가 그치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로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적군과 아군이 선명하게 대립하고 피아의 식별이 용이하며 선악의 개념이 뚜렷한 소재이니만큼,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 거리를 찾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면, 월남전이 가진 복합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이다.
월남전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세계 십자군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냉전 이데올로기와 맞부딪치면서 극대화 된 형태로 세계사 속에 등장한다. 반대급부를 동반한 미국의 강요로 우리 청년들 역시 월남전에 참전해 많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우리 영화 속에서 월남전의 상처가 등장하는 것은 [하얀 전쟁]뿐이다. 그리고 현재 조우필름에서 고엽제 참상으로 월남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정도이다.
수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월남의 정글 속에서 피를 흘려가는동안 제기된 질문, 왜 우리가 우리의 삶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그 땅에서 죽어가야 하나라는 이기적 차원의 일차원적 질문을 넘어서, 이데올로기가 무엇인데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나라는 관념적 질문이나, 죽음과 직면하면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삶 자체의 본질적 질문들을 파생시켰다.
락앤롤과 히피 문화와 프리 섹스로 대표되는 60년대 미국 청년문화는 월남전과 함께 반전운동으로 확산된다. 월남전은 미국 사회에서 그들이 참전한 수많은 전쟁 중의 하나가 아니라, 미국 사회를 뿌리 깊게 뒤바꾼 인신론적 전환의 전쟁이다.
1965년 11월 14일 오전 10시 48분부터 시작된 미군 395명과 월맹 정규군 2000명과의 격전은 사흘동안 계속되었으며, 월남전 초기 당시 서로를 탐색하던 미국과 월맹의 공산군이 최초로 수많은 사상자를 배출하며 직접 부딪쳤던 역사적 전투였다.
베트남의 아이드랑 계곡, 제 7공수부대를 이끌고 있는 무어 중령(멜 깁슨 분)은 베트남의 험준한 지형에서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전술의 한 방법으로, 부대원을 이끌고 X-RAY 지역에 침투한다. 헬기 부대와의 협공작전을 시험하기 위한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그곳은 월맹군 정규군이 집결하고 있는 곳이었다.
예기치 않은 거대한 저항에 직면한 무어 중령은, 위기 상황에서 침착한 지휘로 난관을 헤쳐나간다. 그러나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적의 끈질긴 공격으로 수많은 그의 부하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UIP 기자로 현장에 파견되어 함께 전투를 치루었던 조 갤로웨이 기자는, 지난 1990년 U.S.NEWS & WORLD REPORT에 X-RAY 계곡 전투에 관한 기사를 게재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소설 [우리는 한때 젊은 군인이었다]를 쓴다. 이 소설이 [위 워 솔져스]의 토대가 되었다.
[아이언 마스크]라는 범작을 만든 랜달 솔레스 감독은 전작보다는 훨씬 진일보된 테크닉으로 전쟁의 참상, 그리고 미군들의 영웅적 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쟁영화가 미군을 패배자로 그릴 수는 없다. 무어 중령의 영웅만들기는 당연한 전략이다. 무어 중령은 완전한 선, 그 자체이다. 자상한 남편, 선량한 아빠, 애국심 넘치는 군인.
[위 워 솔져스]의 전투씬은 [브레이브 하트]나 [글래디에터] 혹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리고 최근작인 [블랙호크다운]의 리얼함에 미치지 못하고, 전쟁 자체를 통한 삶의 화두는 코플라의 [지옥의 묵시록]이나 전쟁의 광기를 다룬 다른 월남전 영화들, [디어 헌터] 혹은 [플래툰]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긴박한 화면구성이나 흐름의 완급조절은 효과적이어서 2시간동안 관객들을 소리없이 흡입한다. 사실 이런 류의 전쟁영화가 노리는 감동은 너무 지나치게 정형화된 것이다.
호주 출신 멜 깁슨은 이제 초반의 할리우드 텃세를 이겨내고 확실한 미국인들의 영웅 이미지 굳히기에 성공했다. 그와 필적하는 캐릭터로는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가 있을 뿐이다. 상투적이지만, 생과 사가 한 순간에 오고가는 전쟁 영화의 긴박감을 살려내면서 [위 워 솔져스]는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군만의 일방적 시선에 의한 애국심 고취용이 아니라고 강변하듯이 [위 워 솔져스]에는 월맹군 장교에 대한 애정어린 샷이 몇 개 들어가 있다. 나는 이 샷이 랜덜 월레스 감독의 위장적 제스처라고 생각한다.
죽어간 월맹군 장교가 자신의 아내에게 쓴 일기장을 나중에 무어 중령이 가족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나, 미군이 철수한 뒤 월맹군 장교가 벙커 밖으로 나와서 나무에 꽂혀 있는 찢겨진 미국의 성조기를 바라보며 독백하는 엔딩씬은, 치열하게 대립해 있는 양쪽 시각을 균형있게 비추려고 노력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가진 자의 여유이며 기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