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승리를 유감없이 느끼는 요즈음이다. 이 패착은 인생의 시들함에 있다. 시들해진 인생에 공헌을 한 녀석들이 내 곁에 즐비하다. 술을 비롯해 가짓수가 하도 많아 일일이 따져 볼 것도 없다. 그 중 유독 괘씸한 이 녀석, 다른 녀석들이야 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참견이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덩달아 껴들어 일조를 한 이 녀석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누가 봉급을 사이버 빈 봉투로 받자 했던가.
청문회를 했으면 쉬이 통과는 아니 되었을 것이란 예의 생각이다. 주변에 내 동지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틀려먹은 일이다. 설령 되돌린다 하여도 쇠락한 기운으로선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시공을 넘어 보이지도 않고 날아다니는 돈, 편하다하지만 나는 월급에 있어선 그 신속 정확함이 참 아쉽다. 봉급쟁이는 봉급으로 말한다. 봉급은 원래부터 쥐꼬리란 두어 첨삭이 따라붙는다.
지금도 다를 바 없는 쥐꼬리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쥐꼬리지만 그래도 월급은 월급이다. 빳빳한 돈 봉투를 받아들던 때 돈은 견물생심 그 자체였다. 그냥 집으로 향할 리 만무다. 동네 선술집에 들러 한 입 톡 털어 넣고 과자 봉지라도 들고 귀가를 할라치면 그 날만은 일렬로 선 가족들이 보고를 철저히 했다. 감히 누가 뭐라할까. 봉급은 단지 살림 밑천만은 아닌 거였다.
위풍당당은 말할 것도 없고 배짱도 생기고 허풍도 폼 잡고 격을 갖고 살 때가 바로 그 시절이다. 허풍 없는 남자는 정말 볼품이 없다. 이제는 허풍은 고사하고 측은지심의 간청을 마다하지 않으며 애걸복걸도 주저하지 않는 신세로 다들 산다. 허풍 없는 세상 모두들 개그 허풍 코너로 다들 모여 앉았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월급이 전적인 주범은 또 아니다. 이는 결혼관 착오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결혼생활은 인고라고 하지만 실제 겨루기는 씨름을 꼭 닮았다. 신혼 때 알아두었으면 아마 평생 후회하는 불찰은 내게 없었을지 모른다. 씨름의 시작은 샅바잡기에서 시작된다. 샅바싸움에서 밀리면 거의 승패는 결정 된 거나 다름이 없다. 신혼 초 혹하여 쉬이 넘겨준 월급봉투, 결국 말년까지 낭패를 맛보고 사는 인생이 된 셈이다. 주변에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샅바를 휘어잡고 잘 사는 어엿한 친구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그는 나처럼 돈을 빼돌릴 얕은 궁리를 안 한다. 초상집 핑계 대는 염치없는 거짓말도 않는다. 나는 외상값 때문 월급명세서를 어릴 적 성적표 고치듯 고쳐 속인 적도 있다. 솔직하게 살자 하는 좌우명을 지키지 못한 게 이 탓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비참하다 여긴 적도 종종 생긴다 싶다. 설마 사이버 봉급을 받는 현실에선 옴짝달싹 못할 것 같지만 이 나이에도 습성대로 궁리는 여전하다.
어쩌다 나온 수당이나 눈 먼 돈, 급히 통장을 따로 만든 사람이 나 포함 의외로 많다. 그 돈 또한 엄연한 내 일의 대가인데 공짜로 굴러온 돈 같이 꽤 고소하였다. 그런 지경이면 이실직고를 하면 왜 돈을 안주겠느냐는 말도 자연 나올 법 하다. 하지만 물 건너간 지는 꽤 오래 전이다. 씨름의 배지기 기술은 호쾌한 허리 기술만큼 힘겨루기가 비등하거나 서로 잘 아는 처지엔 통용이 잘 안 되는 기술이다.
결혼 초, 허리도 성하였지만 그 기술이 잘 써 먹혔던 것도 같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받아주고 멋지게 넘어간다. 슬금슬금 거짓부렁 돈을 타내는 재미로 월급봉투는 맡겼지만 안심해도 되겠다고 믿었던 나다. 바로 그때가 나로선 소탐대실이고 아내는 소실대탐인 갈림길이었다. 아내가 애를 낳고서는 호락호락 하지가 않았다. 자식을 앞세워 뼈를 묻어도 우리 문중임을 확실히 한 연유에 필시 강인해진 것으로 보인다. 드센 세월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 무렵부터 여러 기술을 동원해야만 했다. 비등비등해진 것이다. 빗장다리 걸기를 하듯 바깥 발로 휘젓듯 과대포장하고 큰 몸짓을 동원 할 양이면 아내는 어느새 틈 사이 안다리 후리기로 대든다. 갖은 잔기술에 닳고 닳은 아내이다. 나중엔 번번이 지나간 과거를 들추며 안으로 파고드는 통에 나는 당해내지를 못하였다. 요즘은 간단한 씨름기술인 손기술 앞무릎 치기와 다를 바 없는 돈 세는 손놀림에도 쉽게 무너진다.
돈을 다뤄본 솜씨가 능란하여 도저히 어찌 할 방도가 없다. 딱 맞춰 주는 용돈, 정해진 행사비. 나는 더 어쩌지도 못한다. 대꾸해봐야 나만 손해다. 입씨름도 마다 않는 아내이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때 맞춰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두려움마저 생기는 요즘이다. 흔한 말 곰국 끓일 때가 가장 두렵다는 나이 때가 아닌가. 내 아내뿐 아니라 요즘 아내들은 되치기 기술이 9단 이상인 고수들이다. 괜스레 수작을 걸거나 시비를 안거는 편이 낫다.금세 들통이 나고 되치기 하듯 그로 호되게 당할 수 있다.
최근의 일이다. 월급에 포함하지 않고 따로 챙겨주는 복리후생비가 들통이 난 게. 들통이 났다지만 벌써 아는 눈치였다. 쓴 사연에 대해 아첨까지 하며 이실직고를 해야만 했다. 다들 이를 여직 숨겨 살았다니 간이 크다고 하지만 나는 간이 콩알만 하면서도 그간 복지카드를 맛있게 잘 써왔다. 아내는 용서를 해주는 양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예전엔 몰랐겠냐며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 왜 내 봉급인데 내가 굽신하여야 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뭘 다 언제부터 알았다는 것일까.
자칫하다간 되치기 기술에 몽땅 걸려들 것도 같아 제대로 말도 못하겠다. 심히 의심스럽고 생각이 많아진다. 복지카드를 뺐기니 허리가 허한게 들배지기가 생각나고 적적도 하여 기껏 한다는 것이 신세한탄의 글이다. 숫한 세월 꽁 돈을 써온 장본인으로서 샅바가 아쉽고 월급봉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 봉급은 현찰로 일한 자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 로 일찍이 헌법에 명시했어야 했고 지금도 늦지는 않다. 헌법소원이라도 누가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 된다면 샅바잡기도 다시 해 볼 양이다. 힘은 부치지만.
(조성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