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이란 결국/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그릇/ 깨어진 그릇만이 뒹구는/ 시커먼 묘혈이/ 입을 딱 벌리고/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박종해.‘파묘’중에서).
누구나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죽음의 집으로 돌아가 흙이 되어야 한다. 인류는 문화권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는 법이 다르다.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때 묻지 않은 영혼의 나라’라고 일컫는 티베트에서는 예부터 다양한 장법이 발달하였다. 이같은 장법이 발달한 배경은 아마도 인간의 죽음과 윤회에 대한 독특한 철학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근거로서 20세기 들어 티베트가 서방에 알려진 것은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가 옥스퍼드대 교수의 번역으로 소개되면서였다.
“죽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그대는 사는 법을 배우게 되리라”는 깨우침이었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이 겨우 걸음마를 할 무렵 사후세계. 환생과 해탈의 문제를 일상의 용어로 풀어낸 티베트의 지혜에 서양인들은 크게 놀랐다고 봐야 한다.
티베트의 장법을 살펴보면. 첫째가 땅에 묻는 매장(埋葬)이다. 전염병에 의하여 사망하거나. 살아 생전에 아주 죄가 많았던 사람은 매장했다. 둘째는 수장(水葬)이다. 수장을 하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정화된다는 의미 외에 자유를 의미했다. 물에서 유영하는 고기가 시체를 먹으면 사자의 영혼도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셋째는 조장(鳥葬) 또는 천장(天葬)이다. 성직자가 수행의 일종으로 도끼나 칼로 시체를 토막 내어 새가 그 살점을 물어가도록 하는 장례법이다. 시체를 토막 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처절하게 깨닫도록 하는 일종의 득도 의식인 셈이다. 주로 독수리들이 시체를 물고 하늘로 높이 올라가면 망자의 영혼도 하늘로 간다고 믿었다. 넷째는 화장(火葬)이다. 그 곳에는 나무가 귀하므로 품격 있는 장법이며 대상은 승려들이다. 다섯째는 탑장(塔葬)이다. 도력이 높은 승려들에게서 사리가 나오면 탑 속에 모시는 최고의 장법이다. 그 밖에 시체를 관에 넣어 깎아지른 절벽의 중간에 걸쳐 놓는 풍장(風葬)도 있다.
한국은 풍수의 영향으로 인해 매장의 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지만. 화장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이다. 관건은 뼈인데. 뼈에 백(魄)이 붙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면 백이 사라지므로 무해무득(無害無得)이 된다. 어설픈 명당보다는 무해무득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한 몫 하는 경향이다.
문제는 전국의 묘지와 납골시설이 2016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 해에 장묘시설로 사용되는 국토 면적은 약 90만평(여의도 면적)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공장면적의 3배다. 이제 죽은 사람이 묻힐 곳 때문에 산 사람들의 생활과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장례는 문화적 관습과 관례이기에 그만큼 변화가 어렵고 느릴 수밖에 없다. 최근 민관합동장사제도위원회는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산골(散骨)제나 수목장(樹木葬)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구체화된 것은 하나도 없다. 아직은 가족의 유골을 산천에 뿌리거나 골분을 나무 밑에 묻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 때문이다.
화장한 유골을 강이나 산,바다 등에 뿌리는 산골장(散骨葬)과 골분을 지정된 나무 아래 묻어 장사 지내는 수목장 등과 같은 자연장(自然葬)은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이 자연으로 회귀하고 또 자연과 상생하는 아름다운 장례문화다. 묘지의 국토 잠식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연장의 확산은 절박한 국가적 과제이다. 정부도 지난 4월 자연장의 법제화를 입법예고해 둔 상태다. 이런 가운데 80%에 육박하는 전국 최고의 화장률을 기록하는 부산지역에서 산골장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부산 영락공원의 무료 산골시설인 영락정에서 하루 서너건의 산골장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총 화장건수의 6%에 불과하던 산골장이 올해 들어 7.5%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화장 유골 처리에 대한 인식이 납골당 안치에서 산골장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 자연친화적 장례문화인 산골장,수목장 등 자연장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스위스,독일,뉴질랜드,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목장이 널리 행해지고 있지 않는가.
산골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환경오염을 거론하기도 한다. 골분 그 자체는 환경훼손과는 무관할지 몰라도 소각재가 환경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영락공원의 영락정,서울의 '추모의 숲'과 같은 합동유골처리장이라 할 수 있다. 무료로 이용되기 때문에 장례비용의 경감에도 크게 기여한다.
“진정한 복지국가는 무덤을 책임져야 한다.”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는 예전부터 국가에서 묘지를 관리해 왔으며. 최근 산골이 보편적인 장례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석물로 장식한 호화로운 가족 묘지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올바른 장례법을 실천해야 할 시대이다. 숲도 좋고 강도 좋고 바다도 좋다. 장자의 말대로 진정 ‘죽음이 자유’라면 좁은 유골함에 굳이 갇혀있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더구나 후손들에게 금수강산은커녕 묘지나 납골시설로 가득 찬 땅을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