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말로 달려다가, 독립된 자리를 비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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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시님. 도움이 되었다니 저 역시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적해주신 “반미주의”라는 요인, 특히 독일 우파와의 공생관계는 시사적이네요. 말러를 언급하셨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이미 언급했던 드브레 같은 경우가 짝패라고 할 수 있지요. 말러처럼 우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반대해 프랑스 특유의 공화주의자로 자신을 재정립한 그는 공화주의의 특징인 세속주의에 근거해 한동안 큰 논란이 됐던 공립학교에서 이슬람 여학생들이 펀잡을 착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니까요.
사실 911 이후 부시행정부가 보여준 행보 ‘덕분에’ “반미”는 말 그대로 지구촌의 동네북이 됐죠. 좌우 가리지 않고 아무나 두드려대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조커는 아니지만 안 쓰고 놔두면 왠지 바보 취급 받는 카드패 랄까요? 하지만 ‘반미’라는 요소 역시 ‘반공좌파’라는 기이한 역사적 변이체의 전면적(?) 등장에 의해 이미 그 기능이 변형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차대전 이후 적어도 1989/1991년까지 전지구적으로 ‘좌파’와 ‘반미’란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반공좌파’라는, 많은 ‘우직한’ 좌파의 바램처럼 그냥 '떳떳하게‘ 자유주의면 자유주의, ’합리적 보수‘면 합리적 보수라고 커밍아웃하고, 각자의 ’나와바리‘만 깔끔하게 지켜주면 아무 문제없었을 잡종이 ’좌파‘의 영역 내부에서 영업을 선언하면서, 그것과 ’반미‘의 관계는, 특히 이 글에서 제가 주로 언급했던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 예전처럼 적대적이지 않고,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모호한 것이 되었습니다.
한국 쪽에 투고를 염두에 두고 준비 중인 다른 글에서 보다 명확하게 얘기하게 되겠지만, 이 회색지대에 등장해 새로운 헤게모니를 쥔 것이 인권담론인데, 저의 악트 기고문과 로티에 대해 썼던 지난번 화요논평 글이 이미 이 지점을 건드린 바 있지요. ‘‘반공좌파’의 등장과 ‘인권’담론의 조우, 혹은 선택적 친화‘ 정도의 주제가 될 텐데요, 이번 화요논평 글을 이런 맥락에서 읽으시면 저의 문제의식이 보다 오롯이 드러나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제가 일반적인 논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 바로 하버마스입니다. 이는 그가 “근대성”의 든든한 옹호자로서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우직한 좌파’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따른 인권담론과 인도주의적 개입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고, 무엇보다 “언제나 친미 좌파(pro-American left)와 함께 해온” 사람으로 자신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Letter to America," The Nation, 2002년 12월16일, 16쪽) 물론 그에게 공정하자면, 이 마지막의 규정은 무조건적인 ‘반미주의‘와 미행정부의 구체적 정책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것이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하버마스가 반대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악트 기고문의 한 각주에서 제가 이미 우회적으로 지적했던 것처럼, 인권문제에 대한 그의 논의는 법적절차에 대한-로티의 표현을 약간 변형해 쓰자면- 그의 "철학적 고집"을 제외하면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 포진한 ’반공좌파‘의 주장과 실질적으로 거의 다른 게 없습니다. 서방 미디어의 대대적인 인권 프레이밍을 꿰뚫(어보)지 못한 채, 그가 그렇게도 중요시하는 안보리의 동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과 TV화면 몇 개에 의존해 코소보 참전과 공습을 지지했던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는 법은 제가 보기에 없습니다. ’무자비한 인권의 침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뒤 ‘그래도 가능한 한 법은 지켜야...’라고 덧붙이는 건, 예를 들어 조만간 어떤 식으로건 대대적인 방식으로 제기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지척에 두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무책임한 일입니다. 도덕적인 전쟁에 대한 지지와 좌파의 관계는 결코 떼어낼 수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으셨던, 저의 악트글에 대해 김남시님께서 써주셨던 답글에 제가 동의하기 힘든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고종석과 '반공좌파'에 대한 글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친미'라는 딱지를 통해 하버마스에게 '양키고홈'을 외칠 생각은 없습니다. '반공'과 '좌파'의 조합을 통해서 그랬던 것처럼 제가 지적하려는 것은 '친미'라는, 지금까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던 경향이 '좌파'와 함께 만들어내는 독특한 자장이, 당사자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전자와 함께 어떤 전지구적인 사상적 격변을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그러한 영향권에 들어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은 이를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칠긴 하지만 ’좌파’라는 딱지에 대해 ‘복지’와 ‘인권’을 중시하는 ’반공/친미 좌파’가 보이는 기이한 ‘고집’과 ‘집착’이, 제 흥미를 끄는 것은 이런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관점에서 보면, 고종석이야말로 민노당의 인지도/지지도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공신이라는 강준만의 독해 역시 기존의 좌/우파의 구도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고종석이 만들어내는 담론의 효과를 순전히 기능적으로만 파악한다는 점에서는 그리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고종석의 개입을 통해- 이미 나름의 변화를 겪고 있던- 담론과 정치의 지형 자체가 다시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할 듯합니다. 오로지 김남시님 덕분에,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입장/교통정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언제나 계발적인 개입과 제언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ahjabie
첫댓글 자상하고도 친절한 응답 감사드립니다. 한 동안 비평고원에서 제 발언이 - 꼬리말이건 독립된 글의 형태건 - 대화의 '종결'을 선언하는 마침표가 되어 버리는 씁쓸한 경험을 한 이후 저를 분명한 수취인으로 명시하는 아쟈비님의 이 답변은 절 기쁘게 합니다. 아쟈비님의 악트글과 지난 화요논평에 대한 제 답글의 문제의식은 한가지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건 선함과 악함, 좋음과 나쁨, 나아가 옳바름과 그름의 구별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맺지 않고 과연 '정치적인 것'이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건 칼 슈미트나 그의 '정치적인 것'의 이론에 기반, 새로운 - agonistic! - 정치적 대립을 활성화
시키려 하는 샹탈 무페 ("On the Political") 등의 책을 통해 얻어진 질문이었지요. "정치적인 것"을 다른 가치들, 무엇보다 도덕적인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이런 이론들은 제가 보기엔, 칼 슈미트처럼 정치적인 것을 '전적으로 자의적인 의지적 결정'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의미에서라면 '정치 외적인' 다른 도덕적, 심미적 가치 판단들에 의거하지 않는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오늘날 미국의 헤게모니적 세계 지배를 '다극적이고 복수적 정치 질서'로 재편할 것을 주장하는 샹탈 무페의 '정치적 진술'은 미국의 헤게모니적 세계지배를 '나쁜 것, 좋지 않은 것' 이라고 보는 가치적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현실의 정치적 결정 혹은 실행등을 'illegitim' 하다고 판단, 비판하는 정치적 진술과 행위는 그 결정과 실행에 대한 '도덕적, 가치적 판단'에 의해서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칼 슈미트를 쫓아 샹탈 무페가 정치적인 것의 근본 범주로 여기는 "우리/그들"의 구분이 어떤 '정치외적' 가치 판단들 없이 가능한 것일까요? 테러, 전쟁, 내전 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국가 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순수한 정치적 판단'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정치적인 것'을 다른 모든 가치로부터 분리, 독립시키려는 이러한 니힐리스트적 제스쳐야말로 결국엔 오히려 antagonistic 한
'우리/그들'의 순전히 '의지적 결정'에만 의거하는 대립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것과 다른 가치들이 갖는 이러한 연루 관계를 결정주의 Decisionism 적으로 분리, 독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 하나의 정치적 행위와 결정들 속에 내재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러한 '가치판단'의 계기들을 주목하고 부각 - 거기엔 당연히 그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지요 - 시킴으로써 그를 이후의 정치적 행위와 결정의 규범적 토대로 삼으려는 노력입니다. "인권" 개념의 부르조아적 (맑스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나아가 bio-political (아감벤 "호모 사케르")한 근원과
탄생배경을 숙지하고서라도, 저는 예를들어 아프리카 기아 아동을 위해 성금을 내는 행위를 "고통받는 타자로 부터 안전한 심리적 거리감을 확보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감정적 자기보호 메커니즘의 소산"이라고 비야냥거리는 지젝 ("Die Revolution steht bevor") 의 냉소보다는, 차라리 인권운동 단체들에 대한 후원과 지지를 권하겠습니다. "부르조아적 도덕"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심리주의적 해체가 오늘날 모든 실천 가능한 사회운동들을 냉소적으로 부정하면서 스스로는 아무 실천도 하고 있지 않는 '룸펜좌파'들의 이데올로기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우린 목격하고 있으니까요. "인권보호"를 위한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무력적 개입
에 대해 당연히 우리는 비판하고 경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비판의 근거가 그것이 한 국가 Nation 의 '절대적 주권 Souveranity' - 칼 슈미트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의 근본적 담지자인 - 을 침해했다는 데서 찾아져서는 안되겠지요. 왜냐면 그 '절대적 주권'이라는 개념이야말로, 데리다 ('불한당들")와 아감벤 ("호모 사케르")이 지적하듯, 근대의 일국적 Nation과 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그 Nation의 '시민'으로 등록시켰던 근대적 Bio-Politic 의 출발점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우리는 데리다가 말했듯, 한 Nation의 '주권의 절대성'까지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어떤 초월적 가치 - '정의' - 를 향해
나아가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후기 데리다의 정치적 입장은, 제가 보기엔 하버마스의 그것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복잡한 내적 관계를 이야기하는 걸 잊었습니다. 외부적으로, 특히 한국에서는 마치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선 "반미주의" 만이 지배하고 있는 듯 보여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유럽의, 소위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지식인들 사이엔 일정한 시간을 두고 소위 "pro-americanism"이 재생산되어오고 있지요. 토크빌에서 부터 출발해, 한나 아렌트, 나아가 질 들뢰즈에게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Pro-Americanism 은 유럽에서의 '반유대주의'와 'Nationalism' 등과 서로 복잡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들뢰즈의 pro-americanism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68 운동의 주요한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당사자이면서도 들뢰즈는, 68의 중심 이슈 중 하나였던 '베트남 전쟁'을 매개로한 광범위한 '반미(제국주의)'와는 다른 미국에 대한 입장을 보여줍니다. 예를들어 그의 글 "Bartleby and Formel" (Kritik und Klinik)에서 들뢰즈는 미국을 '형제, 자매들 사이의 패치워크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아비없는 사회'의 모델로 이야기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이 자신의 글이 미국에 대한 "찬양가 Loblied" 로 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반해, 그런 비난이 더 개연적일 수 있던 시대에 글을 쓰면서도 들뢰즈는 미국과 미국적 Pragmatism 을 유럽의 억압적이고
"아버지적 정신"에 대비시키고 있지요. (유럽 지식인들의 이러한 pro-americanism은 예를들어 오늘날엔 독일 바이에른 출신으로 독일에서 교수활동을 그만두고 자진해서 Stanford 로 건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교문학" 학자로 성장한 Hans Ulrich Gumbrecht 에 의해 대변되고 있습니다. 좌파보다는 보수적 입장에 가까운 그는 미국의 pragmatic 한 '민주주의'를 유럽의 폐쇄적 사회구조에 대립시키면서 내세우고 있지요.) 이런 인물들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는 소위 '친미좌파'의 출현 시기를 좀 더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