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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849m)
서울
본명은 삼각산이다.
白雲臺, 仁壽峰, 萬景臺또는 노적봉 세 봉우리를 말한다 (동국여지승람, 세종시록지리지).
일명 華山이라하고 신라 때는 負兒岳이라 불렀다. 서울(京城)의 진산(鎭山)으로 동명왕의 아들
온조와 비류(沸流)가 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살폈다.
곧 북한산은 백제 건국의 발상지가 된 산이다. 신라 진흥왕 16년(555) 왕은 친히 산에 올라
신라 경계를 정하고 비봉에 <순수비>를 세웠다. 고려 숙종(1101년)은 삼각산에 거동하여
도읍할 자리를 살폈다. 무학대사는 도읍의 자리와 맥을 살피기 위해 백운봉에서 만경대를 지나
남쪽 맥을 따라 백악산(북악산) 밑에 도착하여 세 곳의 맥이 합쳐 한 들로 된 이곳에
궁성터를 정하였다. 이후 조선왕조의 국도로 지금까지 이어온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조선사대에 이르러도 확고부동하게 정착하였다.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은 고려사 악지에 화산(華山), 화악(華嶽)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이서구(李書九1754-1825)의 <遊北漢山中詩>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眞興二碑考>에
북한산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삼각산의 별명으로 가끔 사용되어온 이름이 북한산이다.
실제 삼각산을 제치고 북한산이 등장한 것은 조선총독부 今西龍이 작성한
<북한산유적조사보고서> 이후부터이다.
동양화에서 산이나 바위의 입체감과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을 준법(峻法)이라 한다.
도끼로 찍어 갈라진 듯한 바위의 날카로운 질감을 나타내는 기법인 부벽(斧劈)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점을 내리 찍어 황토 암석을 나타내는 기법인 우점(雨點)준,
가로로 긴 선을 긋다가 수직으로 내리꺾는 절대(折帶)준, 산의 전체적인 형상을 귀신의 얼굴처럼
험상궂게 그리는 귀면(鬼面)준, 말의 이빨처럼 그리는 마아(馬牙)준 등,
북한산은 이러한 준법을 구상할 대상을 모두 갖추어 지니고 있는 명산이다.
북한산성
두 번의 난리에 치욕을 느낀 숙종은 천험만전지세(天險萬全之勢)인 북한산에 대대적인 산성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초기 개루왕 132년에 쌓은 것이라 한다. 고려 고종(1232)때 몽고와 격전이 있었고, 거란 침입에 고려 태조 재궁(梓宮임금의 관)이 옮겨오기도 했다.
지금의 성곽은 조선 숙종 37년(1711) 도성의 백성과 삼군문의 군사들이 놀랍게도 6개월만에 완성한 것이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도성을 한 번도 방위하지 못한 조선은 선조, 효종 시절 축성을 논의를 하다가 드디어 숙종 때에야 성을 쌓게 되었다.
왕의 피난처가 될 행궁, 지휘본부인 3개의 장대(將臺), 관성소와 3개의 유영(留營), 4개의 군량 창고,
병사의 숙소인 143개의 성랑(城廊), 99개의 우물, 26개의 못을 건립하였다.
그로부터 200년 가까이 제대로 관리되다가 의병전쟁, 구한말 일본의 강점,
1915년 8월 집중호우로 대부분 소멸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북한산성계곡에 지금도 남아있는
禁衛營移建記碑(1715건립)에 청나라가 눈치 채지 못하게 건립 내용이 적혀있다.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도 1915년 폭우로 허물어져 축대만 남아있다.
북한산의 기록
조선 중 4대 문장가 李廷龜(이정구)는 홍제문-대서문-노적봉을 올라 <遊三角山記>를 남겼고,
숙종때 대학자 이익(성호사설을 지은 사람)은 동소문-조게사(지금은 축대만 남아있다)에서 一泊 후
보현봉에 오르고 세검정-창의문으로 산행한 <유삼각산기>를 남기고 있다.
도봉산의 사찰 회룡사 중수기에 의하면 '왕성 東 40리에 높이 일어, 가파르고 밋밋하여 흡사 소라고동처럼 상투를 틀어 올린 듯하고 구름 밖에 우뚝하여 마치 사슴 뿔을 가을 숲에 높이 걸어놓은 것 같으니 그것이 도봉산이다' 라고 적었다.
조선조 길손의 휴식처인 원(院)은 원래 30리 어간에 한 곳 정도로 세워지게 마련이지만,
이 도봉산 동쪽 길에만 무수원, 장수원, 호원 등 유독 5리 마다씩 촘촘했던 까닭도
이 도봉산 동편의 아름다움에 있다. - 김장호
북한산의 사찰
북한산성 안에 중심 사찰 중흥사는 숙종때 산성 축성의 주요 역할을 한 팔도도총섭 승대장
성능선사가 136칸의 대찰로 중창하였다. 산성 안에 상운사, 진국사, 국녕사, 보국사 등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위한 사찰이 11개 사찰이 있었다.
고려 말기 태고(太古) 보우(普愚)가 창건한 <태고사>는 원증국사탑비(보물611)와
원증국사탑(보물749)이 있다. 산성 밖에 사찰로 신라 원효가 창건하였다는
<삼천사>는 마애여래입상(보물657)이 있고, 신라(경덕왕) 때 수태(秀台)가 창건한
<승가사>는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215)과 석조승가대사상(보물1000)을 가지고 있다.
신라(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는 마애관세음보살상(문화재)을, 고려(현종)때
왕이 지원하여 대찰로 창건한 진관사, 고려(예종1109) 탄연(坦然)국사가 창건한 <문수사>,
조선(중종1522) 때 신월선사가 창건한 <화계사>는 현재 외국인 승려들을 지도하고 있다.
진관사
고려 현종은 왕이 되기 전(대량원군 시절) 북한산 진관사의 서북편 인근 신혈(神穴)사의 승려로
생활하였다. 목종의 모친 천추태후가 간신 김치양과 사통하여 낳은 아들을 왕이 되게 하기 위해
강제로 현종을 개성 숭교사에 출가시켰다. 다시 신혈사로 보내 죽일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 신혈사에 진관조사가 주석하고 있었는데, 본존불상 수미단(須彌壇) 아래 지하 굴을 파놓고
자객(刺客)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그를 숨겼다. 후일 현종은 왕이 되어 진관스님을 국사로 봉하고
신혈사 근처 대찰을 창건하여 <진관(津寬)사>라 하였다.
지금 불상이 당시 현종을 구해준 그 <본존불상> 이라 한다. 현재에도 내진관동, 외진관 지명이
남아 있으니 얼마나 절의 위세가 대단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종은 당시 시한 수를 남겼다.
'한 줄기 시냇물 백운봉에서 흘러 나가니 / 만 리 먼 바다에 길이 절로 통하네 /
졸졸 흐르는 물 바위 아래 있단 말을 마소. / 머지 않아 이 냇물 용궁에 이를 거라오. '
현종 그는 역대 북한산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인 셈이다.
東 불암, 西 진관, 南 삼악, 北 승가사라 할 만큼 이름난 절 집인데 비구니 도량이다.
진관사는 조선시대 왕이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한 사하독서(賜暇讀書)의 현장이다.
詩作에 몰두한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三角山 연귀(聯句)가 있다.
" 세 봉우리 가파르게 우뚝 솟아 만인의 눈에 또렷하고, (신숙주)
만물은 온통 싸서 안 듯, 천지를 덮고 높이 솟아 雲雨를 만드네. (성삼문)
그윽히 丹穴峰에 깃들이고 白額虎가 자취를 감추니, (이개)
쪼개진 것은 거령의 힘이오 높이 정한 것은 신우의 힘이라. (박팽년)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전하는 전투
신라 태종 8년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말갈 장군 <생애>와 연합하여 述川城(여주)을 공격하다
실패하여 북한산성을 공격하여 포차(抛車)를 벌여놓고 돌을 날리니 비옥이 무너졌다.
성주 <동타천>이 '마름쇠'를 성밖에 던져 놓아 人馬가 다니지 못하고 안양사의 창고를 헐어
재목으로 무너진 곳에 누로(樓櫓)를 만들어 굵은 줄로 망을 얽어 노포(弩砲)를 준비하여 성을 지켰다.
성안에 남녀 2800명이 있었는데 성주 <동타천>이 어린이와 약자를 격려하여 적과 대적하여 20여일, 양식이 다하고 힘이 지쳐 하늘에 빌었다. 홀연히 큰 별이 적진에 떨어지고 뇌우가 진동하니
적이 두려워 에움을 풀고 물러갔다. 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동타천을 대내마(大柰麻) 직위에 올렸다.
북한산 보현봉
보현봉의 또 다른 이름은 窺봉이다. 엿볼 규(窺). 보현봉을 남서쪽에서 보면 영락없이 서울을
엿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열고(1392) 천도 대상지를 무학대사에게 물색하라 일렀다.
무학은 백운봉에 오르고 국망봉(만경대)를 지나 용암봉과 시단봉으로 내려오다가 문수봉을 지나
비봉으로 가던 그가 괴상한 비문을 보고 놀란다.
'無學誤尋到此(무학이 맥을 잘못 짚어 여기 올 것이다)' 그는 보현봉을 빼놓고 왔던 것이다.
신라말 도선이 앞날을 예견한 碑였다고 한다.
무학은 오던 길을 되돌아 가 보현봉에 올라가 비로소 새 도읍지를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깨닫는다.
가장 서울 중심과 가까운 봉우리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때(1433) 영의정 황희, 정인지가 올라
來脈의 가지와 줄기를 살폈고, 숙종 때(1707) 실학자 이익도 보현봉에 올라 탕춘대를 따라 하산하였다.
보현봉은 천기를 누설하 듯 서울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수양대군은 세종때 圭表(태양 그림자 관측기)를 바로 잡기 위해 올랐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돌길이 위험하고 아래로 임해서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어서 안평대군 이하는 눈이 아찔하고 다리가 떨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수양은 걸어가기를 나는 듯이 하여 순식간에 오르내렸다.' 수양은 천기를 잡기 위해 서울을 넘보기
위해 보현봉에 자주 올랐다. 그때 비봉 너머 골짜기에 진관사에서 박팽년, 이개, 성삼문 집현전 학자들이 賜暇讀書를 하고 있었고 왕궁에는 모차르트급 신동(김시습) 하나가 세종을 사로잡는다.
그가 다섯 살 때 세종은 韻을 불러주자 단박에 지었다는 시가 <삼각산>이다.
'세 뿔 같은 봉우리 하늘을 꿰뚫으니 三角高峰貫太淸,
올라가면 북두성과 견우성도 따겠네 登臨可摘斗牛星,
저 산이 어찌 구름과 비만 일으키랴 非徒嶽岬興雲雨,
이 나라를 만세토록 편안케 하리라 能使邦家萬世寧.'
곁에 세자 문종과 세손 단종이 있었는데, 세종은 '두 사람이 훗날 너의 임금이 되리라'고 하였다.
비단 오십 필을 하사하며 5세 아이에게 '네 힘으로 끌고 가라' 하니 바느질로 자치를 연결한 뒤
한쪽 끝은 끌고 대궐 밖으로 나갔다. 단종을 죽인 세조의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중흥사에서
3일간 통곡을 하면서 책을 불사르고 걸승이 되어 이 나라 산천을 떠돈다.
그는 사육신 학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 언덕에 묻어주었다.
1968년1월21일 북한 특수부대가 사모바위에 집결하여 청와대를 넘보고 있었다.
사모바위는 김신조바위라 별칭을 얻는다. 천기누설의 도가 지나쳐 최근에는 전두환이 이 능선을
자주 오르내린다고 한다. 장세동 등 심복들을 수십 명 데리고 보현봉 능선을 더럽히고 있다고 한다.
보현봉 일대를 휴식년제로 묶은 것은 집권당의 풍수지리학적 暗手인가?
삼각산(三角山)
삼각산은 인수봉(仁壽峰), 백운봉(白雲峰), 만경봉(萬景峰)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서서 깎아 세운 듯한
삼각(三角)과 같다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인데, 고려시대 이래 불리어온
북한산의 산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고려사』 서희전(徐熙傳)에 의하면, 서희가 성종에게 아뢴 말 중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고 한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이래 북악이라고 불리어 오던 산명이 고려시대부터 삼각산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듯 하다.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모두 한결같이 북한산의 본명을 삼각산으로 기록하였고, 또 다른 이름으로 화산(華山)이나 화악(華岳)으로 기록되었다.
북한산이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된 것은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 때문이다. 그는『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를 쓰면서,
"북한산은 경성의 북방에 솟아 있는 조선의 명산으로, 이 산은 삼각산이라고도 일컫고
달리 화산이라고도 한다." 고 소개하였다.
북한산(北漢山)은 본래 산이름이 아니라 '한강 이북의 한산(漢山) 지역'이란 의미의 지역 이름이었다.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백제시대 이래의 한강 유역을 뜻하는 행정지명에서 기원하였고 한수(漢水)
이북의 북한산을 뜻하는 한산(漢山)은 대체로 북한산 지역을 의미하고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가 처음 한강 이북 하북 위례성에 도읍하여 정착하였다가, 온조왕 14년(B.C.5)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의 한산지역을 북한산, 한강이남 지역을 남한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백제에서는 주로 이러한 뜻으로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하차, 3번 출구로 빠져나와 중앙버스차선에서 우이동 방향
109, 120, 130, 144, 170, 171번 시내버스를 환승하면 우이동 종점가지 갈 수 있다.
문의 국립공원 북한산 우이분소 전화 02-997-8365.
북한산 (826.5m) 서울
이리 보아도 잘나고 저리 보아도 빼어난 해동(海東) 제일의 명산이라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진산(鎭山)이요, 1천만 시민의 안식처요, 허파입니다.
한국 알피니즘의 요람이지요.
죄다 걸출한 암봉들이 올올이 연꽃처럼 피어나 무리지어 어울린 모습이 별명처럼 그야말로 華山입니다. 저는 북한산에 올라 그것도 여명(黎明)에 올라 서울을 보는 순간 '그렇구나, 왜 여기가 서울인지'
바로 그 감격이었습니다.
저가 북한산을 처음 오른 것은 1963년 초 대학입학 시험을 치루고 숙부(叔父) 홍태련님과
친구 최(崔)군과 함께 도봉산에 오른 것이 처음 인연이지요.
그때는 지금처럼 도시락 달랑 메고 가는 산행이 아니라 취사가 가능하여 쌀이랑, 물, 김치, 두부,
야채를 배낭에 넣고 도봉산장에서 밥을 해먹었으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기막힌 밥상이었을까요.
훗날 서울을 떠나면서 이렇게 읊조리고 가지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그후 과연 저는 군복을 입고 1970년 남한산성 아래로 입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수(漢水) 이남이라 북한산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지금은 한명회가 노닥거리던 압구정 근처, 누에 동산 잠실 등이 강남(江南)이라 아파트 값이
촌놈 계산으론 도무지 무슨 얘긴지 모를 억, 억, 한다는데, 본인의 계산에 의하면 강남은 쓰잘 데
없는 잡놈들만 우글거리는 도둑놈 촌이 될 것이란 계산입니다.
그 이유 첫 번째가 바로 북한산을 단절한 곳이란 점입니다. 북한산은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나간
한북정맥의 끄트머리에 불끈 솟은 우리민족의 신령스런 산입니다.
오죽하면 도망친 비류, 온조가 백제를 건설하기 전 부아악(삼각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고
안타까워 했을까요? 이곳의 주인이 되려면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됨을 미리 알았을까요?
온조는 바보입니다. 서울을 지배하는 자가 대한 반도를 통치한다는, 지금은 다 아는 풍수를 모르는
바보입니다. 반풍수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지요. 그래도 그렇지,
인천으로 간 비류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입니다. 인천은 서울의 교두보(橋頭堡)입니다.
맥아더가 참 용한 놈입니다. 허지만 군대에 가서 지도 공부 좀 하고 나면 대한민국 지도 척,
펼쳐놓고 보면 군사전문가 아니라도 인천은 중국을 쳐다보는 키포인트란 것을 대뜸 눈치 챕니다.
북한산 등산로
우이동 기점
하루재코스 : 버스종점, 선운교-도선사-주차장-매표소-우이산장(폐쇄)-깔닥고개(철조망)-하루재
-계곡- 인수산장-경찰구조대-제21야영장-백운산장-위문-백운대.
용암문코스 ; 도선사주차장-도선사-용암문820m-용암문-용암샘터, 북한산대피소.
우이동길
고향산천 전 옥류교에서 소귀천계곡을 타고 대동문 오름길, 계곡 중간에 북한산대피소 오름길,
우이매표소에서 하루재로 올라 인수대피소를 거쳐 백운대 오름길 등.
하루재-깔딱고개(휴식년제). 옥류교 위 매표소에서 소귀천계곡-대동문(90분),
우이매표소-인수대피소-위문(70분)
4.19탑 기점
1, 진달래능선코스 이준열사묘 입구-운가사-절 뒤 능선-진달래 삼거리-소귀천 삼거리-대동문
2, 아카데미코스 출입구 오른쪽 담장-폭포골 입구-지능선-계곡-오른쪽 계곡-지능선-대동문
3, 칼바위코스 폭포골 입구- 남쪽 15야영장- 오른쪽계곡- 십자로- 왼쪽 (칼바위 남동쪽 안부)
4, 우이초교코스 (영락기도원- 왼쪽14야영장- 조박사 묘- 오른쪽 냉골- 조기회터-칼바위능선
5, 화계사코스 한신대학 앞- 화계사- 샘터(관세음보살상)- 오른쪽 능선- 삼성암- 天命僉샘터.
수유동길
화계사에서 삼성암을 거쳐 칼바위 능선으로 오름길, 가르멜수녀원에서 조병옥박사 묘를 지나
칼바위능선 상의 안부로 올라서는 길,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구천계곡을 타고 칼바위 능선이나
대동문으로 오름길과 4.19탑에서 백련사를 거쳐 진달래능선을 타고
대동문으로 올라서는 길 네 곳이다.
4.19탑-백련사-대동문(80분), 아카데미하우스-구천계곡-칼바위능선(70분)
4호선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를 이용, 또는 84번,27번,127번 버스로 종점하차.
4.19탑 산행기점 127번 버스종점 맞은 편 '산마루'(904-9747) 여주인 박남수는 프로가수 실력.
테이프를 제작, 손님들에게 나누어주고, 토요일에는 주부가요교실도 열고.
4.19탑 사거리에서 덕성여대 입구 쪽으로 가다 오른쪽 건물 목포홍탁집(902-1555)은
산행 들머리 우이동과 4.19탑에서 떨어져 있는데도 산꾼들이 많이 찾는 막걸리 집.
창밖을 내다보면 길 건너 인수봉이 삐죽 치켜들고 있어 인상적.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초가집 문짝에 醉中天國, 유리창 윗쪽 현판에는 降仙齋라는 글씨. 홍어회, 찜, 무침 3종류 15000원.
권영숙씨는 국산이라 우기지 않고 칠레산이라 한다.
평창동길
제2매표소에서 게곡을 타고 보현봉에 오르는 길과 형제봉매표소에서 구복암을 거쳐 형제봉 능선을
타고 보현봉에 이르거나 대성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제2매표소에서 동령폭포까지는 휴식년제, 형제봉능선을 통해야만 주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8번 시내버스를 이용 북악터널 직전에 하차한다.
구기동 코스
연화사에서 비봉으로 오르는 길과 승가사 오름, 구기계곡 오름으로 나눌 수 있다.
구기분소에서 제4휴식처까지 휴식년제. 청운양로원으로 들어서서 연화사를 거쳐
비봉에서 문수봉으로 오르는 길이 자주 이용된다. 구기동 매표소를 지나 승가사로 오를 경우
50분 정도가 소요되며, 승가사 샘터에서 사모바위 안부로 올라선 후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북서쪽 능선을 따르면 주능선에 붙게 된다.
형제봉코스 : 국민대학 앞 (북악터널방향)- 매표소- 영불사 상단 삼거리- 형제봉- 대성문.
문수사코스 : 구기터널 입구 삼거리- 풍연상회- 주택지대- 구기매표소- 문수사- 대남문.
일선사코스 : 북악호텔앞-주택가- 평창게곡 매표소- 동령폭포- 일선사(샘터)- 안부- 대성문
승가사코스 : 풍연상회- 청운양로원방향 주차장-자동차길-승가사-능선-사모바위- 응봉능선
비봉코스 : 승가사 입구 주차장- 이북 5도청- 매표소- 금선사- 비봉
3호선 경복궁역에서 136번 버스, 불광역에서 154-1, 154-2번 버스로 구기터널 전 이북 5도청에서
하차한다.
구기분소 매표소 아래 전주음식점 '능금산장'(379-8178)은 하산하다가 이 집 음식을 맛보면 다시
들른다. 갓김치와 된장, 들깨가루, 굵은 멸치를 넣어 볶은 시래기, 감자와 해물 버섯 청 양고추로
부친 모듬전도 공짜, 한방백숙. 녹두전(7천원) 해물파전 동동주(6천원).
신영동 삼거리에서 구기터널로 가는 중간의 옛날민속집(02-379-8178)을 모르면 간첩이라 한다.
세계불교법왕청의 법왕도 다녀가고, 전직 대통령, 전 민선특별시장도 단골.
어느 날 대 통령 비서진이 각하가 하산길에 점심을 할 계획이니 식당 한쪽을 막아달라고 했다.
아담하고 당찬 여주인(서연자)는 거절. 이 일로 이 집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의 긍지가 되었고
이 집은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두부2천, 한방제육보쌈 소 만원, 막걸리 5천원.
정릉길
매우 다양하다. 선덕교를 지나 삼봉사를 거쳐 대성문으로, 영불사계곡을 타고 형제봉에 올라 능선을
따라 보현봉이나 대성문에 오를 수 있다. 또한 정릉계곡을 타고 가다 넓적버위에서 칼바위 능선으로
올라도 되며 계곡을 타고 보국문에 올라도 된다. 이외에 내원사로 올라 칼바위능선을 타고 주능선에
오를 수 있다. 어느 길이라도 130-2시간 소요, 샘터가 많아 쉽게 식수를 구할 수도 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135,135-1번 버스를 이용, 불광역에서 522번 버스를 이용.
보국문코스 : 1번버스 종점- 정릉 매표소- 사무소- 넓적바위- 옹달샘- 마지막샘터- 보국문
대성문코스 : 정릉매표소- 형제봉갈림길-구름다리- 화봉정샘터-영취샘-영추사-안부- 대성문
진관사계곡길
은평구 진관외동 파출소-진관사계곡 오름길은 비봉으로 바로 오른다.(70분 소요)
비봉-문수봉(70분) 불광역에서 806번 버스로 종점 하차. 구파발역-진관사(마을버스)
대서문길
북한산초교 위 대서문에서 주능선에 붙는 길은 대서문에서 남동쪽 능선을 타고 용출봉과 나한봉을
거쳐 주능선 상의 문수봉에 오르는 길과 대서문에서 포장길로 가다 북한산성계곡을 따라 중성문과
중흥사비를 지나 보국문에 이른다. 대서문-용출봉-문수봉(3시간) 북한산성계곡-보국문(150분)
3호선 구파발역에서 34,56번 버스 이용. 북한산성 입구 하차-산성매표소.
불광동기점
155번 버스 불광중학- 불광사- 왼쪽 계곡- 암릉길- 샘터(향림담) -향림사터
구파발기점
156번버스 종점 충남상회- 북한산성 매표소- 대서문- 등운각- 대동사- 약수암- 위문-
백운대. 대서문에서 처음부터 급경사 바윗길 秘境지대의 상봉코스
삼천사코스
진관외동 기자촌 입구 154,155종점) 진관사입구- 삼천사골입구 매표소- 수복집- 동쪽 계곡-
군인수영장- 오른쪽 지능선길-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 삼천사골 하산
(삼천사에서 보물 마애여래입상을 보고 게곡으로 청수동암문에 이른 다음 문수봉- 사모바위-
삼천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인기 있다.)
156번 종점 삼천사로 꺽어 들어가는 삼거리 코너 '산가'(02-385-2196) 숯불갈비집. 궁중요리 1인자
명인 황혜성이 다녀가면서 극찬을 하였다고 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가면 시간이 절약된다. 왕갈비14000원.
북한산 형제봉(463m)
풍광 뛰어난 보현봉 바라보는 형제봉 산행
구간 : 평창동 예능인교회-(20분)-구복암-(30분)-전망대바위-(20분)-작은형제봉-(10분)-큰형제봉
-(45분)-마당바위-(45분)-형제봉동능선 세 갈래길-(30분)-정릉매표소-(30분)-버스정류소
형제봉을 찾아가려면 국민대입구 매표소와 형제봉동봉 매표소, 정릉매표소, 구복암(형제봉) 매표소를 이용한다. 돌계단길과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가면 '나무미륵대불' 이라고 새겨진 큰 바위와 만난다.
구복암이다. 한적하고 조용하며 주위 풍광도 수려하여 쉬기에 좋고, 샘터도 있다. 구복암을 지나면
바위 능선길과 철책이 있는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비탈길을 좀 더 오르면 작은형제봉이다.
작은형제봉의 정상은 매우 협소하고 날카로운 바위로 안전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큰형제봉은
작은형제봉 동쪽 맞은편에 있다. 큰형제봉은 정상 부분이 넓은 공터로 이루어졌다. 큰형제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바위길을 내려서면 고도차이를 느낄 수 없는 거의 평평한 능선길이다.
탁 트인 시원한 조망을 느끼면서 능선길을 따라 곧장 오르면 일선사와 대성문으로 이어진다.
형제봉의 조산인 보현봉은 일선사에서 연결되지만 현재는 자연휴식년제구간으로 지정되어서
실제 등산이 불가능하다. 보현봉은 형제봉 정상에서 원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하는데,
원경만큼은 매우 웅장하고 빼어난 천하절경의 형세이니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성문을 거쳐 북한산성 주능선길로 백운대까지 종주를 시도해도 좋을 것이다.
형제봉에서 하산하려면 큰형제봉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암릉 하산길로 내려선 다음에
형제봉을 끼고 8부 능선을 따라 오른편으로 도는 산길을 택해야 한다.
산길은 곧 전망좋은
마당바위와 이어지고 형제봉 동능선으로 연결된다. 조금 더 내려서면 국민대입구로 하산하는 코스와
동능선을 따라서 곧장 평탄하게 하산하는 등산로, 그리고 정릉계곡(청수장 계곡)으로 연결되는
하산로로 갈라진다. 어느 코스를 선택해도 버스정류소와 연결되는 하산지점까지는 30분에 불과하다.
정릉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로 형제봉을 등정하려면 정릉제2휴게소에서 왼쪽 갈림길로 오르거나 일선사와 보현봉으로 연결되는 영추사 코스를 거쳐 형제봉의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되내려오면 된다.
* 교통편
4 호선 길음역, 길음시장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2, 222, 154-1, 439, 522-2번을 타고 국민대학교 정문, 북악터널 입구, 평창동 예능인교회 앞에서 내리면 형제봉 쪽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또 길음역에서 1, 3, 5, 5-1, 16, 710번을 탄 후 종점에서 내리면 종릉계곡(보국문, 대성문코스)을 통해 형제봉을 오를 수 있다. 마포, 공덕동 쪽에서는 135번 버스를 타고 국민대학교 정문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길음역 1번 출구에서 택시를 타면 국민대입구까지는 기본요금 거리다.
* 먹을 데
정릉계곡 하산코스에는 감자국, 해장국, 산체정식을 파는 식당이 밀집해있다. 값이 싸고 맛있으며 양까지 풍부한 식당을 찾아가려면 좀 번거롭겠지만 정릉계곡의 버스종점에서 1, 3, 5, 5-1, 16, 710번 버스를 타고 정릉2동사무소에서 내려 오박사네돈까스를 찾는다. 맛깔스런 정식과 육개장, 설렁탕, 돈까스, 생선까스가 모두 4,500~6,000원이면 충분하다. 맛도 만족스럽고 양도 푸짐하여 산행의 공복감을 해결하는 데는 그만이다.
북한산(北漢山 836.5m)
구간 : 우이동 그린파크-오크밸리-육모정매표소-용덕사-우이능선-영봉-하루재-오른쪽-계곡-
인수산장-경찰구조대-제21야영장-백운산장-위문-백운대-위문-만경대방향-용암문-도선사-
우이동
A조 : 용암문-대피소-동장대-대동문-소귀천게곡이나 진달래능선길-우이분소-우이동
산행시간 : 5시간(중식 휴식 포함)
6년간 통제돼온 숨은벽능선(인수봉 능선)과 12년간 닫혀 있던 육모정고개~영봉~하루재능선길이 개방되었다. 소귀천길과 도선사길이 갈라지는 선운교에서 도선사길 오른쪽 능선을 따라 우이산장 위쪽 하루재길 갈림목(백운대 매표소에서 약 300m 지점)으로 이어지는 능선길(1.5km) 역시 개방됐다.
우이동 종점 주차장에서 우이령 가는 길에 좌측 그린파크 호텔을 바라보고 진입합니다. 숲 속 곳곳에 음식점과 산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길은 곧 비포장도로로 바뀌지만 차량교행이 가능한 너른 길입니다. 휴일에는 길가에 주차를 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 오후에는 주차공간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약 1km 오르니 국사당 입구를 지나면 산중 카페 오크밸리 앞에 이릅니다. 주차장에서 15분 소요.
여기서 왼쪽 산장카페 앞을 지나면 곧 육모정매표소가 있고 화장실도 있습니다.
상큼한 숲 속을 약 200m 정도 오르면 '용덕사 입구 100m↑, 법안사 입구 60m→, 육모정고개 1.1km←' 라는 안내판을 만납니다. 여기서 잠시 직진한 다음 수리 중인 용덕사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 산길로 들어섭니다. 밧줄과 철책이 오른쪽에 보이는데 무슨 이렇게 인공물로 투자를 하는지 의아합니다.
오르다보니 무슨 마애불이라도 새겨진 바위가 보이는데 암만 훑어보아도 그림은 보이지 않고...
아래 보이는 계곡은 물이 말라 있습니다. 바위를 바라본 채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서면 철탑이 선 능선 안부가 보입니다. 이후 철탑을 향해 꾸준히 오르니 드디어 우이능선의 육모정고갯마루에 올라섭니다.
고갯마루에는 趾玄 李昌烈 博士 1917.3.25 生, 1974.8.11 卒,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한국산악회 회장 이은상 글, 서울산악 동지들 세움' 추모탑이 서 있네요.
효자리 넘어 서는 길과 철탑이 보이는 능선 길에는 군사지역 경고판이 서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왼쪽 능선을 따르면서 뒤돌아 보면 도봉산이 보일만도 한 데 오늘은 안개가 시야를 막아 아쉽네요. 너른 바위로 이뤄진 봉우리에 올라서니 어머나, 바로 인수봉이 우뚝하게 나타납니다.
이후 우이능선을 따르는 동안 내내 백운대에서 만경대, 병풍암으로 이어지는 암봉군과 대남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조망이 인상적이고, 등 뒤로 오봉~도봉산 주능선~선인봉과 수락산~불암산의 원경, 아래 강북구 도회 마을이 내내 인상적입니다.
여기서 좀 더 진행하면 커다란 바위 봉우리를 우회하여 가는데 봉우리에 올라보니 군용벙커 시설이 있습니다. 이 곳을 지나면서 이내 헬기장을 지납니다. 99년 산불로 불에 탄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소나무가 눈에 뛰는데 생태 복원이 빠른 모습에 감사하면서 바위지대를 내려서다가 오르니 영봉 직전 이정표를 만납니다. 영봉은 오른쪽 암릉길로 잠시 오르면 됩니다. 영봉(靈峰)은 반드시 올라야 합니다.
(매표소에서 약 1시간15분. 주차장에서 1시간30분 소요됨)
암릉 위에 글씨가 바랜 표지석이 있고 기판(基板)에 적힌 글을 읽어 봅니다.
山을 어디라 손대려 하느뇨.
山에 들면 가득한 영기(靈氣)에 감사할지니
山의 정기(精氣) 있으매 푸른 기운(氣運) 솟고
山의 자연(自然) 있으매 맑음 물도 흘러
우리 생명(生命) 더불어 모든 생명 사노니
山이여 영봉(靈峯)이여, 만고(萬古) 불변(不變)하여라
- 詩 鄭孔采, 書 農庵 鄭祥玉, 靈峯 命名人 尹柱廣 1987. 4.5
영봉 정상은 북한산에서도 최고 전망대. 웅장한 알바위 암봉인 인수봉이 전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뒤로 백운대가 겹쳐 보이는가 하면, 왼쪽으로 만경대가 우뚝 솟구쳐 북한산이 지닌 골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합니다. 인수봉 오른쪽은 깊고 넓게 파인 효자리계곡으로 군부대 훈련의 함성도 들립니다.
영봉 주위를 돌아보면 무수한 산악인들의 추모비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재로 내려서기 위해 이정표 지점으로 되내려와 바위골로 내려섭니다.
초반부는 가파른 바윗길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바위구간을 내려선 다음, 산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놓은 추모비들의 비문을 둘러보며 걷다보면 곧 하루재에 내려섭니다. 영봉에서 10분. 이정표 : 육모정매표소 2.8km, 영봉 0.2km, 백운대 1.5km, 백운대매표소 0.6km.
백운대 방향으로 가려면 하루재에서 오른쪽 아래 산길을 따라야 합니다.
참고 : 하루재에서 새로 개방된 백운대 제2매표소로 내려서려면 고개를 넘어 우이산장을 향해 내려서야 한다. 10분쯤 내려서면 숲 사이로 우이산장이 보이면서 갈림목 안내판(백운대 1.8km, 하루재 0.4km, 백운대 매표소 0.3km, 백운대 제2매표소 1.5km)이 나타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고개를 넘어서면 우이산장과 백운대 매표소를 거쳐 도선사 주차장으로 내려서고, 우이산장 못미처 갈림목에서 왼쪽 숲길로 들어서면 능선길을 따라 백운대 제2매표소(구 선운각 부근)로 내려선다.
마치 계곡으로 떨어지듯이 능선 아래로 돌아 나갑니다. 사면 길에서 인수봉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치 독수리 같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인수대피소를 만나고 옆으로 산악구조대 앞을 지나면 수덕암 암자 앞을 지납니다. 암자 안에도 샘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곳곳에 야영장 번호 팻말이 있고 인수봉 암릉 등반 모습도 보입니다. 또 다른 인수봉의 모습이 장관입니다.
인수대피소에서 백운산장은 20분 거리. 계곡으로 난 등산로는 험하고 바위에 철난간도 있습니다. 백운산장은 바로 뒤에 백운암이란 암자도 있고 쉼터 식탁과 2층 건물로 옆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는 향수어린 샘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올라서면 위문(衛門)이 가로막고 서있습니다. 백운대 정상 오르는 중요한 지점. 그러니까 이곳은 만경대와 백운대의 안부(鞍部)인 셈이지요. 위문의 본래 이름은 북한산성의 白雲洞暗門.
만경대 오름 길에는 위험 경고판이 있지만 로프를 두른 여성 산악인 세 분이 오르는 모습을 봅니다.
이제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바위에 쇠파이프를 박아 철제 로프를 매단 구간이 많아 교행이 원활하지 못해 휴일에는 정체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여 정상 다녀오는 시간 예측이 어렵지요. 보통 왕복 20분.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좁은 정상부에서 내려다보면 수도 서울이 훤하건만, 오늘은 날씨가...
위문에서 북한산성 매표소 골짜기로 잠시 내려서면 갈림길. 목제 데크로 등산로를 만든 이곳에서 적당히 모여 중식을 합니다.
이제는 만경대 아래 산허리를 감돌아 나갑니다. 중간에 백운대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랍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실제 백운대는 자체로도 삼각산입니다.
줄곧 바윗길이 연속되고 철제 가드레일을 붙잡고 오르내림이 반복됩니다. 산길이 흙길로 변하면서 안부에 이르는데 직진하는 방향이 주등로인 양 착각하기 쉬운 곳이지만 하얀 로프와 방향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노적봉을 뒤로 하고 용암봉 아래 사면으로 진행하면 용암문에 이릅니다.
북한산성은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공방을 벌린 곳으로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는 이곳으로 고려 왕궁이 옮겨왔던 곳이기도 하지요. 이런 暗門이 13개나 있습니다.
일부 회원은 대피소를 거쳐 동장대와 대동문을 경유하여 소귀천(우이동)으로 하산하고 후미그룹은 여기서 도선사로 하산합니다.
도선사 주차장~백운대 제2매표소는 약 1.5km의 도로 구간으로, 차량과 등산인들, 도선사 신도 등으로 늘 붐빈다. 택시나 신도용 셔틀버스를 이용해 우이동 버스종점까지 내려설 수 있다.
문의 국립공원 북한산 우이분소 전화 02-997-8365.
북한산은 수도 서울의 북쪽에 장벽처럼 우뚝 솟구친 채 기기묘묘하면서도 웅장한 암봉과 긴 능선, 깊은 계곡, 울창한 수림 외에도 북한산성과 사찰 같은 유적지와 명찰까지 들어서 있는 등 명산이 갖춰야할 덕목의 대부분을 갖춘 산이다. 그래서 한해 500만이라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등산인과 탐승객이 많이 찾고 있다.
응봉능선~진관사계곡
장쾌한 능선과 호젓한 계곡산행
진관사 기점 코스는 삼천사계곡 코스와 더불어 접근 교통편이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북한산 내 다른 코스에 비해 덜 붐비는 코스들이다. 하지만 주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울창한 숲을 이룬
계곡을 따라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맛을 본 등산인들은 또 찾게 되는 코스다.
진관사 기점 코스는 크게 세 가닥으로 나뉜다. 현판에 '삼각산 진관사'라 저힌 일주문 직전 왼쪽 길로 접어들면 능선마루에 갈림목 팻말(삼천리골 0.2km, 사모바위 2.9km, 진관사 0.1km)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 능선길이 응봉능선으로, 왼쪽으로 의상봉 능선을 올려다보면서 사모바위로 향하는 분위기가 일품이다.
응봉능선 능선 갈림목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100m쯤 오르면 슬랩바위지대. 의상봉 능선에 걸쳐 있는 듯한 바위절벽이 반짝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이후 첫번째 암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면 이번에는 울창한 진관사계곡과 향로봉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어 능선 위로 올라서면 의상봉 능선과 향로봉 능선을 양쪽으로 바라보면서 걷는다.
의상봉~문수봉~사모바위 능선에서 뻗은 지능선이 부챗살처럼 느껴지는 삼천사계곡 또한 인상적이고, 등 뒤로는 일산쪽 평원과 한강이 비단뱀 기어가는 듯 바라보여 가슴을 찡하게 하기도 한다.
이후 안부로 살짝 내려앉았다 다시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서면 이제 하늘길 같은 바위능선이 사모바위까지 이어진다(매표소에서 약 1시간20분 소요). 사모바위 갈림목(문수봉 1.8km, 비봉 0.4km)에서 대남문 방향(왼쪽)으로 가다 첫번째 갈림목에서 초입부가 계단을 이룬 왼쪽길로 들어서면 삼천사로 내려서고, 오른쪽으로 향하다 비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한 다음 첫번째 갈림목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다시 진관사로 내려선다(약 1시간 소요).
진관사계곡길 진관사 일주문에서 곧장 뻗은 계곡길이 진관사계곡길이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계곡길은 향로봉 서쪽 안부로 올라선다. 계곡길은 완만하게 이어지지만 능선에 올라선 이후 향로봉에 이르기까지 약 30분 동안 된비알 능선을 따라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적은 편이다.
진관사계곡길은 곧장 뻗은 계곡길을 따라야 한다. 진관사를 바져나가 숲길을 따라 3분쯤 가면 와폭을 지나 슬랩바위로 접어든다. 치마바위라 불리는 대슬랩 상단부에는 120m 철책이 이어진다. 계곡 아래로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병풍바위를 바라보며 슬랩바위를 올라서면 옥녀탕이 반기고, 이어 계곡 폭이 좁아지다 숲터널을 20분쯤 가면 향로봉 갈림목(비봉 1.2km, 향로봉 1.4km)에 닿는다.
여기서 왼쪽 주계곡으로 방향을 틀어 철책이 설치된 급경사 구간을 올라서면 이후 선녀폭 상단 계류를 건너선 다음 철책이 설치된 절벽에 이어 대슬랩 바윗길을 올라선다. 이어 10m 철책을 올라서면 뜀바위, 침니바위 등 제법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게 하는 바위구간이 이어지고, 이후 평범한 급경사 오르막을 20분쯤 오르면 주능선 상의 비봉 삼거리(진관사매표소 2.4km, 불광매표소 2.5km, 청수동암문 2km)에 닿는다. 사모바위로 가려면 비봉을 오른쪽에 끼고 청수동암문 방향으로 10분쯤 걸어야 한다.
진관사 기점 산행 중 가장 보편적인 원점회귀 코스는 계곡과 응봉능선을 잇는 것이고, 더욱 긴 산행을 원하면 주능선을 따라 청수동암문~대남문~산성길을 거쳐 백운대까지 뽑도록 한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352-7341) 3번 출구에서 진관사행 마을버스(7724번)가 약 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마을버스 배차간격이 길어 도보로 접근하는 이들도 많다. 1번 출구로 나와 은평 뉴타운 재개발 사업으로 현재 폐허 분위기인 시장길을 따르다 도로를 만나면 왼쪽 방향으로 진행하다 또다시 사거리를 만나면 도로를 건너 왼쪽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후 첫번째 삼거리인 진관사 입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진관사 매표소를 거쳐 진관사까지 접근할 수 있다(약 30분 소요).
구파발역 부근의 상가가 대부분 재개발사업으로 사라지거나 문을 닫은 상태여서 간식을 비롯한 먹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북한산 벚꽃
원효봉과 의상봉 자락을 장식하는 화려한 벚꽃
북한산(836.5m)은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5악에 포함되는 산이다. 북한산은 동부와 서부로 구분할 때 동부지역에서 우이동이 대표적인 등산기점이라면, 서부지역에서는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 대서문코스가 대표적인 등산기점이다.
동부지역이 진달래가 많은 반면 서부지역은 벚꽃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68년 1.21사태 이후 북한산 서부지역 대부분이 출입금지구역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동부지역보다 그린벨트로 지정된 곳이 더욱 많아 수림지대 보존이 양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산성 계곡을 가운데 두고 대서문~원효봉~백운대~만경대~동장대~보현봉~문수봉~용출봉~의상봉을 경유해 다시 대서문으로 둥그렇게 이어지는 북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대문 역할을 하는 곳이 대서문이다.
예전에는 대서문 일원을 뒤덮었던 꽃은 앵두꽃이었다. 당시에는 이 일원 농가마다 울타리를 이루는 앵두나무가 지천을 이루었다. 그래서 춘삼월이 되면 대서문 일원을 뒤덮은 앵두꽃 기세에 눌려 벚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월 따라 대서문 일원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앵두나무 숫자가 급격히 줄고 그 대신 숨어 지냈던 벚꽃이 대서문 일원의 주인공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 은평구 구파발에서 송추로 이어지는 도로변의 북한산성 입구 삼거리(156번 버스정류소 앞)에서 산성쪽으로 약 500m 들어서면 도로 왼쪽에 대형 주차장이 있다. 이 주차장은 75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지만 봄 행락철에는 빈 주차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매표소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50m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북한산성분소가 있다. 분소 왼쪽으로 본래의 산길이 있다. 이 산길은 서문안 마을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우회하는 길로 대서문 직전에서 다시 도로와 만나거나 계속 계곡길로 오르면 서문안 마을이나 원효봉 서쪽 서암문으로 가게 된다.
서문안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예전 고양군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맞기 위해 지었다는 등운각(현 보리사)을 거쳐 계곡길을 따라 위문을 경유해 백운대로 오르게 된다.
이 위문 코스는 북한산성 여러 코스 가운데 백운대로 오르는 최단 코스다. 등운각 주차장에서 450m쯤 올라 상운사 입구와 상운사 입구에서 350여m 더 오른 대동사에서 염초봉 방면 북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그러나 북문~염초봉 코스는 현재 입산금지구역이다.
등운각에서 위문으로 가는 길은 약 200m 올라간 공터에 이른 다음, 오른쪽으로 가다가 약수암 위 샘터로 올라선다. 약수암 전 오른쪽 계곡길은 노적봉 동쪽 안부로 직등하는 길이다. 약수암을 지나면서 산길은 큰 바위 사이로 이어지다가 목재데크 계단길을 오르게 된다. 계단을 거의 다 오르면 오른쪽으로 용암문으로 가는 길을 지나간다.
북한산성 계곡길은 서문안 삼거리에서 오른쪽 계곡 포장길로 들어간다. 포장길을 따라 약 500m 들어서면 법용사에 닿는다. 법용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국녕사를 지나 의상봉 능선 상의 가사당암문으로 올라가게 된다. 법용사에서 계속 계곡길을 따르면 중성문을 지나간다. 중성문을 뒤로하고 4~5분 거리에 이르면 왼쪽 노적봉 방면 노적사로 들어가는 운하교가 있다. 운하교 앞에서 주계곡길로 발길을 옮기면 곧이어 노적교를 건너간다.
노적교를 뒤로하고 200m 가량 들어서면 일명 비석거리로 불리는 갈림길에 닿는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부왕사지를 지나 부왕동암문으로 오르는 길이다. 비석거리에서부터 계곡길은 거의 동쪽으로 휘어진다. 동쪽 방향 계곡길로 발길을 옮기면 곧이어 샘터를 지나고, 샘터를 뒤로하면 중흥사지 종무소 앞에 닿는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용암문으로 오른다. 종무소 앞에서 오른쪽 계단을 건너가면 태고사~봉성암을 경유해 북한산대피소로 가게 된다. 이 길은 봉성암까지는 완만하지만, 봉성암을 지나 왼쪽 북한산대피소로 오르면서 가팔라진다.
태고사 입구에서 완만한 주계곡길로 약 400m 들어서면 삼거리(일명 청수동암문 삼거리)에 닿는다. '대남문 1.45km, 청수동암문 1.46km, 산성매표소 4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은 행궁터~남장대지를 거쳐 의상능선(나한봉 동쪽 715.7m)으로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에서 대남문 방향으로 약 300m 가면 또 삼거리가 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 갈림길은 대동문(약 0.5km)으로 가는 길이다. 대동문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면 곧이어 보국문(약 0.4km)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30분 거리인 대성암을 지나 25분 더 오르면 야호샘에 닿는다. 야호샘에서 5분이면 대남문이다.
북한산성계곡 끝머리가 되는 대남문 누각에 올라 조망을 즐기는 맛이 일품이다. 북으로는 움푹 패어내린 북한산성 계곡 건너 노적봉 위로 백운대, 만경대, 염초봉, 원효봉 등이 거대하고 장쾌하게 솟구쳐 있다. 남동으로는 보현봉이 하늘을 가리고, 남으로는 빌딩 숲으로 에워싸인 서울 중심지가 남산타워와 함께 아름답게 전개된다.
서쪽 조망은 7~8분 거리인 문수봉에 오르면 된다. 문수봉에서는 서쪽으로 뻗어내린 비봉능선 끝머리로 은평구가 내려다보이고, 황사가 없는 날이면 멀리로 인천 앞바다도 볼 수 있다. 문수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 풍광도 일품이다.
하산은 대남문에서 구기계곡을 따라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시내로 들어오는 지름길이다. 또는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을 타고 내리다가 사모바위를 지난 삼거리에서 승가사로 내려오거나, 또는 비봉 직전 삼거리나 비봉을 지난 삼거리에서 남쪽 금선사나 북쪽 진관사계곡으로 하산해도 된다.
진관사계곡이 금선사 방면보다는 벚꽃나무가 많다. 진관사 주변을 비롯해서 154번 종점으로 걸어나오는 도로변 충경사(세종대왕 아들 화의군 묘소) 주변 벚꽃도 볼만하다. 비봉 서쪽 향로봉을 경유해 탕춘대능선을 타고 상명대학교로 내려오는 코스에도 벚꽃을 볼 수 있다.
문수봉에서 북쪽 5분 거리인 청수동암문에 이르러 삼천사계곡으로 내려와도 운치가 있다. 삼천사계곡에서도 대서문 방면 못지 않게 벚꽃을 볼 수 있다.
*교통
3호선 전철역 구파발역 하차, 구파발역에서 56사단 입구 경유 북한산성행 156번 버스(송추유원지까지 연장운행하는 버스) 이용, 북한산성 입구 하차.
서울역에서 구파발행 156번 버스 중 송추유원지까지 연장 운행하는 버스편 이용.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분 간격(05:25~22:30)으로 운행하는 북한산성~송추 경유 의정부행 완행버스 이용, 북한산성 입구에서 하차. 전철 구파발역에서 진관사 삼천사 방면은 454-2번 중형버스가 30분 간격(06:45~22:30)으로 운행된다.
북한산 산행기
북한산성 분소 앞에서 도로를 벗어나 잠시 자연 탐방로를 따른다. 마을 도로를 버리고 가지만 다시 매표소 위 600m 지점에서 다시 도로와 합친다. 대서문(大西門)을 빠져 오른쪽 계단을 딛고 산성 위로 오른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북한산성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의상봉 북서릉에 올라서고 대서문 아래 자연헌장비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면서 등산객이 많아진다. 가파른 바위 구간을 지나쳐 의상봉 오른쪽 와이어로프를 잡고 정상에 오른다.
슬랩을 그냥 오르는 사람도 있다. 의상봉에서 보는 북한산은 기암봉 들의 전시장이다. 이어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에 이르니 백화사와 법용사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다. 가파르게 오르면 용출봉. 바윗길에 철다리가 설치돼있다. 증취봉이 어딘지 모르게 지나치고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에 내려선다. 용출봉에서 부왕동암문 구간은 바로 자연암릉이 산성 역할을 하고 있다.
주위 숲이 우거지고 모처럼 흙길이다. 성문 동쪽 부왕사지쪽으로 샘이 있어 중식 장소로 제격이다. 산성의 옛 모습이 아직도 잘 남아있는 곳이다. 흙길이 다시 바위지대가 나오고 나월봉을 지나 나한봉에 오른다. 왼쪽으로 우회로가 있다.
나한봉을 내려서면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산길은 문수봉 오름길과 우회로가 나있다. 정상 오름길은 위험등산로, 출입금지 로프가 설치돼있다. 대남문으로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진다. 오른쪽 산성길로 접어들어 문수봉 꼭대기에 올라간다.
문수봉은 북한산 최고의 전망대. 북한산 일원을 가장 조망하기 좋은 바위봉우리다. 지나온 의상봉능선, 비봉능선, 주능선 끝자락 백우내, 인수봉, 만경대가 삼각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내려서면 대남문(大南門). 광장처럼 너른 성문 주위로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성곽으로 가지 않고 우회로를 따라 대성문으로 향한다. 대남문 이후로 성곽이 현대적(?)으로 보수되어 전혀 다른 느낌이다.
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간다. 오른쪽 칼바위능선이 보인다. 보국문에서 대동문 구간은 우회로를 타고 간다. 대동문을 지나자 유산객들도 뒤엉킨다. 동장대에 이르면 바로 아래 행궁터가 보인다. 136칸의 궁을 지을 수 있는 묘한 위치라니. 동장대는 행궁을 둘러싼 북한산성을 한눈에 바라보는 망루. 동장대를 지나고 중흥사지-태고사 오름길을 만나고 북한산대피소에 이른다. 승병의 거처인 용암사가 있던 곳이다.
용암문을 지나면서 병풍암-만경대 암릉을 타고 가는 모험을 피하고 주능선 등로를 따른다. 거칠고 험한 길이다. 서서히 가팔라지더니 노적봉 안부를 지난다. 험난한 절벽 트레버스 길이다. 둔덕을 넘어서고 백운대가 위압적으로 다가선다. 위문 골짜기 계단을 오른다. 백운대 오름길은 항상 정체 현상이 일어난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좁은 바위꼭대기에 올라선다. 서울을 내려다본다. 왜 서울이 서울인지 알게 된다.
북한산성 일주코스
대서문-원효봉-염초봉-백운대-만경대-대동문-대남문-문수봉-의상봉-대서문으로 하산.
백운대에서 서쪽으로 첫 봉우리 廉초봉을 지나 元曉봉에 이른다. 사이에 북문.
이 성곽은 西暗門에서 남쪽으로 꺾여 계곡에 이르러 물이 배출되는 水門을 이룬다.
수문을 지난 성곽은 大西문(일대를 북한산성 유원지라 함).
이어 가파른 암봉 미륵(彌勒)봉, 용출(龍出)봉, 용혈(龍穴)봉, 증취(甑炊)봉을 지나 소남문(小南門)인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으로 내려서다가 나월(羅月)봉, 나한(羅漢)봉을 지나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으로 내려선다. 가파르게 문수(文殊)봉으로 간다.
남서쪽으로는 성곽이 없이 불광동으로 갈라져 나가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능선이다.
문수봉에서 동으로 방향을 틀어 大南門으로. 백운대에서 남쪽 비좁은 바위 안부에 衛門. 위문에서 만경대를 넘는 톱날 암릉은 자연 성벽. 만경대 내려서면 龍暗문. 남쪽 가까운 거리에 무너진 석탑 잔해가 있는 대피소(용암사터). 용암봉을 넘어 盤龍봉, 남서쪽으로 휘면서 紫丹봉에 올라 장대를 세운다.
2층 누각 東將臺. 자단봉에서 남동쪽으로 大東문. 진달래능선이 시작된다. 이 능선을 釋迦봉이라 불렀다. 대동문에서 남서쪽으로 성곽이 정릉방향으로 갈라지는 칼바위능선과 만나는 지점에 小東문이라는 輔國문이다. 아래 보국사터가 있다. 보국문에서 남서쪽 안부에 大城문, 보현봉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大南문에 이르러 문수봉 성곽과 만난다.
북한산성 코스
산꾼들 단골집 백운식당(02-353-7141)은 감자탕(만원)은 세 사람이 먹어도 푸짐하다.
주인 이윤수(사진작가 암벽등반가). 도토리묵을 잘하고 산행 중 먹을 김밥(2천원)을 맛있게 말아준다. 서울시내버스156번이 서는 곳. 불광동-의정부 34번 버스.
통상 북한산을 오를 때 은평구 구파발을 지나 북한산성 입구 삼거리에서 대서문을 거쳐 오르는 코스를 일컫는다. 산성의 정문이 대서문이기 때문이다. 이 코스에 찻길이 끝나는 지점에 금강산장(소고기등심1근으로 숯불구이와 더덕 한 쟁반 4인분5만원) 제일산장 만석장이 있고 노적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마지막 오복장이 나온다.
어느 날 리승만 대통령이 대서문 까지 지프차를 타고 왔다. 어린 아이들이 모여들었는데 대통령은 자신의 초상이 그려진 지폐를 한 장씩 주었다. 아이들은 지폐의 그림과 같은 얼굴을 보고 신기해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지금의 금강산장 주인(이남해)의 아버지(이수만 얼마 전 작고)에게 '뭘 해서 먹고사느냐' 물었다. '낙엽을 긁어먹고 산다' 는 선문답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럼 이곳에 길을 내주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팔아 먹고살면 되겠구나' 하고 간 뒤 다음 도로공사가 시작되었다.
북한산(836.5m) 산성일주
코스 : 산성탐방지원센터-의상봉-의상능선-대남문-산성주능선-백운대-원효봉-시구문
산행시간 : 7시간 32분(후미 8시간 56분)
05:56 북한산 산성탐방지원센터 산행시작
05:59 갈림길 /안내판(↖백운대, 대남문 방향, ↗의상봉 방향) 오른쪽으로 향한다.
06:01 의상봉 들머리 /이정표(↑백운대 3.8km, →의상봉 1.5km)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06:13 이정표(↑의상봉 0.8km, →백화사입구 1.5km, ↓산성탐방지원센터 1.4km)
이정표를 지나자 암릉길이 시작.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곳도 많은데,
가파른 암릉길은 봉우리에 오를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이어서 힘겨워 한다.
06:58 의상봉(해발 503m) /헬기장이다. 안내목이 있다.
07:05 가사당암문 잠시 성벽길 다시 가파른 암릉길 오르내림은 증취봉까지 반복된다.
그러나 능선길의 뛰어난 조망은 산행자의 힘겨움을 보상한다.
07:20 용출봉(해발 571m)
07:31 용혈봉(해발 581m)
07:40 증취봉(해발 593m)
07:47 부왕동암문
07:59 나월봉 직전 우회로 갈림길 /이정표(↖우회로) 능선길 오르막을 오른다.
08:02 나월봉 왼쪽 8부 능선에서 암릉 틈을 통과해야 하는 곳 등 제법 짜릿한 구간.
08:10 갈림길 /이정표(↑대남문 1.59km, ←중성문입구 1.7km, ↓가사당암문 1.13km)
08:18 나한봉 안내표지목
08:24~27 715봉 /(→대남문 0.4km, ←산성탐방지원센터 5.2km/ 행궁지 입구 1.1km)
삼각점과 국토지리원의 시설물보호 안내문이 있다. 우측 대남문 방향으로 향한다.
08:29 청수동암문(↖대남문0.3km,→삼천4.0km/비봉1.8km,←산성탐방5.6km,↓의상2.5km)
08:33 문수봉 국기대와 위치안내목, 종로구 경계점 표지석이 있다.
08:36~39 대남문 성루형태를 갖춘 문이다. 북한산 조망안내판이 있다.
이제부터는 오른편에 산성을 두고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길이다.
08:49 대성문(626m /↑보국문 0.6km/대동문 1.2km, →형제봉 1.8km,/평창(북악) 2.5km,
←산성탐방지원센터 5.5km, ↓대남문 0.3km/비봉 2.5km)
정식 규모의 성문으로서, 금정산 남문과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09:05 보국문 /이정표(해발 567m /↑대동문 0.6km, ←산성탐방지원센터 5.3km,
→정릉탐방센터 2.5km, ↓대성문 0.6km/ 대남문 1.0km)
09:09 갈림길 /이정표(↑대동문 0.41km, →칼바위능선, ↓보국문 0.16km)
09:13~15 대동문 /(↑동장대/북한산대피소/백운대, →아카데미하우스,
←북한산성통제소 5.2km, ↓대남문) 성문형태를 갖추었으나 대성문보다는 규모가 작다.
09:24~27 동장대 2층의 누각앞 의상봉-산성능선을 조망하는 안내판이 있다.
09:44~10:08 용암문 /아침&점심 식사
10:13 병풍암
10:22 이정목(↑위문 0.3km, ↓용암문 0.5km)
10:23 이정표(→백운대 0.4km, ↓대동문 2.7km /보국문 3.3km) 다시 암릉길
10:25 이정목(↑위문 0.5km) 전후 이정표의 표시거리에 일관성이 없다.
10:44 이정표(↑백운대 0.4km, ↓대동문 2.7km/보국문 3.3km)
10:45 갈림길 /(↑산성탐방지원센터 3.8km, ↓용암문 1.2km) 오른쪽 암릉길을 오른다.
10:48~51 위문(衛門) /이정표(↑우이동. 영봉) 왼쪽 암릉길을 오른다. 가파르다.
11:02~13 백운대(836.5m) 통일서원석, 도봉산 조망안내판이 있다. 일망무제...
11:20 위문 /다시 되돌아 와 왔던 길을 내려선다.
11:22 갈림길 /(→산성탐방센터 3.8km, ←용암문 1.2km) 오른편으로 가파른 바위길이다.
11:28 약수암
11:36 이정표(↑산성탐방센터 3.3km, ↓백운대 0.9km)
11:39~42 대동사 /이정표(↓백운대 1.4km)
11:48 원효봉 갈림길 /이정표(→원효봉 0.6km, ↓백운대 1.5km)
11:55 상운사 갈림길 /(↑원효봉 0.6km, →상운사/등산로 없음, ↓산성탐방센터 2.6km)
12:04~06 북문 /이정표(←원효봉 0.2km, →등산로 아님, ↓산성탐방지원센터 2.6km)
12:13~33 원효봉(해발 505m) /이정표(↑효자리 입구 2.3km/상운사 0.6km)
암반으로 된 정상에는 의상능선 봉우리 조망안내판이 있고 한쪽에는 헬기장.
12:43 원효암
12:52 시구문 /이정표(→효자리 입구 1.2km, ←덕암사 0.3km, ↓원효암 1km)
13:03~15 계곡(경국정사앞)
13:20 이정표(↓대남문 4.7km /백운대 3.4km /원효봉 1.8km)
13:22 갈림길 /안내판(↙백운대, 대남문 방향, ↓의상봉 방향)
13:23 산성탐방지원센터
13:28 대형버스 주차장 /산행종료
14:52 후미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