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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 제 3 구간(숫돌고개~솔고개)
1. 산 행 일 : 2011. 4. 17(일)
2. 산 행 지 : 고양
3. 날 씨 : 맑음
4. 참 가 자 : 박기양, 박봉하, 박상호, 안상경
5. 준 비 물 :
[1] 전 체- 차량, 안전장구, 구급약, 사진기, 지도
[2] 개 인- 비상식, 등산화, 배낭, 윈드쟈켓 및 우의, 예비옷(보온)과 양말, 모자, 장갑, 후레쉬, 식수, 세면도구, 신분증, 다용도칼, 휴지, 비닐봉투, 간식 등 개인용품
6. 회 비 :
7. 산행정보 및 일정
[1] 총 산행 거리 : 9.7km
[2] 산행개요 :
[3] 구간별 거리
숫돌고개-(2.8)-349번도로(배너미고개)-(4.5)-노고산-(2.4)-솔고개
[4] 산행 코스 및 시간
(1) 산행지 이동
① 교통편 : 승용차(박상호)
② 이동경로 : 성대역 ---> 고양주 장흥면 교현리(송추)---> 고양시 덕양구 삼송리
(2) 산행코스
숫돌고개←<10분>→포장도로←<2분>→정자←<7분>→이정표←<12분>→이정표(지축역)←<12분>→등산안내도←<5분>→349번지방도←<8분>→헬기장←<2분>→봉우리←<5분>→갈림길←<2분>→철조망←<8분>→돌서낭당(삼막골이정표)←<3분>→봉우리(삼각점)←<3분>→갈림길('182고지'이정표,NO9철탑)←<7분>→능선갈림길←<1분>→갈림길(흥국사이정표)←<7분>→갈림길(금바위저수지이정표)←<2분>→공터(조망대,큰돌)←<3분>→돌탑봉(삼각점)←<4분>→봉우리←<10분>→봉우리(헬기장)←<7분>→헬기장←<1분>→철조망끝←<2분>→노고산(부대정문)←<18분>→임도(부대정문진입로)←<3분>→철조망끝←<2분>→봉우리←<15분>→포장도로(부대후문,이정표)←<6분>→봉(삼각점)←<15분>→갈림길←<7분>→부대정문/갈림길(그린교회)←<9분>→솔고개
(3) 산행 후
○ 양주 장흥면 교현리(송추) ---> 수원
8. 산 행 기
[1] 산행전
(1) 새 생명의 소리 없는 움직임
4월 중순 들어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새 생명의 소리 없는 움직임이 나날이 새롭다. 창문을 열고 보니 아파트 담장은 노란 천으로 휘장을 두른 듯 개나리가 滿開를 했고 자목련, 백목련의 꽃망울이 마음껏 부풀어 올랐는데 시야를 좀 더 넓혀 살펴보니 때 아닌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4월 14일(목) 한배산악회 카페에 4월 17일(일) 한북정맥 3구간(숫돌고개~솔고개) 산행을 하겠다는 박사장의 글이 올라 참여 의사를 밝히고 토요일 오후 내일 산행에는 어떤 봄의 모습과 色을 눈에 담고 香을 맡을 수 있을까 하여 인터넷에서 「봄에 피는 꽃」을 찾아보았다.
용둥글레, 싸리냉이, 철쭉, 둥글레, 큰구슬붕이, 풀솜대, 얼레지열매, 다화개별꽃, 벌깨덩굴, 중의무릇, 피나물, 산자고, 족도리풀, 넓은잎천남성, 왜미나리아제비, 구슬봉이, 현호색, 봄맞이꽃, 조개나물, 조팝나무, 솜나물, 할미꽃, 각시붓꽃, 솜방망이, 관중, 괭이눈, 금붓꽃, 복수초, 노랑제비꽃, 둥글레, 윤판나물, 애기나리, 벌깨덩굴, 천남성, 민백미꽃, 산벗꽃, 꽃다지, 애기똥풀, 딸기꽃, 조개나물, 남산제비꽃, 라일락, 산개불주머니, 각시붓꽃, 팥배나무, 제비꽃, 애기나리, 봄까치꽃, 별꽃, 진달래, 서양민들레, 꽃마리, 향모, 목련, 꿩의밥, 할미꽃, 살구꽃, 양지꽃, 두루미꽃, 할미밀방, 큰앵초, 나도제비란, 참꽃마리, 감자난초, 땅비싸리, 광대수염, 뻐꾹채, 삿갓나물, 쥐오줌풀, 쥐손이풀, 연영초, 큰애기나리, 금강애기나리, 엉겅퀴, 꿀풀, 산씀바귀, 매발톱꽃, 초롱꽃, 쪽동백, 홀아비바람꽃, 나도바람꽃, 박새, 숲바람꽃, 나도양지꽃, 괭이눈, 꿩의바람꽃, 풀솜대, 회리바람꽃, 얼레지, 한계령풀, 관중, 산괴불주머니, 석송, 노랑제비꽃, 나도개감채, 동의나물, 현호색, 콩제비꽃, 애기풀, 주름잎, 벼룩이자리, 괭이풀, 살칼퀴, 크로바, 붓꽃, 뱀딸기꽃, 제비꽃, 솜방망이, 우리민들레,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잔털제비꽃, 앉은부채, 미치광이풀, 노랑앉은부채, 복수초, 너도바람꽃, 개감수, 춘란, 뫼제비꽃, 하늘매발톱꽃, 노루귀, 서울제비꽃, 냉이꽃, 별꽃, 점현호색, 금낭화 --- 등등.
눈에 익은 꽃도 있고 생소한 이름도 부지기수다. 이중 일부라도 보며 色과 香에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산행 준비를 했다.
(2) 산행지로의 출발
4월 17일 05시 30분 약속 장소인 「성균관대 역」으로 나갔다. 박교장, 안교장도 시간 내에 도착을 했다. 이번 산행은 대중교통인 전철로 이동을 하는가했는데 박사장이 차를 운행한다고 한다. 여유 있는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05 : 40분경 성대역 출발, 성산대교를 지나 07 : 00시경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도착, 아침 식사를 하기위해 「평창해장국 / ☎ (02) 831-7133, H·P 010-6614-1179)」집에 들려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고 오늘 산행의 종착지『솔고개』근처로 이동, 예비군 훈련 부대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고 택시를 이용하여 산행 출발지인『숫돌고개』로 이동을 했다.
[2] 산행 들머리 숫돌고개 출발
07 : 20분, 숫돌고개(부대 앞)에 도착, 배낭을 다시 점검하고 스틱의 길이를 조절한 후 곧바로 도로를 횡단하여 절개지 排水路를 따라 올랐다.
절개지 정상에 올라 희미하게 난 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니 民家 뒤에 足球場이 있고 족구장을 지나면서 완만한 능선 길로 이어진다.
[3] 배방고개
07 : 35분, 1차선 포장도로인 『배방고개』로 내려섰다. 이 고개는 「고양시 덕양구 오금리」에서 「삼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를 넘으면 삼송초등학교 앞 통일로와 만나며 새마을 위쪽에 위치해 있다.
옛날에는 고개의 출입지역이 좁아 절을 하듯 머리를 숙이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하여『배방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kaeru56/150015737723
[4] 六角亭에서의 眺望
『배방고개』를 횡단하여 진행하기를 4분(07 : 39분), 묘 1기와 육각정 전망대가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우선 육각정에 올라 사진촬영을 하고 삼송 택지지구를 조망하며 휴식을 가졌다. 이른 아침이고 잠시 걸었는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상의 자켓을 바람막이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출발.
[5] 고양시 덕양구의 지축동과 오금동
(1) 지축동(紙杻洞)
07 : 50분,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삼거리(107m봉)에 도착을 했다. 이정표도 세워져 있는데 「지축역 400m ←⊙→삼송역방향 880m / ↙일영-구파발 1820m」라 표시되어 있다. 진행방향 우측이 지축동이고 좌측은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이다.
「紙杻洞(고양시 덕양구)」은 본래 양주군 신혈면에 속하던 지역이다. 1906년 지방행정구역 정리에 의해 고양군으로 편입되어 신도면이 되었고, 1973년에 신도면이 邑으로 승격되었다.(당시 고양으로 편입된 곳은 지축동 이외에 벽제지역의 벽제리, 선유리, 신도의 오금리, 지축리, 효자리, 북한리 그리고 현재의 서울지역인 구파발리, 진관내리, 외리지역이 있다.) 이후 1992년 신도시 승격 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이 되었다. 마을에는 예로부터 이씨, 최씨, 김씨, 강씨, 박씨, 유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지축(紙杻/유)」은 닥나무가 많은 마을로 이 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어 붙여진 지정동(紙亭洞)의 ‘紙’자와 싸리나무가 많아 싸리나무골이라 불리던 축리(杻里)의 ‘杻’자를 딴 이름이다.
자연촌락으로 흥국사가 있어 붙여진 「절골」, 싸리나무가 많다는 「싸릿말」, 종이를 만들던 「지정동」, 오부자가 살았다는 「오부자골」 등이 있다.
<출처> 고양시사 제 3 권 제1편 마을과 지명유래
http://www.goyang.go.kr/data/cityhistory/volume3/lifewz.htm
(2) 背山臨水의 梧琴洞
「오금동(梧琴洞, 고양시 덕양구, 배산임수의 지세)은 (위치와 현황) 고양시 중심에서 동쪽 방향에 있으며 마을 뒤에 노고산이 있다. 마을 가운데를 오금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세이며 서쪽 신원동과의 경계에 통일로가 지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2004년 12월 31일 현재 총 1,593세대에 3,73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면적은 4.8㎢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신도동인데 신도동에는 삼송동, 오금동, 지축동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 오금동은 조선시대에 본래 양주군 신혈면 지역이었다. 양주가 고양에 편입된 것은 1906년의 행정구역 정리로 인한 것이며, 오금동 이외에 선유, 지축동 등 고양시의 동쪽지역 전부가 고양군이 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양군 신도면에 속하다, 1973년 신도읍으로, 1992년 고양시 승격으로 고양시 덕양구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주민은 토박이들로 김해김씨, 진주강씨, 제주고씨, 고령박씨, 진성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 마을 골짜기에는 자연촌락으로 마을의 위치에 따라 「상촌, 중촌, 하촌」으로 나뉘는데, 「상촌」은 삼막골, 독정 「중촌」에는 모뎅이마을, 당곳마을 「하촌」에는 사쇠랑말, 응당말, 새말, 마장말, 숙수관, 아랫말, 건넌말, 큰골 등이 있다. 특히 인구 밀집지역으로는 새말과 하촌마을이 있다. 마을 집들은 대부분 산을 등지고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으며, 거주 형태는 개발제한 구역으로 인하여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970~80년대의 단독주택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명유래) 「오금」의 한자 표기는 ‘오동남무 오(梧)’자에 ‘거문고 금(琴)’자를 쓰는데 그 유래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 지형이 거문고와 같다고 하여 생겨났다는 설과, 옛날 한 선비가 큰 오동나무 밑에서 거문고를 탔기 때문이라는 설, 또 다른 하나는 마을 한가운데 산에서 정월 대보름 달맞이 놀이 때 오동나무가 발견되어 오금리가 되었다는 설이다. 끝으로 이곳에는 예부터 오동나무가 매우 많았으며 이 오동나무로 가양금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작은 마을들의 이름에는 산에 막혀서 산막골, 우물이 하나 있어서 독정말, 가운데 있다는 중촌말, 새로 만들어져서 새말, 큰 골짜기란 의미의 큰골 등의 작은 지명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출처> 고양시사 제 3 권 제1편 마을과 지명유래
http://www.goyang.go.kr/data/cityhistory/volume3/lifewz.htm
[6] 옛 관서대로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3분여를 더 진행(07 : 53분)하니 사각정자와 등산 안내도를 세워 놓았다. 아마도 우리처럼 한북정맥 종주꾼 외에 서울, 고양시민들이 자주 왕래하는 길이라 이런 시설을 해 둔 모양이다.
08 : 00시 오송산 122m / 매봉산 820m라 표시된 삼거리에 도착했다.
※ 오송산 : 오금동고개에서 삼송동까지 이어지는 능선 길 중간에 볼록 솟은 언덕 같은 산이 오송산(122.2m)이다. 북한산이 조망됨
08 : 05분, 또 하나의 사각정자와 이정표(←지축역 400m / →삼송역방향 1880m / ↙일영-구파발 820m)를 세워 놓은 삼거리에 도착했다. 길 옆 나무에 노란색 바탕에「옛 관서대로」라 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조선시대 중국으로 통했던 유일한 간선도로이다. 조선과 오가는 사신들은 이 길을 통과하기 전후에 고양동 벽제관지에서 여정을 풀고 하루 밤을 보냈다고 한다. 삼송동 덕수교에서 삼송초등학교 앞까지의 길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북한산에서 호수공원까지 고양바람길 축제”라 안내를 해 놓았다.
[참고자료] 자유로, 통일로, 조선시대 京義大路
그렇다면 과거 서울과 북부지방, 특히 중국을 연결했던 큰 길은 뭘까. 대부분 사람들이 선뜻 떠올리기 힘들 듯하다. 오랫동안 역사와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한 도로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경의대로(京義大路)가 그 답이다. 경의대로는 고려·조선시대에 북부지역과 중부지역을 연결했던 옛 도로다. 연행로, 관서대로, 의주로라고도 불렸다. 한양 도성의 서대문을 나와 무악재~박석고개~고양 삼송 덕수원~신원동 새원~고양동 벽제역~파주 혜음원~광탄~주내~임진나루를 거친 뒤 개성으로 이어졌다.[역사기행] 자유로, 통일로, 조선시대 京義大路(작성자 다모아) 중 발췌
http://blog.naver.com/ajc21/40023662037
[7] 매너미고개
옛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기위해 이 길을 지나가던 모습을 그려보며 사각정자와 이정표를 뒤로하고 쉼 없이 진행, 기와장이 낙엽 속에 쌓여 있는 서낭당 터(?)를 지나 잠시 더 진행하니 염불선원 삼거리 갈림길(08 : 08분)이 나온다. 굴곡도, 오르내림도 거의 없는 산책로 숲길 걷기를 약 8분(08 : 16분), 「약사사, 울넘어집」등의 간판이 세워져 있는 349번 지방도로 상의 『매너미(매내미)고개』에 내려섰다.
『매너미(매내미)고개』는 구파발에서 일영, 장흥을 잇는 349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한북정맥이 가로지른다. 행정명으로는 고양시 덕양구 신도동과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경계로 「작은 매너미」와 「큰 매너미」로 나뉜다. 『매너미』는 이 고개로 매가 날아 넘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매너미고개』에 대한 몇가지 유래가 전해 온다.
조선조에 임금이 승하하자 명지관이 이곳 오금리에 왕능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왕능터가 물도 없고, 터도 좁아 당시 오금리에 거주하던 강씨의 묘자리(지금의 서오능 창능이었음)와 바꾸기로 하였는데 묘 자리를 바꾸는 대가로 매를 날려 매가 앉는 곳까지의 땅을 강씨에게 주기로 했다. 그후 매봉재에서 매을 날리니 매가 지금의 새말 있는 곳에 앉자 약속대로 그 만큼이 강씨의 소유가 되었다. 그래서 매가 넘어갔다고 해서 『매너미』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두 번째는 조선조 때 한 장군이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큰 공을 세웠다. 왕이 이에 대한 보답으로 토지를 하사하기 위해 한 마리의 매를 날려 그 날아간 곳 최대거리까지의 지역을 토지로 주겠다하여 처음 매를 날린 곳이 지금의『매내미고개』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선시대 서오능을 왕능터로 잡을 때 나라에서 지관을 통해 능터를 잡으려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자 매가 날아가 앉는 자리를 잡기로 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매나미 고개를 중심으로 한 오금리 지역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지역이 왕능터로는 워낙 좁고 편협 되어 터를 잡지 아니하고, 현재의 용두리 서오능으로 왕능터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kaeru56/150015737723
굽이치는 저 산줄기
http://blog.daum.net/mjlee0368/1598
[8] 옥녀봉(玉女峰)
08 : 20분, 349번 지방도로를 횡단하여 철계단을 밟고 오르니 墓群(全州李公 墓 等)이 있고 잠시 더 오르면 벙커봉에 오르게 되는데 벙커봉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좀전에 횡단했던 349번 지방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오금동 -의정부 -삼막골」라 표시되어 있다.
08 : 30분 다소 가파른 봉에 올랐다. 179m봉으로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쉼 없이 진행. 56보병사단 철망을 따라 쉬엄쉬엄 올라 봉 정상에 도착(08 : 45분)을 했다.『옥녀봉(204.6m)』이다. 玉女는 어디가고 정상에는 군 초소가 있고 건장한 군인 두명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다. 아름다운 옥녀라는 이름과는 달리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벙커봉이다.
[9] 삼막골
08 : 54분, 안부사거리 도착했다. 북한산 부대에서「옥녀봉 / 삼막골」이정표를 세워놓았다. 『옥녀봉』은 안부 직적 군부대 초소가 위치한 봉이고 『삼막골』은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상촌마을에 있는 자연촌락으로 ‘일영-구파발 간의 349번 지방도 주변에 위치해 있다.
지명 유래로 세 가지가 전해오는데 있는데 그 하나는 옛날 이곳에 진주강씨의 묘가 있고 묘 옆에 墓幕이 세 개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구한말 장안 7대 부자의 한사람인 배석환이 자신의 조상 묘를 이곳에 쓰면서 묘막을 짓고 삼막골이라 불렀다고 하며 세 번째로 한동네 (1개반)가 멀리서 보면 세 개의 자연촌락으로 나뉘어져 있어 「삼막골」불렀다고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kaeru56/150015737723
[10] 북한산 온천
「북한산 온천 / 노고산」이라 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북한산 온천(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208번지)
고양시 온천 허가 1호로 알카리성 수소탄산나트륨형의 단순 온천수로 물이 아주 매끄러우며 게르마늄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천 건물 2개동이 있는데 한쪽은 예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새 건물에서만 온천을 할 수 있다. 현재 경기 북부지역에 있는 온천으로는 이곳 북한산 온천과 산정호수 온천 2군데만 있다고 한다.
[11] 182고지
09 : 00시, 식별이 어려운 삼각점, 헬기장이 있는 『182고지』,
09 : 04분, No9송전탑 / 이정표(←182고지 / →노고산 / ↑사격장)를 지나
09 : 12분, 안부 삼거리에 도착을 했다. 이정표(사격장 / 노고산)와 3697부대장이 경고문을 세워 놓았다.
「경고문
입산통제시간 : 평일 09 : 00 ~ 17 : 00까지
이 지역은 군부대 사격훈련장으로서 사격 훈련 시 도비탄에 의한 사고위험성이 있는 곳으로 우회하거나 출입을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총성이 들릴 시는 반드시 우회로로 산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 제 3697 부대장」이라 되어있다.
[12] 금바위 저수지 갈림길
09 : 15분, 사격장 표시 「깃대봉」을 거쳐 안부를 지나 금바위 저수지 갈림길에 도착(09 : 25분)을 했다. 이정표(삼마골 / 노고산 / 금바위 저수지)와 여러 개의 사각 화감암으로 간이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금바위 저수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능말 남쪽에 있는 저수지로 이 저수지가 있는 뜰(들판)을 「금바위 / 금바위뜰」이라고 부른다. 검은 바위가 박혀 있는 들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검바뒤뜰」이라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금바위뜰」로 변하였다고 한다.
<출처> 심온세상
http://blog.daum.net/jcr513/17172711
[13] 初春의 北漢山
쉼터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고 쉬엄쉬엄 오르기를 12, 3분 09 : 43분, 삼각점과 돌탑이 있는 335m봉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희미한 안개 속에 북한산 암봉의 수려한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2005년 11월에 한배 산악회에서 북한산 비봉(560m), 문수봉(715.7m) 일원을 산행 할 때의 암봉을 걷고 오르고 감격도 여간 아니었는데 북한산 지척인 이곳 돌탑봉에서 북한산 靈峰을 한 눈에 보고 있노라니 奇奇妙妙한 絶景 속으로 넋이 빠져드는 것 같다.
「북한산(北漢山)」은서울시 북부지역과 고양시의 경계에 있으며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五嶽)에 포함되는 명산이다.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m)가 큰 삼각형 모양으로 위치하고 있어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기도 하며, 삼봉산(三峰山), 화산(華山), 부아악(負兒岳)등으로도 불리었다. 고려시대부터 삼각산이라고 하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에 북한산이라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서울을 둘러싼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불리어왔다.
중생대 말기에 지층에 파고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지표면에 모습이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서 험준한 바위 골산이 되었다.
주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시내와 근교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고, 도봉산, 북악산, 남산, 관악산과 맑은 날에는 강화도, 영종도 등의 황해의 섬들도 보인다. 백운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수봉은 암벽 등반코스로 크라이머들의 인기가 높다. 북한산은 정상 부위의 봉우리 북쪽에 튀어나온 바위가 마치 아이를 업은 모양 같다고 하여 부아악이라고도 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 잡고 살 만한 땅을 고를 때에 이 봉우리에 올라서 서울의 지세를 살펴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백운대의 남동쪽에 위치한 만경대는 주변 경관이 좋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예로부터 국망봉이라 불리었다. 무학대사가 나라의 도읍지를 정할때 여기에 올라서서 내려다보고 도읍지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밖에도 북한산에는 노적봉(716m), 영봉(604m), 비봉(560m), 문수봉(716m), 보현봉(700m)등 이름있는 40여 봉우리가 있다.
<출처> 홀로가는 산경표(홀산)
[14]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三下里)
돌탑봉에서 북한산 영봉을 조망하며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고 잠시 오르니(09 : 49) 336m봉 헬기장이 나온다. 잠시 휴식.
10 : 10분, 벙커봉에 오르고
10 : 12분, 북한산과 고양시 덕양 일대 조망 427m봉, 헬기장을 지나
10 : 15분, 이정표(←등산로 ⊙ →등산로 / ↓삼하리)를 세워 놓은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표시된 「삼하리(三下里)」는 양주시 장흥면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서·남쪽으로는 고양시 효자동 및 오금동, 북쪽으로는 삼상리와 접해있다. 삼패아랬말이라고도 한다.
삼하리라는 땅이름은 적어도 1914년 이후 이곳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즉 이곳의 일부는 장흥면 삼패하리(三牌下里)로 불렸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삼패하리와 고양군 신혈면 선유도(仙遊洞) 일부를 합하면서 三下里로 불렀다. 이러한 사실이 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과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1917)에 나와 있다. 삼하리라는 땅 이름은 삼패하리의 준말이다. 원래 牌라는 말은 어울려 이룬 사람들의 동아리로 나라에서 각 지방의 마을을 나눌 때 흔히 썼던 기준으로 사용했다. 양주시의 각 면에 속한 里의 이름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마을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 곳은 일패리, 이패리, 삼패리, 사패리 등으로 표기하고 있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삼하리는 동쪽의 산지와 서쪽의 들판으로 대별되며, 근교 농업지역으로서 각종 농원과 농장이 자리 잡고 있다. 특기할 사항은 추사필적 암각문과 아울러 조선후기 실학의 문을 여는데 결정적인 게기를 마련하였던 지봉유설이라는 책을 쓴 이광수의 묘소가 이곳 삼하리의 노고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처> 심온세상
http://blog.daum.net/jcr513/17172711
[15] 노고산(老姑山495m)
10 : 24분, 오늘 산행의 主山 『노고산(495m)』헬기장에 올랐다. 『노고산』정상 부근에서는 돌탑봉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패산에서 도봉산 오봉능선까지 보이고, 이어서 상장능선에서 백운봉을 거쳐 문수봉과 향로북능선까지 볼 수가 있다. 노고산 정상부는 삼각산(三角山) 북(北)쪽의 산세를 조망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노고산(老姑山495m, 덕양구 효자동 및 양주군 경계의 산)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와 고양시 효자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한미산, 할미산, 매네미산」이라 하기도 한다. 산의 정상은 군사시설이 들어 있고, 산의 동남쪽에 천년고찰(千年古刹)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이곳은 참나무 계통의 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을 볼수 있고, 산 아래로 곡릉천이 흐르고 있으며, 일영 유원지가 자리 잡고 있다.
노고산의 명칭은 능선이 완만하여 노인이 힘에 지쳐 웅크리고 있는 형상 같아 붙여졌다는 설과, 옛날에 이 산에 노고(老姑)라는 신령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 등이 있다.
<출처> 양주시 장흥면 홈
http://jh.yj.go.kr/site/jh/sub.do?Key=999
옛부터 『노고산(老姑山)』 정상에 송장을 묻으면 비가 온다고 한다. 이곳 노고산이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 사람들이 시체를 몰래 묻는데 가물 때면 마을 사람들이 몰래 묻은 시체를 찾으러 삽이며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본래 노고산과 관악산이 남내산이라 한다. 노고산과 관악산이 태초에 하늘 위에서부터 땅으로 같이 내려왔는데 원래 노고산이 있어야할 자리가 지금의 관악산인데 관악산이 먼저 자리를 잡아 노고산이 노했다하여 『노고산』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출처] http://blog.naver.com/kaeru56/150015737723
[참고자료] 흥국사(興國寺)
〇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말사
〇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203번지
〇 상세설명
고양시 지축동 20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흥국사(興國寺)는 서울 인근의 대표적 고찰 가운데 하나이다. 앞에는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뒤로는 한미산(漢美山)이 연꽃 봉오리처럼 펼쳐져 있어 매우 아늑한 느낌을 주는 도량이다. 서울의 서북부 지역인 구파발에서 의정부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북한산성 입구 조금 못 미친 왼편에 있으며, 주변은 군부대와 조경업을 주로 하는 조그만 마을이 들어서 있다. 흥국사가 자리한 한미산의 원래 이름은 노고산(老姑山)이었다고 한다.‘노고’라는 말이 할미를 뜻하므로 할미산으로도 불리었다가, 조선 영조(英祖)가 이곳에 행차하여 할미산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 일대의 사람들은 노고산과 한미산이라는 산명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흥국사의 창건은 신라 원효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신라 문무왕 원년인 661년에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흥서사(興瑞寺)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주로 흥국사의 사적기에 의존한 것 같은데, 흥국사 사적기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즉 《봉은본말사지》등의 자료에 실려 있는 흥국사 창건 연기는《사적(寺蹟)》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이《사적》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지금 흥국사 경내에 세워져 있는〈한미산흥국사만일회비기(漢美山興國寺萬日會碑記)〉라는 비문의 내용은 주목할 만한 자료하고 하겠다. 비록 근대에 작성된 것이지만, 이 비문 내용을 통해 흥국사의 주요 연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비문에 수록된 창건 연기 내용을 옮겨 보도록 하겠다.
'전해 오기를 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해동 화엄초조(華嚴初祖)인 원효대사께서 양주(梁州, 지금의 경남 양산지역) 천성산(千聖山)으로부터 위서 북한산에 머물며 몇 곳의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북한산성 서쪽에 있는 원효대(元曉臺)가 그 첫째요, 노고산 흥서암이 그 다음이며 약사불 석상도 또한 같은 시기에 조각한 것으로 천 백년이 지난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암자를 절로 바꾸어 흥국(興國)이란 호를 내린 것은 조선 영조 때의 일이며, 산 이름을 한미(漢美)로 바꾼 것은 노고(老姑)의 뜻을 옮긴 것으로 별다른 뜻은 없다.'
위의 비문은 1929년 귀산사문 정호(龜山沙門鼎鎬)라는 분에 의해 쓰여진 글이다. 이와 같은 창건 연기를 어느 자료에 근거하여 작성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당시까지 전해지던 일종의 사적류에 의존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여하튼 사찰측에서는 흥국사의 창건이 661년 원효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고, 창건 당시의 이름은 흥서암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흥국사 경내와 주변 일대에서 신라시대 창건설을 뒷받침할 만한 유물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여타 문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인해 사찰측의 창건 연기를 그대로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조선 숙종 12년(1686)의 중창을 실질적인 창건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현 상태에서는 원효 스님의 창건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또한 일방적으로 부정하기도 어렵지만 흥국사를 비롯한 북한산 일대에 원효 스님과 연관된 내용이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절에는 약사전을 비롯해 설법당·칠성각·산신각·수각·일주문·요사 2동 및 종무소와 식당이 있고, 절 입구에는 만일회비가 서있다. 약사전은 1867년 중건된 건물로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에는 약사불좌상과 지장·천수관음상이 있고, 그밖에 약사후불도·감로도·천수관음도·신중도 등의 불화 및 작은 범종이 하나 있다. 칠성각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이다. 안에 있는 칠성목각탱은 1893년(고종 30년) 봉안된 것으로, 치성광삼존은 목각탱에서 따로 분리되어 칠성목각탱 앞에 모셔져 있다. 칠성각에는 그밖에 길이 389㎝, 너비 38㎝, 높이 37㎝의 괘불함이 있고 그 안에 아미타삼존불화가 모셔져 있다. 산신각은 맞배지붕에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씩인 자그마한 건물로서 1902년(광무 6) 세워졌으며,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설법당은 팔작지붕에 ‘ㄴ’자 모양이며, 현재 강당으로 쓰이고 있다. 안에는 조선시대 중·후기에 제작된 아미타불좌상과 극락구품도가 있다. 그밖에 식당에도 감로도·현왕도·조왕도 등의 불화가 있는데 전부 최근에 제작된 그림이다.<출처> 불교문화
http://kbpf.org/insiter.php?design_file=4531.php&temple_idx=686
[16] 한북정맥 청룡사 입구 이정표
노고산정상은 군부대 시설물로 오를 수 없어 철망 좁은 길을 따라 나갔다. 철망 좁은 길을 따라 나가기를 5, 6분, 정문 초소가 있는 비포장 넓은 군사도로에 도착(10 : 30분) 을 했다.
룰랄라 내림 길 군사도로를 따라 진행, 등산로 안내판(등산로 / 3537부대)과 이정표(노고산 정상 / 노고산 유격장 700m / 청룡사 1.2km)가 있는 능선마루 안부에 도착을 한 것이 10 : 44분, 직진 등산길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넓은 군사도를 따라 진행하다 다시 안부로 되돌아(10 : 50분경) 와 등산로로 진행을 했다.
11 : 05분, 5750부대 철망 따라 진행, 능선봉에 올랐다 내림 길로 들어섰다.
11 : 17분, 청룡사(靑龍寺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44번지, ☎ 031-840-5086 / 대한불교 법화종 청룡사절) 표지판을 세워 놓은 시멘트 포장 길 안부에 내려섰다. 고개 마루에는 철망 문을 설치되어 있고「한북정맥 청룡사 입구 이정표(노고산 2km / 솔고개 1km , 등산로)」도 세워 놓았다.
[17] 솔고개 가는 길
11 : 20분, 안부 절개지를 올라 1905부대 철망을 따라 오르기를 7, 8분.
11 : 28분, 삼각점봉에 올랐다가 부대 철망을 따라 내림 길로 진행
11 : 40분, 부대(예비군 훈련소) 철망 벗어났는데 길이 희미해지며 정맥 표지기도 보이지 않는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잡목을 헤쳐 나가니 최근에 설치한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사유지라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 마구 넘어갈 수도 없어 부대 철망으로 되돌아 나와 민가 진입로로 진행을 했다.
12 : 00시, 그린교회 앞을 지나 3번 국도(의정부 방향 큰 도로)가 가로지르는『솔고개』에 도착, 박사장이 회수해 온 차에 탑승, 박교장의 안내를 받아「평양면옥(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14번지 ☎ (031) 826-4231(송추)」꿩냉면에 이스리를 반주로 점심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한북정맥 3구간 산행을 마쳤다.
201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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