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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세계일보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김희진 '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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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시끄럽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떠먹는 건 밥이나 국이 아니다. 찌개도 아니고 형형색색의 반찬도 아니다. 그들은 매일 널따란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을 집어먹는다. 유아기 때부터 익혀온 능숙한 수저질로 수많은 말을 집어먹느라 정신없는 그들. 그들 틈에서 나는 늘 혼자다. 그들은 결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탁에 모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혀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식탁에 모인다. 내 눈엔 분명 그렇게 보인다. 음식물을 골고루 섞어 맛을 음미하는 동시에 연속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그들의 혀. 음식물 섭취에 필요한 혀와 말하는 데 쓰이는 혀가 다르다는 듯, 그들은 두 개의 혀를 갖고 있는 사람들처럼 먹으면서 끊임없이 말을 한다. 말을 못하는 너를 대신해서 우리라도 지껄여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식탁에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 중 아버지라는 사람이 잠시 수저질과 얘기를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한다. “오늘은 왜 그렇게 말이 없니?” 그들은 가끔 내가 말을 못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자기들끼리 수다란 수다는 다 떨며 식사를 하면서 예의 없이 나보고는 왜 말이 없냐고 묻는다. 잠시 동안이지만 나는, 내가 벙어리가 아니라 단지 말수가 적은 스무 살의 청년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입에서는 외마디 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다. 짜증이 난 나는 시끄러워서 밥을 못 먹겠어요, 라고 말하려다 관둔다. 말을 할 수 없는 나는 말없이 다시 수저질을 한다. 오늘 식탁에 모인 그들의 혀에 걸려든 사람은 옆집에 사는 ‘마녀’다. 단지 매부리코를 가졌다는 이유로 옆집 노파는 이사온 지 열흘 만에 마녀가 돼버렸다. “자식들이 꽤 잘된 모양이야. 그러니까 저런 큰 집에서 혼자 살지.” “고집은 되게 세 보이던 걸?” “늙으면 느는 건 주름하고 고집뿐이라니까. 당신도 그렇잖아. 아버님 어머님은 또 어떻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동시에 어머니를 쏘아본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노인네가 무슨 놈의 향수를 그리 뿌리고 다니는지,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였어.” “너도 맡아봤니? 싸구려 향수 같진 않던데?” “저런 할망구가 옆집으로 이사 올 게 뭐야.”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식탁 위에 올려진 옆집 마녀는 그들의 혀와 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팔다리가 잘리고 몸통이 잘려 나간 옆집 마녀는 점점 해체돼 가더니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서야 그들의 식탁에서 사라진다. 저렇게 얘기를 하고도 그들의 밥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나는 마냥 신기할 뿐이다. “근데 넌 정말 저 마녀 집에 피아노 쳐주러 갈 거니?” 누나가 내게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 괴팍스런 여자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갈 거야?” 형이 다시 한번 묻는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혀의 저주 같은 말, 말, 말들. 세상이 어지러운 건 그놈의 혀와 혀가 뱉어내는 말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만의 조용한 식사는 오늘도 이렇게 끝이 난다. *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들을 수는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종종 귀를 닫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내가 밤마다 귀를 틀어막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다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암흑의 세계를 상상해본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세계. 온갖 소음이 사라진 태초의 세계. 그런데 그런 생각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잠잠해진다. 이 세상에 하모니의 결정체인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귀가 열려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피아노 앞에 앉힌 건 어머니였다. 말을 못하는 내게 손쉬운 인생을 안겨 줄 사물은 피아노뿐이라고 생각한 어머니. 어머니의 탁월한 선택 덕에 나는 손가락이 나의 언어이자 감정이고 표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넌 반드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돼야 해. 그게 니가 살길이야. 넌 피아노 교습소도 차릴 수 없잖아. 그러니까 일류가 아니면 안 돼!” 어머니는 피아니스트가 못 되면 꼬마 아이들이나 가르치면 되지, 라는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훌륭한 일류 밥벌이로 성장해야 했다. 하지만 내겐 대개의 일류 음악가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던 그 천재성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내게 필요한 건 피나는 연습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친구는 오로지 피아노뿐이었고, 나의 언어는 피아노 소리였으며, 피아노만이 내 미래의 생계 수단이었다. 마녀는 내 피아노 연주가 꽤 맘에 드는 눈치다. 내 연주가 시작되면서부터 마녀는 시도 때도 없이 놀려대던 혀를 입속에 뭉개고 있다. 혹시 마녀가 내게 또 말을 걸까봐 나는 연주에 심취한 듯 한 번씩 눈을 감아준다. 날카로운 마녀의 목소리는 꽤나 신경에 거슬렸다. 첫 대면 시 마녀는 우리 집 한 끼 식탁에 모일 법한 말을 혼자서 쏟아 냈다. 자식들과 죽은 남편에 대한 얘기, 오랜 세월 간직해온 버릇과 좋고 싫은 사물과 사람에 대한 얘기 등 끝이 없었다. 마녀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마녀는 말을 못하는 나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내가 말을 못한다는 사실에 마녀는 내가 해야 할 말까지 찾아내느라 더욱 부지런히 혀를 놀려야 했다. 나와 마녀 간의 의사소통은 의외로 쉬웠다. 마녀는 뭐든 내게 질문을 던졌고 내가 해야 할 대답을 마녀 스스로 찾아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나이는 몇 살인가? 스물 둘?” 그러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스물 하나?” 나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스무 살이겠네.” 나는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말을 못하게 된 거야?” 마녀는 내 표정을 보더니 단번에 쯧쯧쯧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그래서 피아노를 가르친 거로군. 뭐 그다지 나쁜 선택 같진 않네. 근데 돈은 벌어서 뭐하게? 사고 싶은 거라도 있나보지?” 내가 바로 고개를 가로젓자 마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모양이야. 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외국으로 나가야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녀는 뭐든지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 사람에 대한 통찰력은 점쟁이 수준에 가까웠다. 나는 집에서도 모자라 말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게 좀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사실 이만한 아르바이트도 없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가면 되니 내겐 몸에 딱 맞는 아르바이트였다. 보수는 마녀가 자기 집 울타리에 써 붙여놓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내 연주 실력을 보고 난 마녀는 보수를 더 올려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이 정도 돈으로 살 순 없지. 난 도둑년이 아니거든.” 어머니의 혜안대로 피아노는 나의 좋은 밥벌이가 돼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 연주에 푹 빠져 있던 마녀가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난다. 자신의 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다가온다. “내 혀가 이상해. 학생, 잠깐 내 혀 좀 봐줄 테야?” 나는 잠시 연주를 멈추고 근사한 그랜드 피아노에서 일어난다. 마녀는 내 얼굴 앞으로 혀를 잔뜩 늘여 빼고는 “에!” 하고 소리를 낸다. “혀가 좀 이상해 보이지 않나? 혀에 있는 기운이 몽땅 빠져나간 것 같은 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혀에 이상 징후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백태가 낀 것처럼 조금 창백해 보이는 것 말고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혀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게 왠지 느낌이 이상해.” 마녀는 손으로 혀를 비틀고 꼬집어본다. 나는 혀가 아무렇지 않다는 뜻을 또 한번 전달하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마녀를 위한 연주를 계속한다. 마녀는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어 입 안 가득 털어 넣는다. 잠자고 있는 혀를 깨우려는 듯한 몸부림에 웃음이 나온다. 나처럼 말을 못하게 될 일도 없을 텐데, 마녀는 지나치게 호들갑이다. 마녀는 정말로 말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태어나 한번도 말을 해보지 못한 나는 말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알 수 없다. 그러니 마녀의 지금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마녀는 얼음을 입에 물고 소파에 눕는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마녀는 마치 지휘자라도 되는 양 한쪽 팔을 허공에 휘젓는다. 이 연주가 끝나고 나면 마녀는 또 나를 붙들고 무슨 말이든 하려 들 것이다. 칠십 년 넘게 살아온 마녀에겐 칠십 년만큼의 얘깃거리가 있다. 아, 세상엔 왜 말이라는 게 생겨난 걸까. * 길 건너 앞집 지붕에 고양이가 앉아 있다. 피아노 연습 중이던 나는 창가로 다가가 얼굴을 내민다. 앞집에는 철학 교수가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저 고양이를 철학자의 고양이라고 부른다. 철학자의 고양이는 집에서 양육됐지만 하는 짓은 꼭 들고양이 같았다. 집에 충분한 먹거리가 있음에도 저 고양이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녔다. 지금처럼 지붕에 앉아 있거나 밤마다 지붕과 지붕 사이를 배회하기도 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지붕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혼내주기 위해 철학자는 매일 밖으로 나와 돌멩이를 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 내려오지 못해! 망할 놈의 고양이. 넌 들고양이가 아니란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가 순순히 지붕에서 내려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고양이는 상관하지 말라는 듯 철학자를 향해 앙칼지게 야옹댔다. 철학자와 철학자 고양이와의 신경전은 그래서 늘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철학자가 집에서 나온다. 철학자는 들고 나온 두꺼운 책으로 챙을 만들어 햇빛을 가린다. 키가 작은 철학자는 까치발을 들고 지붕을 올려다본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철학자는 지루하게 두꺼운 책만 읽는다. 철학자의 고양이는, 수많은 관념들로 들어차 있을 것 같은 저 두꺼운 책에 머리를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철학자가 돌멩이를 주워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향해 던진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썩을 놈의 고양이 앞으로 밥을 주나 봐라.” “다신 집에 못 들어오게 할 거야.” “너 같은 놈은 벼락 한번 맞아 봐야 해.” “그럴 바엔 아예 집에서 나가버려.” 고양이에게 그렇게 많은 독설을 퍼부어대던 철학자가 오늘은 웬일로 조용하다. 고작 한숨만 짓고 말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집 아침 식탁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옆집 마녀 집에 다녀온 뒤라 적어도 마녀에 대해 물어봤을 식구들이 하나같이 조용했다. 모두들 말하는 데 지쳤다는 표정으로 나처럼 조용히 식사를 끝냈다. 처음엔 식구들이 정신을 차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십 년이 흐른 오늘에서야 혼자 말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나의 외로움을 이해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식사 예절이 뭔지 알게 된 것 같아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조용한 식탁은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설마 그렇다고 그 조용한 분위기가 오늘 저녁 식탁에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십 년 넘게 이어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었다. 돌멩이에 맞은 철학자의 고양이가 털을 곧추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양이는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반대편 지붕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때서야 철학자가 입을 벌린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목을 부여잡고 소리를 내지르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 같은데도 소용이 없다. 이 삼복더위에 목감기라도 걸린 걸까? 왜 그러시냐고 물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철학자가 날 쳐다봐 준다고 해도 나는 철학자와 대화를 할 수 없다. 우리 집 식구들 말고는 이 동네에서 수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말이 나오지 않는 철학자의 모습은 무척 답답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도 저렇게 답답해 보이겠지? * 불길한 징조처럼 보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식탁이라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집과 이 집에 있는 널따란 식탁에 매일같이 모이는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었다. 나 보란 듯 예의 없이 떠들어대며 식사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왜 이리 조용한 걸까. 나한테 시위라도 하는 걸까. 조용한 식탁이 얼마나 숨막히고 음식 맛을 떨어뜨리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아니면 시끄러워서 밥을 못 먹겠다는 내 마음속 푸념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걸까. 이때 다행스럽게도 누나가 말을 한다. “요즘 내 혀가 좀 이상해. 혀 속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야.” 마녀가 했던 말을 누나가 똑같이 한다. “어머, 너도 그러니? 나도 그런데.” 덩달아 어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이어서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모두 맞장구를 친다. “설마 이 젊은 나이에 혀에 암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누나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진다. “아무리 재수대가리 없는 집안이라도 온 식구가 그런 몹쓸 병에 걸리기야 하겠니?” 아버지가 누나의 방정맞은 생각을 잠재운다. 아버지를 거들어 나는 수저를 놓고 누나에게 수화로 말한다. ‘옆집 마녀도 그러던 걸? 자기 혀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누나처럼 혀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고 그랬어.’ 내가 먼저 마녀 얘기를 꺼내자 식구들은 그제서야 마녀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식구들의 혀가 다시 활기를 찾은 것 같아 불길한 기운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다. 나는 마녀 집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조목조목 얘기한다. 손을 움직이며 얘기해야 하는 터라 밥은 먹을 수가 없다. “정말 재수 없는 여자구나.” “고고한 척하기는.” “별로 친구하고 싶지 않은 할망구야.” “날카로운 목소리일 것 같더라니까.” “저 마녀 때문에 우리 혀가 이상한지도 몰라. 봐, 내가 왠지 불길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말을 하는 식구들의 이마에서 일제히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에어컨디셔너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식구들에게 왜들 그렇게 땀을 흘리는 거냐고 묻는다. “모르겠어. 말하는 게 힘들어. 할아버지도 그러세요?” “좀 그렇구나.” “혹시 이 동네에 이상한 전염병 같은 게 도는 건 아닐까? 성대나 혀에 침투되는 바이러스 같은 거 말이야.” 형이 힘겹게 말을 한다. “저 마녀가 원흉이라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꾸나. 솔직히 우린 밥 먹을 때 너무 말이 많았잖니.” 할아버지의 말을 끝으로 식탁은 다시 조용해진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식탁에서의 나는 외롭지 않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 방으로 올라간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는다. 고요한 세계로 막 빠져들려는 순간 누나 방에서 비명소리가 난다. 이어 엄, 엄마!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각자 제 방에서 달려나온 식구들이 누나 방으로 올라온다. 누나가 거울 앞에 머리를 움켜쥐고 서 있다. “내 혀가 없어졌어! 내 혀가 안 보인다구!” 어머니가 누나가 벌린 입속을 들여다본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멀쩡하게 있는데.” “아니야 없어.” 누나가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본다. “어? 이상하다. 분명 혀가 사라지고 없었는데.” “강박증 때문일 거야. 혀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망상까지 하게 되는 거라구.” “정말 혀가 사라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현석이처럼 말을 못하게 되겠지?” 누나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떠는 누나를 위해 말을 못해도 불행한 건 하나도 없다고 얘기해준다. ‘그리고 혀가 사라졌으면 온 식구들이 몰려올 정도로 누나가 비명을 지를 수 있었겠어? 엄마, 라고 외칠 수나 있었겠냐구.’ 내 말에 누나가 진정하는 눈치다. 식구들은 누나의 엉뚱한 환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고요한 밤이다. 식구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귀뚜라미와 매미 울음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온다. * 마녀의 집에서 두 시간째 피아노를 치고 있는 중이다. 컨디션이 안 좋은 마녀는 연주를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마녀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 마녀의 입을 가리키며 좀 어떠냐는 제스처를 내보였다. 마녀는 더 심해졌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식구들도 그렇고 마녀도 그렇고 철학자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옆집 밤무대 가수의 노랫소리를 들어본 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내리 두 시간째 소파에 누워 있던 마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녀가 힘겹게 말을 한다. “학생, 저기 좀 봐.” 마녀가 손으로 바깥을 가리킨다. 공중에 이상한 것들이 떠다닌다. 그럴 리는 없지만 붉은색 타원형을 한 그것들은 마치 혀처럼 보인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마녀는 예수가 내려보낸 성령이라며 놀라워한다. 마녀는 즉시 맨발로 뛰쳐나가더니 잔디밭에 엎드려 절을 한다. 마녀 뒤를 쫓아 나도 연주를 멈추고 밖으로 나간다. 마녀 말대로 진짜 성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오싹해진다. 이때 한 차례 절을 하고 일어선 마녀의 입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그러더니 그것 또한 공중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역시 붉은색 타원형이다. 방금 마녀 입에서 빠져나간 것을 마녀도 봤을까? 다급한 마음에 바지 뒷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든다. 수첩과 펜은 수화를 알아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늘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수첩에 방금 저거랑 똑같이 생긴 게 입에서 빠져나갔는데 보셨어요? 라고 쓴다. 마녀는 약간 겁에 질린 듯 양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마녀의 입에서 붉은색 타원형이 빠져나간 즉시 마녀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마녀에게 내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 보인다. 내 제스처를 알아먹은 마녀가 입을 크게 벌린다. 나는 마녀의 입속을 들여다본다. 짐작대로 마녀의 혀가 사라지고 없다. 손과 발 다음으로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기관인 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어제 누나가 본 게 환각이 아니었단 말인가.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혀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난 마녀는 망연자실해 있다. 이때 공중에서 마녀의 것과 닮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그것은 방금 전에 빠져나간 마녀의 혀가 분명했다. 마녀가 내게 했던 말들, 마녀 혼자 중얼거렸던 말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했었을 마녀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어 다른 혀에서도 낯선 목소리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목소리는 섞이고 섞여 웅성거림으로 변한다. 마치 군중 속에 묻혀 있는 듯한 기분이다. 마녀는 자신의 말이 쏟아져 나오는 혀를 낚아채려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뛴다. 늙은 몸에 달린 검버섯투성이의 팔을 힘껏 뻗어보지만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그나저나 공중에 떠다니는 저것들은 혀가 분명한 걸까. 나는 귀를 틀어막고 집으로 돌아간다. * 공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혀와 말들이 떠돌아다닌다. 혀의 개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다. 공중에 떠다니는 혀들이 많아질수록 말을 못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말 못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오히려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아진 혀들이 메뚜기 떼처럼 항시 몰려다니기 때문이었다. 밤낮없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귀를 따갑도록 괴롭혔다. 혀들이 잠시 다른 곳에 머물러 있으면 그나마 동네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철학자 고양이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자동차 소리, 혹은 내 피아노 소리만이 적요한 동네를 떠돌아다녔다. 이제 그런 소리들은 소음 축에도 끼지 않는, 잔잔한 소리처럼 들렸다. 이제 식구들도 나처럼 말을 못하게 됐다. 처음에 식구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것들이 혀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저건 뭐지?” “글쎄, 새는 아닌 것 같은데 뭐죠?” 내가 혀라고 말했지만 모두들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어넘기기만 했다. ‘마녀 입에서 빠져나간 혀를 내가 직접 봤다니까요. 지금 마녀 혀는 사라지고 없다구요. 그때 누나가 본 게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구요.’ 명백한 내 주장은 보기 좋게 묵살당했다. 하지만 식구들도 곧 혀가 사라져 말을 못하게 됐고 주변 사람들까지 말을 못하게 되자 식구들은 내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현석이 말이 맞았어. 저건 분명 혀야. 생김새도 비슷하잖아. 저게 혀가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 혀는 어디에 있겠어? 게다가 말 못하는 사람이 늘수록 저것들도 늘어나고 있다구.’ 아버지가 수화로 말했다. ‘그럼 저 혀들 중에 우리 것도 있겠네요?’ ‘그렇지.’ 아버지는 나를 제외한 식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년간 써온 내 수화 덕에 그나마 우리 가족들은 손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위해 가족들이 일부러 수화를 배운 건 아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내게서 익힌 수화가 쌓이고 쌓여 자연스레 손으로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동시통역사가 꿈이었던 누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옆집 밤무대 가수 또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개강을 앞둔 철학자도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을 못하게 된 것을 모두 마녀 탓으로 돌렸다. 마녀가 이 동네로 이사오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급기야 어제는 마녀를 쫓아내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동네 사람들은 화이트보드에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했다. 말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열다 보니 진행 상황은 더디고 답답하기만 했다. 의견은 분분했다. 마녀 짓이라는 사람과 아니라는 사람, 또 다른 원인이 있을 거라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 ‘저 어르신 때문이라면 어르신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혀도 있어야 하구요.’ 누군가가 반박했다. ‘단순하기는. 자기가 한 짓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 자기도 뛰어든 거죠.’ 동네 사람들은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서로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동네 사람들은 마녀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그때 나는 한창 피아노 연주 중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마녀의 현관문에 돌을 던졌고 울타리를 발로 마구 걷어찼다. 느닷없는 난동 소리에 마녀와 나는 밖으로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당신이 이사온 이후로 사람들이 말을 못하게 됐다. 어서 이 동네를 떠나라!’라고 쓰여 있었다. 마녀의 혀가 공중으로 빠져나간 걸 직접 목격한 나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썼다. ‘혹시 이 할머니가 말하는 거 보셨나요? 가까이에서 지켜본 저도 외마디 소리 한번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며칠 전에 이 할머니 입에서 혀가 빠져나가는 걸 직접 봤습니다. 물론 그때 할머니도 무척 놀랐죠.’ 동네 사람들은 오리지널 벙어리인 저 청년이 거짓말할 리는 없어, 라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평소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말 못하는 착한 청년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으레 그래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럼 입을 벌려 보세요.’ 좌장이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다. 마녀가 동네 사람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려서 보여주었다. 마녀의 혀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난 동네 사람들은 겸연쩍게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마녀가 입을 다무는 동시에 한 아주머니가 좌중 앞으로 나왔다. 아주머니는 보드에 빠르면서도 또박또박하게 글자를 써나갔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 할머니 때문은 아닌 것 같네요.’ 사람들은 이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몇 시간 동안 보이지 않던 혀들이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혀의 수는 어제보다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차츰차츰 동네 사람들 가까이 다가온 혀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먹구름이 낀 것처럼 사위는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머리 위로 몰려든 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네 사람들은 일제히 귀를 틀어막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흩어져 사라진 뒤에도 마녀와 나는 혀들을 쳐다봤다. 마녀는 자신의 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가끔은 저렇게 혀들이 몰려와 있어도 그다지 시끄럽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건 왜 그럴까요?’ 나는 수첩에 글자를 적어 마녀에게 내밀었다. 자신의 혀에서 쏟아져 나온 말을 목격한 바 있는 마녀는 말했다. ‘저 혀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혀의 주인이 했던 말들을 쏟아내고 있어. 말수가 적은 건 아마 혀의 주인이 잠들었던 새벽녘이기 때문일 거야.’ 마녀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혀들이 왠지 조용하다 싶을 때면 코 고는 소리가 유독 많이 들려왔다. 취객들의 혀 꼬부라진 소리나 싸우는 소리는 분명 밤의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남자와 여자들의 성교 시 질러대는 신음 소리는 얼굴을 붉힐 정도로 본능을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공중에서는 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나 혼잣말이 무방비로 방출되고 있는 셈이었다. 따지고 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거대한 불법 도청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머지않아 지금까지 감춰졌던 추악한 비밀이나 사건들이 누설되고 탄로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동네 한복판에서 조용한 싸움이 벌어진다. 장씨 부인과 최씨 부인이 각자 화이트보드를 들고 서 있다.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그들은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유인즉, 오밤중에 혀 하나가 장씨 집에 머물다 간 모양이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혀들 중엔 개인 행동을 일삼는 녀석들이 있었다. 며칠 전 우리 집에도 그런 혀 하나가 나타났다 사라진 적이 있었다. 술집 사장으로 짐작되는 목소리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물을 적당히 타야지 안 그러면 뽀록난다구. 저놈들 표정 봐라 표정. 쇠고랑을 차도 내가 찰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 이건 다 손님들을 위한 배려라구. 독한 술 마셔서 좋을 거 뭐 있냐? 위에 빵구나 나고 간이나 굳지. 안 그래? 우린 국민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애국자야.” 형은 그 혀를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워낙 민첩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잡을 수는 없었다.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조용한 싸움판으로 달려간다. ‘당신 목소리를 닮은 수상한 혀가 우리 집에서 한참 지껄이다 갔다구!’ 장씨 부인은 어젯밤 자기 집에 머물다 간 그 혀의 목소리가 최씨 부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대해 최씨 부인은, 저렇게 많은 혀들 중에 나 같은 목소리가 나 하나뿐이겠냐며 반박한다. ‘당신이 우리 남편 엉덩이에 사마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남의 얘기를 그렇게 하고 다니면 안 되지.’ 장씨 부인이 최씨 부인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어디다 대고 삿대질이야 삿대질은.’ ‘말해봐. 당신 우리 남편이랑 붙어먹었지!’ ‘당신 남편한테 물어보면 알 거 아냐. 그리고 엉덩이에 사마귀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당신 남자 하나뿐이겠어!’ ‘하나라면 어쩔 건데?’ ‘난 몸에 사마귀 있는 남잔 딱 질색이야. 근데 징그럽게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그 짓을 해.’ ‘뭐가 어째! 징그러워?’ 동네 여자들의 싸움은 좀체 흥이 나지 않는다. 여자들은 글자 쓰는 데 바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길 여력도 없다.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말을 즉시 맞받아치는 흥미진진한 설전은 아쉽게도 펼쳐지지 않는다. 싸움은 음이 소거된 슬로 모션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어쩌면 어젯밤 장씨 부인 집에 머물다 간 그 혀는 최씨 부인과 닮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최씨 부인 말대로 엉덩이에 사마귀가 있는 남자는 세상에 적어도 둘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책을 읽는다. 아무 말도 못하는 집 안은 조용하다. 간간이 들리는 건 내 피아노 소리뿐이었다. 식사 시간엔 오직 식사만 했다. 음식물을 골고루 섞어 주던 혀가 없어서 밥을 먹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게다가 혀와 함께 달아난 미각세포 때문에 맛을 느낄 수도 없었다. 음식 먹는 일은 굶어죽지 않기 위한,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귀찮은 일이 돼버렸다. 요즘은 텔레비전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가끔 배경음악만이 흘러나올 뿐 앵커나 엠시나 연기자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위성에서 재방영되는 프로그램에서만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규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말 대신 자막이 떴다.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기 때문에 텔레비전 보는 일은 아주 귀찮아졌다. 라디오에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일 음악만 내보냈다. 디제이와 게스트들 간의 잡다한 얘기가 듣기 싫어 라디오를 멀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라디오만 찾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누나였다. 누나는 요즘 공중에 떠다니는 혀를 보며 세계 공용어는 수화가 될지도 몰라, 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누나는 한 차례 혀들이 몰려오면 긴 밀걸레 자루를 들고 나갔다. 누나는 혀를 향해 자루를 마구 휘두르며, 어렵게 들어간 국제통역학과였는데 너희들이 다 망쳐놨다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원래 벙어리였던 나만이 잃은 거 하나 없이 그대로인 것 같았다. 혀 떼가 몰려온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갖가지 말들이 들린다. 듣지 말아야 할 말도, 비밀스런 말도, 친절한 말도, 악의에 찬 말도 들린다. 그래서 정치나 경제계 권력자들은 비밀리에 이루어진 대화 내용이 혹시 새나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남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관음증의 소유자들은 은근히 혀 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쪽은 혀 떼로 열광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들 때문에 두려움과 근심에 휩싸였다. * 옆집 밤무대 가수가 죽었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가수는 생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동네 사람들은 자살한 게 분명하다고 수군덕댔다. ‘마흔 살을 넘기고도 결혼 한번 못했는데 거기다 입에 거미줄까지 치게 생겼으니 살고 싶었겠어.’ 사람들은 일제히 혀를 차고 싶었지만 혀가 없어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물론 그런 말들은 모두 화이트보드에 나열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수첩과 펜을 휴대하고 다니듯이 화이트보드와 보드마커를 갖고 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하기도 했다. 간단한 대화 시에는 휴대폰이 아주 용이했다. 몇 년간 휴대폰을 소지하고도 문자 기능에 대해 관심 없어 하던 나이 든 사람들까지도 문자 연습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통화가 불가능하니 문자 기능 말고는 휴대폰이 딱히 쓰일 만한 데도 없었다. 백차와 구급차가 요란한 경광등 소리를 내며 가수의 집 앞에 선다. 밤무대 가수의 죽음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앞집에 사는 철학자였다. 철학자는 밤무대 가수의 집 지붕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잡으러 갔다가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고 했다. 학자다운 품위를 가진, 점잖은 철학자가 남의 집 울타리를 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철학자의 진술은 필담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자살은 아니란 얘기죠?’ ‘네.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래도 불렀어요. 분명 고미숙 씨 노랫소리였습니다.’ 철학자는 혀 하나가 가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 혀는 고미숙 씨 혀가 분명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혀가 무슨 말을 했나요?’ ‘라이브도 안 되는 너희 같은 것들은 죽어야 해! 너같이 노래도 못하는 게 이런 데서 밥 벌어먹고 살겠어? 내가 최고야. 나 말고 모든 가수들은 목소리를 잃어버려야 해! 돈만 두둑하면 알몸으로도 노랠 부른다며? 너 같은 싸구려들이 이쪽 물을 다 흐려 놓는 거야! 뭐 대충 이런 말들이었습니다.’ ‘근데 그 목소리가 정말 고미숙 씨 본인 목소리였단 말이죠?’ ‘그렇다니까요.’ 그러다 밤무대 가수는 혀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른 혀들이 몰려왔죠.’ 가수의 혀를 비롯한 스무 개가량의 혀들이 가수를 괴롭혔고, 혀들의 공격을 피하려다 그만 가수는 뒤로 넘어졌다고 한다. 밤무대 가수는 커피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고, 철학자가 집으로 달려 들어갔을 땐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철학자의 진술대로라면 범인은 혀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밤무대 가수 본인의 혀였다. 사건 현장이 카메라에 찍히고 밤무대 가수가 들것에 실려 나온다. 흰 천에 가려 가수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다시 목소리를 찾게 되더라도 앞으로 저 밤무대 가수의 노랫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혀가 살인을 일삼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글쎄, 혀가 사람을 죽였대. 혀가 하는 말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도 있어.’ 벙어리가 돼버린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문은 발 없이 잘도 돌아다녔다. 밤무대 가수의 사인을 실족사로 처리한다 해도 엄연히 혀라는 피의자가 있었다. 그래서 혀는 잠재적 살인범으로 지목되었다. 공중에 떠다니는 그것들은 이제 단순한 혀가 아니었다. 혀가 하는 말 또한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이제 혀 떼는 사람들의 목숨을 해칠 수도 있는 칼이나 독약과도 같은 것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앞으로 단단히 귀를 막고 다녀야겠다고 했다. 내가 밤마다 귀를 틀어막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암흑의 세계를 상상하듯이, 사람들은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세계, 온갖 소음이 사라진 태초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듯 보였다. * 혀 떼 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다른 지역에서도 밤무대 가수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혀가 저지른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어떤 말을 했었는지 하나씩 반추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애써 태연한 척 생각했다. ‘그래, 내 혀는 나를 죽일 만큼 그렇게 잔인하진 않았어. 흥! 얼마든지 올 테면 와보라지.’ ‘이래 봬도 난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해본 사람이라구. 난 꿀릴 거 하나 없어!’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혀가 집 안으로 들어올까 봐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혀 떼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런다고 해서 들어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최대한 혀 떼의 소리를 외면하려 했다. 자기 앞에 자신의 혀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못한 일부 사람들은 혀를 죽여버리자고 제안했다.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자구요.’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혀를 죽임으로써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혀의 복수가 일어난다면 큰일이었다. 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생각보다 지능적이고 잔인한 녀석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 마녀가 마당 잔디밭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긴 대나무도 보인다. 대나무 끄트머리엔 큼지막한 모기장이 달려 있다. 잠자리채였다. 내 의아한 표정을 보더니 마녀가 수첩에 글자를 쓴다. ‘저 혀를 잡아야겠어. 잡아 삼키면 나도 다시 말을 하게 될지 모르잖아.’ 마녀도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떤 남자가 우연찮게 혀를 잡아 먹었는데 다시 말을 하게 됐다는 소문이 밤무대 가수의 사망 사건 이후 떠돌아 다녔다. 근데 공교롭게도 그 남자는 본래 자기 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혀를 삼켰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혀를 갖게 된 그 남자는 가끔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수상한 말을 지껄이고 다닌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말투와 억양과 말본새를 갖게 된 남자. 다른 사람 혀의 지배를 받게 된 남자는 점점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급하게 저질러진, 생각 없는 행동이 결국 화를 부른 셈이었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에요.’ 나는 마녀에게 충고한다. ‘혹시 다른 사람 걸 먹게 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구요.’ 그래서 마녀는 꼭 자기 혀를 찾을 거라고 한다. 저렇게 많은 혀 중에서 어떻게 자기 걸 찾겠다는 건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게, 아니 우주에서 먼지 하나를 찾는 게 더 쉬워 보였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찾아내실 건데요?’ ‘이 잠자리채로 혀를 잡은 다음 귀에 갖다 대보는 거야. 자기가 한 말이나 목소리는 자기가 더 잘 아는 법이거든.’ 마녀는 다 만들어진 잠자리채를 들고 허공을 향해 휘두른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 전의를 다지는 사병처럼 의지가 굳어 보인다. 혀를 삼킨 남자의 얘기가 떠돌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혀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위기 상황을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이제는 자기 앞에 자기 혀가 나타나기만을 은근히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말을 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은 아무거나 잡아 먹을 심산이었다. 소문대로 다른 사람의 혀가 자기를 지배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거였다. 그들은 인간을 지배하는 건 머릿속 뇌지 그깟 혀가 아니라며, 혀 또한 뇌의 지배를 받는다는 상식을 굳게 믿으려 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그게 누구 혀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어.’ 확고한 자기 암시를 거친 사람들은 혀를 잡아 먹기만 하면 다시 말을 하게 된다는 사실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굳이 말을 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혀 잡기에 나선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중엔 제대로 된 키스를 하고 싶다거나 맛을 음미하며 음식을 골고루 씹어 먹고 싶다거나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누구 혀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혀떼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제자리에 서서 있는 힘껏 몸을 띄워 잠자리채를 휘두른다. 기동성이 뛰어난 혀라지만 잠자리채를 피해 가진 못한다. 한 젊은 사내가 잠자리채에 잡힌 혀를 꺼낸다. 혀는 어망에 걸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팔딱댄다. 사내가 혀를 삼킨다. 사내 입에서 사내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 목소리가 나온다. 한 노파의 입에서는 남자아이 목소리가 나오고, 젊은 처녀의 입에서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어가 튀어나온다. 한 중년 남자는 연신 응애응애, 하고 울어댄다. 그 틈에서 마녀는 신중히 자신의 혀를 찾고 있다. 수많은 혀가 마녀의 귀를 스쳐 지나간다. 정말 요원해 보이는 일을 마녀는 차분히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혀를 잡아 먹는 게 좋은 건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 마녀는 아직도 자신의 혀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몇몇 사람들은 자기만의 목소리와 말을 가졌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빈번하게 자신의 신분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언어가 뒤죽박죽 섞여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서 수상한 얘기가 튀어나오자 직접 경찰서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범죄를 모의하는 듯한 말이었는데, 경찰은 그것을 토대로 미제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야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혼돈의 일부일 뿐이었다. 소문대로 혀를 잡아먹은 사람들은 혀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부는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았다. 당분간 혀를 잡아 먹지 말라는 게 그것이었다. 막무가내로 저질러지는 이기적인 행동에 모두가 피해자라는 인식을 심어줬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자신들이지 타인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아직 혀를 잡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 식탁은 여전히 조용했다. 식구들도 마녀처럼 원래 자기 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뜻이 전달되어 정부는 가칭 ‘혀 찾아주기 운동본부’라는 기구를 창설할 계획이었다. 다른 나라와 연합해 범세계적인 기구로 확장해 나갈 구상이라고도 했다. 우선은 혀가 진짜 주인에게 돌아가 언어가 섞이고 사적인 말이 노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뜻이었다. 무엇보다 정부로서는 비리 덩어리 인사들의 혀가 무슨 무슨 연대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잡아 먹히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혀가 저지르고 다니는 범죄 행위도 더 이상 묵과해 둘 순 없다고 했다. 그 이면엔 국내 정치나 외교에 미칠 파장을 염두에 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일명 ‘소리수집가’라는 작자들의 협박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거래목적용으로 제작된 테이프에는 비밀스런 말들이 담겨 있었다. 물론 혀 떼가 쏟아낸 말을 채록한 테이프였다. 중구난방 격으로 쏟아지는 말이라도 한 목소리만 집중해 따라가다 보면 내용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디지털화되고 첨단화된 녹음기기와 편집기술도 이에 한몫 거들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을 호기로 만들려는 사람들 때문에 정·관계는 물론 경제·언론계까지 그 파장은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마녀의 집으로 간다. 피아노를 쳐주러 가는 게 아니라 마녀의 혀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자신의 혀를 찾아주면 마녀는 더 많은 보수를 내게 주겠다고 했다. 이미 다른 사람이 마녀의 혀를 먹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앞으로 마녀를 위해 혀를 찾아야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정부가 혀를 찾아줄지 모른다는 내 말도 마녀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내 말하고 목소리는 내가 더 잘 알아. 게다가 그때까지 언제 기다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이 늙은이 목숨이야.’ ‘그래도 너무 불가능해 보여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어. 자, 가지.’ 마녀가 앞장선다. 나는 마녀가 손수 만들어준 잠자리채를 높이 쳐들고 마녀 뒤를 따른다. 마녀는 자신의 목소리와 비슷한 게 잡히면 일단 자기에게 건네라고 했다. 밖에는 여전히 혀를 잡아 먹겠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마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력에 확신을 갖고 있거나 혀의 다른 기능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면 마녀처럼 자신의 진짜 혀를 찾으려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여기 모인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나와 마녀는 혀 떼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혀 떼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와 마녀 앞으로 철학자의 고양이가 유유히 걸어간다. 잠시 걸음을 멈춘 고양이가 꼬리를 곧추세우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당장 내려오지 못해! 망할 놈의 고양이. 넌 들고양이가 아니란 말이야!” “썩을 놈의 고양이 앞으로 밥을 주나 봐라.” “다신 집에 못 들어오게 할 거야.” “너 같은 놈은 벼락 한번 맞아 봐야 해.” “그럴 바엔 아예 집에서 나가버려.” 나는 주위를 둘러본 다음 새끼손가락으로 내 귓속을 후벼 판다. 그럴 리가 없다. 고양이 입에서 철학자의 말과 목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나는 마녀에게 저 고양이가 말하는 거 들었냐고 묻는다. 마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고양이가 자기 주인인 철학자의 혀를 삼켜버리다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 모양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럼 앞으로 철학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 혀를 잡아 먹더라도 다른 사람의 혀를 먹어야 하나? 저러다 철학자가 지붕 위에 앉아 있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철학자의 고양이는 그 수많은 혀 중에서 어떻게 철학자의 혀를 잡아 먹게 된 걸까. 혀 떼가 몰려온다. 마녀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수첩에 뭐라고 끼적인다. ‘학생, 저런 하찮은 동물도 말을 갖게 됐잖아. 그러니까 학생도 저 무리 중에 아무거나 잡아 먹어. 혹시 알아? 학생도 말을 하게 될지.’ 정말 나도 저 혀를 잡아 먹으면 철학자의 고양이처럼 말을 하게 될까. 나도 식탁에서 식구들과 잡다한 수다를 떨면서 식사할 수 있을까. 혀의 저주 같은 말, 말, 말을 하게 될까. 때마침 혀 떼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간다. 나는 마녀와 함께 잠자리채를 들고 혀를 잡는다. 말을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을 위해 혀를 잡는다. 잠자리채에 혀 몇 개가 걸려든다. 아주 싱싱해 보이는 혀 하나를 꺼낸다. 나는 누구 것인지도 모를 그 혀를 입으로 가져가려다, 만다. 내 손에서 벗어난 혀는 다시 허공을 맴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