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르츠부르크는 마인강변에 위치한 프랑켄 지방의 중심도시이며, 프랑켄 와인 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풀잎'이란 뜻의 뷔르츠와 '언덕 위에 있는 성'이란 뜻의 부르크가 합쳐진 '풀잎이 많은 언덕 위에 있는 성'이라는 이름대로 도시에 들어서면 마인강변 언덕 자락을 따라 펼쳐진 푸른 와인밭이 인상적인 곳이다.
뷔르츠부르크는 '독일의 프라하'라고 부를 정도로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룬 도시이다. 원래 기원전 켈트족이 모여 살던 곳으로 문헌 상으로는 704년에 처음 이 곳이 등장하는데, 10세기경 주교가 신성로마제국의 영주로서 이 지역을 관할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켄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고, 16세기에는 대학이 세워졌으며
17~18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 중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모짜르트가 말년에 이 곳에 들렀다가 도시의 강렬한 인상에 반해 눌러앉아 일년 동안 지냈던 곳이기도 하며, 헤르만 헷세도 이 도시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부러워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뷔르츠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도시 중의 하나이며, 로마로 가는 주요도로였던 로만틱 가도가 시작되는 곳으로 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뷔르츠부르크는 도시의 역사의 무게와는 대조적으로 개방적이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예술과 문화와 프랑켄 와인이 뷔르츠부르크의 삶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며, 16세기에 대학이 설립된 대학도시여서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뷔르츠부르크 시내는 이곳 출신인 독일의 유명한 조각가 틸만 리멘슈나이더의 Collection 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그의 조각예술품들이 레지덴츠 궁전, 성당, 구시청사 등 중세의 건축물과 첨탑들과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대성당 박물관은 천년에 걸친 회화와 조각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옛 항구에 위치한 Kulturspeicher
미술관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현대 미술 작품들로 유명한 곳이다.뢴트겐이 X-ray를 발명한 연구소도 이곳에 있다
마인강변 언덕 위에 위치한 마리엔베르크 요새는 기원전 1000년경 켈트족의 성채가 있었던 곳으로 13세기 중엽부터 18세기 까지 주교의 관저로 사용된 곳이다. 706년에 지어진 성내의 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의 하나라고 한다. 요새의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뷔르츠부르크의 전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마리엔베르크 요새와 함께 뷔르츠부르크의 랜드마크인 레지덴츠궁전은 1719년 뷔르츠부르크의 영주였던 주교의 지시로 당대의 유명한 건축, 조각, 회화 전문가들이 모여 약 35년 간 지어진 건축물로, 나폴레옹 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관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궁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2층 계단의 방 천정에 그려진 세계 최대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는데 실제로 보니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궁전 뒤편의 정원은 바로크양식의 궁전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우아한 로코코 풍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뷔르츠부르크는 1945년1300년의 역사도시가 단 20분만에 연합군의 융단폭격을 받고 90%이상 파괴되어진 도시입니다. 건물 28000여개중 20000여개가 파괴되어지고 인구 10만의 도시에 단 20분만에 5000여명만 살아남게 됩니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뷔르츠부르크 궁전 ( Wurzburg Residence : 문화, 1981 )
독일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주교관.
소재지 : 독일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크
시대 : 1720∼1744년
바로크양식의 영주 주교 관저로서 유럽의 건축가와 화가들이 1720∼1744년에 건설하였다.
남쪽과 북쪽에 익동(翼棟)을 가진 ㄷ자 모양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안에는 안뜰 4개가 있고 북쪽 익동 앞에는 '명예의 안뜰', 남쪽과 동쪽 건물의 파사드 앞에는 '황제정원'이 있다. 남익동과 북익동은 각각 길이 92m, 높이 21m에 이른다. 건물 안에는 홀 5개와 방 300여 개가 있으며 남익동에는 18세기의 성당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궁정 예배당이 있다.
정면 입구의 현관홀 동쪽에는 '정원의 방'이 있고 북쪽에는 '계단방'이 있다. 계단방은 길이 33m, 너비 18m의 직사각형 모양으로서 위쪽에 있는 회랑과 이어져 있는데, 둥근 천장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600㎡ 규모의 세계 최대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었다. 위층 회랑의 대기실은 '하얀 방'으로 불리는데, 섬세한 스투코 장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을 지나면 커다란 '황제의 방'이 있는데, 이곳 역시 J.티에폴로가 그린 장중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하였다.
주교관 동쪽에 있는 황제정원은 가장자리에 생울타리를 두르고, 테라스에는 후기 바로크양식의 조각상을 배치하였다. 남쪽 정원은 주교관 앞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엄격하게 좌우대칭을 이루며 주요 통로와 대각선의 좁은 길, 화단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건축의 역사
뷔르츠부르크 왕자 주교의 저택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바로크 궁전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그 젊은 알 수없는 건축가 발타자르 노이만 (1,687에서 1,753 사이)에 의해 프린스 - 주교 요한 필립 프란츠 폰 브루흐 위해 시작되었다 궁전의 포탄은 1720 - 1744에 지어진 내부는 1780 년에 완료되었습니다. 거대한 건물이 종료 된 시간으로, 재능있는 건축가는 요한 필립, 프리드리히 칼 폰 브루흐하고, 다음 두 뷔르츠부르크 왕자 주교의 형제와 두 번째 후계자를 역임했다. 건축 비용은 150 만 정도 플로린의 총에 달했다 - 한 번에 하나의 플로린이이 엄청난 액수였다 일 노동자에 대한주의 임금을 표현합니다.
예술의 합성으로 레지
건물은 훌륭하게 다양한 독일 바로크 스타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샤토 아키텍처와 비엔나의 제국 바로크 스타일뿐만 아니라 결합합니다. 결과는 예술의 매우 개인과 독특한 합성입니다.
발타자르 노이만, 세부 사항
계단 야외에서
이 주로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브루흐 가족의 자주 발산 소원을 충족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 단지 발타자르 노이만의 업적이었다. 그는 또한 막시밀리안 폰 웰쉬, 루카스 폰 Hildebrandt의, 제르맹 Boffrand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쟁을 도입하고 수정하기위한 목적으로 의뢰 된 로버트 드 Cotte 등 주요 현대 건축가의 디자인을 평가하고 계획에 포함했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의 내부는 그 시대의 최고의이었다. 뷔르츠부르크 법원에서 유럽 각지의 예술가와 장인 3 세대는 로코코 스타일의 독립적 인 변화를 일으켰다. 하이라이트 - 거의 마지막 부분 - 실내 장식의 대부분은 1751 년에서 1753 년까지 완료 임페리얼 홀 및 계단 위에 자신의 천장 벽화와 베네 치안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 폴로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전쟁 피해 및 재건
1945년 3월 16일에서 몇 주 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에, 엄청난 공습은 뷔르츠부르크 옛 마을의 90 %를 파괴했다. 레지는 거의 완전히 소실되었다. 다락방에서 불이 목재 천장과 바닥을 통해 아래로 먹은, 그리고 화염에 의해 멸망 된 모든 가구와 벽 패널은 다른 곳에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레지던스, 현관, 정원 홀, 화이트 홀, 계단 및 티에 폴로의 벽화와 임페리얼 홀 만의 핵심이 저장되었다. 노이만의 돌 볼트 굽기 다락방의 붕괴를 견뎌.
복원 된 거울 내각
그러나, 지붕 갔다하기 때문에, 추가 손상은 습기로 인해 계속되는 기간에 발생했다. 법원 채플에서, 예를 들어, 루돌프 Byss로 천장 벽화의 대부분은 그대로 금고에도 불구하고 화재 이후의 결과에 굴복하고 힘들게 재건해야했습니다.
만 약 20 유로 비용 레지던스,의 재건은 관련 기술의 관점에서, 또한 완료하고 놀라운 성과입니다. 가구의 상당 부분이 다른 곳에 저장되므로 파괴를 탈출했다 때문에, 북쪽 블록에 최대한 원래의 형태로 정원 측면과 잉겔 하임 객실에 제국의 아파트를 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87 년 프로세스는 거울 내각의 재개, VERRE églomisé 기술에 대한 자세한 재건과 함께 결론을 내렸다.
<<레지던츠 궁전>>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는 바이에른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만티크 가도에서 첫 번째 만나는 도시이다. 마인츠강이 유유히 흐르는 천년의 도시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풀잎이라는 뜻의 wurz와 언덕이라는 뜻의 burg라는 단어가 합쳐져 뷔르츠부르크라는 이름이 되었다. 실지 이 도시는 풀잎들이 무성한 언덕들이 많다. 모짜르트가 생전 마지막을 살던 곳이자 헤르만 헤세가 고향으로 삼고 싶다던 도시답게 뷔르츠부르크는 예술의 도시이기도하다
8세기 이후 대사교(大司敎)의 도시가 된 뷔르츠부르크는 유명한 프랑켄와인의 본고장으로도 알려진 도시이지만 인류의 문화유산인 뷔르츠부르크 궁전은 1720~1744년에 건설되었다. 왕족이며 대주교인 대사교가 절대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발타자르 노이만과 당시 내노라 하는 유럽의 건축가와 화가,조각가들을 동원하여 바로크 양식의 영주 주교관저로 지은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답고 매력있는 남부 독일의 대표적 궁전건물이다
ㄷ자 모양의 건물배치를 보이는 뷔르츠부르크궁전은 남북으로 92m에 이르는 익동(翼棟)이 길게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 안에 18세기의 성당 중 가장 아름답다는 궁정예배당을 포함, 5개의 홀과 300여 개의 방들이 들어있다. 정면의 현관홀 동쪽으로는 '정원의 방'이 있고 북쪽의 '계단방' 천정에는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600㎡ 규모의 세계 최대 프레스코화를 그려 보는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이 곳을 지나 '황제의 방'에 이르면 미켈란젤로와 쌍벽을 이룬다는 조반니 티에폴로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장중하게 그려져 있다.
장엄한 궁전과 더불어 광장에는 프랑켄 지방의 수호여신 프랑코니아가 뷔르츠부르크의 문장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의 프랑코니아 분수가 자리하고있다. '명예의 안뜰'과 '황제정원'이라 이름 지어진 정원은 후기 바로크양식의 조각상들이 테라스에 배치되어 있으며 정원을 에워싸고 있는 생울타리 안으로는 좌우대칭을 이루며 조성된 통로와 화단들이 적절히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어 유럽궁전 정원의 특장(特長)을 잘 보여 주고있다.
B.C. 1000년 경에 세워졌다가 1200년 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1253-1719에는 주교의 주거지로 쓰였던 이 성은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4~ 15세기에 걸쳐 규모를 계속 확장했으며 1520년대에는 농민 전쟁 때 혹도들의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 성은 1600년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재건되었고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우물사원에는 깊이가 104m나 되는 우물이 있다.
17세기,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의 정복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어 영주의 정원으로 이용되었다. 1867년 요새로 바뀌면서 건물들이 병영과 창고로 쓰였다. 요새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꺼운 성벽으로 겹겹이 싸여있다.
대주교님이 살면서 최대 2000여명까지 살았으며, 현재 뮤지엄과 서류저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1582년에 창립된 뷔르츠부르크 대학은 뢴트켄이 X선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며, 국립음악학교등이 있다. 그중에 켈트족의 요새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뒤섞여 있는성 = 마리엔베리크요새
초기 철기 시대의 중유럽 문화의 시대에는 이곳에서 450년부터 550년까지 켈트족 선제후의 거성으로 쓰였고 또 그리스의 도자기를 수입하는 거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613년 스웨덴의 국왕인 구스타브 아돌프가 30년 전쟁을 일으켜 공격하였다
결국 1945년 3월 16일 전쟁중에 공습으로 인해 요새의 대부분은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1950년후부터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