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인근 후먼(虎門) 시장. 4~6층짜리 건물 5개가 밀집해 있는 이곳 의류전문 상가엔 하루 40~100명의 한국인 상인들이 찾는다. 후먼시장에서 파는 청바지 1벌 가격이 5000원 정도.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몰려드는 한국상인들은 이곳에서 싼값에 물건을 떼어다 한국 소매상들에게 되판다. 그동안 시장에 앉아 장사를 했던 도매상들이 한푼이라도 마진을 더 남기기 위해 글로벌 소싱(해외에서 제품을 구입하는 것)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구 서문시장의 의류도매상 김모씨(45)는 “중국에서 구입하면 국내보다 원가를 최고 50%까지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중국 저장성 이우 시장 상가의 내부 전경. 국내 대표적인 도매시장인 남대문시장의 상당수 제품이 이곳에서 들어올 정도로 한국 도매 상인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인터넷 자료사진 | |
◆생존을 위한 처절한 변신
위기에 빠진 국내 도매상들의 변신노력이 눈부시다. 해외 시장 곳곳을 물색해 가장 값싼 구매선을 찾는가 하면, 온라인 물결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인터넷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심지어 잡화(雜貨) 소매업까지 병행하는 도매상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 도매상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자, 해외 구매를 대신해주는 ‘글로벌 소싱 대행 업체’도 등장했다. 차이나비투비(www.chinab2b.co.kr)는 2년 전 문을 연 중국 도매 전문 사이트. 이 업체는 2500여명의 국내 도매상을 회원으로 두고, 이들의 주문을 받아 중국 현지에서 물건을 구해 한국으로 보내준다. 도매상들로선 중국 항공료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업체 이화욱(32) 사장은 “대구 서문 시장, 광주 양동 시장 등 도매상들은 한번에 100여벌 이상 주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매상들의 온라인으로 ‘옷 갈아입기’는 이제 기본이 됐다.
청계천 복원 공사까지 겹쳐 울상을 짓고 있는 서울 종로 세운상가 도매상인들은 조만간 온라인으로 재무장한다. 600여명의 상인들이 모여 국내 최초의 ‘전자 부품 전문 도매 사이트’ 개설을 준비 중이다. 이르면 올 연말에 문을 연다. 시장협의회 지원영 사무장은 “기존에 운영했던 온라인 사이트는 완제품 중심이었다”면서 “세운상가의 본래 경쟁력인 반제품과 부품 전문 상가로서 경쟁력을 확대하기 위한 신개념 사이트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상가나 테크노마트 등엔 개별업체들이 온라인 판매에 뛰어들고 있다. 용산터미널상가 조성훈 차장은 “엄밀히 말하면 이미 용산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란 2개의 상권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전자 도매상들이 옥션이나 인터파크 등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로를 개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서울 용산 터미널 상가 지하에 입주해 있는 한 전자상가가 인터넷 사업부를 운영하는 모습. 이 업체 매출의 70%가 인터넷에서 이뤄진다. /김창종기자 cjkim@chosun.com | |
◆반가운 성공 스토리들
변신의 성공 스토리도 많이 들린다. 용산터미널 상가 지하 1층. 97년 이곳에서 컴퓨터 도매업을 시작했던 ‘모듬코리아’의 인터넷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들 10여명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 업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현종삼 팀장은 “만일 우리가 온라인 사업에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생존이 불투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선인상가의 컴퓨존도 90년대 초엔 90% 이상을 오프라인 도매업만 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비중이 절반을 넘는 곳이다. 오형래 차장은 “처음엔 배송사고 등 문제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완비돼 매출이 97년 대비 10배 이상 늘고 직원도 5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기사 취재엔 박상범(고려대 사회 4년)·김정민 (연세대 정외 3년)·이상아(연세대 법학 3년) 인턴 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