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루 주인의 열정>
사랑열기/이선희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어려워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빈둥거리다가 취직이 안 되어 대학원 진학할 생각으로 과외를 시작하였다. 앞날이 불투명한 유리 사이로 보이는 그때, 때때로 초조감도 밀려들어왔고, 그러면 베토벤의 열정을 들었다. 그 선율은 나를 고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열정이라는 낱말을 참 좋아한다. 그 말을 들으면 뭔가를 열매 맺게 하는 듯해서 좋다. 요즘 이 낱말을 또 생각하게 하는 일을 겪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가 김밥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을 겸 얼굴이나 볼까 해서 그 김밥 집을 들렀다. 활달한 그녀의 목소리가 식당 밖에까지 들려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식사를 가져온 그녀는 손님이 없는 동안 테이블에 와서 흥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녀는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 아파트 하자보수팀에 연락을 하였다. 보수팀원이 와서 손을 보고 보일러는 금세 돌아가서 실력 좋은 사람이구나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보일러 연결 호수에 호일이 벗겨져서 좋은 말로 그것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보수팀원은 얼굴이 벌개져서 자기가 무슨 잡부냐며 그런 것은 바깥주인을 시키거나 사람을 사서 하라고 말했다. 그녀 또한 언짢아서 얼굴을 붉히며 싫은 소리를 하였다. 그 이후 그녀는 분한 맘에 만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래, 너는 그렇게까지만 될 사람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며 말을 끝마쳤다.
그 이야기를 들고 나서 그 보수팀원을 눈여겨보았다. 그는 자기처럼 실력 있는 사람을 몰라주는 회사에 불평을 하다가 어느 사이엔가 직장을 옮겨 버렸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너무 흔하다. 조건을 따지고 직장을 옮기는 것! 맡은 일만 간신히 하는 게으름! 하자보수팀원처럼 그 말이나 행동이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그에 비하면 강미루 주인은 얼마나 성실한지 모른다. 여기 지금 하자보수팀원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른 한 중국집 주인 이야기가 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가르치는 학생네 식구에게 점심식사를 대접받을 때였다. 강미루에서였다. 이층건물 외벽은 빨간색으로 한 눈에 띄었고, 안의 방도 고급 벽지에 매화 문양이 있는 대리석 바닥으로 고급스러움이 건물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호감 가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그 주인 매너였다. 학부모와 상담을 하면서 식사를 기다렸고, 주인은 선생인 나에게 먼저 음식을 건네주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학생이 신라호텔에서 일하던 사람이라며 음식도 괜찮다고 하였다. 싱싱한 해산물과 입맛에 딱 맞는 것 참 좋았다. 식사를 끝내고 그 집을 나올 때였다. 우리 대화를 듣고 학생 이름을 외웠는지 주인은 헤어질 때 학생 이름을 부르며 잘 가라고 하였다. 학생 부모는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에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홍보비 받지 않고 홍보 아닌 홍보를 하였다. 조카 생일날, 그에 대한 진가를 더 알게 되었다. 예약을 하고 식구들과 갔다. 우리 차가 도착하자마자 그는 문을 열고 마중 나왔다. 그리고 이층 룸으로 안내하였고, 동생은 케잌 사오는 것을 깜빡했다며 빵집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가 옆에서 듣고 자신이 준비하겠다며 저녁 식사 시간에 자신의 차를 타고 케잌을 사왔다. 동생은 감격한 눈으로 주변도 살펴보면서 서산에 이런 집도 다 있다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나도 그가 다시 보였다. 이제 30대 초반인 듯한 얼굴 선한 눈매 잘 빠진 몸매 게다가 고급 식당을 가진 그, 신라호텔에서 10년 동안 일하였다는 경력에 걸맞는 배려와 센스. 그의 배려는 편안함을 만들어 주었다. 가족과 오붓하게 있고 싶어 하는 우리 심정을 알고 빈 그릇을 치우는 직원에게 나중에 치우라며 자신도 자리를 비켜주었다. 케익에 초를 꽂던 동생은 어떻게 4살인 줄 알았냐며 나를 응시하였다. 예약할 때 4살 꼬마도 간다고 했더니 그것을 기억한 듯하였다.
강미루 주인을 잊을 수가 없다. 자기 일에 대한 그 성실성, 책임감, 그리고 그 열정 부러운 일이다. 혹여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하자보수팀원은 바쁘고 강미루 주인은 한가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삶의 정신문제이지 바쁘고 한가한 문제는 아니다 싶다.
꼬마 생일 케익을 사다주는 강미루 주인, 손님 하나 하나의 이름까지 외우는 강미루 주인. 그에 비하면 보일러 연결 호수에 호일을 감아주는 것은 잡부나 하는 일이라던 하자보수팀원. 누구 이 시대에 성공할지는 눈에 빤히 보이지 않는가. 요즘 취직이 안 된다고 비관하거나 자신을 사회가 몰라준다고 불평하는 젊은이에게 이 두 사람을 대조해 보이고 싶다. 그리고 열정이라는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뜻을 말해주고 싶다. 열정-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대한민국에 이 마음이 흐르고 넘쳤으면 한다.(2010년 3월 17일)
첫댓글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건, 장말 중요한 일이죠.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