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빈.전금자 잡사님을 안 것은 오래 되진 않았습니다. 미아동에 소재한 평화교회를 섬기실 때였습니다. 2005년도 회장이셨던 유태인 집사님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은 키에 다소 마르신 모습이 조용한 선비의 모습이 연상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에 비해 전금자 집사님은 활달한 성격으로 사교적이십니다. 부부라는 것이 똑같은 성격의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명령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임집사님 내외분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가깝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먹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등산을 하고 창경궁을 다니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삽겹살을 먹자며 부르셔서 강남에서 강북까지 기꺼이 가서 식탁의 교제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교회를 섬기면서 만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다보면 사람 사는게 누구 하나 쉬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이 신앙인이요 바로 관리인들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일년이 다 되었습니다. 교회를 옮기신지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시간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연락을 끊고 사느냐며 전금자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첫마디가 고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잘 알고 지내는 집사님께서 교회를 옮겨야만 하는데 행복촌장 홈페이지의 구인구직란을 통해서 좋은 교회를 소개 받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검색을 하고 신문을 보고 스크랩을 해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전화를 받고 보니 그동안의 어려움이 일순간에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거리만큼이나 멀게 늦겨졌던 안산이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짔슸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처럼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격려라는 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도 몰라 주는 것 같은데 나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과 더불어 칭찬의 말을 들을 때, 사람에게 보람과 감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정리된 마음입니다.
서둘러 약속을 하였습니다. 내일 월요일 꼭! 방문하겠다고
전화 한 통이 안산에 있는 샘골교회 임경빈 집사님 댁을 방문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샘골교회 교회가 세워지고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교회의 교회됨의 하나는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돌아보다가 벽마다 붙어있는 사진이 눈에 띄였습니다.
"샘골마을과 최용신 선생" 심훈 님의 상록수의 모델이 되었던 여성농촌지도자 김용신 선생이 바로 샘골교회를 중심으로 잠자는 이 나라의 혼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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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나라를 빼앗기고 한글도 쓸수 없던 암흑의 시기에 여린 여자의 몸으로 농촌을 깨우고자 몸을 던졌던 그 현장에서 가슴 벅찬 해후를 하였습니다. 시대를 뛰어 넘어 한 여인의 늠름한 한 기상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나누고 가르쳤던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샘골교회 바라 옆 마당에 최용신 선생의 기념관 건립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안산시에서 시 기념사업으로 내년에 완공을 목표로 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일깨웠던 선각자 최용신 선생의 뜻이 자손들에게 전해지는 수련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교회 옥상이 바로 상록수 공원으로 연결이 되어서 잠시 산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100m쯤 떨어진 공원 한 편에 뜻을 다 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김용신님의 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는 김용신 선생님의 약혼자였던 김학준 장로의 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죽어서라도 함께 하고자 하여 김장로의 유언에 따라 이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야곱이 라헬을 기다리며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는 성경이 떠올랐습니다. 공원 양지 바른 곳에서 임경빈 전금자 집사님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오늘 모습처럼 사랑하고 행복한 삶이 되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찍었습니다.
좌로부터 임경빈 전금자 문혜숙 집사
최용신 선생과 그의 약혼자 김학준 장로의 묘
임경빈 집사님이 관리하시는 수족관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의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빗바랜 사진이지만 믿음의 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샘골마을과 최용신 선생
최용신 선생과 학생들
최용신 선생의 묘소를 찾은 제자들(1935년)
부녀회를 조직하여 여인들을 계몽하였던 최용신 선생
교회 계단에도 생명을 향한 열정이 있습니다.
샘골 강습소 학생 전체 사진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살면서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최용신 선생이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배웠던 것은 다만 지식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서 생명을 다하여 섬겼던 사랑이 저들로 하여금 추보비를 세우게 하였을 것입니다.
추모비를 보면서 이길우 너는 어떤 이름을 묘비에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이 물음 앞에서 엄중한 항의 서한을 받았습니다. "똑바로 살아야 해! 온 몸으로 삶을 써 내려가야만 해" 가슴 속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한 마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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