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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226) - 향기로워라, 드림 팀의 가을여행
개천절이 낀 한 주간, 하늘은 푸르고 국화향기 그윽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이 좋은 때에 수십 년 사귀어 온 친구부부들과 2박3일의 가을여행을 즐겼다. 나들이에 나선 모임의 이름은 이순(耳順)이 넘어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드림팀!
1.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깃든 정읍사공원과 치유의 숲 축령산
10월 3일, 오전 9시에 광주의 집을 나서 드라이버로 수고할 사촌 동생 집으로 가는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서 오전 8시에 고속버스로 출발한 일행들이 천안을 지나고 있다며 어디쯤 오고 있느냐고 묻는다.
오전 11시, 정읍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반가움의 포옹으로 일행 모두가 합류하였다. 당초 동행하기로 예정하였던 막둥이 명희씨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빠진 것이 아쉬운 듯, 광주의 오빠가 삐치지 않았느냐는 농담들이 첫인사다. (수십 년 간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지낸 친구부인들은 스스럼없이 남편친구들을 오빠라 부른다)
처음 찾은 곳은 내장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정읍사 공원이다. 이곳은 백제시대에 장사 길을 떠난 소금장수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애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추이시라'로 시작되는 정읍사의 노래 가락에 담겨진 기다림의 미학을 형상화한 공원이다. 기다림이란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꽃과 같다고 새긴 조각속의 글귀를 음미하며 우리세대 미완의 꿈, 통일의 염원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였다.
이어서 찾은 곳은 4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내장산이다. 봄에는 꽃 천지, 여름에는 짙은 녹음, 가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단풍, 겨울은 깊이 쌓인 설경으로 철마다 빼어난 경치를 뽐내는 명산이다. 한 달 후면 전국에서 몰려오는 단풍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산사(山寺)를 느긋하게 둘러보는 발걸음이 가뿐하다.
절 앞의 마을을 사하촌(寺下村)이라 하던가, 입구에는 사철관광객의 입맛을 돋우는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여러 차례 이곳 식당가에서 맛본 음식들이 깔끔한 편인데 눈어림으로 찾아들어 간 곳의 점심상이 맛의 고장에 걸맞게 입에 잘 맞는다.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도 감칠맛이 있고.
오후 2시, 내장사에서 백양사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에 올랐다. 높은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울창한 숲길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산간분지에 있는 전라북도 산림수목원이 가볼만한 곳인데 시간이 모자라 스쳐 지나친다.
내장산과 더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장성 백양사도 경관이 아름다운 곳, 입구까지 들어가서 백암산의 웅장한 암벽과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차창으로 감상하고 돌아섰다. 장성에 가볼만한 곳들이 꽤 많다. 그중에 문향을 대표하는 필암서원과 편백, 삼나무 숲이 전국에서 가장 잘 조림된 축령산을 찾았다.
호남제일의 문인이라 일컫는 하서 김인후(1510~1560년)를 배향한 필암서원은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볼거리도 많아 찾기를 잘하였다. 마침 서원 뜰에서는 이날 오전에 추향제(秋享祭)를 겸한 한글백일장이 치러지기도 하였다. 운치 있는 정자, 삼연정(三然亭)에서 과일을 들며 바라본 수확기의 농촌 풍경이 정감을 더해준다.
이곳에서 15분 거리에 치유의 숲으로 널리 알려진 축령산이 있다. 6.25 후의 가난과 어려움 속에 산천도 벌거숭이였을 때 임종국이라는 독림가가 가산을 기울여 축령산 일원에 편백과 삼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울창한 삼림으로 변하여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조림지역이 되었다.
마침 이곳 안내센터에는 일선에서 은퇴한 조카가 숲 해설사로 봉사하고 있어서 한 시간 넘게 쭉쭉 뻗은 편백 숲을 걸으며 숲이 주는 여러 혜택과 정보를 깨치는 좋은 탐방코스가 되었다. 긴 안목으로 갖은 고난을 감내하며 필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그는 전북 순창출신으로 고향에 묻혀 있다가 몇 년 전 이곳으로 옮겨져 천년을 산다는 느티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안내센터 앞 광장에 장성군에서 세운 공적비가 살신성인한 삶의 표상처럼 우뚝하다)
오후 5시 넘어 축령산을 출발하여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선운사로 향하였다. 숙소는 선운산 유스호스텔, 미리 예약한 방에 여장을 풀고 이웃 심원면 소재지에 있는 음식점에서 갈치조림으로 저녁을 들었다. 지난 4월, 가문의 성묘행사 때 들었던 점심식사가 깔끔하여 다시 찾았는데 음식도 맛있거니와 친절하고 깍듯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보기 좋다. 서비스 종사자들이 이처럼 성실하고 친절하면 좋으리라.
2. 산책코스가 아름다운 백수해안도로와 모양읍성
10월 4일, 아침에 일어나니 산자락에 안개가 자욱하고 주변이 고요하다. 여러 집에서 가져 온 떡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가름하고 인근의 명소 탐방에 나섰다. 탐방로는 국도 22번을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 선운사 입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심원면의 바닷가는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다. 차창으로 갯벌체험학습장(고창갯벌은 2010년에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의 팻말이 눈에 띈다.
심원면을 지나 상하면에 들어서니 고향마을이 가깝다. 지나는 길에 국도에서 2km 쯤 들어가는 한적한 마을의 시골집을 찾았다. 지난 4월의 걷기 행사 때 성묘행사에 합류한 일본인들의 방문에 이어 귀한 발걸음의 친지들이 고택을 찾아주니 가문의 경사로다. 이어서 들른 곳은 공음면 구수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다. 1894년 3월 20잎(음력)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을 비롯하여 4천여 명의 농민이 이곳에서 포고문을 선포하여 전국적인 농민혁명의 기폭제가 된 곳이다.
공음면을 지나면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 이른다. 법성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굴비의 산지이자 백제불교 최초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법성포 입구에는 커다란 조기형상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곳곳에 굴비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법성포(法聖浦)는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 간다라지방의 승려 마라난타가 불경 등을 가지고 중국 동진에서 건너와 백제 땅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라고 한다. 포구에 연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불교 도래지의 주요시설은 간다라 양식의 사면불상, 간다라 사원을 본 따서 조성한 탑원, 대승불교의 본고장인 간다라 유물 전시관 등이 있다.
불교 도래지를 한 바퀴 돌고나니 짙게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고 포구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 10시경에 법성포를 출발하여 곧바로 이어지는 백수해안도로에 접어들었다. 교통이 불편한 오지였던 백수면 일대는 해안도로가 개통되고 골프장도 들어서는 등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칠산 앞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노을 길(일몰풍경이 아름다워서 붙인 이름)을 걷는 산책로가 명품이고 근년에 문을 연 해수온천탕, 가까운 곳에 있는 원불교 성지 등 둘러 볼 곳이 많다.
한 시간여 산책을 즐기고 경관이 좋은 해안도로를 돌아 영광읍에 이르니 12시가 가깝다. 영광이 고향인 지인의 소개로 예약한 음식점은 음식솜씨가 좋다고 알려진 식당이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잘 차린 밥상이 들어오니 34가지의 반찬을 세어보는 일행들의 눈이 커진다. 재빨리 카메라에 담은 화면을 아쉽게 불참한 서울의 회원에게 전송하는 송봉자 팀장의 순발력이 뛰어나구나.
전날 정읍도착부터 스타렉스 승용차로 안내한 드라이버와 이곳에서 작별하고 이후 이동은 버스 편이다. 오후 1시 10분, 직행버스에 올라 고창으로 향하였다. 터미널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고창읍성이 있고 주변에 동리국악당, 판소리박물관, 신재효생가, 미술관 등 문화타운이 자리 잡아서 고창의 문화와 역사를 두루 살필 수 있다.
고창읍성(모양성이라고도 한다)은 단종 원년(1453년)에 축성한 자연석의 성곽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3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4~6m 높이의 성곽 길을 천천히 돌며 읍내의 전경과 주변의 산야를 한 눈에 살폈다. 성읍에는 맹종죽(孟宗竹)이라는 굵은 대나무 숲과 품위가 느껴지는 노송들이 울창하고 성곽 안팎에는 가을에 피는 구절초가 한창이다. 근년에 복원한 동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여성회원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판소리와 명곡들을 뽑으며 흥취를 돋운다.
모양성에서 나와 부근에 있는 판소리 박물관과 신재효생가를 돌아보았다. 판소리박물관은 최근에 개관하였는데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인 판소리 명창들의 행적과 판소리예술의 면모를 일별할 수 있어서 유익한 탐사가 되었다.
오후 4시에 버스터미널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선운사로 향하였다. 숙소는 선운사우체국수련원, 회원자격이 있어 가끔 이용하는 수련원의 객실이 전날 묵은 유스호스텔보다 넓고 쾌적하다. 여장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든 후 한 방에 모여 윷놀이를 하였다. 오랜만에 접하는 윷놀이가 생소한 일행들도 금방 룰에 익숙하여 희비가 엇갈리는 승부에 열중하며 즐거워한다.
하루 동안 열심히 걷고 잘 먹으며 유쾌하게 놀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다. 일행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며 편안한 휴식에 들어간다. 지난번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썼는데 연달아 좋은 날들로 이어지는 일상이 행복하다.
3. 동백꽃과 꽃무릇이 아름다운 선운사 일원
10월 5일, 아침 7시에 선운사 일원 탐방 길에 나섰다. 봄에는 대웅전 뒤의 동백 숲이 유명하고 가을에는 전국최대군락지인 꽃무릇의 향연이 장관이다. 9월 20일 전후로 활짝 피는 꽃대가 아쉽게도 모두 떨어지고 간혹 늦게 핀 꽃들이 가냘픈 모습으로 일행을 맞는다. 지천으로 널린 꽃무릇의 뒤태를 살피며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길을 따라 한 시간여 올라가면 한국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이 있는 도솔암 주변에 이른다.
도솔암 못미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사송과 진흥왕이 수행하였다는 진흥굴 앞에 반듯한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 땀을 식히며 준비해온 떡과 과일, 계란 등으로 드는 아침식사가 식당음식보다 훌륭하다. 여성회원들이 도솔암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 친구들과 함께 500여 계단의 가파른 등산로를 거쳐 낙조대에 이르니 선운산 일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전국의 명산들을 두루 섭렵하는 노익장의 친구들이여, 내내 건강하시라.
암자에서 내려와 대웅전으로 향하였다. 1500년 고찰인 선운사는 많은 고승과 선사들을 배출한 명찰인데 지금은 템플 스테이 등 일반인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개방된다. 대웅전 주변에 큰 집들을 새로 짓고 있는데 승려들의 노후 수행마을을 조성하는 중이다. 사찰을 둘러본 후 방문객들에게 개방된 만세루에 앉아 따뜻한 발효녹차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겼다.
네 시간여에 걸친 선운사 탐방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 중에는 여러 대의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달려온 초등학생들도 눈에 띈다. 이들을 바라보니 초등학교 시절, 수 십리 산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절 방에서 주먹밥 먹으며 하루 밤 자고 돌아가던 옛일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숙소에 돌아와 몸을 씻고 나니 어느덧 낮 12시다. 인근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에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을 들고 귀로에 올랐다. 군내버스로 고창에 도착하니 오후 2시, 곧바로 버스들이 연결된다. 친구부부들은 북쪽의 서울로, 우리는 남쪽의 광주로 갈라지며 아쉬운 작별이다.
광주에 돌아와 저녁을 든 후 일행들이 잘 도착하였는지 전화를 거니 명희 씨가 터미널에 마중 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란다. 아쉽게 빠진 이에게 도솔암의 매점에서 고른 좋은 향기 뿜는 씨앗주머니를 마음의 선물로 전했다.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다. 배게 맡에 놓은 주머니의 향기 맡으며 좋은 밤을 보냈다고. 그윽한 향기 가득한 가을여행의 기운을 받아 우리들의 남은 때도 향기로워라.
추신,
가을여행에서 돌아온 날, 아침마다 함께 테니스를 즐기는 동갑내기 회원의 부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는 부음을 접했다. 25년 간 함께 살며 간병한 105세의 장모가 떠난 지 10여일만의 날벼락이다. 그간의 고생을 서로 위로하면서 한 달 후에 미국여행 떠나자고 다짐하였는데 함께 백화점 쇼핑하다가 쓰러졌다는 사연이 가슴 아프다. 인생은 나그네길, 평생의 반려도 한쪽은 이승으로 다른 쪽은 저승으로 갈라서는가. 빈소에 들러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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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8기 감동, 기절 가을여행!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안내해주신 김태호오빠와 김혜경씨에게 큰 감사드려요!! 태호오빠 생가에도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