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이 딱 스무날 남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한 해가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거점국립대학으로서 경북대가 지난 한 주 동안 경험한 의미 있는 두 가지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한국과 대구경북 사회의 중추적인 구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경북대의 시대적 소명을 돌아보는 길입니다. 대학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회와 국가만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이번 한 주가 경북대 역사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건이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하나의 사건을 보면서 그것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겁니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상이한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요. 이를테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라쇼몽>과 <덤불 속>을 하나로 묶어 영화 <라쇼몽>을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시각은 각자 너무 다릅니다.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나타나는 판이한 시각 차이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편향성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것입니다.
지난 12월 7일부터 어제 12월 10일까지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경북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경북대와 대학사회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그렇다면 먼저 12월 7일 월요일에 있은 사건부터 소상히 말씀해 주십시오!
12월 7일 오후 3시부터 경북대 인문대학 교수 회의실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요구’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경북대 전-현직 교수 123명이 교과서 국정화 철회요구 선언에 동참했습니다. 이미 경북대 교육현장을 떠난 퇴임교수 18분이 서명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전공 영역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분들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는 정부방침에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이지요!
서명에 참여한 대학 면면도 상당히 다채롭습니다.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 경상대, 사범대, 생활과학대, 법학전문대학원, 아이티대학, 행정학부 등에서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사 국정화를 바라보는 경북대 교수들의 폭넓은 우려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 경북대 교수들의 국정화 철회서명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다소 아쉽다는 소회가 듭니다. 당일 대구 문화방송 텔레비전과 오마이뉴스, 평화뉴스, 뉴스민 등에서 기자들이 나와서 회견을 취재했습니다. 대구 문화방송을 제외하면 인터넷 매체들입니다. 대경지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과 종이신문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 시점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다소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라는 용어가 웅변하는 것처럼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아침저녁으로 발생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런 점에 비춰 본다면 시의성을 상실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교과서는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의 국가관과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적어도 그 영향은 몇 년에서 몇 십 년까지 지속됩니다. 따라서 지금과 여기에 함몰되지 아니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입니다.
4)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요구 기자회견 이외에 다른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요?!
바로 어제 경북대 제21대 교수회 의장선거가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경북대에는 총장부재 사태가 16개월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회 의장선거는 향후 2년 동안 경북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4인의 후보가 출마하여 치열한 경합을 벌였습니다. 1차 투표에 참가한 교수들의 수자가 535명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투표 참여자 수효는 경북대 교수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어서 1-2위를 차지한 두 후보를 두고 2차 투표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인문대학 사학과 윤재석 후보가 현 교수회의장 문계완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습니다. (200:175:5) 25표라는 근소한 표 차이였습니다.
5) 이번 경북대 교수회 의장선거에 담긴 의미와 소회를 정리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 당선된 윤재석 후보는 경북대 총장부재사태에 직면하여 교육부의 전횡과 교수회의 미온적인 대응에 반발하여 구성된 자율성수호모임 대표간사이자,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활동해왔습니다. 요약하자면, 교육부 전횡에 의연하게 맞서 싸워온 후보라는 얘깁니다. 거대자본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자임하는 교육부에 적절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경북대의 자율성을 확고히 하려는 자세를 취해온 것입니다.
경북대에는 이런 움직임과 달리 총장후보를 재선출하여 난국을 해결하자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육부가 원하는 대로 재선출이든 재선정이든 진행해서 총장부재사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경북대의 역사와 전통을 방기하고 교육부에 굴복하는 행위입니다. 아무 하자 없이 적법하게 선출된 후보자를 놔두고 다른 후보자를 뽑겠다는 것은 교수회가 주도한 선정 작업마저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총장부재사태 해결방안은 이제 폭넓은 대화와 타협으로 통한 해결로 가닥을 잡을 것 같습니다.
6)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요구 기자회견과 21대 경북대 교수회 의장선거, 중요한 두 가지 사건에 담긴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요구 기자회견, 그것은 아직도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사회인 대학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권한을 정부가 아니라, 시민과 역사가에게 맡기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정부는 국리민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역사는 국민과 역사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21대 교수회 의장선거를 통해 경북대 교수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총장부재사태 해결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문제가 원만하고도 조속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아가 대학본부가 다소 활력을 잃고 있을 때 교수회가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각종 문제를 본부와 활발학=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지혜롭게 풀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사회의 미래는 여전히 유능한 인력양성에 달려 있습니다. 공학과 의학 같은 기능적인 응용 인력양성도 중요하지만, 인문학과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 영역 역시 국가의 기본역량을 공고히 하는데 필수적입니다. 더욱이 지식인은 부당한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여 필요한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와 민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도입니다. 비판적인 지식인이 없는 사회는 소금과 빛이 없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북대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