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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2 철도여행기142 장항3, 전주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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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그냥 혼자서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대전에 사시는 박영희님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갈 곳은 간만에 가보는 전주입니다. 옛날에 축구장 갈 때는 많이 가본 곳인데 회사 생활과 멀어져 가는 축구에 그 동안 거의 못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축구장과는 관계없이 전주 그 자체를 보고 싶어서 가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얼마 전 12.31-1.1일 기적기 정모 때 박현주님이 전주에 오시는 분한테 맛있는 것을 사주신다고 했거든요.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심 기대를 가지고 갈까요? 전주를 바로 가는 것보다 장항을 들러 배를 타고 군산으로 넘어가서 전주를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먼저 전주에서 영등포역까지 표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죠? 다행히 계속 클릭을 하다가 #476열차의 좌석을 영등포역까지 구했습니다.(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 아쉬운 것이 특실이지만 그래도 구한 것 자체가 다행이죠. 그리고 이번에 다시 위험한 일을 해야 합니다. 박영희님은 영등포가 아닌 서대전까지 예약을 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주->영등포로 예약해 놓은 표 2장 중 한 장을 예약취소하고 다시 그 한 장을 전주->서대전으로 예약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더 어려운 것은 목적지가 다른 곳을 인접좌석으로 만드는 일이죠.(해보신 분은 아실 듯) 다행히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항선을 간만에 이용할 겸 #1131 통일호 서울역에서 장항역까지 예약을 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새벽에 일어날 수 있는지. 저는 일어날 수 있지만 영희님은...... 혹시 몰라서 04:30분 일어나서 전화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역시 일어나기는 쉽지 않군요.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리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야지요. 씻고 옷을 입고 미리 준비해 놓은 가방을 가지고 집을 나왔습니다. 새벽의 추운 바람을 맞으며...... 에휴 추워!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걸어가면서 영희님한테 전화를 했는데 다행이 일어나셨네요)대략 6분 정도 소요되는데다 한 5분 정도 기다려서 버스를 탑승하게 됩니다. 328번 버스를 타고 다시 약간의 잠을 자려고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군요.(버스에서 서울역에 정확히 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05:10분쯤 도착해서 표를 구입하고(서울역에서 이렇게 빨리 열차를 타기는 처음이군요, 아마 06:15분 #201를 몇 번 타본 적이 있지만) 서울역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출발하는 #1131열차입니다. 학생할인해서 장항역까지 5,500원이면 정말 저렴하군요. 드디어 표 확인 후 열차에 오릅니다. 손님은 많지 않은 것 같군요. 모든 역을 정차하는 열차라 어떻게 보면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아마 일단 피곤해서 잠이 들 것 같습니다. 용산, 노량진, 영등포(여기서 가장 많은 손님이 탑승하시는 듯) 역시나 정신없이 잠들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천안역에 도착하게 되고 #254열차를 타고 오신 박영희님과 만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대부분의 손님이 내리고 열차 안은 조용해 지는군요. 이제부터 유심히 밖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멋있거나 그런 것을 찾기보다는 그냥 간만에 이용하면서 익숙치 않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아직 밖이 어두운 편이라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온양온천을 지나면서 이제 밖이 잘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온천이 있는 기차역 여행정모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무궁화호를 타면 빠르게 통과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을 역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박영희님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삶은 계란(난 왜 껍질을 잘 못 벗기는 것일까?-계란을 다 벗기고 나니 모양이 울퉁불퉁 엉망진창, 반면 영희님은 어찌나 잘 벗기는지......) 그리고 과자, 음료수......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 덕분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나가면서 바라보는 역 이름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선장(배의 두목이 내리는 역?), 청소(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역?) 등. 그리고 잠깐 정차하는 사이 역, 폴싸인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쉽지 않군요. 비교적 교행 등으로 오랫동안 머무르는 주포역, 홍성역, 대천역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시겠지만 왜 사진이 없을까요?(여행기를 다 읽으시면 알게 됩니다.) 어느새 박영희님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기 시작하고. 저는 그냥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사과로 많이 알려진 예산, 달빛쏘나타 기차여행의 홍성역, 또 다른 젓갈의 고향 광천, 주포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관계로 역, 옛날 이정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대천역에 도착하니 열차 내의 손님이 거의 내려서 저희 객차에는 손님이 총 5명입니다. 대천 해수욕장은 워낙 유명한 곳이죠.(머드팩...... 넓은 갯벌) 웅천역을 지나면서 무창포 해수욕장 가는 길이 보이고 간치역을 지나면서 우측으로는 서천화력전용선이 보이는데 이 길을 따라 가게 되면 춘장대 해수욕장을 갈 수 있습니다.(여름에 운행하는 피서열차......) 한산모시 서천을 지나 드디어 마지막 역인 장항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대략 4시간 30분 동안 저렴한 운임으로 열차를 타면서 간만에 장항선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장항역에서 스템프를 찍으려고 하니 역무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에...... 안으로 들어가 스템프를 날인하려 하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씀에...... 잠깐 편한 소파에 앉았는데 잠이 오려고 하네요.(정말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템프를 표 뒤에 찍고 영희님도 찍고 그리고 혹시나 해서 철도자료 하나를 부탁드렸는데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를 타러 가기 위해서 물어보았는데 09:00에 교대를 하면서 퇴근하는데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같이 갈 것 같습니다. 박상현 수송원님인데 참 좋은 분인 듯. 잠깐 역무실에 있다가 10:50분 배를 함께 이용하기로 합니다. 참고로 박상현님은 자전거를 타고 거의 전국일주를 하셨을 만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저도 이런 시도를 해보았으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만) 지나가면서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LG철강?과 기타 공장들 옛날에는 번성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옛날처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튼튼해 보이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약10분 정도 걸으니 장항 선착장이 보이는군요. 선착장에서 잠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배 시간표를 얻었습니다.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올려봅니다. 참고로 배 값은 1,000원이고 한 10여분 정도 가면 군산 선착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 배 시간표
배를 타는데 안에 있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서 풍경을 바라보며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추운 칼바람과 직접 부딪혀야 하지만 그 정도야. 뒤로 갈매기가 배를 따라오는데 새우깡이라도 있으면 던져주고 싶군요. 박상현님의 설명을 들으며 10여분을 가니 금방 군산 선착장이군요. 장항선착장 주위로는 고기잡이 배 몇 척이 보이고 황량한 편이었지만 군산선착장 주위로는 수 많은 횟집이 보이는군요. 군산횟집이라고 큰 횟집도 보이고...... 이제 여기서 박상현님과는 헤어지고 군산역으로 가서 스템프를 찍은 후 임실행 #1588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박상현님이 소개해주신 군산활어시장 22번 코너(이충세 도선장 내 수상파출소 옆)에 가서 싱싱한 광어회와 우럭회를 먹는데 정말 싸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회를 그리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쫄깃쫄깃 맛있군요. 약간의 술을 같이 했는데 전혀 취하지 않는군요.(제가 술을 솔직히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적색 신호등은 여전하군요) 다음에 군산에 갈 때 다시 들르고 싶습니다. 회를 먹은 후 어항의 싱싱한 고기를 잠깐 구경한 후 시간을 보니 #1588열차가 출발할 시각이 넘었군요. 원래 계획은 #1588열차를 타고 전주 다음 역인 아중역에서 내리는 것이었는데. 전주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것 같군요. 2,000원 정도 나오는군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전주까지 표를 구입하니 1인당 3,600원. 박상현님과 헤어지게 된 후 버스에 탑승해서 출발하게 되게 됩니다. (박상현님은 광주로 간다고 들었음) 정말 박상현 운전원님에게 신세를 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잘 해드려야 할텐데. 시외버스 터미널이 특이하다면 옆에 고속버스 터미널, 기타 노선, 익산, 전주노선 이렇게 3곳이 따로 존재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근 1시간여를 가는 동안 영희님은 주무시고. 맛과 멋의 고장 전주에 도착하였습니다. 호남제일문(전주 인터체인지를 지나 전주 초입에 들어서면 호남제일문이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주문인 호남제일문의 현판은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로 전주의 과거에 대한 자존심과 미래에 대한 포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을 지나 덕진 정류장에서 내려 약간의 시간을 기다린 후 박현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잠깐 어디를 갈지 고민의 시간을 가진 뒤 풍남문, 경기전을 가고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합니다.(동물원을 갈까 하다가......) 97번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과 북문승강장을 지나 전동성당 앞에서 내렸습니다. 내려서 우측으로 걸어가면 전주역 스템프에 등장하는 풍남문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 풍남문(Special 전주여행http://tour.jeonju.go.kr/에서 퍼옴) 전주를 상징하고 있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98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전주의 남문은 조선 5백년의 역사 명맥을 잇는 수도 한성부의 상징적인 숭례문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축양태는 조선 후기의 문루 형식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원래 도성이나 읍성, 산성 등은 으레 성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형식이자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선조 30년(1597)에 당시 성내를 휩쓴 정해년 대화로 불타버려 그해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증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1978년 문루 보수과정에서 옹성의 기단이 풍남문 홍예문으로부터 12m 지점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기단대로 연장 97.5m의 여담쌓기와 치석 6,856개로서 옹성 1,933㎡를 축조하여 복원하였다. 풍남문의 누대를 겸한 석문은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내밀게 구형을 쌓고, 이 석축 중앙에 통로를 뚫고 통로 내외면에 무지개 끝 석물을 쌓아 윗면에 문루를 설치한 것이다. 이 누대는 너비는 동서 23.6m, 남북 10.6m이며 높이는 17.2m에 이른다. 문루의 서편에는 종각이 있고 좌편에는 포루가 있었다. 문루는 2층의 팔각지붕인데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윗 층의 정면은 3칸이나 측면은 1칸이다. 1980년 종각과 포루,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 보물 제 308호(1959. 12. 18 지정) 풍남문은 다른 곳과는 달리 개방이 되어 있어 올라갈 수가 있는데 눈이 많이 내렸던 관계로 올라가는 길이 얼어붙어 조심스럽게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이리 저리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어봅니다. 내려갈 때 역시 조심조심...... 그리고 길을 건너가면 우측으로 천주교 순교지의 하나인 전동성당이 있습니다. 건물 자체가 특징이 있게 생겼습니다. 조용히 경건한 마음으로 잠깐 내부를 구경한 후 나온 후 건너편으로 보이는 경기전으로 갑니다. # 경기전(Special 전주여행http://tour.jeonju.go.kr/에서 퍼옴) 풍남문에서 동쪽으로 150m 쯤 가면, 고색이 창연한 경기전이 나온다.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내에는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경기전과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1410년)에 창건하였다.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왕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태조의 어용을 봉안하였으며, 태종 14년(1414년)에 건립되었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은 창건 당시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는 태조진전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네 곳에 있었던 태조 어용전은 전부 소실되었다.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 되었다.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내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었으나, 일제 때에 그 서쪽을 분할하여 일본인 전용인 수상소학교를 세움으로써 경기전 절반 이상의 땅을 상실하였으며, 부속된 건물은 이때 거의 철거되었다. 현존 건물인 전각은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서, 전면에 하마비,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등이 있다. 경기전에 봉안된 어용은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한 것이었는데, 세종 24년(1442년)7월에 집경전의 어용과 함께 개화하여 동년 10월에 봉안했다. 현재 경기전 어진은 고종 9년(1872년) 9월에 개화한 것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보현사 별전에 봉안되었다. 그 후 어용은 여러 번의 수난을 겪었는데, 즉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년(1767년)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한 일이 있었으며, 고종 31년(1894년)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 경기전에 인접한 북쪽에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는 영조 47년에 창건하여 영조가 친히 위패를 썼으며 동학혁명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할 때 태조의 영정과 함께 위봉사의 행궁에 옮겼다가 7월에 다시 전주로 옮겨 놓았다. -사적 제 339호(1991. 1. 9 지정) * 교통정보 -도로안내 - 주 차 장 : 33대 수용 앞으로 관광 안내소가 보이는데 관광 안내자료를 얻으려고 가니 아쉽게도 잠겨 있군요.(이따 나올 때 다시 들러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경기전2(전주시 관광 안내 팜플렛에서 퍼옴) 가. 사적 제 339호 경기전 경기전은 태종 10년(1410년) 창건되어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개성, 영흥,전주, 경주, 평양 등 다섯 곳에 태조의 어용전이 있었다.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이라고 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네 곳에 있던 어용전은 전부 소실되었다. 이 곳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유일하게 복원되었다. 이 곳의 영정은 고종9년(1872년)에 모셔 오던 영정을 모사하여 봉안해 온 곳이다. 나. 보물 제 931호 조선태조 이성계 영정 조선 태조 이성계(1335년~1408년)는 일국의 창시조인 만큼 특별한 예우로 국초부터 따로 어용전을 여섯 곳(서울의 문소전, 외방의 선원전, 영승전, 목청전, 집경전, 경기전)에 설치하여 어용을 봉안해 왔다. 그러나 현존하는 태조 어용은 전주 경기전의 어용 1본 분이다. 이 어용은 고종 9년(1872년) 당시 경기전에서 받들던 어용이 낡고 헤어짐에 따라 태워 파묻고 서울 영희전에서 받들던 태조 어용을 범본으로 하여 화사 박기준, 조중묵, 백은배 등으로 하여금 모사케 한 이모본이다. 다. 지방민속자료 제 26호 예정대왕 태실 및 비 태실은 왕가 아기의 태를 묻었던 석실이다. 이 것은 조선 예종대왕ㅇ의 태실로 원래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마을 뒷 산에 있던 것을 이 곳 경기전 경내로 옮긴 것이다. 태실비는 에종대왕 태실과 함께 옮겨온 것으로 비석 앞면에는 예정대왕 태실의 6자가 음각되어 있고 뒷 면에는 만력 육년 시월초이일 건(1578)이라하고 그 밑에 2줄로 훗일 백 오십육년 갑인 팔월 이십육일 개석입(1734)이라 새겨졌다. 라. 지방유형 제 16호 조경묘 조경묘는 전주 이 씨의 시조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1771년(영조47년)에 창건되었다. 이한 공은 태조의 21대조로 신라의 사공 벼슬에 올랐었다. 시조 비는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군윤 김은의 딸이라고 전한다. 위패는 영조가 친필로 위판의 궤 앞면 글씨를 쓰고 왕세손에게 후면을 쓰도록 하였는데 위판에는 시조고 신라사공 신위 시조 비 경주김씨 신위라 쓰여있다. 마. 전주사고 전주사고는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이어서 1449년(세종21년)에 성주사고와 함게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와 실록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전주사고는 전주성을 지키어 화를 면했고 실록은 안의, 손홍록 등 우리 지역 선비들이 내장산으로 옮겼었다.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 때에 실록각이 소실되었는데 1991년에 복원하였다. 바. 신연 어진을 옮기거나 봉안할 때 사용했던 가마 사. 향정 향로, 향합을 넣어 받쳐 드는 가마 아. 가교 조선시대 고관의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자. 옥교 본래 꽃무늬를 그려 넣은 채연, 다각지붕모양의 용정과 마찬가지로 왕실과 국가의식이 있을 때 옥책, 금보, 조서, 교명 등 보배의 운반에 사용하던 가마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길을 따라 그대로 들어가면 조선 태조 이성계 영정을 볼 수 있습니다. 주위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 중입니다. 가마, 다른 임금님의 영정이 보이고요. 천천히 관람을 하면서 설명문을 읽어보기도 하고. 다시 문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우측으로 대나무 숲이 보이는데 운치 있네요. 이 곳에서 예비 신랑, 신부가 한창 기념 촬영 중이고요. 더 나아가면 예종대왕 비, 전주사고를 잠깐 구경할 수 있습니다. 주위를 보니 꽤 넓군요. 약간을 걸으면서 살펴보면 이번에는 소나무들이 띄엄띄엄 보이고...... 천천히 걸으며 경기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봅니다. 어느새 구두가 약간은 엉망이 되었군요. 바닥이 진흙에......(녹은 눈...... 알아서 상상을 하시길) 전주에도 이런 곳이 있었는데 왜 한 번도 못 가보았을까 하면서......(왜 그랬을까?) 구경을 한 후 다시 입구로 와서 관광 안내자료를 얻으려고 했는데 역시 문이 닫혀있군요. 그래도 운이 좋게 근처에서 경기전 관광 안내 자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음에 구해야겠지요. 이번에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 동부시장을 가게 되는데 여기서는 한과를 먹어보기로 합니다.(내심 기대했던 곳) 아카데미떡집(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1가 4-1번지 (동부시장 상가 앞)) 063) 288-5072 이라는 곳인데 아쉽게도 한과는 2일 뒤에나 판매를 할 것 같군요.(정말 한과를 맛보고 싶었는데) 한과 대신 떡을 구입하였습니다. 찰떡과 기타 등...... 그리고 동문정류장에서 47번 버스를 타고 전주시청을 지나 금암1동사무소 앞에서 내렸습니다. 이 곳에서는 바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박현주님이 특별히 준비한 곳이라고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헉 가니까 토끼탕 저도 놀라고 영희님은 더 놀라는군요. 다행히? 셔터문이 닫혔는데 박현주님의 이야기가 압권입니다. 어제 확실히 오늘 문 연다고 들었는데 말씀하시면서 직접 가서 셔터를 올리려고 하는군요.(정말 엽기......) 그래서 대신 다른 먹을 거리를 찾다가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인 전주비빔밥을 먹기로 합니다. 한국관 본점(http://www.hankookkwan.com 063) 272-9229, 272-8611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712-3번지 전주종합경기장 정문 남쪽편 사거리)을 가게 되었는데 예전 중2때 지리산에 갔다가 전주에서 잠시 들른 곳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메뉴는 한국관 놋그릇 육회 비빔밥, 한국관 돌그릇 비빔밥, 한국관 파전, 황포묵 육회, 황포묵, 모주 등이 있으며 솔직히 가격은 비싼 것 같습니다. 간만에 먹어보는 비빔밥이라 내심 기대가 되는군요.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음식이 나오는데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먼저 파전이 나왔는데 박현주님은 정말 먹고 싶어서 군침을 삼키는데 비빔밥이 나온 후 같이 사진을 찍고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물만 들이키고(사실 물은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반찬 역시 깨끗하게 손대지 않고 비빔밥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비빔밥이 나온 후 재빨리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냠냠 쩝쩝 간만에 먹어보는 전주 비빔밥이 맛있습니다. 덩달아 파전도 맛있는데 아쉬운 것은 저의 카메라 때문에 약간은 식어서 먹어야 한다는 것......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양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배가 고파지는군요. 이제 #476 열차의 출발시각이 대략 1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바로 길을 건너면 전주역으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계속 정면을 바라보고 걸어가면 되지만 시간이 꽤 걸립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전주역 앞에 도착하게 되고 표를 구입하는데 서울로 가려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시간이 약간 걸리게 됩니다. 표에 전주역 기념 고무인을 날인 한 후(아까의 풍남문을 생각하며) 드디어 열차에 오릅니다. 특실을 타보기도 오래간만이군요. 아쉬운 것이 기관차 바로 뒤가 특실인데다 맨 앞의 1-64번이니 문이 열릴 때 마다 찬 바람이 불고 기관차의 소음을 그대로 들어야 한다는 점...... 삼례역 우석대학교를 지나 전라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익산역을 지나면서 영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대전역이군요. 이제 밖이 껌껌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고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영등포역에 도착하여 오늘의 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ps. 나의 큰 실수 : 여태까지 찍은 사진 모두 날려 버렸다. 헉스!(박현주님과 박영희님한테 돌이 날아와도 할말이 없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