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성경구절 28절은 욜2장 28절~32절('말세에 이스라엘에게 부어질 주의 영'을 설명하는 본문)의 내용 일부로써 '그 뒤에'라는 것은 바로 '말세에', '마지막 날에', '7년환란기의 때'를 말합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본토에 거주하거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신약성경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아직 신약성경기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성령을 인정하거나 알지도 못 할 뿐만이 아니라 성령침례라는 방법으로 신약성도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영원한 내주'를 체험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바로 이 욜2장28절의 수신자입니다.
('증거' : 같은 문맥인 행2장21절의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를 통해 수신대상이 유대인임을 확실히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욜2:28절의 기록은 바로 7년환란기에 유대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이 기간은 환란성도인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크고 두려운(terrible) 주의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대언자 요엘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행2장 20절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똑 같은 7년환란기, 곧 '마24:21;계7:14절의 큰 환난(great tribulation)'과 계6:17절의 진노의 큰 날(the great day of his wrath) 그리고 단12:1절 고난의 때(a time of trouble)를 똑같이 다시 묘사하면서, 행2장20절에서는 신약성도 입장에서 볼 때 유대인들이 당하는 7년환란기의 후반부가 참으로 '저 크고 주목할 만한(notable) 주의 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문맥안에 포함된 행2장21절의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사건(렘30:7 '야곱의 고난의 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대상이 이스라엘 곧 유대인들임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대언자 요엘이나 사도 베드로는 모두 각각 자신들의 민족인 이스라엘민족 곧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신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재론의 이유나 재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두 본문인 욜2:28절과 행2:17절을 좀 더 비교해 보겠습니다.
두 본문이 똑같은 7년환란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 문장간 약간 다른 표현부분이 눈에 뜨입니다.
분명 7년환란기간내의 환란성도들의 영적인 경험과 성령임재에 대한 동일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데 사건을 직접 겪는 '당사자들 그룹'과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그룹' 2개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당사자들 그룹> : 직접 이 땅에서 몸으로 대환란을 그대로 당하고 겪으면서 민족적 회심을 하게 되는 이스라엘민족들에게는 요엘의 진술처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인데 비해,
2)<시청자들그룹> : 개인적인 회심의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령침례를 받아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자들 곧 우리 성도들은 7년환란기전에 주님의 공중재림과 함께 성도의 부활이나 공중들림(=휴거)의 방법으로 이미 셋째하늘에 올라가 있는 상태이므로 그 때에는 신약성도들(=그리스도의 몸)은 단 한사람도 이 땅에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신약성도인 우리가 셋째하늘 위에서 이 땅의 유대인들을 내려다 보는 7년환란기의 사건들을 지켜 볼때, 7년환란기의 관람자인 신약성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령이여 임하소서'라는 표현 자체가 신약성도들(=그리스도의 몸)에게는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성경신자 모두가 이견없이 잘 이해하고 있듯이, 모든 신약성도는 이미 성령님께서 다시 태어난(=거듭난) 각 사람의 영이라는 처소에 임재해 영원히 내주해 계시며, 결코 버리거나 떠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요10:28-29) 결코 또 주님을 마음에 다시금 영접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성령이 임재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어불성설입니다.
이미 모든 신약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안으로의 침례를 받아(갈3:27)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상태로 성령께서 개인적으로 모두 임하여진 상태로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너희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크고 두려운 주의 날, 큰 환난, 고난의 때들로 불리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는 곧 이스라엘의 고난의 때입니다.
이 7년환란기의 기간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비로소 깨우치고 '성령이여 임하소서'라고 외치며 민족적인
회심과 대각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 죄를 지었을 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대언자의 대언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이셨다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사울이 {주}께 여쭈었으나 {주}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대언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삼상28:6절)
사울의 경우를 통하여 이 말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이스라엘사람들은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대언자로도 그리고 환상들로도
주님의 뜻을 비춰주심이 원래 자연스런 하나님의 방법이였음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전 십자가사건으로 인해 흘리신 주님의 피 곧 새 상속언약의 피(New testament=신약, 마26:28;막14:24;눅22:20;고전11:25)가 제시되면서 유대인들에게 허락되었던 여러가지 표적들(고전1:22;눅16:20)이라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 기능과 역할들을 잃게 되었습니다.(고전13:8-10)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가까운 때에 이제 곧 성경기록에 약속하신 대로 공중재림하여 주님 오신뒤에 7년환란기간에는 유대인들에게 한하여 다시금 이런 표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증해 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욜2장28절을 다시 잘 읽어보면, 자신의 민족대언자인 요엘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에게 계속 너(=이스라엘)의 아들딸은 대언을 하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젏은 이들은 환상을 보는 방법으로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어느편에 설것인지를 유대인들은 뒤 늦은 후회와 함께 통곡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데,
이때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임하소서', '오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는 간청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계22:20;시70:5)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고전1:22)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막16:20)
이런 표적을 통한 말씀 증언방법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백성 곧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욜2:28-32절과 행2:17절과는 달리 히1:1-2절에서 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