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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1일
살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만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안산은 중턱부터 미끄럽고 날씨까지 쌀쌀하다. 정상에서 바라본 도심의 모습이 햇살에 비치고 빌딩에서 내뿜는 연기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숨결과도 같이 느껴진다. 산에서 내려와 체육관 갔다가 오후에 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대화를 한참 나누었다.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어머니에게 얼굴까지 부비며 마음을 전했지만 시종일관 표정에는 변화가 없으셨다.
2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어둠이 가고 날이 밝아 오듯이 나에게도 희망의 날이 올 것을 믿고 열심히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오늘 아들이 개학을 했고 일주일쯤 학교에 더 나가면 단기방학이 되고 3월에 2학년이 되는 것이다. 어제부터 아내가 영화를 보자고 하기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한터라 이른 아침에 불광동으로 갔다. 함께 영화를 본 것은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본 말아톤 이후 3년만이다. 등교하는 아들과 함께 내려가는데 키가 훌쩍 자라 나와 비슷했고 머리도 세워 멋을 부렸지만 아직 몸은 왜소해 보였다. 당연 고등학생이 되어 체격이 더 커진다면 훤칠하고 잘 생긴 모습으로 변하겠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빠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영화는 2004년 핸드볼 준우승 과정을 담은 내용으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과 남북한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영화 우생순이다. 극장을 나와 쇼핑을 하고 오후에는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 종로구 문화회관에 동학이의 공연을 보러간다는 아내와 아들을 태워다 주고 왔다.
3일 아침 식사를 마친 내가 북한산에 가려고 준비하면서 아들에게 동행을 요구하니 흔쾌히 따라 나선다. 정릉에 10시에 도착하여 대성문 대남문을 지나 문수사에 들어갔다가 나와 능선에서 아들은 컵라면 나는 누룽지로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 내린 눈으로 산이 미끄러워 영취사 방향으로 엉금엉금 내려와 봉사활동 간다는 아들을 홍제동 송죽원까지 태워다 주고 나는 내부순환 도로를 타고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돌아왔다.
4일 새벽에 자고 눈을 뜨니 아침 10시가 되었고 아내는 콩나물국을 만들었다며 식사를 권한다. 오전에 신설동으로 가서 1층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금 일부를 우선 받았다. 병원에서 외출하여 환자복을 입고 계약을 하는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건설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지금도 소송 중이라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이 곳에는 칼국수집을 해보겠다며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를 낸다. 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경기학원으로 이동하니 1월 강의료가 금액이 많지 않다면서 약속된 60%가 아닌 올페이(100%)를 선뜻 정산하여 준다. 힘든 마음을 알아주는 학원과 다가오는 설날 선물까지 안겨주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학원장이 고맙기만 했다.
5일 아들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1학년을 마치고 3월에 2학년으로 올라 간다. 어제 아내가 명절도 다가오고 1년 동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담임한테 케익과 상품권을 보냈다. 서로간 부담이 없으니 스승의 날도 학년이 바뀌는 오늘쯤 된다면 좋을 것이다. 내일부터는 구정 연휴라 평소보다 분주한 모습으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고향 경북 영덕에 가는 영식이에게 어머님께 드릴 선물을 전하려고 전화를 하니 벌써 고속도로를 가고 있다. 영식이의 형은 고향에 내일 간다니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오면서 청량리 경동시장 들어가 곶감과 한우사골을 준비하여 청파동에 가서 전해주고 왔다. 선물을 구입하면서 집에서 먹으려고 등심을 함께 사 왔는데 맛이 없어 선물도 가짜가 아닌지 의심되었다.
6일 어제 밤부터 아내와 아들이 학원숙제로 대립하더니 오늘 아침까지 다툼이 계속 되어 나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학원 숙제를 하라는 아내와 신경쓰지 마라는 아들의 의견 차이다. 머리를 식히려고 안산에 올랐더니 영하 8도의 기온으로 이제는 귀가 시려워 11시에 내려왔더니 아내는 명절 준비하러 신내동에 갔다. 나는 교통체증을 피하여 큰형이 있는 용미리 납골함으로 미리 가서 허망한 눈물과 함께 국화꽃을 걸어두고 내려왔지만 올 때마다 그리움이다. 서울로 들어와 신내동에 가서 음식준비를 마친 아내를 태우고 경동시장에 들어가 어제 고기가 맛이 없다고 항의를 하니 과일로 교환을 해주었다. 밤에 청산학원 동료인 이호섭 선생 장인이 별세하시어 집에서 가까운 서대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문상을 가니 내일이 명절이라 썰렁한 모습이었다.
7일 정월 초하루 설날이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대가족 식구들이 설빔을 준비했던 흥성한 그 시간이 그립다. 어머니와 함께 차례를 지내려고 일찍 병원에 도착하여 휠체어에 모시고 신내동 집에 들어섰다. 모처럼 집으로 오신 어머님은 예전처럼 음식에 간섭까지 여러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식사후에 오래 사시라고 세배를 드리니 별 좋을 것도 없다면서 이내 슬픈 기색을 보이신다. 조카 진우가 의기소침해 있어 내년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용돈겸 세뱃돈을 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11시경 청주로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성묘차량 등 정체가 심하여 오후 3시에 겨우 복대동 집에 들어갔다. 떡국으로 점심을 먹고 가족 윷놀이 대회에서 동렬네가 1등이고 재규네가 2등, 장인어른과 한팀이었던 내가 꼴찌를 했는데 무엇을 하든 재주가 있고 실속이 있는 사람은 동렬이다. 저녁을 조금 먹고 피곤하여 아랫방 3호실에 가서 누워 있으니 매트는 뜨겁고 방안의 공기는 차가워 밤새 고생을 했다.
8일 새벽 2시에 잠깐 잠이 들어 눈을 뜨니 4시30분이다. 차가 막히는 이유로 일찍 서울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방 안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와 미리 시동을 켜고 5시에 복대동을 출발했다. 원래는 연휴기간에 장거리 여행이라도 할까 생각했는데 몸이 피곤하고 날이 추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울에 일찍 도착하여 계속 잠을 자겠다는 아내를 차에 두고 나와 아들은 모래네 설렁탕에서 아침을 사 먹었다. 집에 들어와 잠깐 자다가 11시가 지나 안산에 올랐다가 오후에 휑한 도심길을 가로질러 어머니 병원에 들어가니 여행간 사람이 벌써 왔다며 반가워 하신다. 형님 식구들도 분당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병원에 들어와 만나고 조카 현주도 보았는데 태어났을 때 너무 귀엽고 예뻐서 날마다 과자를 사주고 안고 다녔던 시간이 벌써 23년 전, 세월이 빠르고 벌써 대학교 4학년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9일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강의만 하고 지내온 터라 식사하고 등산 겸 온천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아들은 집에서 숙제를 한다기에 어쩔 수가 없어 우리만 BMW 차를 몰고 구파발 송추 의정부를 지나 동두천에 위치한 소요산까지 갔다. 나도 처음으로 와 보는 곳으로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연이 깃든 자재암이 있는 경기 북부의 도립공원이다. 사찰 뒤를 걸어 하백운대, 중백운데, 상백운대 길을 오르다가 하백운대 420미터 지점에서 멈추고 다시 내려와 주차장에 돌아오니 3시간이 지났다. 주변을 구경하고 유황온천으로 가는 길에 맛있는 음식이라고 연천 한우설렁탕을 사 먹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영식이가 서울역에서 기다린다고 연락이 와서 3시간 가량 쉬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영덕에서 가져온 게 6마리를 전해준다. 그의 고향이 경북 영덕이라 싣고 온 것인데 집에 와서 찜을 해서 먹으니 다른 음식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10일 구정연휴 마지막 날이다. 아들이 명성학원 과제물을 못해 도서관에 간다기에 태워 주려고 했는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혼자 간다고 먼저 나가니 어쩔 수가 없었다. 오전에 집을 나서 정릉에서 북한산을 올라 칼바위 정상에 서니 12시가 지났고 가져간 누룽지탕을 먹고 내려오니 2시30분이 되었다. 친구 재웅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큰 아들은 고3 졸업이고 둘째는 중앙고에 야구선수로 들어갔지만 운동장이 도봉산 근처에 있어 현재 살고 있는 구로를 떠나 이사를 갈까 고민을 하고 있다.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 뵙고 돌아와 어제 남은
게 3마리를 먹는 중 밤 8시50분 남대문에 화재가 발생하여 타오르고 새벽 2시경에는 완전 전소가 되어 버렸다.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는 숭례문이 처절하였고 조선왕조가 무너지는 것같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1일 새벽 신문부터 TV까지 어제 남대문 화재 소식뿐이다. 국보 1호를 그것도 서울 도심에서 5시간이나 대책없이 보내며 전소시키다니 소방청과 문화재청에 시민들의 원성이 밤새 이어졌다고 한다. 남대문의 충격과는 아랑곳없이 새벽에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는 자동차 행렬이 줄을 서 있다. 아침 식사후에는 KTF 장애인 부사장이 TV에 등장하여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산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감동의 연설을 하고 있다. 10시에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다시 19층 집까지 땀이 나도록 걸어서 올라갔다. 점심쯤에 약수동 김성우를 만났더니 명절 때 돈이 한 푼도 없어 사무실에만 박혀 비참하게 보냈다며
그 상황에서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켜 준다. 오후에 인천 조사장과 통화하고 분당에 가서 차상률 원장을 만나고 또 병원에 가서 어머니까지 뵙고 집에 오니 가스렌지에 불만 켜져 있고 아무도 없다. 한참 후 아내와 아들이 들어와 위험함을 알리고 정신을 차리라고 지적하였다.
12일 새벽 3시까지 뒤척이다 눈을 뜨니 7시가 되었고 참치찌개로 식사를 하다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온 아들이 식탁에서 빈둥거려 밥맛이 달아났다.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니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아 11시에 가까스로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하고 경기학원에 가서 수업을 했다. 경기학원을 나와 병원에 가서 어머님 뵙고 장안동 정식이 회사 앞을 경유하여 8시에 집으로 오니 아들은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과메기를 먹고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어도 아침에 아들이 그렇듯 아내도 남의 일처럼 무관심이다.
13일 영하 10도 남대문 방화범이 잡혔다. 70대 노인이 개인적 불만으로 휘발유를 끼얹고 의도적으로 불을 지핀 장면이 뉴스의 머리를 장식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워 연일 영하 6도~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찬바람까지 불어 3한 4온은 커녕 대한민국이 아예 한대민국으로 변해 있다. 아침에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하고 동사무소에서 영어를 마친 아내를 태우고 안산초등학교 민경이 4학년 담임을 만나러 갔다. 딸을 대신하여 5학년 책도 받고 그 동안 수고했다고 선물로 가져간 떡을 전달하고 인사를 했다. 학교를 나와 독립문 4층 국어학원 자리를 확인하는데 시끄러운 길가라서 반대하는 아내와 전망도 좋고 간판도 잘 보이는 대로변이라 더욱 좋다는
나와 의견이 정반대다. 같은 장소를 두고도 부부라는 사람도 이렇게 의견이 다르니 사람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대립과 갈등이 존재할 것인가. 독립문을 나와 홍제역으로 아내의 핸드폰을 수리하러 갔는데 마땅하지 않아서 새 것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오후에 법정기한일 2월27일까지 인천 상가를 내 앞으로 이전해야 하는 문제로 임기홍 사장과 신설동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금전적 여유만 있으면 취득세와 등록세를 내고 소유권을 이전하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임기홍이나 김성우가 악착같이 자기 영역을 고수하여 금전해결을 잘 했다면 내가 상가에 신경쓸 일도 없는데 너무 선한 사람들이라 해결을 못하고 부담이 나에게 밀려온 상황이다. 집에 7시경 들어오니 아들과 요가를 마친 아내가 9시에 들어와 미역국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14일 지난 2월 4일에 김성만에게 보낸 편지가 주인을 못 찿고 어제 반송되어 왔다. 새벽에 다시 서류를 작성하여 아침에 연세대 근처 우체국에 가서 반송우편물을 받아 주소가 있는 등촌동 미주아파트를 직접 찾아가니 다른 사람이 거주를 하고 있다. 경비의 말로는 월세를 못 내서 법원에서 집달관들이 짐을 들어내고 또 채권자들과 싸워 경찰까지 출동하여 아파트가 시끄러웠다고 한다. 이런 김성만이가 지난 달 설정 해지를 요구한 것에 대하여 내가 들어주었다면 지금 어찌했을 것인가.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은 어제 엄마와 싸우다가 손가락을 다쳐 여섯 바늘을 꿰매었다고 싸맨 채로 식사를 한다.
15일 어제 밤에 아내와 인천건, 김성만, 차상률 등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누구라도 대화의 맥이 같아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면 그 자체가 위안이나 격려가 될 수 있고 물론 이심전심의 상대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천 상가 203호는 등기 이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뜻을 따라 오전에 개봉동 법무사에 갔다. 법무사에서 서류정리를 하다보니 203호는 약1200만원, 208호는 700만원의 등록세와 취득세 그리고 미납 이자에 대한 수수료 등 2000만원 이상이 필요한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 203호는 이전을 안하면 3개월의 시한을 넘겨 자동으로 기존 소유권자에게 귀속되고 나로서는 그대로 상가를 버리는 꼴이다. 개봉동 근처에 광명시가 있어 화장품 사무실을 운영하는 친구 남석이를 찾아가니 얼굴이 까칠하다며 화장품 2개를 건네준다. 오후 3시에는 분당에 가서 차원장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논술 수강생 졸업선물을 구입하러 홍제역으로 갔다.
16일 어제 영식이와 김성만이가 만났는데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하다. 오늘 서초동 우면산에 영식이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여 집을 나서다가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한테 잘 하라고 타이르고 용돈 1만원을 주니 아들은 불만의 표정으로 세뱃돈도 있다면서 받지 않는다. 10시30분에 영식이 집 방배동에 도착하여 10시50분에 산을 올라 정상 소망탑을 지나 호수가 보이는 남쪽 아래까지 갔다가 중턱에서 컵라면과 과일 그리고 영식이가 가져온 담근술을 마셨다. 밤에는 고민으로 잠을 설쳐도 오늘처럼 산에 친구랑 와서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편하고 후련하다. 2시경 내려와 설렁탕을 먹고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6시 지나서 들어왔다. 혼자 식사를 하는데 7시에 아들이 왔고 아내도 힘이 없이 시무룩 하더니 결국 모두 말 한마디 없이 잠들었다.
17일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것은 곧 행복하다는 소리인데 짧다는 2월이 나에게는 끝없이 길기만 하다. 새벽 2시에 잠깐 일어나 쿨쿨 자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다 다시 들어와 잤다. 아침 9시30분 아내를 차에 태우고 경인고속도로를 달려 10시30분경 인천 간석동에 도착하여 203호와 208호를 보여주고 건너편 부동산에 들어가 상담도 했는데 날이 너무 추워 짜증날 정도였다. 은행 융자를 안고 내가 인수를 해야하는지, 그냥 버려야 하는지 금전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답답했다. 나의 고민과는 별도로 아내가 송도 국제신도시를 보고 싶다고 하여 인하대 정문을 경유하여 도착해 보니 항구쪽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송도를 출발 20분만에 소래포구에 도착하여 굴밥과 알밥을 각각 사 먹고 새우와 명란젖을 구입했다. 오늘 모처럼 아내와 긴 시간 동승하여 다니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가 통하는 것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집에 3시경 도착하여 냉장고 음식을 먹으려고 보니 상한 것이 많아 헤집고 꺼내두었더니 그것으로 저녁에 아내와 다투었다.
18일 어제 혈압이 오른 채로 자다가 머리가 무거워 새벽에 안산에 올랐다. 날씨는 추워도 맑은 공기가 신선하고 상쾌했다. 정상을 지나 내려오다 바위 중턱에 앉으니 출근하는 차량 행렬이 달리고 있고 빌딩 여기저기에서 경쟁하듯 일직선으로 피어 오르는 연기로 도심의 모습이 장관이다. 집에 8시30분에 들어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내는 어제처럼 냉장고를 뒤지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입장을 말하고 나는 냉장고 안에 오래된 내용물이 여러 번 있어서 지적을 했는데 변화가 없었고 또한 싱싱한 음식을 조금씩 사서 빨리 먹어야 건강에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하고 인천으로 가서 조한군사장 만나 상가 인수에 대하여 복잡한 심경을 의논하고 외곽순환도로 타고 분당에 갔다가 다시 방배동으로 와서 저녁에 김성만과 영식이를 만났다. 김성만은 미안함을 여러 번 말하고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 나를 위함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시급하다고 확실하게 약속을 해 준다.
19일 어제 영식이 집에 차를 두고 와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시내버스로 방배동으로 갔다. 아침에 차갑던 날씨가 낮이 되면서 훈훈한 기운이 감지되니 봄이 오려나 기대가 되었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이동하여 어머니 재활훈련 도와드리고 집으로 오는데 영식이가 정기 검진을 받았다면서 나도 수시로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20일 어제보다 오늘이 더 포근하여 아침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다. 일이 복잡하고 심정도 괴로운데 1,2월 내내 영하 10도를 오르는 지루하고도 짜증나는 겨울, 올해는 하루라도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새벽에 안산에 올라 걸으니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진다. 집으로 와서 아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니 아들은 다시 들어가 11시까지 잠을 잔다. 공부도 하지 않고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답답하여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들어오니 이제는 컴퓨터 게임을 정신없이 하고 있다. 한심스러워 억지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갔더니 어머니는 내 속도 모르고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하는 놈을 어루만지고 좋아 하신다. 집으로 오면서 신설동에서 아들이 먹고 싶다는 육개장을 사 주고 종로 3가에 내려주었다. 김성우 연락이 와서 곧장 약수동 사무실로 갔더니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며 2백만원을 입금해 준다. 최악의 상황에서 끝까지 의리와 신의를 지켜가는 김성우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 미안하기도 했지만 서류상 약속된 금전관계라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축구경기를 함께 보며 저녁을 보냈다.
21일 새벽에 일어나 안산에 올랐다가 정상을 거쳐 집에 들어오니 8시30분이다. 아들은 마지 못해 나와서 수저만 몇 번 움직이고 들어가 버린다. 밥도 안 먹고 잠만 자고 그러다 눈을 뜨면 컴퓨터를 하고 화를 참고 있는 중에 옆에 있는 아내가 아들은 이미 포기했고 앞으로 딸 민경이만 믿고 산다고 말한다. 내가 놀라 중,고등학생이 되면 자기의 생활이 있으니 달라지는 것이고 건강한 것만도 행복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아들 때문에 속이 터지는 사람이 나인데 아내를 위로하는 상황에서는 거짓말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병원에 가서 손가락 실밥을 제거하고 아파트 102동에서 수학과외 마치면 바로 명성학원 간다기에 점심값으로 5천원을 주었다. 오후에 신설동 거쳐 어머니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와서 곽기호 수학학원에 갔다. 커피를 마시고 곽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후배이니 학원도 잘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집에서 일찍 식사하고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11시가 되었고 거실에 나가니 아들은 늦게 식사를 하고 있다.
22일 아내가 잠을 자다가 새벽에 민경이 방으로 가면서 거기에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며 이불을 들고 이동한다.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오늘 정월 대보름 아침 새벽에 신문을 보고 7시에 안산을 올랐다. 대보름 오늘시골에서 쥐불놀이와 컴컴한 밤에 깡통에 장작불을 담아 돌리다가 공중에 던지면 신기루같은 불꽃놀이가 재미있어 설날보다 더 기다려 왔던 날이다. 산에서 내려와 식사하는데 아들은 계속 잠을 자고 있다. 사업도 어렵고 어머니도 병원에 계시고 집에서는 나태한 아들때문에 답답함이 이만 저만 아니다. 체육관에 갔다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TV만 보고 인사는커녕 쳐다보지도 않는 놈 어쩌다가 저런 아들을 낳았는지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설동으로 가서 3층 백사장과 임대료 때문에 고함을 지르며 심하게 다투고 병원으로 가니 어머니는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눈가에 상처가 나 있다. 비가 내리는 오후에 아내가 성산동에 있는 학원으로 특목고 초청강연회 들으러 간다고 전화가 온다. 아들이 중1이고 내년에 입시정책이 또 달라지니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에 가라고 하니 지금이 중요하다며 굽히지 않는다. 지금은 별 소용이 없다고 소리를 높이자 요가를 간다며 전화를 끊는데 강연회에 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소리만 높이고 혈압만 오른 죽을 수도 없는 하루를 보냈다
23일 새벽 6시에 일어나니 아내가 민경이 방에서 자다가 온다. 발가락이라도 맞대고 자야 한다고 옛날에 이야기를 여러차례 했는데 안타까울뿐이고 세월이 흐르면 아쉬움의 시간이 남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 세피아 차 안에 키를 넣고 문을 잠가 보험회사에서 긴급출동하여 아침에 해결하고 산행을 위하여 구파발 지나 북한산성으로 갔다. 어제보다 훨씬 쌀쌀하여 북한산 계곡의 온도는 영하 10도는 될 것같다. 쉬지 않고 걸어 중성문을 지나 대남문에 도착하니 10시30분이 되었고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을 지나 북한산장까지 계속 능선을 걸었다. 답답하고 힘들때는 땀을 흘리고 걸어야지 이불을 쓰고 누워서 고민하고 생각만 하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쉽다. 혼자 걷는 길 차가운 바람에 귀가 시릴 정도지만 마음의 고통과 비긴다면 걷는 지금이 행복하다. 오후 2시에 주차장으로 내려와 사패산 터널을 통과 외곽순환도로를 거쳐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근처에서 차원장을 만나고 다시 올라와 어머니 병원에 도착했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밤 8시에 집에 들어가니 아내와 아들이 한,일전 축구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24일 오늘이 일요일인데 날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평일과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일찍 일어나 식탁에 앉으니 삭막하고 밥을 먹는 것도 배를 채우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아침이었다. 아내에게 북한산에 함께 가자고 말을 하니 평소에 운동이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반대만 하는 사람이 선뜻 응하여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10시경 집을 나서 11번 버스를 타고 홍은동 종점에서 오르기 시작했는데 아내와는 북한산을 오늘 두 번째로 오르는 날이다. 향로봉 아래를 지나 비봉에 올라 북한산 순수비를 보려고 하니 일요일이라 사람들도 많지만 아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어 포기하고 5분을 걸어 사모바위 근처에서 컵라면과 김치에 청하 1잔을 마셨다. 함께 산을 오르다 보니 서로의 마음도 헤아리고 거기에 신선한 공기와 운동까지 행복은 이런 평범함 속에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시가 거의 되어 하산하는 불광사 방향은 바위가 많고 경사가 급하여 위험했고 불광동 전철역까지 거리가 있어 불편했다. 킴스클럽에 들어가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에 고등어 김치찜을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25일 새로운 대통령 취임식 날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일찍 일어난 아내는 민경이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나로 하여금 깊은 잠을 자도록 배려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지만 책을 읽다가 내가 일어나 거실에 나오면 다시 들어가 잠을 잔다. 8시가 되어 안산에 단거리를 달리듯 올랐다가 다시 그 길로 돌아왔더니 1시간이 걸렸다. 9시경 필리핀에서 딸한테 전화가 왔는데 건강하게 잘 있고 다음 주에 귀국한다고 알린다. 살면서 당당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요즈음은 너무 무기력하고 나약해 목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대답만 몇 번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불광동 흥국생명 건물에 보험을 해지하기 위해 동행했다. 빌린 돈을 우선 갚으면 이자가 줄어들어 선택한 것으로 살면서 보험까지 해지해야 하는 현실로 마음이 복잡했고 또한 2천만원의 금액을 반드시 채워 놓겠다고는 했지만 미안함이 컷다. 그러면서도 실타래를 풀어가듯 이 상황을 처리할 것이고 건강을 잃어버리거나 폐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반드시 당당한 내모습으로 일어서리라 여러 번 다짐도 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대출서류 만들고 경기학원에 갔다가 신설동에 갔더니 엊그제 계약한 1층 식당 사장이 계약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이미 넘겨준 계약금 1백만원은 버린 셈 친다며 체념을 하고 원칙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는 내 입장으로는 이웃끼리 난처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1층 임대 현수막을 추위 속에 다시 걸면서 일이 풀리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진눈깨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는 오후에 분당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신설동 상황을 아내에게 이야기 하는데 아들이 들어 왔다. 식탁 근처에서 머뭇거리더니 대뜸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5학년까지가 전부였다면서 불만에 찬 목소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찌해야 할지 식탁에 말도 못하고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26일 어제 오후부터 내린 눈이 아침에 보니 수북하게 쌓였고 안산도 흰눈으로 장관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많이 장시간 내린 눈이다. 아침 식사후 산에 가려다 아내의 권유로 개인과외 국어광고문을 만들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정신적, 물질적으로 힘이 드니 그것도 수용해 보고 싶은 것이다.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오니 아들은 TV를 시청하다가 컴퓨터를 켠다. 경기학원에 가서 50대 후반의 수학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작은 일에서 보람을 찾으라며 격려해 주는데 옳은 말씀일지라도 실행을 하기에는 별개의 일이다. 분당에 갔다가 집으로 9시에 들어와 김치찜으로 저녁을 먹고 자려고 하는데 공부하고 왔다며 12시에 아들이 들어 왔다.
27일 눈도 녹지 않고 바람까지 불어 쌀쌀하다. 2월말이니 봄의 기운도 있을 법한데 왜 이렇게 추운지 일도 안되고 마음도 괴롭고 이렿게 힘든 겨울은 처음이다. 오전에 조카 용구가 퇴계원에서 고1 과정 국어를 배우러 왔기에 고등국어를 전체적으로 설명해 주니 흡족해 한다. 오후에 경기학원에 갔다가 신설동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손가방이 없어졌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사는지 혼자 우왕좌왕 하다가 처음 장소인 경기학원에 들어가니 상담실 탁자에 그대로 올려 있다.
28일 상가도 버려야 하는 새벽에 마음이 심란하여 아내를 깨워 이야기좀 하려고 하니 민경이 방으로 들어가 책만 읽고 있다. 당연 수업을 위해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해야 하지만 일에는 중요한 일과 순서가 있는 법인데
살아가는 근간을 모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7시에 안산에 오르니 어제보다는 기온이 올라 시원하고 좋았고 아침에 어제 용구가 와서 하루 잤기 때문에 오늘 아침은 4명이 식사를 했다. 오전에 용구가 간다기에 용돈이라도 챙겨주라고 아내에게 말하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집으로 왔다. 점심을 먹으며 명성학원 재등록 문제를 이야기하다 말대꾸를 하는 아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는데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이것 저것 사는 의미가 없었다. 여러 생각이 들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저녁에 아내에게 사과를 직접 깍아주고 잠자리까지 푹신한 이불로 만들어 주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주시한다.
29일 한 달이 금방 지나고 벌써 2월의 마지막이다. 29일을 돌아보니 고난과 고통뿐이었다. 새벽에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니 9시가 지났는데 아들은 계속 잠을 자고 있다. 3월이 오면 학교 때문에 일찍 일어날 것이고 갈등의 내 심정도 조금은 진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체육관에 갔다가 집에 오니 아들이 안방에서 TV보며 밥을 먹고 있는데 반항심만 가득한 아들을 보니 괜히 화가 치솟는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경기학원에 가서 3월 수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약수동 김성우를 만나니 돈이 없어 이제는 차를 팔겠다며 트렁크 짐을 사무실에 옮겨 두어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저녁에 영식이 전화가 와서 심난한 마음으로 남영동 생태집에 갔더니 내년에는 노량진 대성학원으로 갈 예정으로 나와 함께 갈 것이니 강의준비를 잘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가급적 자녀들이 보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거라면서 힘내고 열심히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마음 한쪽에는 삶의 어려움이 다른 한쪽에는 친구의 우정이 눈물이 되어 흘러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