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거리 위의 커피색 수채화
죽전 카페거리
차가운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면 사람들이 아득한 옛 기억 속으로 잠기는 것은 그 속에는 더듬을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나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자리인 듯 언제든 찾아가 편안하게 커피와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멋진 행운일 것이다. 번잡한 도심의 커피전문점처럼 자리가 없어 방황할 필요가 없는 곳 말이다. 귓가엔 음악이 흐르고, 창밖엔 낙엽이 흐르고, 가슴속엔 추억이 흐르는 그런 곳. 어딘가로 바삐 지나가던 현재의 시간이 잠시 멈춰 서서 가장 따뜻했던 과거의 시간과 조우하는 곳. 그래서 여행길은 언제나 일상의 뒤편에서 커피향 같은 활력소를 선물한다. 도심을 벗어난 특유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거리. 가벼운 차 한 잔도 마음의 진수성찬이 되는 이곳, 죽전동 카페거리에서는 길가를 뒹구는 쓸쓸한 가을볕마저 여유롭고 따사로워 보인다. |
가을길에서 만난 보석상자
화려한 메뉴와 이국적인 풍경으로 치장한 카페거리는 이제 도심 한복판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홍대 카페거리와 같은 이름난 카페촌이 자리 잡은 도심 한복판을 벗어난 곳에 커피향이 가득 고여 있는 마을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보정동 상가 뒤편 골목에 자리 잡은 죽전 카페거리가 바로 그곳. 주택단지 안에 들어선 이곳 카페거리에는 몇 년 사이에 급증한 카페가 현재 60여 개 정도 밀집해 있다. 가족이나 연인, 또는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가을의 거리. 얼핏 평범해 보이는 아파트촌 한 편에 이색적인 모습으로 여유롭게 펼쳐져 있다. 마치 유럽풍의 골목을 산책하는 듯한 자유로움이나 신화 속의 궁전에라도 들어선 듯한 착각은 차갑고 건조한 마음을 기분좋게 어루만진다.
맛있는 커피와 빵, 그리고 편안하고 아늑한 카페들이 많아서 자주 찾는다는 단골이 이곳에는 많다. 동심을 자극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벽과 창문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일어나기가 아쉬울 정도로 포근하게 감싸 주는 의자들, 그리고 그림책 속의 왕궁 같은 환상적인 색감으로 물든 거리. 일반 주택을 개조해 운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새롭게 꾸며진 카페들은 이곳의 행인들이나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죽전의 보석과 같은 명소인 셈이다.
특히 서울의 카페 명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용인, 수원, 분당 일대의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메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도심 사람들도 주말을 이용해 이곳을 찾는다. 또한 쇼핑몰 모델들이 진지한 포즈를 취하고 기억 속에 추억을 담는 친구들이 깜찍하고 발랄한 포즈로 즐겁게 누비는 거리. 죽전 카페골목에서는 아름다운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띈다.
이곳 카페촌의 특이한 풍경 중 하나는 방문객의 연령대가 폭넓다는 것. 이곳을 찾는 고객층은 매우 다양하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부터 다정한 연인,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젊은 주부, 동네 지인들과 오후를 즐기러 나온 중년남자, 엄마의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따라가는 아이와 마실을 나온 듯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나고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섞여서 이곳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생기과 활력이 넘치는 거리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연유로 연령층에 맞는 콘셉트로 고객의 입맛과 스타일을 맞추려는 카페들이 많다.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북카페와 가벼운 가족 나들이객을 위한 브런치카페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요리와 동남아식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여럿이다. 물론 간단한 간식을 파는 카페도 있고 핸드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테마에 맞춘 맞춤형 카페들이 즐비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이곳 카페거리는 역동적인 동영상과 같은 활기와 고요한 흑백사진과 같은 편안함이 함께 어우러져 묘한 정취를 풍긴다.
죽전동의 발자취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죽전동竹田洞은 옛 수지읍 죽전리로서 현재는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정평천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본래 용인군 수진면(옛 수지면의 이름)의 지역으로서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바위, 점촌, 풍덕내 일부를 병합하여 죽전리라 해서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다시 수지면에 편입되었으며 2001년 수지읍이 수지출장소로 승격되면서 죽전1,2동으로 분동되었다.
죽전동은 북쪽으로는 성남시, 동쪽으로는 처인구 모현면, 남쪽으로는 기흥구와 접해 있다. 서쪽으로부터 들어온 정평천이 탄천으로 합류되며, 이를 경계로 탄천의 서쪽은 죽전2동, 동쪽은 죽전1동이 된다. 이곳에 흐르던 큰 계곡물인 장장포는 지금은 평범한 하천이 되었으며, 수지구의 젖줄인 정평천은 환경부 G7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존의 하천정비와는 다른 공법을 사용하여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되고 있다.
또한 단독주택에 비해 아파트가 월등히 많은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죽전택지개발지구가 조성되고 있다. 수지2지구는 주거전용 택지인 데 반해 죽전지구는 일반택지로 개발되고 있어 대단위 아파트와 이와 연계된 상업지역이 형성되고 있다. 죽전1동은 대지산과 탄천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대지뜰을 중심으로 취락지구와 택지개발지구가 개발되어 있으며, 죽전2동은 지하철 분당선의 연장과 죽전역 설치로 성남시 분당을 비롯해서 서울로의 접근성이 높다.
교육과 관광, 첨단의 도시
용인은 현재 대학교와 연구소, 연수원이 많은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를 비롯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명지대학교의 용인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또 용인대학교와 강남대학교, 송담대학을 비롯하여 각종 신학대학교나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대학 과정을 가르치는 크고 작은 학교들이 밀집해 있어 교육의 도시로 널리 이름을 날리고 있다.
용인은 명실공히 교통과 관광의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을 비롯한 인근 시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입지에 자리 잡고 있다. 잘 짜여진 연계 교통망이 마련돼 있으며, 최근 용인시와 민간사업자 간 마찰로 진행이 다소 부진하긴 하나 국내에서 최초로 건설되고 있는 민관협력사업인 용인 경전철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용인의 교통 여건 증대와 주거 여건의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용인의 위상이 높아지고 용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교통 입지적 이점은 오늘날의 용인을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는 데 공헌했다. 산업시설과 연구단지가 이곳에 대거 들어서는 데는 주요 도시로의 용이한 접근성이 한몫했기 때문.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전자와 전기, 자동차, 원자력 등 모든 분야의 첨단 산업 시설 및 연구소 등이 용인 지역 일대에 포진해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있어 DRAM과 Flash Memory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자랑하고 있으며, 삼성 SDI 기술연구소 역시 PDP, LED, OLED를 비롯하여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발전소를 설계 감리하는 KOPEC과 통신위성인 무궁화위성을 관제하는 무궁화위성관제소도 용인에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수지구와 기흥구를 중심으로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이후 2013년을 기준으로 약 1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계획이 이루어지는 등 용인은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겪으며 급성장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축제를 꿈꾸다
용인에는 현재 경기도박물관과 세중옛돌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 디아모레뮤지움을 비롯한 다수의 사립 박물관 외에도 한국미술관, 호암미술관, 이영미술관 등 수많은 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식물군을 보유하고 있는 식물자원의 요람으로서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원인 한택식물원이 있으며,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고 백남준을 기념하여 2008년 건립된 백남준미술관도 이곳에 있다. 특히 백남준미술관은 용인이 명실공히 백남준 예술의 고향이 되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용인이 낳은 문화예술인들도 많은데 우리나라 연극의 대부 윤민영과 국악인 박상옥, 최근순, 최은호, 타악기 연주자인 유복성, 조각가 이일영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소설가 이재운, 박범신 등과 주요무형문화재 제1호였던 고 김천홍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용인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거나 용인에서 거주했던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용인은 또한 축제의 도시이다.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축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을 비롯하여 우리랜드와 한택식물원 등에서도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또한 용인문화원이 주관하는 포은문화제와 용구문화제, 용인예총이 주최하는 용인예술제 등은 용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 학교와 박물관, 미술관, 전시장에서도 다채로운 전시와 공연이 잇따르고 있어 방문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곳, 사람들이 용인으로 향하는 관심과 발길의 속도를 여전히 늦추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죽전 카페거리가 유명해지면서 건물주와 카페 주인들로 구성된 ‘보정동 문화의거리 추진위원회’와 단국대 죽전캠퍼스가 주축이 되어 지역 활성화를 위해 이곳을 ‘문화와 예술이 있는 거리’로 만드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로써 이 지역은 간판, 조명 등을 정비하여 보다 나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될 계획이다. 하지만 이곳은 개인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주차 환경이 열악해 주차를 위해 골목을 전전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용인시는 카페거리가 문화거리로 조성되면서 주차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이곳이 문화거리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물가가 덩달아 뛰어오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따라서 주차 문제와 함께 합리적인 가격 안정화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비로소 이상적인 카페문화거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카페소개와 인터뷰 생략.
글 : 왕진식 사진 : 황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