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모범시민』을 통해 본, 정의사회 구현에 대한 고찰
나자렛성가회 후원회원님들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달에는, 2009년 말에 개봉된 미국 영화『모범시민-Law Abiding Citizen』을 통해서, 정의로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영화는 평화롭던 한 가정에 아무런 이유 없이 괴한들이 들이닥쳐 아내와 딸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두 범인이 곧 잡히기는 하지만 정작 살인자는 담당검사 닉과 비도덕적인 거래를 하여 풀려나고,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공범이 살인죄를 모두 뒤집어쓰고 사형당합니다.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잃은 남자, 클라이드는 불의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와 법체계를 향한 복수를 준비합니다. 10년 동안 준비한 복수의 첫 단계로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그리고 법조인과 정부 관료를 포함하여 그 때의 사건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한 명 씩 처참하게 살해합니다. 결국 억울한 피해자의 모습이었던 클라이드는 그의 억울함에 대해 공감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잔인한 살인자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가 참 많습니다.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시작하던 무렵 저는 학비를 벌기 위해 유태교 랍비 해롤드 쿠슈너가 쓴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라는 책을 번역했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가슴 아프고 억울한 일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그 사람에게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잘못이 있기 때문에 하늘이 벌하셨을 것이라고 편리하게 그 나쁜 일을 정당화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그 사람에게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못을 찾으려 할 때도 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이 그러합니다. “뭔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 “바람을 피웠나? 도박을 했나? 남편한테 대들었나?” 등 등. 작은 흠이라도 발견이 되면,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드디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우리 나름대로의 규칙이 무너지지 않았음에 대해 안심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떻게 손가락질합니까? “왜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녀? 왜 술을 그렇게 마셨어? 왜 그 늦은 시간에 어두운 골목길로 다녀?” 합니다. 분명히 폭력의 피해자는 폭력을 불러온 원인제공을 했을 것이라 믿고 삽니다. 하다못해 현세에서 잘못을 찾기 어려울 때에는 이전 삶에서 지은 죄에 대한 값을 치루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피해자가 숱한 나날 매를 맞으며, 욕을 먹으며, 무시당하며 살다가, 어느 날 잠들어있는 가정폭력 행위자를 갑자기 칼로 찔러 살해하여 결국 오랜 시간 폭력의 피해자였던 이가 한 순간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가는 사례를 접하신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복수의 악순환은 부부 사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그랬으니까...”로 시작되어 끝나지 않는 부부싸움. “날 무시했어! 두고 봐. 그대로 갚아 주겠어!” “우리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밖에 못한다 이거지? 좋아, 나도 앞으론 당신 부모님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겠어!” 이런 복수의 악순환 속에서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피해자가 아닌 모두 가해자일 뿐입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의 저자인 랍비 쿠슈너는 인간이 경험하는 나쁜 일이나 고통의 원인이 신의 계획에 의한 권선징악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2007년 개정판을 내기 위해 다시 번역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경험하는 상처, 고통, 불공평 등의 원인이 정의를 위해 신이 내리는 벌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확신에 저도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시기심과 증오, 그리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나도 똑같이 보복하겠다는 복수심, 즉 정의를 복수심으로 구현해 보려는 인간이 가진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영화 『모범시민』을 통해 정의는 결코 응징과 복수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복수는 더 무서운 복수를 낳을 뿐 입니다.
억울함을 복수로 해결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사회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경인년 올해는 백호의 해입니다. 백호는 싸워야 할 때에는 결코 물러섬이 없는 용맹함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싸움을 막고 화해시키는 ‘평화’의 맹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무리지어 힘을 잘 뭉치는 습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런 백호의 습성은 지금까지 억압당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정의로운 사회를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만들 수 있을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합니다. 저는 그것을 “온화한 집단적 용맹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억울한 일을 당한 좋은 사람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이 잔인한 복수의 행위자로 돌변하지 않는 길은 그들의 억울함에 대해 누군가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며, 그들을 홀로 외롭게 두지 않고, 그들 편에 함께 서 줄 때입니다. 『모범시민』의 주인공의 억울함에 누군가 함께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힘을 합해,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법을 집행하는 관료들의 비도덕적인 거래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법을 바꾸는 집단적인 용맹함을 보였다면 피해자이자 ‘좋은 사람’이었던 주인공은 혼자 잔인한 살인자의 모습으로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결론이 액션 스릴러 영화 소재는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불합리한 세상과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에 대해 폭력적인 복수로 맞서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위로로 정의사회를 만들고 계시는 백호와 같은 우리 회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1919년 3월 1일에 우리 민족이 보여주었던 온화한 집단적 용맹성을 기억하면서, 이번 한 달도 마음의 평정 잃지 않으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2010년 삼일절에.
나자렛성가회 이사,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심우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