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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차 서방산의 하얀 산딸기 나무숲에서 향 내음을 즐긴 후
용진 화이트 하우스에서 저녁 만찬을 밤 늦도록
산행지 : 서방산(西方山/611.7m)(봉서제-서방산-봉서사)
행정구역 :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소양면 대흥리에 경계
산행일시 : 2007년 6월12일 화요일 흐림 17:30-19:50
산행참여 : 교장선생님, 교감 선생님, 전귀옥, 김삼중, 오교순, 김자미, 김지선,
이복재, 최성복, 권양택, 최문헌, 김몽현, 박승현, 한태순, 김용수, 이승규,
권영창, 김수영(18명)
오늘 드디어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순연되었던 서방산
산행날이다.
어제 회원님들께 서방산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서방산 산행
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산행이오니 공사간에 다망하겠지만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메시지로 올려놓고 산행만을 설렘으
로 기다릴 뿐이다.
이상하게도 매주 화요일이면 출근 때부터 가슴이 뛰고 마음이
부웅 떠 있어 매사가 즐겁기만 하다. 수업 시간마저도 방글방글
하면 학생들이
“선생님 오늘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라고 물으면
“응, 오늘 산에 가는 날이잖아.”
“선생님 산이 그렇게 좋으세요. 우리는 무척 힘이 들든데.”
“얘들아, 무슨 일이든지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냐. 참고 견
디면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는데 너희들은 그 맛을 아느냐?
화요일 학생들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또한 나를
마냥 기쁘게 한다.
이 기쁜 마을을 어디 나만이 느끼랴.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중에 복도에서 오늘 산행에 참여하
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얼굴엔 입 끝이 거의 귀밑까지 다다르
는 모습이다.
그저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오늘 산행에 참
여하시는 18명 선생님들 전체가 이 같은 마음이리라.
7교시 종례 후 우리 집합지에 나서니 교감선생님, 최문헌, 김몽
현 선생님이 산행 차림으로 나타나시는데 그저 좋기만 하여 우
리 모두 환영한다는 인사를 나누고 배차부장 최성복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18명이 승용차 4대로 분승하여 1차 집합지인 용진
면 간증초등학교에서 만나기로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문을
벗어나 간증초등학교에 이르니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권영창 선
생님 차가 먼저 우릴 기다린다.
마침 권양택 선생님이 용진중학교에서 근무한 일이 있어 이 곳
지리를 손금처럼 환하게 알아 지름길로 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
는 것이다.
좀 있으니 최성복 선생님 차가 도착되어 봉서제 쪽으로 향하는
데 맑은 간증리 호수가 우릴 시원스럽게 맞이한다.
간간히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어신을 기다리며 쪼그
려 앉아 있는 모습이 그저 한가로워 보인다.
드디어 봉서제 앞 널따란 주차장에 이르러 주차하고 산행채비를
하면서 총무께서 오늘 준비한 푸짐한 간식들을 각자에게 분배하
고 들어서는데 흐드러지게 핀 야릇한 밤꽃 향이 코끝을 간지럽
히기에 주위를 살피니 밤나무 옆에 고무나무 나뭇잎처럼반질한
잎 사이사이에 함박꽃처럼 하얀 꽃이 활짝 핀 태산목이 너댓
주가 도로변에 줄지어 있는 모습이 참 멋지다.
밀양박씨 봉서제 입구를 말끔히 단장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손질이 잘된 향나무들과 태산목, 그리고 향 내음을 발산하는 밤
나무 꽃, 깔끔하게 다듬은 잔디밭 등이 우릴 사로잡기에 우린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는데 2개 소대인지라 자리가 방방하여
간격을 좁혀야만 한다.
촬영을 마치고 넓은 도로를 따라 주욱 올라가니 널따랗게 잘 가
꾸어진 정경부인 밀양박씨 묘소가 나와 조금 쉬는 중에 간간히
고사리도 눈에 띈다.
쉼을 마치고 올라가는데 본격적인 산행로가 나오는데 끝없는 오
르막길이 우리 숨을 거칠게 하고, 등에서부터 시작되는 따끈따
끈함이 온몸을 적셔온다.
바지에 스타킹을 신은 김몽현 선생님은 목에 걸친 노란 수건으
로 연신 땀을 씻어내며 배낭에서 큼지막한 2리터짜리 페트병에
담아온 시원한 노란 물을 우리 일행들에게 돌린다.
받아 마셔보니 맛이 새콤하며 산뜻하다.
김몽현 선생님이 직접 만든 11초차라 한다. 헛깨비 나무, 칡순,
오가피 등 하여튼 몸에 좋은 재료를 섞어 만든 차라 하니 힘이
다시 솟는 느낌이 온다.
오르는 중에 평지나 내리막길은 전혀 없고 오로지 오르막길이
우릴 땀나게 만들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망이 좋은 곳에 이르러 발아래 펼쳐진 시원한 세상을 보려 했
으나 뿌연 날 때문인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선두 그룹은 보이질 않고 후발대만 남아 가는데 정상 아랫봉에
이를 즈음에 오르막길과 옆 사잇길이 나오기에 나 혼자 호기심
에 의해 옆길을 택해 가면서도 혹시 내가 길을 잘 못 들어 우리
일행과 떨어지지 않을까 조바심하며 가는데 드디어 합류지점이
나와 안심하며 우리 일행들이 내려오길 기다리는데 내려오진 않
고 바나나 먹으러 오라 하기에 한참 오르니 조그맣게 쌓은 돌탑
주위에 앉아 바나나를 맛있게 먹는다.
나도 따라 먹으니 허기진 배가 도톰해지는 것 같다.
쉬면서 높다란 앞산 정상을 보니 어느 산행객들의 카메라 플레
시의 번쩍거림이 눈에 띄기에 우리 일행들은 저 사람들 혹시 다
른 등산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눈여겨 살펴보는데 겨우 형
체만 보일 뿐이다.
우리 팀이 벌써 저렇게 빨리 올라갈 수가 없을 텐데 하면서도
반신반의한다.
‘야~호’소리를 외쳤으나 응답이 없어 더욱 궁금하기만 하다.
이 시간에 산에 오른 사람은 우리뿐일 텐데······.
계속 오르막길만 오르는데 지쳐버린 우리는 앞에 펼쳐진 높다
란 봉우리를 보니 기가 질리는지 저길 어떻게 오르느냐 하며 걱
정을 한다.
난 앞장서며 저렇게 높아 보여도 실제 오르면 그렇게 힘들지 않
고 짧은 코스라고 설명하면서 앞장서서 한참 오르니 마침 큰 하
얀 꽃들이 만발한 산딸기나무가 나를 반기기에 한숨에 달려가는
데 마침 전귀옥 선생님이 카메라를 들고 산딸기나무를 촬영하려
고 내려오는데 그저 반갑기만 하다.
뒤쳐진 회원님들께
“예쁜 꽃나무 구경하러 오세요. 그리고 정상에 다 왔습니다.”
하니 뒷 분들의 목소리가 힘이 들어간다.
드디어 서방산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확 트여 시원한 바람이 우
릴 상쾌하게 한다.
헬기장에 편안한 쉼을 즐기는 선두팀은 우릴 반갑게 맞이한다.
서방산 정상은 아주 희한하다.
아랫봉에서 올려다볼 때는 상당히 높아 보여 산행객들을 질리게
만드는데 막상 오르면 생각보다 쉽게 오르게 하는 이유는 무얼
까?
‘모든 사물의 겉모습에 지레 겁먹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
든 일을 차분하게 행하면 편안하게 다 이룰 수 있다.’라는 것
을 서방산이 아둔한 우리에게 깨우침을 준다.
서방산(西方山)은 서방정토(西方淨土), 즉 아미타불의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연봉(5峰)중 제일 높은 주봉(主峰)이다.
서방산은 소양 송광사에서 오성리를 거쳐 고산으로 넘어가는 오
도재(五道峙)를 가운데 두고, 동쪽의 되실봉, 위봉산성과 마주
보고 있는 산이다.
북쪽으로 고산평야, 서쪽으로 생강의 고장 봉동과 삼례, 용진면
일대의 넓은 들녘과 간중제, 양화제와 만경강으로 합류되는 고
산천, 전주천, 소양천을 꿰뚫고 흐르는 넓은 들녘이 펼쳐져 시
야가 확 트이고 전망이 좋은 곳인데 오늘은 일기가 좋지 않아
바로 눈앞에만 희미하게 보여 우릴 다시 한번 이 곳에 오도록
유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은 유난히도 새봉(鳳)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새봉(鳳), 깃들일 서(捿)의 봉서사는 봉황이 알을 품었거나 깃
들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주변의 지명이‘봉(鳳)’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봉서사에서 봉서제(간중제)까지 이어진 계곡이 봉곡(鳳谷:봉이
깃들인 계곡)이며, 봉서제에서 동북쪽으로 2km의 지점은 봉강
(鳳降:봉이 내림), 봉강에서 다시 동북쪽 2km지점은 구봉(九鳳:
아홉마리 봉이 머무름), 구봉에서 북쪽으로 1km 지점은 봉상(鳳
翔:봉이 날아감), 봉상에서 북쪽 2km지점은 봉실(鳳實:봉이 열
매를 먹음), 봉상의 동쪽은 비봉(飛鳳:봉이 날아감), 봉서사 뒷
편 동쪽에 위봉사(威鳳寺)와 위봉산성이 있는데, 산세가 험하
여, 봉(鳳)이 위험하게 넘어갔다 해서 붙은 이름이며, 봉서사를
중심으로 한바퀴 원을 그리며, 많은 지명들이 봉(鳳)과 연유되
어 있다고 하며, 또 용진(龍進)은 용이 나가고, 봉서사는 봉이
깃들었고, 용진면 상운리(上雲里)는 구름이 떠있는 마을이며,
운곡(雲谷)은 구름이 있는 골짜기이다. 그리고 주변에 구름운
(雲) 자와 연관된 지명이 10여개나 된다고 한다.
삼례(參禮)도 임진왜란때 왜장 가등청청이 서방산을 바라보고 3
번이나 예(禮)를 갖추어 절을 했다 해서 붙은 지명이라고 전북
산수에서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조망이 좋은 곳에서 쉬면서 선두 그룹의 일원인
권양택 선생님이 우리 후발대에게 조크를 던진다.
앞으론 하늬뫼 산행 때에는 수준별로 해야 하지 후발대하고 수
준차가 나서 어디 같이 하겠느냐는 조크에 좌중의 웃음소리가
고즈넉한 산속을 메아리친다.
최문헌 선생님은 거뜬히 선발대 그룹에 끼어 우릴 맞이한다.
거기에 교장 선생님은 앞으로 2분기 개근 시상 때부터는 행동발
달상황에서 행발이 '나‘가 하나라도 있으면 시상에서 제외하자
는 제안에 모두 포복절도한다.
후발대를 무시하고 앞서가는 사람은 옐로우 카드로써 행발에 반
영하자고 하니 권양 선생님은
“내가 다음 2분기 개근상에 유력한 후보자 7명 중 한 사람인데
왜 저에게만 이러한 혹독한 제재를 가하며 택클을 거십니까?”
하는 말에 우리는 그저 마냥 즐거운 웃음소리만 지을 뿐이다.
날은 가뜩이나 찌푸리고 땅거미는 점점 짙어오고 있어 시계를
보니 7시이다.
오교순 선생님과의 산행 약속은 산행시간 90분인데 아직 하산도
하지 못한 처지인지라 은근한 걱정이 되어 앞장서 하산을 서둘
러 나뭇가지에 울긋불긋한 표지기를 따라 한참동안 내려가노라
니 뒤에서 부른다.
봉서사 길을 넘어서 종남산 쪽으로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뒷팀들이 오른쪽 갈림길 봉서사 길을 발견하고 우릴
불러 바르게 하산하게 한다.
경사가 심하고 잔돌이 많이 깔려 있어 넘어지기 십상이다.
전번 고덕산 산행 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왼손으로
땅을 짚었는데 다행히도 뼈는 부러지지 않고 타박상만 입어 지
금도 그 통증에 시달리고 있던 차라 무척 조심성이 간다.
한참동안 좁은 산죽 길을 산죽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김용수 선
생님은 신사도를 발휘하여 힘 들어 하는 오교순 선생님께 스틱
을 빌려 주어 스틱을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내려 오는데 그 뒤엔
같은 교무실, 그리고 같은 3학년 담임교사인 이승규 선생님이
뒤에서 선생님을 잘 보호하며 하산하는 모습이 자연만큼이나 아
름답다.
원래 오늘 오교순 선생님은 쉬려고 했으나 이승규 선생님이 힘
들면 업어서라도 모시겠다고 하는 말씀에 용기를 내고 참여하였
다 하는데 그 책임을 완수하려 바로 뒤에서 지켜보면서 뒤따라
잘 가고 있는 모습이 그린카드 깜이다.
이윽고 가로등이 아물거리는 봉서사에 도착했다.
봉서사는 신라 성덕왕 7(727년)년에 창건된 절로 고려 공민왕
때에 나옹화상이 중창하였으며 특히 현화한 고승으로 ‘석가의
화신’이라는 진묵대사(1562∼1633년)가 입산에서 열반까지 거
의 평생을 주석하며 수도한 절로 이름이 드높다.
진묵대사는 조선조 명종 인조시대의 명승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스님이었다.
호방한 성격으로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자리이고 산은 벼개로
다. 달을 촛불 삼고 구름을 병풍 삼아 바다를 술통으로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진묵대사는 도술을 부려 입으로 물을 뿌려 불이 난 해인사의 불
을 끄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산신령을 시켜 전주에
사는 어머니의 집에 모기가 달려들지 않도록 했다는 일화가 있
다.
또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애통해하며 지은 글로도 유명하
다.
자신이 비구승인 탓으로 자신의 어머니의 향화와 산소 관리가
걱정되어 자기 어머니의 묘를 오래오래 향화가 끊이지 않는 자
리(千年香火不絶之地)에 써서 그 묘는 지금도 향화가 끊이지 않
는 명당으로 유명하다.
근처 주민들이 묘에 제물을 바치고 향을 사르면 복을 받고 농사
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다투어 음식을 차려 바치고 향을 사
르기 때문에 향화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된 진묵대사의 부도는 봉서
사에 있다.
봉서사를 거쳐 부지런히 하산하는데 깊은 계곡엔 그동안 가뭄으
로 인하여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간간히 도로 옆엔 군인들
유격 훈련장이 있는데 어느 곳엔 군인들이 훈련을 마치고 뒷마
무리를 하고 있다.
드디어 주차장에 이르니 19시50분이다.
김삼중, 오교순 선생님은 가족과의 약속으로 인하여 먼저 출발
하고 나머지 16명은 저녁식사를 초대받은 김명자 선생님댁을 가
는데 마침 어스름한 도로엔 유격 훈련을 마치고 열을 지어 막사
로 귀가하는 모습을 보니 논산 훈련소에서 각개전투 훈련을 마
치고 흙투성이 모습으로 막사에 돌아오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이윽고 김명자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찾아드니 그야말로 카사비
안카의 언덕위에 하얀 집이 나온다. 대문도 없는 집에 파란 잔
디밭에 김명자 선생님의 차가 주차된 걸 보고 직감으로 알고 서
슴없이 차 세 대가 들이 닥치니 에이프런을 걸친 김선생님이 우
릴 반갑게 맞이한다.
덩달아 개 3마리도 반가움을 멍멍 소리와 꼬리의 상하좌우 흔듦
으로 우릴 맞아준다.
정원에 들어서니 아주 깔끔하다. 잡풀하나 없이 잘 손질된 잔
디, 가지런한 정원석 사이에 빠꼼히 내밀은 철쭉, 큰 바위 옆에
한솔과 반송이 그렇게 잘 어울린다.
이승규 선생님이 이 집에 분수대만 설치하면 백안관이 된다며
한 마디 던지신다.
정원앞에는 감나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우리의 사열을 받는 준
비를 마친 상태에서 부동자세로 버티어 서있는 모습이 어스름한
저녁에 그렇게 잘 어울린다.
여선생님들이 주방에 들어가 부지런히 김선생님을 돕는 중에 우
린 정원에서 정원구경을 하며 담소를 즐기고 있는 중에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들어서니 성대한 만찬이 우릴 기다린다.
김선생님이 가꾼 무공해 상추에 잘 삶은 돼지고기를 싸서 한 입
에 넣으니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접시 싹 비우니 계속 더 나온다.
거기에 달콤한 반주와 곁들이니·······.
다른 학교에 전출 가셔서 오늘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하늘님,
해피님, 부송인님, 동운님들이시어! 약 오르시겠지만 이 글로
대리 만족이나 하시구려.
만찬을 들면서 주단 6단인 권양 선생님이 구수한 입담으로 김선
생님 남편분과 함께 걸죽한 담화로 좌중에 함박웃음을 자아낸
다. 초단 이승규 선생님도 반주를 맛있게 드신다.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마치 우리는 지금 강원도 어느 산중에 콘도에서 저녁 한 때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정겨운 분위기가 고조되
어 있다.
정원못지 않게 아담하게 잘 가꾼 거실에 앙증맞은 화분에서 고
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우리 들꽃 들.
이 모두가 김선생님의 섬세한 솜씨가 작용한 흔적들이 역력히
들어난다.
디저트로 달콤한 수박을 즐기며 끝이 없는 정담을 나누다 보니
밤 10시가 되어 가 어절 수 없이 일어나 김선생님 내외분의 따
뜻한 배웅을 받으며 밤길을 가르는 중 차속에서 오디오가 흘러
나오는데 마침 흘러간 country song 'I really don't want to
know' 노래가 흘러나오니 마침 교장 선생님의 애창곡이라며 원
어로 따라 부르시며 이 노래 가사의 뜻을 설명해주시는데 우리
한국인들에겐 정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캄캄한 학교에 이르러 미도착한 권
영창 선생님 팀을 기다리는데 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오질 않아
은근히 걱정이 되어 불안한 생각이 들어 교문 밖에 나가 한참동
안 기다리니 하얀 차가 학교쪽으로 방향등이 깜빡거리기에 반가
움에 달려가 연유를 물으니 오는 길에 권양택, 이승규 선생님을
모셔 드리고 오는 바람에 이렇게 늦었노라 한다.
이렇게 늦은 것은 괜찮은데 무사히 돌아와 주셔서 고맙다는 인
사를 나누고 흐믓한 마음을 가슴에 가득 안고 귀가하여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즐기고 잠자리에 드는데 시계는 자
정을 가리키며 편안한 꿈나라에 가라고 재촉한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첫댓글 登山三樂의 진가를 보여준 산행이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솨아~~밀려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