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 강가에서 > ⑩
아내의 아름다운 경제생활
1. 아욱 이야기
어느 문학잡지에 연재하는 고은 선생님의 일기를 무지 신나게 읽고 있습니다. 문학이 정치를 만나면 그렇게 신바람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다시는 그런 연대적인 열망과 열정, 격정적인 순정의 시대가, 선생님의 일기 같은 그런 가슴 먹먹한 문학적 일상이 없겠지요. 일기 중에서 특히 신경림 선생님의 사시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목이 꽉 메어 왔습니다. 지금도 그 글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더워져 옵니다. 선생님의 일기를 보면 술을 안 먹는 날이 없습니다. 술을 먹고 ‘뻗었다’라는 말이 그렇게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술 먹는 일과 거의 동시에 가장 많이 먹는 것이 아욱죽과 아욱국입니다. 술 먹고 ‘뻗’는 사람들은 날마다 다르지만, 예를 들자면 “송기원과 이시영과 술 먹고 뻗”은 날 아침 “아욱죽을 먹다.” 이런 식이지요. 아내가 고은 선생님의 그 아욱죽 이야기를 읽은 날 아침 ‘오늘은 아욱국을 끓여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뒷산(전주 아파트)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마침 할머니 두 분이 밭에서 아욱을 뜯고 계시더랍니다.
“할머니, 나 아욱 좀 주지.”
“안 돼야.”
“왜?”
“내가 왜 첨 본 지비한테 아욱을 줘?”
“참, 이상하네, 밭에서 아욱을 뜯으며 아욱을 안 준데?” 할머니들이 고개를 들고 아내를 쳐다보더래요.
“글면, 팔아.”
“안 돼, 뭔 아욱을 다 판대야. 이상하네.”
“글면 그냥 줘.”
“참내, 별 땡깡이 다 있네. 그러면 주께.”
“아녀 돈 주고 살 거여.”
“뭔 아욱을 돈 주고 판대야.” 그러면서 할머니 두 분이 뜯어놓은 아욱을 비닐 주머니에 주섬주섬 담아가지고는
“자, 가져가 우린 새로 뜯을랑게.”
“돈 줄 거여.”
“아, 싫어, 돈은 뭔 돈이여 시방.”
“5천원 줄 거여.”
“미쳤네. 왜, 돈을 준다고 혀.”
“그래도 줄 거여.”
“참네, 별사람을 다 보것네?”
“얼마 주냐고?”
“그려, 글면 천원만 줘 봐.”
“아녀, 천원은 안 돼야 2천원 줄 거여.” 2천원을 주니까.
“그러면 상추 좀 뜯어 주까?”
“아니, 상추는 집에 있어. 글면 할매, 나 가께” 하고 돌아오니, 할머니 두 분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참, 별일이고마인-. 밭에서 돈을 다 받고.”
2. 돈 1만원
안동 삼현(이오덕· 권정생· 전우익 선생님을 어떤 이들은 그렇게 불렀지요.) 중의 한 분인 전우익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저희 시골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오시면 며칠씩 묵고 가셨지요. 선생님께서 처음 우리 집을 찾으실 때도 며칠 묵고 추운 날 아침 길을 떠나셨습니다. 나와 아내는 마을 앞 정자나무까지 배웅을 나갔습니다. 강바람이 매서웠습니다. 찬바람 속에 웅크리고선 아내가 막 돌아서려는 선생님을 향해 “근데요 선생님 제가 이 돈 드리면 안 돼요?” 아내가 부끄러운 듯이 선생님을 빤히 올려다보며 손에서 꼬깃꼬깃 접은 1만원짜리 돈을 선생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기 손에 쥐인 돈을 내려다보시다가 아내를 빤히 바라보시며 “오냐. 받으마 아가, 내 이 돈을 쓰지 않고 갖고 있다가 죽기 전에 너 주마”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강변 추운 바람 속의 그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듯해져 온답니다. 우린 그때 정말로 가난했거든요.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대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위독하신데 우리를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대구로 달려갔지요. 그때 그 이야기를 하면서요. 선생님은 많이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우리는 입원하시는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신문에서 선생님의 장례 소식을 접했습니다.
3. 그림 이야기
몇 해 전 어느 날 나는 전주 시내에 일을 다 보고 예술회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림 전시 오픈 날이었습니다. 그림 보기를 좋아한 나는 무조건 전시실로 들어갔습니다. 전시실을 들어갈 때 나는 꽃다발이 많은 전시실은 일단 멈칫합니다. 입구에 고위층들의 꽃다발이 많은 사람 치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거든요. 아무튼, 그날 그 전시실 입구에는 꽃다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화가의 첫 개인전인 모양이었습니다. 단체전에서 이따금 한두 작품씩 접했던 화가였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이 화가의 진지함과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진정성이 현실적인 설득력까지 얻고 있어서 전시장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림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가는 남자의 나체를 주로 그리는 화가였는데 그날 전시된 작품들이 거의 남자의 나체였습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남성들의 성기와 육체들은 참으로 슬퍼 보였습니다. 적어도 이 작가는 우리가 사는 현대-현실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에 현실적인 고민이 없으면 영혼이 깃들지 않지요. 영혼 없는 그림처럼 맥 빠진 그림이 없거든요. 무슨 그림들이 똑같은 풍경을 감동도 없이 그리 많이 그려대는지 원.
아무튼, 나는 그림을 다 둘러보고 그중에서 아주 작은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는 화가가 지나가기에 “야, 너 좀 이리 와 봐. 내가 이 그림 살 테니까 다른 사람들 못 건들게 좀 해놔 봐.” 그래 놓고 집으로 와서 아내에게 가지고 온 전시 팸플릿을 주며 “이 그림들 중에서 내가 사기로 한 그림이 있으니, 당신이 어떤 그림을 내가 사려고 했는지 내일 아침까지 한번 찾아봐.” 아침에 일어나 내가 그림을 찾았냐고 하니, 두 개의 작품을 추려 놓고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것이었습니다. ‘화! 이 여자 봐.’ 그 두 개의 작품 속에 내가 고른 한 개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 둘 중에 내가 고른 작품이 있으니, 한 개만 골라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거” 하며 고른 작품이 내가 고른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당신이 오늘 직접 가서 한번 그 그림을 보라고 했습니다. 퇴근해서 그림 보았냐고 하니까 가서 보았더니 맘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둘이 가서 한 번 더 보자고 해서 둘이 가서 그 그림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볼수록 평생 가지고 있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미심쩍어서 그 이튿날 또 가서 보고 또 시간을 내서 그 이튿날도 가 보았습니다.
그림을 내리는 날이 되어 아침에 출근하며 오늘 그림 값 계산하고 그림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퇴근을 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우와! 그 그림이 거실 정면 마루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보아도 그 그림은 좋았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만족스러웠지요. 아내더러 그림 값을 얼마 주었냐고 했더니, 얼마 달라고 해서 10만원을 더 주고 왔다고 했습니다. 화가가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것을 우겨서 손에 쥐여 주고 왔다고 합니다. 10만원이면 우리에게는 선뜻 어디에 줄 만한 그런 돈이 아닙니다. 돈을 더 줄 수도 있다는 일에 우린 스스로 감동했고, 돈을 더 주고도 행복한 일상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 감동했지요. 그 그림 때문에 우리가 며칠 동안 행복했던 것을 또 어찌 돈으로 계산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