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2020. 9. 2 (수)
오늘은 나 혼자 먼저 닭장으로 올라왔다. 수녀님들은 다른 일들로 바빠서 내가 먼저 온 것이다. 진동이를 뒤쪽 감나무에 매어 놓고 닭장 문을 열어주었다. 닭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운차게 밖으로 뛰어나오는 놈에 날아서 나오는 놈에 정말 장관이다. 대략 한 시간쯤 풀어놓으면 닭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는다. 나는 혼자 앉아서 그놈들을 보다가 좀 무료함을 느껴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뉴스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암탉 한 마리가 가만히 내 곁에 바짝 다가와서 조용히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뭔가 이상해서 내가 저를 쳐다보니 슬그머니 지나갔다. 그 꼴이 너무 웃겨서 혼자 보기가 아까웠다. 마음을 다하면 다른 동물들이나 세상 모든 것과도, 교감이 가능하다.
2003년 여름, 내가 대구가톨릭대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나는 ‘비단잉어’를 기숙사 연못에 키우는 데 공을 들였었다. 이른 아침이면 기도와 묵상이 끝나면 연못으로 나가서 비단잉어들을 위하여 성가를 불러주곤 하였다. 연못에는 알록달록 예쁜 잉어들로 넘쳐났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잉어들은 화답하듯 둥근 원을 그리며 돌고 돌았다. 그런데 연못에 녹조현상이 일어나서 나는 경비 선생님들을 시켜서 녹조 제거제 약을 풀었다. 그때 붉은 점박이 예쁜 암컷 비단잉어 한 마리가 세 시간 동안이나 물속에 있다가 물 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하였다. 나는 이 녀석이 너무 가여워서 저녁 무렵에 “이리 온나!” 하고 잉어를 불렀다. 당시 나는 경상도 어법을 연습할 때였다. 사경을 헤매던 잉어는 나의 부름에 물가로 나왔다. 나는 잉어의 머리 위에 +표시를 해주면서 “하느님, 얘가 너무 불쌍합니다.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또, 한번 “이리 온나” 하고 불렀다. 달아나던 잉어가 다시 왔다. 마음이 동한 나는 다시 “이리 온나” 하고 세 번을 불렀다. 이놈은 세 번을 나에게 왔다.
밤에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 감정은 몸에 전율이 일어나듯 짜릿했다. 미물인 비단잉어가 나에게 이렇게 반응을 하다니 놀라웠다. 인간이 하느님께 깊은 애원과 반응을 할 때는 인간의 애원 이전에 하느님의 자비의 손길이 먼저 있었기에 인간은 그분께 매달린다는 것을 그 밤에 나는 깨달았다. 로마 8, 26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인간이 애원하기 이전에 하느님의 영이 우리를 재촉하신다. 인간은 자기가 먼저 대견하게도 하느님께 부르짖었는 줄로 착각한다. 그리고 다급한 나머지 하느님께 애타게 부르짖는다. 하느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서 고쳐주시고 돌아보신다. 비단잉어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응한 데 대한 신선한 충격에 그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비단잉어는 멀쩡한 몸으로 연못 위를 헤엄을 치고 다녔다. 나는 다시 “이리 온나” 하고 불렀으나 잉어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이제는 없다는 듯이, 마치 인간이 긴급할 때가 아니면 하느님을 외면하듯이, 세상 모든 만물의 이치는 이와 비슷하게 돌아간다.
첫댓글 비단잉어 참깜찍이 우리수녀님의 성가를 화답으로 모든 피조물 한지구아래 한가족임을
찬마받으소서 ~~
배신자 비단잉어 ...
물아일체가 여기 있네요♡
ㅎㅎ 닭도 휴대폰을 보았나봐요 비단잉어는 정말 신기하군요
마음을 다하면
다른 동물들이나
세상 모든 것과도
교감이 가능하다는데
백배의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