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7. 03. 21(수)
서간옹 이경 묘표음기(西澗翁李藑墓表陰記)
이경(李藑/25世), 1579년(선조 12) ~ 1650년(인조 27) / 국당공 후 정순공파
지은이 : 미수 허목(許穆)
공은 휘는 경(藑)이고 자는 천춘(千春)이요. 성은 이씨(李氏)이니,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경주이씨(慶州李氏)는 모두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한다. 옛날 신라가 흥기했을 때에 크게 다섯 성씨(姓氏)를 봉(封)했는데 이씨가 그중 하나여서 자손들이 높은 벼슬을 하였고 번성하였다.
고려 때에 이세기(李世樭) 라는 분이 있었는데, 충렬왕 때에 천장급제(天場及第)에 올라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그 3세손 성중(誠中)이 우리 태조와 태종 때에 좌정승(左政丞)을 하였다.
정승의 5세손에 사인(舍人) 영(瑛/23世)이라는 분이 있었고 사인이 도원도 찰방(桃源道察訪)을 지낸 귀남(貴男)을 낳았는데 이분이 공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인데 생원 정옥(鄭沃)의 따님이다.
공은 옛사람의 기상을 좋아하였고, 글을 읽으며 행실을 고결하게 지니고 50년을 살아오면서 곤궁하여 고생스럽다고 해서 그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은둔해 살면서 어버이를 봉양하였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추구하지 않았다.
인조 때에 와서 부제학 이명웅(李命雄)이 행실이 훌륭하다고 공을 천거하여 누차 공릉(恭陵)과 영릉(英陵)의 능침 재랑(陵寢齋郞)에 제수되었다. 뒤에 내섬시 봉사와 상서원 직장이 되었다. 당시에 어머니가 90여 세였으므로 대개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 부득이 벼슬살이를 한 것이다.
어머니가 별세하자 다시는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몸에 병이 많았다.
인천(仁川)에 거주하면서 서간노옹(西澗老翁)이라 자호(自號)하였다.
공은 만력 기묘년(1579, 선조 12)에 태어나 우리 효종 원년 경인년(1650, 인도 27)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 72세였다. 공은 일찍 아버지를 잃었는데 난리 때였다. 그래서 항상 장례를 극진히 모시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였다.
종신토록 가볍고 따뜻한 좋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장례를 간소하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공의 묘소는 파주(坡州) 분수원(分水院) 근처 서향(西向)의 언덕에 있다.
아내는 이씨(李氏)인데 본관이 공과 다르다. 우리 태종의 아드님인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의 6세손이다.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다. 장남은 제한(齊漢)인데 현감이고, 다음은 충한(冲漢)이며 그다음은 지한(之漢)인데 모두 사인(士人)이다.
그리고 두 사위는 구감(具鑒)과 민주재(閔周才)인데 또한 대단한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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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西澗翁墓表陰記
公諱藑。字千春。姓李氏。本慶州人。慶州之李。皆祖李謁平。昔羅興。大封五姓。李其一而子孫貴大。高麗世。有李世禥者。忠烈時。登天場及第。爲密直副使。其三世孫誠中。逮我太祖,太宗。爲左政丞。政丞五世。有舍人瑛。舍人生貴男。桃源道察訪。於公爲皇考。母延日鄭氏。生員沃之女。公好古人氣。讀書潔行五十年。不以困苦而易其心。當光海時。隱居養親。不求知於世也。及仁祖世。副提學李命雄。薦其行誼。累除恭英陵寢齋郞。後爲內贍寺奉事,尙瑞院直長。時大夫人已九十餘。蓋爲親屈也。大夫人歿。不復求仕。仍多病。居仁川。自號西澗老翁。公生於萬曆己卯。歿於我考宗元年庚寅。年七十二。公早失先人。當亂離。常痛恨葬而不得盡於禮也。終身不求輕煖。遺命薄葬。公之墓。在坡州分水院上西向之原。妻李氏。非一李。我太宗別子孝寧大君?之六世孫也。生三男二女。長男齊漢。縣監。次沖漢。次之漢。皆士人。其二壻。具鑑,閔周才。亦大家之世也。
游齋先生集卷之二十三/李玄錫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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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奉大夫尙瑞院直長李公墓誌銘 - 李玄錫
李肇於慶自謁平。際會羅祖功烈弘。䠤嬀及麗弈簪纓。密直世基振家聲。天場及第大厥鳴。文孝公蒨君月城。
進繇魁科位宰衡。載誕誠中國之禎。弼我祖宗贊邦經。諡以靖順存圽榮。傳五代孫舍人瑛。察訪貴男仕不贏。
公卽其嗣寔諱藑。字曰千春秀骨淸。萬曆己卯降而生。妣鄭夫人籍臨汀。生員沃女展閨英。公挺美質秉純誠。
讀書潔行處困亨。腌世含光躬鑿耕。逮遭休明薦譽爭。屢除寢郞始茅征。奉事直長漸進程。維時聖善九耋齡。
屈也爲親匪自輕。洎乎丁艱宦遂停。邵陵幽隱適閑情。自號西澗混野氓。孝廟元年返列星。壽七十二胡考成。
墓在坡州原向庚。配李國姓派孝寧。其年乙酉性賢貞。稀算加七葬同塋。三男二女福履榮。伯胤齊漢存典刑。
蔭官監務有子禎。惟禎奮發鯤化溟。沖漢之漢難弟兄。俱毓兩兒學家庭。稷襫裕祥聯珠瓊。長壻具郞鑑其名。
閔生周才次女行。噫公學行擧世傾。誰之不如不公卿。委命任性絶經營。詩書詔後勝金籯。及孫斯闡報孔明。
善者休怠天不冥。嗚呼諒哉是爲銘。 <끝>
유재집 > 游齋先生集卷之二十三 / 諡狀○碑銘○墓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