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청에서 주관하는 주민대상 정보화 교육을 하는 컴퓨터 강사다.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무료로 수업을 한다. 수업은 3주 동안 하며 수강생은 30대 주부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20명쯤 되는 수강생 중 다수는 이미 컴퓨터를 해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고령이신 73세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처음 켜 보신단다.
할아버지는 수업을 받기 위해 읍내에서 사 왔다는 연필과 달력을 잘라 만든 연습장을 펼치며 내가 설명하는 것을 꼼꼼히 적으셨다. 하루 2시간짜리 수업 중 30분은 타자연습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인터넷 검색을 한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자판 글자도 제대로 찾지 못하셨다. 수업 진도를 나가려고 하면 질문을 해서 계속 옆에 서 있어야 했다. 할아버지 옆에 앉으신 분은 아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수강생들 역시 할아버지 근처에는 앉으려 하지 않았다. 안쓰러웠지만 컴퓨터를 멀뚱히 바라보며 어떻게 하는 거냐고 혼잣말을 하셔도 나는 모른 척 하며 진도 나가기에 바빴다.
종강을 3일 남겨둔 날 볼일이 있어 2시간 일찍 강의실로 향했다. 3월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건물로 들어서는 찰나 할아버지가 수업 내용이 빼곡히 적힌 연습장을 들고 서 계셨다. 읍내로 나오는 버스가 수업 전에 도착하기 때문에 먼저 와 기다린다고 하셨다. 미국에 있는 손자와 채팅을 하려고 컴퓨터를 배우신다는 말씀을 듣고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인생철학을 알려 주셨다. 어떤 일이건 안 되면 쉽게 포기하던 나의 나태함을 조용히 일깨워 주신 것이다. 나는 한번이라도 열정을 다해 공부해 본 적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