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로마서 13장 8절.
제목 : 사랑.
우리들은 히브리서 11장 1-2절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믿음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믿음은 눈에는 보이지 않고 우리의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선물로 받은 믿음을 굳게 지켜 나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으며, 저번에는 소망이라는 주제에서는 바울의 고백인 빌립보서 3장 7-8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알고 영생을 소유한 뒤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길 만큼 예수가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성도라고 자처하는 이들까지도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 적을 두고 살기에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쫓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나 직분을 가지고 살고 있는 자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적잖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그런 자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한 번쯤은 점검해보고 자기들의 신앙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 중에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주님의 십자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는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면서 확증된 사랑이 십자가 사건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는 우리들이 아직 주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갈 그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기와 연관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지 이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잠시 전 로마서 5장 8절에 의하면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인시키고자 직접 자신의 몸으로 힘써 보여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자기가 배 아파 낳고 키웠던 세상의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자녀를 위해서라도 목숨을 기꺼이 헌신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생명은 단 하나뿐이며, 다시는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녀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것도 적잖은 고민과 염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주님은 바로 나를 위해서 내가 주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이 천년 전에 우리나라도 아닌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굳이 나와 접목시킨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과 아가페적인 사랑이 최고조로 다해 있었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사랑이 또다시 증명되는 구절이 성경에서 찾으려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저는 에베소서 1장 4-5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조금 전 우리를 위해 이 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증명하신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은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지만, 그 계획은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그 순간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과 섭리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이 정말 놀라고 귀가 막히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에 세상을 창조할 그 당시, 성경적인 시간으로 보면 창세기 1장이 되기 전부터 지구에서 나라는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만큼 존재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택하심과 사랑,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고 있습니까?
그 하나님은 또 우리들에게 이런 놀라운 말씀도 주셨습니다. ‘내 부모를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편 27편 10절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계획과 사람과 확신으로 찬 사랑으로 우리들을 지금도 보호하고 지키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위의 구절들을 한 번씩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인간을 향한, 굳이 말하지면 내 개인을 향한 어마어마한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이렇게 우리들이 말하고 실천하는 사랑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과는 차원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사랑으로써는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이 실천하는 것이 자기 자녀에 대한 사랑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자녀에 대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그런 자녀라고 할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내치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런 자녀는 두 번 다시 안보겠다는 생각을 할지라도 부모는 그 자녀를 한없이 품어주고 감싸주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조금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볼품없는 나를 위해 창세 전에 택해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셨으며, 이 세상에서도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아닙니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랑을 가슴속깊이 느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느끼는 우리라면 이제부터는 그 사랑을 우리 자녀에 솟는 그 사랑만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도 느끼고 사는 사람답게 세상을 향해 그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하여 나의 작은 사랑과 관심속에서 그들도 세상에는 아가페적인 그야말로 끊임없이 베푸시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실천해 보이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이 느끼고 주님께로 나오는 자들이 있어 지기를 서소망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느라’는 말씀처럼 나의 작은 사랑에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아가서는 그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반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