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부산 총선에서 승리하는 그림을 그리겠다”
“유시민 대표 민주당에서 함께 합시다”
(서프라이즈 / 거다란 / 2011-05-15)
“어 김정길이네”
여론조사에서 20%까지 뒤졌던 최문순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꺾은 지난 4월 27일 저녁 들뜬 분위기의 최문순 후보 사무실을 훑던 카메라에 함께 얼싸안고 기뻐하는 김정길 전 장관의 모습이 들어왔다. 같은 당이긴 하지만 강원도에 간 김정길은 다소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의 중진 정치인 김정길과 강원도 초선 의원 최문순은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관계를 찾기 힘든 조합이다. 그런 두 사람을 동지애의 우정까지 나누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김정길 전 장관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강원도의 김정길 등 지난 지방선거 후 지금까지 파편적으로 들려온 김정길 전 장관의 소식들을 종합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김정길 전 장관은 흔쾌히 응했다. 지난 5월 8일 선거가 끝난 지 11일 만에 부산의 집에 들른 김정길 전 장관을 해운대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정길 전 장관은 청바지와 재킷에 노란 셔츠를 받쳐입고 나타났다. 김정길 전 장관은 캐주얼을 즐겨 입는데 이날따라 더 활력적으로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강한 의욕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강원도는 4월 18일 갔습니다. 동계올림픽 관련해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대한체육회장에 있을 때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IOC 위원들도 꼬박꼬박 챙겼고요. 단체로 한국을 방문한 IOC 위원들 촬영해서 돌아갈 때 개인별로 편집한 영상을 준 적도 있었는데 다들 크게 감동하더군요. 그때 쌓은 친분으로 아직도 연락을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강원도민에게 이런 제 경험과 인맥으로 최문순 후보의 올림픽 유치 운동을 돕겠다고 말씀드렸죠.”
김정길 전 장관은 2005년부터 2008년 초까지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때 강원도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었고 스스로 자신의 것을 내놓으며 희생을 한 적도 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할 때 IOC 위원 후보였어요. 그런데 한 국가에 두 개의 선물은 안 준다고 하잖아요. 당시 저의 IOC 당선은 유력했어요. 하지만, 평창의 올림픽 유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IOC 위원을 포기했죠. 이 얘기를 강원도민에게 했습니다. 강원도민을 위해서 제가 누구라도 탐내는 그 자리를 포기했다면서 그거 알아주신다면 최문순 후보에게 표로 갚아달라고 했죠.”
강원도의 동계올림픽 유치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김정길과 최문순의 관계는 좀 더 길게 이어질 것 같다.
“당선 후 최문순 지사에게, IOC 위원들에게 이번에 당선된 강원도 지사라고 소개하는 편지부터 먼저 보내라고 조언했죠. 앞으로 최문순 지사를 세계 스포츠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부터 뛰어야죠.”
강원도에서 김정길의 역할이 필요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역의 정치적 명망가로서 김해을에서의 역할도 중요했다. 김정길 전 장관 개인이나 지역 야권을 위해서도 김해을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김정길 전 장관은 왜 김해을을 챙기지 않은 걸까?
“김해을은 강원도 가기 전에 이틀 다녀왔어요. 사실 김해을은 걱정 안 했어요. 불안한 맘이 있긴 했지만, 당시엔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해선 덜 불안했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계속 이기고 있었고 다들 강원도만 이기면 다 이긴다고 봤었죠. 저도 그래서 강원도에 온 거였고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김해을에 있었을 겁니다. 김해을은 우리 모두 방심한 거 같아요.”
김정길 전 장관은 민주당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이후 20년간 민주당원으로 살았다. 경남북 전체에서 이렇게 명망 있는 민주당 정치인은 없다. 그래서 김정길 전 장관은 호남에서 더 인기가 높다. 만약 김해을 선거에서 김정길이 같이 뛰었다면 민주당 표의 결집력을 더 높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6.2 선거 끝나니까 호남 쪽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와요. 조선대에서 강연도 하며 많이 환영받았죠. 부산에서 45% 지지받은 것에 다들 선전했다며 격려 해주시더라구요. 호남에 계신 분들은 영남 하면 노무현과 저 김정길을 떠올리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니까 기억하는 정치인이 저만 남은 거지요. 20년간 민주당 정치인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고 노무현의 친구였던 저에게 신뢰감과 의리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거기다 제 처가가 호남이라는 것도 저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는 것 같구요(웃음). 부산시장 낙선 후 호남분들 응원 덕분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한나라당 당적으로 호남에서 20년간 도전했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그는 영남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많은 응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인 한나라당엔 그런 인물이 없다. 왜 그럴까? 이 경우 자신 있게 양심이라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 아닐까.
“전 한 번도 부산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서울의 집이 있는 분당에서 조사하니까 따블로 이겨요. 영도에선 그 반대로 따블로 지더라구요. 사람들이 서울로 옮겨서 출마하라고 하더라구요. 전 그렇게 정치 안 했다며 부산에서 출마했습니다.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달려고 부산시민들을 배신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3당 합당 이후 부산에서 7번 떨어졌습니다. 17대 때는 정말 참담했죠. 선거 직전의 여론조사까지 이겼는데 결과는 2000표 차의 패배로 나타났습니다.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는 세력은 소수인데 제가 바로 그 양심을 대변한 정치인이었다고 자부합니다. 부산의 민주당원 이건 정치인 김정길의 양심입니다.”
영남에서 민주당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건 고난이다. 김정길 전 장관은 최근 친한 지인에게 지역주의에 관한 충격적인 얘기를 듣기도 했다.
“지난 부산시장 선거 때 우리 집사람이 또 고집부리냐며 무소속 얘길 꺼내더라구요. 집사람이 어딜 갔더니 30대 중반 여자분이 얼굴을 알아보고는 김정길 전 장관 좋아한다면서 이번엔 꼭 찍어주고 싶데요. 그러면서 이번에도 한나라당에 손이 갈지 모르니 당 이름은 가리고 찍겠데요. 세상에 별 유권자 다 있구나 했죠. 선거 끝나고는 더 충격적인 얘기도 들었어요. 형 동생 하며 지내는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 점심을 먹었는데 이 사람이 고백하길 이번 부산시장 투표하면서 내 민주당 당적 때문에 투표소 앞에서 한 1분쯤 고민했데요. 사석에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그런 고민 했다는 걸 듣고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김정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95년 노무현 대통령 부산시장 선거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정길 전 장관은 당시 유세연설에서 자신과 노무현 대통령을 낙동강 오리알이라고 비유하면서 두 개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화시키기 위해 나섰다고 부산시민에게 외쳤다. 16년 전 김정길 전 장관이 부화시키려 노력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7년 뒤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오리알은 하나 남았다.
“사실 제 정도면 비례대표는 따 놓은 당상입니다. 부산시장 출마 등 그간의 기여로 비례대표 상위 순번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4년 국회의원 해서 뭐할 겁니까? 비례대표 안 합니다. 거절합니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IOC 후보 사퇴한 거처럼 내년 총선 야권의 승리를 위해 한 번 더 던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제가 부산에서 민주당원으로 고군분투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12년 만에 그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젠 제 차례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주의와 싸워온 제 정치의 결실을 만들 것입니다. 지난 지방선거 제 득표율로 부산에서의 가능성이 확인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예전과 다릅니다. 출마 의지를 보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년 총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부산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영도에 출마하실 겁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당선 가능성이 아니라 부산의 가능성, 나아가 경남의 가능성입니다. 부산 경남에서 최대치를 만들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합니다. 영도가 그 그림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죠. 아니라면 다른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해을 선거 패배로 위기에 처해있는 유시민 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유시민 대표가 왜 이런 상황에 있습니까. 민주당에 합류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왜 민주당에 못 들어갔습니까. 유시민 대표가 당시 민주당에 들어갈 분위기가 아니었잖아요. 이건 민주당의 책임입니다. 민주당이 배려해야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배려해야 합니다. 저도 부산에서 정치하면서 민주당 하는 거 보고 성질날 때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참고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로 민주당에서 20년을 지내왔습니다. 유시민 대표 함께합시다. 민주당에서 같이 싸웁시다.”
김정길 전 장관은 인터뷰 중 대권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대권 후보 김정길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 단점을 먼저 들어보자. 김정길은 다른 대권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약하다. 특히 젊은 층은 김정길이 누군지 잘 모른다. 김정길은 각을 잘 안 세우는 편인데 이것도 약점이다. 이슈의 중심에 설 기회가 없다.
그런데 각을 안 세우는 것은 이 시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 대결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이 이젠 좀 더 부드러운 리더를 원할 수도 있다. 호남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남 정치인이라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호남을 결합시켜 영남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맞먹는 득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김정길 자신의 말대로 지금까지 양심을 지켜온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여건이 만들어지고 유권자의 눈길을 끌게 된다면 시대의 양심은 한순간에 유권자들의 맘을 채우고 머리를 돌려세울 수 있는 좋은 자산이다.
만약 2012 총선 부산에서 야권이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대권구도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 1시간 30분의 인터뷰를 취지를 살려 편집했습니다.
※ http://geodaran.com/2271
거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