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소주,햇고구마, 와인, 가양주, 위스키,생선, 고기 등은 묵혀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묵히는 비결이 항상 회자되곤 한다.
이외에도 묵혀야 맛있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 인간만 숙성시켜서 먹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가끔은 이 방법을 쓰는 것을 동물의 왕국 등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숙성시켜서 먹는 대표 품종이 김치와 와인이고
그 다음이 소고기와 생선이다.
이제 대표선수 중의 하나인 소고기의 숙성의 비밀을 풀어가 보자.
"숙성육… 썩기 직전의 순간이 가장 달콤해"
熟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연에 함유되어 있는 효소 등을 이용하여 식품의 맛을 내거나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라고 나오지만 어째 심심하다. 숙성이란 설익느냐, 썩느냐의 위태로운 경계 선상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균형의 예술’이다. 서서히 변화시켜 음식이 지닌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 ‘시간의 예술’이자 ‘기다림의 기술’이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유지해야 하니 ‘온도의 예술’이기도 하다. 와인이나 쇠고기, 김치는 물론 소주도 숙성을 거치면 원래보다 훨씬 더 나은 맛으로 탈바꿈한다.
“갓 잡은 싱싱한 고기”가 맛없는 이유
고기란 쉽게 말해 길고 가느다란 근육 다발. 소나 돼지, 닭, 생선 등을 도축하면 이 근육 다발이 수축해 딱딱해진다. 사후경직(rigor mortis)이라고 한다. 이 상태의 고기는 질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근육섬유가 끊어지면서, 즉 사후경직이 풀리면서 고기가 차츰 연해진다.
숙성한 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또 있다. 근육은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아무 맛이 없다. 무미(無味). 숙성을 시키면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변한다. 고기를 먹을 때 느끼는 감칠맛은 아미노산이다. 또 근육이 순간적으로 힘을 내어 일해야 할 때 필요한 글리코겐(glycogen)이란 물질이 있다. 글리코겐 역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면서 젖산으로 바뀐다. 젖산은 단맛이 난다. 고기 맛이 좋아진다. 한 쇠고기 유통업체 사장은 “솔직히 고기는 썩기 직전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고급 스테이크 집의 비결
썩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연하고 맛있게 시간을 준 고기를 숙성육(熟成肉)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숙성육을 사용한다. 미국의 피터 루거(Peter Luger’s)처럼 비싼 스테이크집은 자체 숙성실을 운영한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숙성육을 쓰기 어렵다. 비싼 고기를 다량으로 구입해야 하는데다, 냉장숙성실을 만들고 운영하는 비용도 만만찮다. 숙성 과정에서 수분이 증발하면서 그 비싼 고기 무게가 줄어든다.
더 중요한 건 고기가 상해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다. 짐승을 도축해 상온에 두면 미생물이 발생한다.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고, 점액이 흘러내린다. 쉽게 말해 고기가 썩는다. 고기가 상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연하고 감칠맛이 살아나도록 하기가 녹녹잖다.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의 ‘며느리도 모르는 영업 비밀’은 고기 숙성방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스퍼드 컴패니언 투 푸드(Oxford Companion to Food)’에 따르면 쇠고기는 최장 6주, 돼지고기는 열흘, 양고기는 일주일까지 숙성 가능하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고급 스테이크집은 대개 3주 가량 고기를 숙성해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한국에 숙성육이 드문 까닭
한국에는 오래 숙성한 고기를 쓰는 식당이 드물다. 고깃집의 탐욕이라기보다 서양과 우리의 식습관 차이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기름기 없는 고기를 두껍게 썰어서 스테이크로 살짝 구워 먹는 걸 최고로 친다. 고기 자체의 맛을 최대한 즐기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고기를 얇게 썰어서 바싹 구워 먹는다. 고기가 얇으면서도 연하려니 지방이 많이 낀 ‘꽃등심’을 최고로 친다. 기름이 녹으면서 고기를 연하게 하고, 섭씨 40~50도에서 녹는 액체지방 올레인(olein)이 촉촉한 감칠맛을 더해준다. 고기가 얇다보니 고기를 연하게 숙성시킬 필요가 덜하다. 비용까지 감안하면 굳이 숙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두텁지 않고 얇게 궝 먹기 때문에 선도 가 잇을 때가 가장 맛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생물은 갓 잡아서 바로 먹을 때가 그 본래의 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 물론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농경문화를 위주로 발달해온 민족들은 대다수가 바로 잡아 먹는데 반해서 서양처럼 유목문화를 유지해온 민족들은 그 문화의 특성상 고기를 바로 잡아 잡아서 부위 부위별로 음미해 가면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쉽게 먹을 수 있는 단백질 부위만 먹고 버려야만 했던 관계로 고기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서 이같은 숙성 문화가 발달했다고 보여진다.
충남 당진에서 숙성육 만드는 사람
경향 각지의 유수의 소기집에서는 대다수가 숙성육을 만들어 판다. 하지만 정육점에서는 그렇지 않는데, 우리가 자주 가는 진천과 가남 시내에 잇는 정육점에서는 이렇게 숙성육을 만들어 팔고 있다. 또한 이 숙성육만 만들어 파는 곳이 있는데 바로 충남 당진 ‘당진포한우촌’이다. 대표 김기학씨는 1999년 숙성육에 대한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됐다. 1톤 트럭 분량의 쇠고기를 버리기도 여러 차례.
김씨가 찾은 온도는 0.5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나 돼지를 도축한 다음 온도관리입니다. 도축한 직후 온도계를 고기 한가운데 꽂았을 때 온도를 ‘심부온도’라고 하는데요, 소는 영하 1도에서 0도 사이 돼지는 영하 1.5~1.8도 사이로 유지하면서 숙성실로 옮겨져야 미생물 증식이 억제되면서 좋은 고기가 됩니다.”
쇠고기는 0.5도에서 열흘, 돼지고기는 보름 숙성시킨다. 김기학씨는 “가장 이상적인 숙성 온도는 섭씨 4도라는데, 실제로 해보니 갈색으로 변하고 점액이 생겨 식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김씨는 “소는 부분으로 나눠서 숙성하지만, 돼지는 뒷다리, 몸통 식으로 덩어리가 커서 오래 걸린다”고 했다. 고기는 랩으로 진공포장해 숙성한다. 외국에서는 포장하지 않고 숙성한 고기를 제대로 숙성한 고기로 친다.
질 떨어지는 고기를 숙성해서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숙성하면 할수록 육질 차이가 선명해져요. 좋은 고기는 점점 선홍색이 선명해지지만, 나쁜 고기는 숙성 자체가 잘 안됩니다.” 김기학씨는 “보기만 해도 ‘아, 이 고기는 사야겠다’는 충동을 느낄 것”이라면서 자신만만하게 숙성육 한 덩어리를 내놓았다. 짙다 못해 검붉은 등심이 그렇게 먹음직스럽지는 않았다. 김씨는 “랩 포장을 이제 막 뜯어서 그런 것”이라며 여유만만했다. 고기 속 헤모글로빈이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하면서 고기색이 차츰 밝아졌다. 30분이 지나자 완연한 루비색. 고기 속에 숨겨져있던 지방질이 차츰 표면으로 밀려 올라오더니, 대리석 덩어리처럼 변했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보았다. 육즙이 특별했다. 몇 배로 농축한 듯 진하다. 비교를 위해 일반 고깃집에서 파는 등심을 함께 맛봤다. 분명 괜찮은 고깃집으로 과거에 자주 다니던 집인데, 함께 먹어보니 물에 담갔다 꺼낸 듯 싱거웠다. 지방도 다르다. 일반 고깃집 고기는 지방이 불에 그을린 듯한 맛이 나는데, 이곳 지방은 뒷맛이 버터 비슷하다. 육질은 너무 부드럽달까. 석쇠에 달라붙은 고깃점을 잡아당기면 찢어질 정도. 쫄깃쫄깃 씹는 맛을 선호한다면 불만일 수 있겠다.
김기학씨는 직영하는 정육점에서만 고기를 판다. 택배 등 배달은 하지 않는다. “냉장시설이 완전하지 않는 택배차로 배달했다가 문제나 불만이 생길까봐”라고 설명했다. 정성껏 만든 숙성육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정육점에서는 일반육 1근(600g) 1만7000원, 등심 3만5000원, 부채살·안창살·토시살·채끝살·제비추리·아롱사태 등 특수부위 2만3000원에 판다.
고깃집에서 숙성육을 공급받으려면 ‘냉동차와 냉장 숙성고에 붙은 별도 작업실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현재 김씨로부터 숙성육을 공급받는 식당은 경기도 김포 나진검문소 부근 ‘석산정’이 유일하다. 꽃등심 1인분(160g) 3만원, 안창살·갈비살·살치살로 구성된 스페셜 3만2000원. 육사시미(3만원)는 일반 한우 채끝등심을 쓴다.
하지만, 김씨가 추구한 방법이 모두 맞다고는 볼 수 없을련지도 모른다.
고기 맛이 아주 좋은 집에 가보면 고기를 숙성시킬 때 그들 나름대로 각기 다른 아주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 숙성 Point
①쇠고기는 열흘, 돼지고기는 보름
②섭씨 0.5도 유지
③진공포장으로 부패 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