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칼럼 68] "오늘 내 몫의 도토리를 심는 믿음"
장 지오노의 명작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양치기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도, 그는 홀로 황무지에 서서 밤마다 묵묵히 도토리를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땅에 구멍을 뚫고 정성스레 그 도토리들을 심었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광풍이 온 세상을 흔들 때도 그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수고였고, 당장 눈앞에 푸른 숲이 펼쳐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흘렀을 때, 그 죽어 있던 황무지는 거대한 숲이 되었고, 말랐던 계곡에는 다시 맑은 물이 흘렀으며, 절망했던 사람들이 돌아와 희망을 노래하는 생명의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 역시 이와 참 닮아 있습니다.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선한 일을 이어가지만 정작 눈앞에는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이 작고 보잘것없는 노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조급함과 회의감이 들 때, 우리는 쉽게 지치고 낙심하곤 합니다.
성경 속에도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무지에서 믿음의 씨앗을 심었던 이가 있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겠다는 약속만 믿고, 노아는 산 꼭대기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걸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배를 짓는 노아를 보며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손가락질하며 미쳤다고 놀렸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구름 한 점, 빗방울 하나 없었지만, 노아는 묵묵히 망치질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 방주는 온 가족과 생명들을 구원하는 은혜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
여기서 ‘낙심하다’라는 말은 마음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맥이 풀린 상태를 의미하며, ‘때가 이르매’에서 ‘때’는 우리가 정한 시간(크로노스)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완벽한 때(카이로스)를 뜻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은 뒤 곧바로 싹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밭을 갈아엎지 않듯, 우리가 심은 기도의 눈물과 사랑의 수고는 단 하나도 땅에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땅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일 뿐입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작업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나의 작은 순종과 수고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자리라 할지라도, 오늘 나에게 맡겨진 '도토리 한 알'을 묵묵히 심어 가는 것—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의 거룩한 삶입니다.
오늘 하루,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하나님의 완벽한 시간표를 믿으며 소망의 씨앗을 심으시길 바랍니다. 포기하지 않고 심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맑은 물이 흐르고 생명이 번성하는 푸른 숲의 열매를 우리에게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