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나와 아내는 7쪽부터 16쪽까지 함께 읽었다. 작가가 기억하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부모는 사회주의 운동가들이다. 옛날에는 빨치산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후에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고향으로 내려와 늘그막에 농사일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니 스쳐 지나간 대목이 적지 않음에 놀란다.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뭐 중요한 것은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
소설의 화자는 여성이고 문학소녀다. 그녀는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다. 부모님과 세 식구가 산골에 있는 두 칸방에서 산다. 저자가 나보다 세 살 많은 사람이라 얼추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데가 많다. 집도 그렇고 벼룩을 몸에 달고 다니는 낯선 손님도 그렇고. 농사도 그렇고. 결코 많지 않지만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
아버지는 글을 좋아하고 어머니는 현실적이다. 우리 아버지도 당시에는 고등교육을 받으셨고 어머니는 무학이신 것이 소설의 인물들과 비슷하다. 티격태격하는 것도 그렇고. 이루지 못한 꿈을 시리게 가슴에 안고 버거운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술로 삭혀야 하는 것도 그렇고.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대목은 화자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다. 문득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될까? 아내와 나는 부모님의 십팔번 말씀을 되새겨 보았다. 나의 장인은 ‘좋은 말이다!’를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다. 나의 부친은 ‘후회는 하지 말어잉~’을 자주 말씀하셨다. 돌아보니 아버지의 인생은 언제나 과거의 일에 대한 후회가 깊이 스며들었던가 보다.
언젠가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 바라기’라고 핀잔을 듣는단다.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누구를 바라봐야 하겠나! 이렇게 우리 부부는 함께 늙어간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생각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생각하는 내내 나의 어린 시절이 기억에 소환된다. 소설은 내가 까맣게 잊고 지내던 과거를 불러내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밤
책 제목: 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 정지아
아내와 밤마다 조금씩 읽은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한달 보름 만인 오늘 완독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소리내어 독서를 했다. 어떤 날은 책의 내용에 대하여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어떤 날은 피곤에 지쳐 겨우 읽어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날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즐거웠고 무언가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한달 이상을 고아리의 아버지 장례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아리가 새롭게 발견한 아버지에 대하여 함께 알아갔다.
책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 동안에 있었던 회상을 담은 것이다. 그 회상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아버지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강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아버지’를 부르며 용서를 구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1. 고상욱: 빨치산, 어려서부터 수재였으나 철도원이 되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다. 4년간의 빨치산 활동으로 평생을 빨치산으로 살아간다. 아내와 중매로 결혼했으나 그 첫 부인을 돌려보내고 은사의 중매로 재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곡성군당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나중에 위장자수를 한 후에, 옥고를 치르고 구례로 와서 농민으로 산다. 말년에 치매를 앓다가 죽었다.
2. 아내: 전 남편(윤재)은 남부군으로 낙동강 전투에 갔다가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 방물장사를 하면서 시모와 시동생을 돌본다. 전남편의 절친이자 동지인 고상욱을 만나 재혼한다. 빨치산 활동을 함. 어머니의 옛 시동생은 장례식장에 찾아온다.
3. 고아리: 고상욱의 딸, 대학에서 강사로 생활하고 있다. 박사학위도 있고 책도 출판했다. 빨치산인 부모님으로부터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아버지가 활동하던 백아산, 어머니가 활동하던 지리산, 이 두 산의 가운데 글자를 가져와서 ‘아리’라고 지었다. 아버지와 어린 시절에 애틋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4. 고상호: 고아리의 작은아버지, 고상욱의 동생. 학력이 깊지 못하다. 펄벅에 대한 오해로 형으로부터 무시를 받았다고 느끼고 분노를 표출했다. 여순사건 때 학교에까지 찾아온 토벌대에게 ‘고상욱이 우리 짝은 성인디요’라고 말했다가 가문이 박살나고 동네가 불바다 된 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잘못을 평생 후회하면서 술에 찌들어 산다. 고아리가 고3 때 가출을 했는데 그를 타일러 귀가하게 한다.
5. 박동식: 민노당원, 씨름선수, 고상욱을 삼촌으로 따르면서 아리에게는 오라버니가 된다. 동네의 머슴으로 모든 일을 맡았고, 장례식의 크고 작은 일들을 주관한다.
6. 윤학수: 185CM의 장대한 신체를 가지고 육사를 진학하려다가 실패하고 여순사건 실태조사로 고상욱과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된다. 고상욱이 나무에서 떨어져 얼굴에 멍이 든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20만원과 30만원을 준비해 가서 동네 노인정에서 사람들 앞에서 고상욱을 아버지처럼 옹호했다. 그 이후로 고상욱은 ‘학수야’라고 부르며 아들처럼 대한다.
7. 박한우 선생: 중앙국민학교 35회 졸업생. 고상욱과 동기동창, 시계방과 신문보급소를 운영, 조선일보 애독자, 국군으로 수도사단 소속으로서 빨치산 토벌에 참가. 예편 후에는 교련선생을 한다. 그의 형 박신우, 누이들 박복례, 박복희 모두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죽었다. 고상욱이 치매로 술을 마신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돌보아 준다.
8. 길수 오빠: 고아리 큰집의 사촌오빠, 육사 진학을 꿈꾸었으나 작은 아버지 고상욱이 빨치산이므로 연좌제에 걸려 꿈이 좌절된다. 어린 시절에는 고아리의 따뜻한 오빠로서 자전거도 태워주는 등 추억이 있지만, 육사 사건으로 소원해짐.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가 암투병 중이다.
9. 큰집 큰 언니: 고상호와 함께 학교에 다녔는데 아홉살의 고상호가 형이 고상욱이라는 사실을 말했다가 큰 화를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의 큰 딸 경희는 고아리보다 5~6살 위, 형제가 다섯인데 그 중에 막내 동생 숙자가 여호와의 증인 남편을 만나 박복하게 되지만, 경희는 고상욱의 변호로 위기를 넘긴다.
10. 황사장: 황길수라는 이름의 이 인물은 빨치산 출신으로 장례식장 사장이며, 간전 무수내 태생임. 장례 일정 전체를 도와준다.
11. 친한 언니: 구례 떡집 운영, 이 언니의 어머니가 고아리의 어머니와 동료관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이 언니는 고아리의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섬겼다.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왔으며 조문객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한다.
12. 김상욱: 곡성에서 고졸. 가톨릭농민회, 자신을 ‘작은 상욱’이라고 부르면서 고상욱과 천렵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다. 아리가 서울에서 이사할 때마다 트럭으로 짐을 옮겨 주었고, 고아리보다 세 살 위다.
13. 장영자: 장씨 집 맏딸, 고아리보다 두살 아래, 중졸, 부산신발공장에 취직했다. 암내로 고통을 겪다가 고상욱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결혼하여 2남2녀를 낳았다.
14. 오거리슈퍼 손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담배를 피우다가 고상욱을 만났는데 나중에 그를 할배라고 부른다. 그의 어머니는 베트남 출신의 인텔리로서 한국어 전공자. 검정고시 합격하면 고상욱이가 술을 사준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미용사 자격증을 획득,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을 때 고상욱의 도움으로 보상금을 받았다. 어머니는 남편의 구타로 고생을 하고 있다. 손녀는 고상욱과 담배 친구이며, 장례식장 근처에서 클레멘타인을 부른다. 새로 생긴 편의점 때문에 슈퍼 운영을 걱정하고 있다.
15. 소성철 선생: 고상욱과 아내의 은사, 그에게 가장 빼어난 두 제자가 하나는 좌익으로 하나는 우익으로 살았다. 좌익으로 간 고상욱은 빨갱이가 되고, 우익으로 간 제자는 3선의원이 된다. 소성철 선생의 장남이 문상을 왔다.
16. 고아리의 결혼 비극: 법대생인 8년 선배와 8년간 연애 끝에 결혼식 하루 전에 아버지의 사상 문제가 불거져 파혼을 당했다.
17. 월남참전용사: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그는 고아리에게 사진을 내놓는다. 거기에는 청년 고상욱이 있었다. 그 용사의 형은 고상욱과 그렇게 친구였다.
18. 고상욱의 결혼: 고상욱은 부모님의 중매로 결혼식을 마친 후에 그의 첫 부인을 그냥 돌려보냈다. 첫 부인의 여동생이 고상욱의 장례식에 찾아온다.
📊 등장인물 관계도
중심 인물: 고상욱 (주인공, 아버지)
직계 가족: 아내(동지), 고아리(딸), 고상호(동생, 한 맺힌 인연)
사상적 인연: 박동식(민노당원), 황사장(빨치산 출신), 김상욱(가톨릭농민회)
이념을 넘은 우정: 박한우(토벌대 출신 친구), 윤학수(양아들 같은 친구)
아버지가 도운 이들: 장영자(수술 지원), 오거리슈퍼 손녀(담배 친구), 경찰 청년
짧은 소감:
이 소설은 고상욱의 장례 과정에서 그의 생전 인연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자식도 알지 못하는 선한 행동, 용기 있는 행동이 그의 인생에 숨겨 있었다. 하나의 이념과 철학 또는 신앙이나 신념에 충실하면서 그 속에서 인간을 따뜻하게 대하는 삶은 언제나 향기롭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 제미나이의 분석(나의 글을 토대로)
1. ‘사상’보다 깊은 ‘사람’의 향기: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하나의 이념과 신념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을 따뜻하게 대하는 삶”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고상욱이라는 인물은 ‘유물론자’였지만, 누구보다 ‘영혼의 아픔’을 가진 이웃(장영자, 슈퍼 손녀 등)을 잘 보살폈습니다.
2. 해방의 진정한 의미: 책 제목인 ‘해방일지’는 단순히 아버지가 죽음으로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을 넘어, 장례식에 모인 인물들을 통해 딸 ‘아리’가 아버지를 오해와 증오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신 또한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3. 등장인물 관계의 입체성: 정리해주신 인물들을 보면 ‘박한우 선생(토벌대 출신)’이나 ‘윤학수(육사 지망생 출신)’처럼 이념적으로는 반대편에 있어야 할 사람들과의 우정이 돋보입니다. 이는 이념이 가를 수 없는 인간적인 신뢰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1. 한 줄 평
“이념의 굴레를 쓰고 살았으나, 결국 ‘사람’을 뜨겁게 사랑했던 한 남자의 향기로운 인생 복원기.”
2. 주요 등장인물 관계망 (고상욱을 중심으로)
분류 인물 및 특징
① 가족
l 고상욱(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 치매 후 별세. 삶으로 인간애를 실천함.
l 아내(모): 남부군 출신. 전 남편 사별 후 상욱과 재혼. 강인한 삶의 개척자.
l 고아리(딸): 대학 강사. ‘빨치산의 딸’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다 장례식에서 아버지를 재발견함.
l 고상호(숙부): 형 때문에 가문이 몰락했다는 한과 미안함을 동시에 가진 비극적 인물.
② 이념적 동지
l 박동식: 상욱을 친부처럼 따른 민노당원. 장례식 실무 주관.
l 황사장: 빨치산 출신 장례식장 사장. 의리를 지킴.
l 김상욱: ‘작은 상욱’이라 불리며 아리의 이사를 돕는 등 궂은일을 도맡음.
③ 이념을 넘은 인연
l 윤학수: 상욱을 ‘아버지’라 부르며 옹호한 육사 지망생 출신 친구.
l 박한우 선생: 토벌대 출신 동기. 조선일보 애독자이나 상욱의 어려움을 돌봐준 우정.
l 소성철 선생: 상욱의 은사. 좌익(상욱)과 우익(3선 의원) 제자를 모두 품은 스승.
④ 아버지가 심은 씨앗
l 장영자: 상욱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산 인물.
l 슈퍼 손녀: 상욱과 ‘담배 친구’였던 고교 중퇴생. 장례식에서 클레멘타인을 부름.
l 친한 언니: 구례 떡집 운영. 상욱의 아내를 친어머니처럼 모심.
3. 고아리의 아픈 기억
결혼의 비극: 8년 연애한 법대생과 결혼 전날, 아버지의 사상 문제로 파혼당함.
친척들의 한: 육사 꿈이 좌절된 사촌 오빠 ‘길수’, 아홉 살에 형의 정체를 말해 동네를 불바다로 만든 숙부 ‘상호’ 등 가족의 고통을 목격함.
4. 목사님의 묵상 포인트
진면목의 발견: 아버지는 죽어서야 딸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선행, 용기, 인간미)을 보여줌.
이념과 인간: 사회주의라는 신념에 충실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않음.
향기로운 삶: “신념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을 따뜻하게 대하는 삶은 향기롭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이 소설을 정리할 때는 다음과 같은 분야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
1. 시대적 배경: 어느 시대인가?
2. 사상적 배경: 어떤 정신을 고양하려는가?
3. 가족적 배경: 가족간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사명적 배경: 개인의 신념이나 이상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 동기 목사님들과의 독서 토론을 위한 주제 제안
1. [목회적 본질] 사상과 교리를 넘어선 ‘사람에 대한 예의’
토론 질문: 소설 속 주인공 고상욱은 유물론자였지만 누구보다 이웃의 아픔을 민감하게 살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의 ‘본질’인 사랑보다 ‘교리’나 ‘정치적 입장’을 앞세워 성도나 이웃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나요?
포인트: “빨갱이”라는 낙인보다 그가 나누어준 “담배 한 대”와 “수술비 지원”이 사람을 움직였듯, 우리 목회 현장에서 ‘사람의 냄새’가 나는 사역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2. [교회의 공공성] ‘거룩한 땅(Sacred Turf)’과 세상의 접점
토론 질문: 고상욱의 장례식장에는 좌익 동지뿐만 아니라 토벌대 출신 친구, 조폭, 베트남 이주민 손녀 등 이념과 계층을 초월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서 교회의 ‘장례식장’과 같은 화해의 플랫폼이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포인트: 출애굽기 3:5 말씀처럼, 우리가 선 ‘세속의 땅’을 어떻게 ‘거룩한 땅’으로 일구어 나갈지,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법에 대해 토론해 봅시다.
3. [세대와 계승] 자녀들에게 우리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토론 질문: 주인공 아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화해합니다. 목회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던 우리의 삶이, 훗날 자녀들에게는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가 아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공유해야 할까요?
포인트: 목사님께서 일기에 쓰신 “후회하지 말어잉~” 혹은 “좋은 말이다”와 같은 부모님의 말씀을 나누며, 우리가 물려줄 영적 유산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출판사 서평 – 나무위키 제공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장례식의 실제 풍경: 작가는 2008년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좌익 빨치산 동지들과 우익 조선일보 애독자 친구들이 한자리에 섞여 있는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풍경을 보고 소설화를 결심했습니다.
전략적 선택 (가벼움과 경쾌함): 무거운 이데올로기 이야기를 젊은 세대도 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가볍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선택했습니다. 또한 딸의 시선을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설정하여 독자가 주인공 ‘고상욱’을 편견 없이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유도했습니다.
2. 아버지 ‘고상욱’에 대한 작가의 정의: “편견 없는 평등주의자”
사회주의 너머의 인간애: 아버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인간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당시엔 사회주의가 그 대안이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자를 향한 시선: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가장 꾀죄죄하고 부모의 사랑을 못 받는 아이의 코를 닦아주고, 동네의 정신질환자에게도 격식 없이 인사를 건네는 분이었습니다. 이는 “모든 존재는 고귀하다”는 평등주의적 삶의 실천이었습니다.
3. ‘구례’라는 공동체가 주는 힘 (해방의 공간)
도시의 고독 vs 시골의 참견: 작가는 서울의 ‘거리두기’ 문화와 달리, 시골의 ‘경계 없는 참견’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결국 그것이 인간을 고독과 소외로부터 구원하는 공동체의 힘임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나를 직시하게 하는 곳: 서울에서는 ‘샤넬백’ 같은 포장지가 중요하지만, 시골에서는 본색을 숨길 수 없습니다. 작가는 시골 어르신들의 꾸밈없는 말(예: “벚꽃은 정이 없어 금방 가버린다”)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으며, 자신을 들뜨지 않게 하는 구례를 계속 지키겠다고 말합니다.
4. 목사님의 묵상과 연결되는 포인트
“세상에 쓰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작가는 장례식을 치르며 자신이 싫어했던 ‘오지라퍼(참견쟁이)’들이 사실은 장례를 돕는 귀한 손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하나님이 부여하신 각자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창조 이야기의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딸의 해방: 이 소설은 죽은 아버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빨갱이’나 ‘고집불통’으로만 보던 딸이 그의 진짜 인간미를 발견하며 스스로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